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노현 우에다2 - 우에다성에 입장해 지장이자 맹장 사나다 가문을 회상하다!
2019년 4월 13일 군마현 쿠사츠 온센 草津溫泉(초진온천) 에서 9시 10분에 버스를
타고 가루이자와 かるいざわ 軽井沢 (경정택) 역에 도착해 코인로까를 찾아
배낭을 넣고는.... 걸어서 구 가루이자와 ( 旧軽井沢) 시가지와 쿠모바이케
雲場池 호수를 구경하고는 다시 신칸센을 타고 나가노현 우에다(上田) 에 도착합니다.
코인로까에 배낭 을 넣고 인포메이션센타 에 들러서 시내 지도 를 받은 다음 기차역
건물에서 사나다(真田 진전) 3대 가문의 상징인 육문전(六文銭) 을 보고는....
역 광장에서 사나다 가문 최대의 맹장이라고 알려진 사나다 유키무라(真田幸村)
의 동상이 서 있는걸 보는데 바로“전국무쌍” 시리즈에서 주인공 사나다 마루 입니다.
우에다조 上田城(상전성)는 역에서 1.1km 거리라 걸어서 도중에 옛날 우에다번주 저택
(上田藩主居館跡)으로 지금은 우에다 고등하교 를 보고 우에다성 에 도착해 옛날
해자였던 강에 놓인 다리 를 건너 성 안으로 들어서는데 벚꽃 이 만개한게 볼만합니다.
오테몬(大手門, 정문) 으로 해서 성 안으로 들어가니 마침 오늘이 우에다성 벚꽃
마쓰리 날이라 사람들이 엄청 들어왔으니 곳곳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는데 일본에서는 하나미(花見 화견) 라고 해서 전국적인 현상입니다.
성 안에는 포장마차 가 많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타코야키 와
닭꼬치 며 여러 가지 먹을거리를 파는 모습을 구경합니다.
성 밖에 1차 해자인 강 이 있고 성문 으로 해서 안으로 들어오면 다시 2차 해자
가 있으니... 크고 견고한 성벽과 함께 성의 방비가 단단함을 알겠는데
역시나 벚꽃 이 흐드러지게 피었으니 오늘은 봄철 야유회 하기는 딱입니다!
성 안에는 붉은색 갑옷 을 입은 옛날 사무라이 들이 많이 보이는데.....
옛날 오다와라성 에서 보았듯이 여기 우에다 성에서도 관광객 들이
갑옷을 빌려입고 칼을 차고는 사진 을 찍는 모습들도 재미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서 사나다 신사 (眞田神社)를 발견하는데.... 神道(신도) 는
일본인들의 생활 그 자체 이니 일본의 성에 가면
거의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성 안에 신사가 자리한 것을 봅니다!
현재 나가노현 은 16세기 센고쿠(戰國 전국)시대 에는 시나노국 이라고
불리었으니 10여명의 군소 영주들이 할거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사나다(眞田 진전) 가문 이니... 저 사나다씨를 모시는 신사 인가 봅니다?
번주 마츠다이라씨 시절 조상들을 모시기 위해 세워졌던 신사로 현재는 사나다씨,
센고쿠씨 등 역대 성주 들을 모시고 있다고 하는데, 본당 옆에 있는 우물 은
사나다 우물(真田井戸) 이라고 불리우며, 성내 유일한 대규모 우물이었다고 합니다.
우에다성(上田城) 은 1583년 사나다 마사유키 에 의해 지어진 성으로 1585년, 1600년
두 차례에 걸쳐 도쿠가와군과의 우에다 합전(上田合戦) 을 통해 사나다 일족의
명성을 드높인 성 이기도 한데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는 사나다 일족에서
유일하게 동군 소속이던 마사유키의 장남 사나다 노부유키(真田信之) 영지가 됩니다.
노부유키가 마쓰시로 로 전봉된후 코모로번(小諸藩)에서 온 센고쿠 타다마사 (仙石忠政)
가 1626년 우에다성을 복원하니 니노마루(二の丸) 야구라와 야구라몬(櫓や櫓門)
을 재건하기 위해 야구라다이(櫓台) 도 만들었지만 1628년 타다마사가 사망하게
되자 공사는 중지되었고 그래서 니노마루바시에 야구라다이는 있지만 야구라는 없습니다.
우에다성 은 1949년에 성의 심볼이라 할수 있는 키타야구라(北櫓) 와 미나미야구라
(南櫓) 가 복원되어 두 망루가 연결된 것이 특징인데.... 1994년에는 성문
히가시코구치야구라몬 (東虎口櫓門) 까지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이 중에 히가시코구치야구라몬의 망루 는 300엔(박물관 공통권 500엔) 입장료를 내면 위로
올라갈수 있다고 하는데 각 망루의 조감도 및 복원 공정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이후 마츠다이라씨(松平氏) 가 번주로 임명되니 우에다번의 번청 으로 메이지시대 폐성령
전까지 활약하는데 공원 내에는 예전 시민관 건물을 이용해서 특별전시를 하니
1월 까지는 사나다마루의 대하드라마관 으로 사용되다가 4월 부터 11월 까지는
되살아나는 우에다성(甦る上田城) 이라는 테마의 특별 전시 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니노마루터에 있는 우에다시립 박물관 (上田市立博物館) 본관은 우에다시의 역사를
전시하고 별관은 사나다 일족을 중심으로 하는 전시 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유키무라의 초상 이나 세키가하라 전투 전 가문의 보전 을 위해
두 아들 노부유키, 유키무라와 회의 를 하는 마사유키의 그림 등이 보입니다.
왼쪽부터 차례로 사나다 유키타카, 마사유키, 유키무라(노부시게) 의 갑옷을 전시해
놓았는데 당시는 센고쿠(戦国 전국) 시대이니 각지의 유력 무장이 일본 통일 을
목표로 다툰 전란의 시대 에 지력이 넘치고 용맹과감하게 살았던 일족이
있으니 "사나다씨" 로 그들은 수백년 전 이 땅에서 태어나 활약한 무장들입니다.
박물관 별관에 사나다 일족과 관련된 유물 및 그들의 일대기에 관련된 전시가 이루어져
있으니 사나다 마사유키의 갑옷의 레플리카 가 전시중이며 NHK 대하드라마
'사나다마루' 중에서 유키무라 역할을 맡은 사카이 마사토(堺雅人) 가
사용한 갑옷으로 붉은 갑옷에 사슴뿔 투구..... 그리고 육문전 까지 새겨져 있습니다.
이 복장은 작년 발매된 전국무쌍 사나다마루 (戦国無双~真田丸~)의 초회 특전용 코스튬
으로 증정되기도 했다는데.... 출구 쪽에는 사나다 마사유키 역할을 맡았던 쿠사카리
마사오(草刈正雄) 가 착용했던 복장도 전시되는데 털로 만들어진 옷이 특별하게 보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쿠사카리 마사오(草刈正雄) 가 마사유키 역을 맡아 열연했으니 마사유키
역은 주인공인 일본 제일의 무장 유키무라를 뛰어넘는 캐릭터 로 인기를
얻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드라마 중후반부에 배우가 사망하자 일본 전국적
으로 "마사유키 로스" 라고 불리는 현상이 발생할 정도로 그 파장이 컸다고 합니다.
후쿠오카시 하카타구의 대표 축제 중 하나인 하카타 기온야마카사 (博多祇園山笠)
에서 2014년 축제시에 사용된 사나다 유키무라의 모습 을
한 가마가 기념품 코너에 전시 되어 있으며 일본의 100대 명성 중에
27번인 우에다성 은 박물관에서 일본 100명성 스탬프 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시 사나다 유키무라 는 도쿠가와씨로 부터 우에다성을 사수해
유명해져 사나다 3대라 부르는데 시조인 ① 사나다 유키타카 (真田幸隆) 는
신슈(新州 신주)의 명족 으로 가이국(야마나시현) 다케다 신겐 밑에서 활약했으나
특히 신겐이 함락시키지 못하던 토이시성을 지략으로 낙성 시킨 것은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는 운노 무네쓰나(海野棟綱)의 아들 이니 흔히 사나다(真田 진전)라는 성 은 유키타카
때 부터 쓰기 시작했다고 보는데 아들 아들로 노부쓰나(信綱), 마사테루(昌輝),
마사유키(昌幸), 노부타다(信尹), 가나이 다카카쓰(金井高勝) 를
두었는데 3남 마사유키(昌幸)의 자식 들이 노부유키와 유키무라 로 그의 손자들 입니다.
1541년 가이국(야마나시현) 다케다 노부토라(武田信虎) 는 시나노의 호족인 스와
요리시게, 무라카미 요시키요 와 함께 운노 가문의 영지였던 지사가타군
을 침공하니.... 운노 가문은 운노타이라 전투에서 패배 해 영지에서
쫓겨났고, 미노와성 성주 나가노 나리마사 에 의탁하러 고즈케국으로 달아납니다.
운노 가문의 수장 무네쓰나 는 관동지방의 대세력이던 관동관령 우에스기 노리마사
(上杉憲政) 의 힘으로 다케다 세력을 물리치고 옛 영지의 회복 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1546년 4월에 기습전으로 유명한 “가와고에 야전”
에서 노리마사가 호조 우지야스(北条氏康) 에게 참패 하는 대 사건이 일어납니다.
한편 가이국 다케다 가문 에서는 1541년에 다케다 하루노부(신겐) 가 아버지 노부토라를
국외로 추방 하고 가독을 계승하여 시나노의 사쿠와 지사가타 두 군을 침공하고
있었으니 유키타카는 아버지와 달리 다케다의 신하가 되어 옛 영토를 회복 하려 했습니다.
사나다 유키타카 는 1548년에 다케다 신겐이 무라카미 요시키요 에게 대패한 우에다하라
전투 에서 이타가키 노부카타의 부장으로서 참전했으니, 유키타카는 책략을 사용해
무라카미 요시키요가 속한 모치즈키 가문을 다케다측으로 끌어들였다고 하는데...
신겐은 유키타카에게 시나노 제압에 힘쓴 공으로 치이사가타의 스와에 영지를 약속합니다.
1550년 8월 다케다 신겐 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도이시성을 공격하지만 “도이시 대참패”
라고 불릴 정도의 대실패로 끝나니 다음해에 유키타카가 모략으로 무라카미 군을
내부 붕괴시켜 함락 시키니, 중요 거점인 도이시성을 잃어버린 무라카미 요시키요
는 1553년에 영지를 버리고 에치고국으로 도망치니 유키타카는 옛 영지를 되찾습니다!
사나다 유키타카 는 본거지 마쓰오성 을 정비했으며 도이시 성주를 겸임했는데 에치고로
달아난 무라카미 요시키요 는 에치고의 영주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 에게 의탁
했으니 신겐에게 영지를 빼앗긴 시나노의 호족들은 겐신에게 다케다를 응징할 것을
호소하자 이에 응해 겐신이 시나노를 침공한게 5번에 걸친 "가와나카지마 전투" 입니다.
유키타카 는 1556년 히가시 아마카자리성 을 공략하여 성주가 되었으며 1561년에 있었던
제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에서 유키타카는 사이조 산의 우에스기 본진 야습작전
에 참가했으며 5회에 걸친 가와나카지마 전투가 끝나고 시나노가 안정적으로
다케다 신겐의 수중 에 들어가자.... 다케다 가문은 간토 지방에 세력을 뻗치기 시작 합니다.
1554년에 고소슨 삼국동맹(다케다, 호죠, 이마가와 가문의 혼인동맹) 성립 후에 다케다와
호조가 동맹 세력이 되자, 호조 우지야스는 간토를 침략하는 우에스기 겐신과 싸우면서
유키타카에게 도움을 청하자 유키타카는 응하니 간토 지방의 전투에 여러 번 참가 했습니다.
우에스기씨 부하 사이토 가문의 이와비쓰 성을 공격 하고는 이어 고쿠야마성과
시로이성을 공격했는데... 맏아들 노부쓰나와 함께 다케다 가문의 관동 공격
의 거점 이었던 미노와 성의 성주대리 로 있었으니 후다이 가신(대대로 내려
오는가신) 에 버금가는대우였다는데 공격의 단조(攻め弾正) 라고 불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