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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기행 (11월4일 - 11월12일)
한라산 등반
아침에 서둘렀다. 늦어지면 진달래 휴게소에서 입산을 통제한다고 한라산등반의 시점인 성판악에 까지 우리일행을 실은 버스는 굽이를 돌고 돌아 산허리를 오르고 또 올라 여덟시 경에 도착했다. 한라산 1950미터를 700여 미터는 차로 오르고 나머지 고도 1200미터를 걸어서 올라 가야 된다. 간식은 각자가 준비하고 물과 김밥은 배급을 받아 배낭 안에 넣었다.
날씨가 쾌청하지는 않지만 등반하기에 좋은 날씨이다. 아침 바람이라서 차고 약간 쌀쌀함을 느끼다. 준비해온 면장갑을 끼다. 앳되어 보이는 학생들도 건장한 젊은이들도, 나이든 중장년층의 어른들도 노유를 불문하고 줄을 지어 올라간다. 경사가 완만하여 숨이 가쁘지는 않고 한시간 정도 가니 등에 땀이 차고 몸이 풀린다. 추위는 가신듯하다.
높은 산의 일기는 헤아릴 수가 없다.
그 사이 일기가 변하여 는개가 내려 등산로는 축축하고 대기 또한 습하다.
고도1000 미터, 고도 1100미터, 1200미터의 고도 표시를 지나쳐 올라간다. 시간을 재보니 대략 100미터 올라가는데 15분 정도가 소요된다. 등반시간과 거리를 그렇게 계산해도 대충 여정이 그려진다. 우리가 걸어서 올라가는 고도가 1200미터이니, 15분X12=180분 중간에 쉬는 시간 한시간 더해서 4시간 정도면 정상에 오를 것이다.
두 시간 반 정도 걸려서 진달래 산장에 도착했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붐빈다.
갈증에 목을 축이고, 배낭에 준비해온 우의를 꺼내 입고 길을 나선다.
경사가 가파라지고 빗줄기가 굵어진다. 굴참나무 떡갈나무 자작나무 등의 나뭇잎들은 이미 낙엽된지 오래고 빠알갛고 탐스럽게 달려 있는 마가목의 열매만이 한때 무성하게 숲을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도반이었던 디새집님이 마가목의 유래에 대해선 설명을 해준다. 마가목의 새싹이 마치 말의 이와 형상이 같아서 馬牙木이라 하다가 마가목으로 되었다고
점점 고도가 높아지면서 활엽수림대에서 침엽수림대로 바뀌어지고 더 올라가니 난장이 같은 작은 관목과 작은 억새와 이끼류가 있다. 수목한계선에 거의 온 것이다.
해발 1950미터에 이르러서도 까마귀는 사람들의 주위를 날아다나고 있었다. 까아악 까아악하는 듣기에 상서롭지 못한 소리를 내며
네 시간 여 걸려서 정상에 오른듯하다. 비는 내리고 농무가 끼어서 시계가 지극히 흐리다. 이삼십 미터 앞을 제대로 볼수가 없으니 정상을 나무 팻말 빼놓고는 구분할 방법이 없다. 백록담 내려가는 경사엔 목책이 둘리워져 있다. 사진 속에서 보았던 백록담 저 운무 아래 있을 것이라 상상으로 그려본다. 쉰여덟 되어서 처음 오른 산인데 좀 허망한 기분이다.
지리산 천황봉은 어찌하였던가? 처음 그 웅자를 보여주었던가? 아니었지 자주 다니다 보니 청명한 날씨에 거대한 지리산괴가 한눈에 들어오는 장관을 볼수 있었고, 찬란한 일출도 볼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라산에 올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한라산 정상이라는 나무 팻말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말하자면 인증샷인데 나는 저런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다. 몇 사람 부탁을 해서 사진을 찍어 주고 하산차비를 하였다.
허기가 졌지만 바람이 세고 비를 피할 수 없어 요기를 할 수가 없다. 좀더 내려가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행수 신샘과 선희씨와 한조가 되어서 하산 길에 나섰다.
허기가 지니 온통 밥 생각 뿐이다. 삼각봉 대피소까지는 너무멀다. 옛날 산장터였던 용진각 대피소 자리에서 점심식사를 하다. 김밥 두 줄 양이 충분하고 아주 꿀맛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내려가는 발걸음이 무겁기 그지없다. 포만감에 졸린다. 내려가는 길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도 비는 뿌렸다 개었다 하고
내려오는 길 8.5 키로 멀고도 지루한 길이었다 관음사 주차장 터에 도착하니 네시반 꼬박 여덟시간을 걸었다. 기회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 데 비와 운무 속에 앞 사람의 뒷모습만 보고 걸을 수밖에 없었던 산행이라 아쉬웠다.
거문오름
제주도에 산이라 불리는 산은 한라산, 산방산, 송악산 등이고 대부분 오름으로 불리는데 그것은 제주도가 화산섬이고 화산이 분출되어 생기는 여러 가지 자연현상과 지형의 모습이 지명에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제주도에 삼백 개가 넘는 오름이 있는데 대부분 화산 폭발시 만들어진 기생화산의 분화구이다. 그 중 거문오름이 한라산과 성산일출봉과 함께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용암이 분출된 분화구는 백록담의 세배나 될 정도로 크고 묽은 용암이 흘러간 자리가 지금의 만장굴, 용천굴, 김녕사굴 등의 용암동굴을 만들었다.
흙과 돌이 검다해서 거문오름이라 했고, 그 이름에 신령한 곳이라는 의미도 있다한다.
곳자왈과 아열대성 동식물의 생태가 아주 잘 유지되고 있어 거문오름은 엄격한 통제와 제한된 인원만이 돌아볼 수 있다. 사전 예약자에 한해서 입장할 수 있고, 안내인의 인솔하는 곳만 돌아볼수 있다.
생태보호에 배려가 각별하다. 우산이나 등산용 폴은 휴대할 수 없어 관리실에 맡겨놓고 들어간다. 곳곳이 안내인의 설명이 세밀하다.
우리가 오후 마지막 팀이었는데. 현씨 성을 가진 오십대 후반의 여인이 우리를 안내했는데 유익하고 즐거운 나들이 길이었다. 제주여인으로서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하다. 그 여인의 제주방언과 풍습에 대한 설명이다.
곳자왈: 곳은 숲을 이르고 자왈은 자갈을 의미하며 화산에 의하여 형성된 자갈 밭에 자연으로 형성된 숲 인데 생태가 아주 잘 유지되어 있어 지금은 보호를 받는 숲이 되었다.
쑥대낭: 국가에서 산림녹화를 시작하면서 삼나무를 심었는데, 쑥대같이 잘 자라서 쑥대나무라하여 제주도 방언으로 쑥대낭으로 불리우게 되었다한다.
존양정신과 수늘음 정신: 농경시대에 제주도는 자연환경이 척박하여 쌀 한 톨 생산되지 않았고 보리밥만 먹고 살았다. 쌀 밥을 구경할겨면 명절이나 제삿날이 되어야 했다. 오죽하면 제주처녀가 시집가기 전에 쌀 세말을 못먹고 시집간다는 속담이 있었을까. 존양정신은 절약정신을 말하고 수늘음 정신은 수를 늘린다는 뜻으로 협동정신을 말 한다. 그 들의 수늘음 정신은 칭송될만 하였다. 가뭄이 심하였을때 저 해안에 사는 사람들이 해발 200미터에서 500미터에 사는 중산간 마을에 물을 날랐다는데 지금의 도시화 된 삶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갸륵한 협동정신이다. 제주도는 현무암 지대라서 비가 내리면 지표로 흐르지 않고 바로 스며들어 지하로 흘러내려 해안가로 용출되어 나온다. 그래서 해안지대는 물이 풍부하지만 고지대는 물이 귀하다.
송이: 붉은 색의 작은 돌이다. 마치 채석장에서 잘게 부순돌 같이 작은 돌인데 현무암 부스러기라 속에 구멍이 송송 나있다. 그래서 송이라 부른다. 건축 내장재로 아주 유용하게 쓰이는데 습기 흡수가 좋고, 냄새를 잘 빨아들이는 특징이 있다. 제주도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육지에는 반출 금지다.
분화구 내부를 둘러보고 분화구 외부 산등성이를 도는데 8키로 남짓 되었다. 분화구 안으로 내려서니 용암하도를 따라 다양한 함몰구가 발달하여 독특한 생태적 입지를 가지고 있으며 냉온대식물이 공존하는 식생과 식물상을 갖는 곳이다. 휘파람새. 곤줄박이. 멧비들기 등의 제주 텃새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옛날에 숯을 구웠던 숯 가마터가 있고, 일본군 주둔시 군수물자 보관창고와 비상시 대피로로 만들었던 동굴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역사의 유물로 관리하고 있다. 분화구를 나서면 산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는데 그 작은 봉우리 하나를 용이라 명명하여 9룡까지 돌아보았다. 일기가 불순하여 사방이 확트여 보이지는 아니 하였지만 간간히 운무 사이로 보이는 제주도의 전원 풍경이 이채롭다. 검붉은 대지의 색깔과 구릉지대에는 목장이 있어 말과 소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다. 이런 면모가 여지껏 제주의 여행지를 따라다니면서 보지 못했던 것 아닌가 생각 했다. 제주의 속살을 보는 느낌이다. 세시간 정도의 여정이었다. 제주도에 가면 꼭 가볼만 한 곳으로 추천하고 싶다.
사려니 숲길
붉은 선이 출입통제 구역임
사려니 숲길은 제주시 봉개동 절물오름 남쪽 비자림로에서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사려니오름 까지 이어지는 약 15KM의 숲길을 말한다. 제주시에서 운행하는 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하여 이동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고 택시를 이용해도 만오천 원 정도면 충분하다. 정확히 말해서 한라산 등반시점 성판악 가는 직전에 있다. 해발고도 500-600 m에 위치하고 있는 사려니 숲길은 완만한 평탄지형으로 주변에는 물찻오름, 말찻오름, 괴명이오름, 붉은 오름 등과 천미천 계곡, 서중천 계곡 등이 분포하고 있다. 전형적인 온대산지로 사려니 숲길에는 자연림으로 졸참나무, 서어나무가 무성하고 산딸나무, 때죽나무, 단풍나무 등이 자생하고 있으며 계획조림으로 삼나무 편백나무 등이 심어져 있다.
사려니는 ‘살안이’ 혹은 ‘솔안이’라고 제주도의 방언에서 유래했는데 여기에 쓰이는 ‘살’이나 ‘솔’은 신성한 곳 또는 신령스러운 곳이라는 신역의 산명에 쓰이는 말이다. 즉 사려니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다.
아쉬운 것은 2년전부터 자연 안식년제를 실시하여 사려니 오름과 삼나무 숲길은 폐쇄되어 있어 이번에 걷는 길은 8KM정도 된다.
최근에 산림욕의 자연치유효과나 산림건강이 선양이 되면서 전국각지의 숲길이 각광을 받게 되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길이 사려니 숲길이다.
한마디로 사려니 숲길에 차를 내리면 콧구멍이 뻥 뚤리고 걷다보면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신나는 길이다. 낙엽이 쌓여 발등을 덮는 가을 산길을 걷는 것이다.
올레 축제
제주 올레 축제는 11월 7일에서 12일까지 일주일간 진행되었다. 첫날 기자간담회와 둘째날 여행작가 한비야 강연은 검은 오름과 사려니 숲길을 다녀오느라 참석을 못했고, 수요일 쇠솟깍 5코스 시점에서 올레 축제에 합류를 했다.
국내외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했고, 첫날 참석인원은 천명을 훨씬 넘는 것 같았다. 아침에 시작하는 장소에 가면 경쾌한 리듬이 흘러나오고 간단히 몸풀기 체조를 두어번 반복하고 나서 걷기를 시작한다.
잠시 쉬어가는 장소마다 여흥을 돋우기 위해서 놀이마당이 준비되어 있다.
나이가 지극해 보이는 연주자의 섹소폰 연주 인상이 가무잡잡하고 풍채가 좋은 것이 루이 암스트롱 같다. 아침 분위기에 더 경쾌한 음악이었으면 좋겠다. ‘대니보이’가 썩 어울리지는 않다. 구두미 포구에 해녀 춤이 기다리고 있다. 해녀들의 복장을 그대로 하고 있지만 실제 해녀들은 아니고 제주예술단의 회원들이다. 해녀들의 물 짓하는 동작과 잠수하여 해물 채취하는 동작하며 그리움 기다림 등 해녀들의 일상을 율동으로 표현을 했다. 역시 인류에게 춤의 기원은 반복되는 일상의 동작을 율동화 했다는 풀이가 깊은 뜻이 있다.
제지기 오름에 오르니 많은 사람들이 둘러 앉아 노래를 경청하고 있다. 아름다운 여성이 평상 같은 쉼터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있다. ‘청산에 살리라’ 다음은 푸치니 오페라 잔니 스키키에서 나오는 아리아 ‘오! 나의 아버지’이다. 숲속의 멋진 정경이다. 소프라노 박민정 제주대 교수, 그 다음 순서를 테너가 부를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불과 2년전에 올레길을 다녀갔는데 그 사이 코스가 달라진 것도 몇군데 있었다.
태풍으로 해안길이 유실되어 내륙으로 우회해 하는 곳도 있었고, KAL호텔은 호텔마당을 통과해서 갔는데. 지금은 패쇠되어 우회를 해서 갔는데. 올레길 관계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경위가 영 찝찝하다. 회장 사모님의 엄명으로 패쇠되었다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풍림콘도에 가니 콘도 마당을 지나는 올레꾼 들에게 직원들이 나와서 음식을 즉석에서 만들어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었다. 붙임개와 제주의 빈떡과 막걸 리가 나온다. 고맙다 하루 종일 손님 치르는데 여념이 없겠다.
이렇게 매일 한 코스 씩 5,6,7,8 코스를 토요일까지 걸어가면서 축제의 행사가 마무리 되었다.
올레축제에서 만난 여인들
제주 올레 서명숙이사장
가운데 춤추는 자세를 하고 서 있는 여인
제주 올레길을 만든 주인공이고, 여장부이다. 어찌 저렇게 작은 체구에서 그런 강단이 나왔을까 감탄할 뿐이다.
지금부터 8년전 서울의 시사주간지 편집장을 그만두고 유럽의 산티에고 순례길을 떠났는데 그 때 그 여행길에서 만났던 영국인 여행자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한다. 그 여인이 충고하기를 “ 이렇게 해외 다른 나라 길을 찾아 걷는 것도 좋지만 네 나라 네 고장에 가서 길을 찾고 길을 만들어라. 아주 아름다운 도전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고향인 제주도 서귀포에 내려와서 남동생들의 도움을 얻어 올레길을 개척하기 시작해여 1코스, 2코스, 3코스 코스를 늘려가며 지금은 14코스 까지 만들어졌다. 어찌 어려움이 없었으랴. 남동생들의 도움이 컸고, 자존심 강한 제주도 인들의 후원을 받아 불과 7년 만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 아름다운 길로 올레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국민 소득의 단계에 따라 일만 불에 오르면 마라톤 인구가 급격히 늘고, 이만불 시대가 되면 걷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국민소득이 이만불에 접어들었고, 새로이 입소문을 타게된 제주 올레길은 제주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제주도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게 되었다. 가히 제주도의 속살을 보여주었다 할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감히 서명숙 이사장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근세에 제주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행사중에 흥겨운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추고 흥을 돋우고 다시 길을 나서곤 한다. 길을 걸으면서 조우할 기회가 있어서 몇 마디 나누어 봤는데 축제를 주관한 주인공으로서 넘치는 기운이 전혀 없고, 아주 겸손하다. 술을 제법 잘하는 술꾼이고 세상 무슨일이 있어도 잠만은 양보를 못하다는 잠순이 란다.
칸느 영화배우 김부선
선글라스를 쓴 검은 옷의 여인
셋째날 길축제 포럼이 중문의 롯데호텔에서 있었다. 레바논, 독일. 일본, 영국, 미국 등 세계각국의 도보여행자들이 모여서 길축제 활성화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레바논에서 왔다는 잘생긴 미남, 영어를 유창하게 잘했고 유머러스했다. 앞으로 길 축제가 가야할 방향제시를 하였는데 귀담아 들을 만 하다.
길 축제를 각국이 돌아가면서 개최하고, UN의 산하 단체로 가입하여 위상을 높이자 한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다. 흔히 스포츠 축제가 되면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데 길 축제 세계대회를 하게 되면 그런 우열 승패가 없고, 다 같이 승자가 되는 것이고, 세계의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되는 것이다.
이때 우리 좌석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동석을 하면서 자기소개를 한다. 서명숙 이사장의 지인으로 우리 자리가 비어 있으니, 가보라고 한듯하다. 나는 행수 신정일 선생님과 같이 앉아 있었다.
어디에선가 매스컴에서 본듯하지만 정확히 기억은 없다. 밝은 웃음소리와 자기소개에 거침이 없다. 애마부인 1,2,3을 찍은 영화배우 김부선이라 자신을 소개한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 자칭 머지 않은 장래에 칸느에 갈 예정인 칸느 배우라고 하고 제주도 모슬포 부근이 고향이고 , 동향인 관계로 알게 되어 서명숙 이사장과는 언니 동생하며 지낸단다.
술은 전혀 못하고, 젊은 시절에 대마초는 가끔 피웠다는데, 대마초 단속반에 걸려 취조를 받았다하며 전혀 스스럼이 없다. 그 때에 여러 사람들이 걸려들어 TV에 보도되었는데 자기만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자신에 당당하지만 타인에게 우월감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사회적인 통념이나, 관습, 금기에 초연하다. 길지 않은 시간이였지만 유쾌한 시간이었다. 그 뒤로 길축제에서 만나면 어디서든지 하이파이브를 하고 반색하며 반가워했다.
그날 저녁 롯데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한토막.
올레 축제본부에서 축제 기간동안 우리 행수 신선생님에게 롯데호텔을 예약해주어 신샘 덕에 나도 이틀 동안 초특급 호텔에서 호강을 했다. 그날 밖에 볼일이 있어 나가는 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칸느 배우 김부선과 단둘이 조우했다. 그 여인이 버튼을 잘못 눌러 중간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내가 깜짝 놀라니까
그 여인 왈 “ 왜! 애마부인이 덥칠까봐 !? 겁내지 마슈! 이 몸 남자 잊고 산지 오래 되었다우!”
속으로‘ 참 거 맹랑한 여인이구만, 그런다고 밉다고 할 수도 없고’
첫댓글 한동안 보이지 않더이만 제주도에 다녀 왔구나..올레길은 언제가 한번쯤은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잘 읽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