불교에서 ‘108배’ 절을 하는 것은, ‘108참회’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에게 있는 108가지 번뇌(煩惱)를 소멸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요새는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108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원래는 번뇌를 끊기 위한 참회 동작인 것이다. 원래 번뇌란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괴롭히고 어지럽혀 더럽히는 ‘정신작용’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이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어 해탈 열반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수행의 목적으로 삼는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 몸에 나타나는 열(熱) 증상에도 이러한 번뇌가 붙은 경우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번열(煩熱)’이다. 그래서 번열증에는 가슴이 번거롭고 답답한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작용한다. 실제 연산군 2년 11월 23일의 ‘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왕이 경연에 못 나가는 이유가 담긴 시를 직접 지어 적어 놓았는데, “기침 번열이 잦고 피곤한 기분이 계속돼, 이리저리 뒤치며 밤새껏 잠 못 이루네(하략)”라고 얘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엎치락뒤치락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는 무언가 생각할 것이 많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다는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물론 연산군 11년 10월 29일의 기록에는 ‘왕이 주색에 빠져 속에서 번열증이 일어났다’고 적혀 있지만, 어쨌든 정신적인 피로가 심해서 번열증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이유로 ‘오심(五心)열’을 번열과 연결시켜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5심’은 양 손바닥과 양 발바닥의 중심 네 군데와 심장을 일컬어 5심이라고 얘기하는데, 이때의 심장은 바로 ‘마음 심(心)’을 얘기한다. 중종 39년 11월 3일의 기록을 보면, 왕을 진찰한 어의들이 “왼손과 오른손의 맥이 부긴(浮緊)하고 혀가 갈라지고 입이 마르고 몸에 열이 나고 손바닥에도 번열이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이때의 번열을 수족번열이라 하는데, 오심열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실제 손·발바닥이 뜨거워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의원에 찾아오는 환자들 중에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도 제법 많다.
명종 21년 8월 27일의 기록에도 심기(心氣)와 번열에 관해 왕이 독백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제 오후에 심기가 번열한 듯해 정신없이 누워서 곤하게 잠을 잤다”고 얘기하고 이어서 “상열(上熱)이 더욱 심해 일신이 차기도 하고 덥기도 하며 심기도 울체(鬱滯)하는데 내 생각에는 가을이 됐으니 소생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고 얘기했다. 결정적으로 선조 8년 3월 5일의 기록에는 콕 집어 번열의 원인을 얘기했는데, “대개 허열이 오르는 것은 모두 노상(勞傷)이 심하고 사려가 번다(煩多)하고 음식을 드시는 것이 적어 기분이 초조하고 진액이 생기지 않는 소치입니다”라며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번열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밝혀놓았다.
물론 현종 10년 3월 21일의 기록처럼 목욕을 너무 연속적으로 심하게 해서 번열이 오를 때도 있고, 현종 15년 8월 10일과 14일의 기록처럼 헛배가 부어오르면서 대소변에 문제가 생기는 증상과 함께 번열을 느낄 수도 있지만, 역시 대부분 정신적인 피로가 원인이 돼 나타나는 경우였다. 특히 심화(心火)가 상승해 진액이 메마른 경우에는 단순히 열을 식히는 것만으로는 번열증이 치료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에는 반드시 진액을 보충해주는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데, 무조건 화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보다 인체의 음양(陰陽) 균형을 맞춰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심화를 내려주는 것도 좋은 치료법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