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나무 잎은 손바닥 모양인데 여러 갈래로 찢어져서
마주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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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는 예로부터 정원수로서 널리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옛날에는 임금이
사는 대궐을 한자로 "신"이라고 쓰기도 했는데 여기에 단풍나무를 가리키는
"풍"자를 앞에 붙인 "풍신"이 곧 조정을 뜻하였던 것입니다. 단풍나무를 정원수로서 대궐 안에다 많이 심었던 데에서 그리 불렀던 듯합니다.
관상용의 정원수로서 단풍나무가 맨 처음으로 나타난 옛 문헌은 고려 말에 나온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입니다. 이 책은 그때의 정원이나 조경 식물을 연구하는 데에 더없이 귀중한 자료입니다. 또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조선 시대의 대표되는 정원인 "소쇄원"(전라남도 담양군 남면에 있습니다)이나 그보다 더 늦게 만들어진 "다산 초당"(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에 있습니다)에 대한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의 조상들이 단풍나무를 관상용으로 계속해서 가꾸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풍나무"는 한자말인 "단풍" 또는 "풍"에서 온 말로서 순수한 토박이말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단풍나무만큼은 외래종이 아닌 토박이종의 나무입니다. 그런데도
이를 부르는 토박이 말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단풍"이나 "풍"이 한자말이긴 하지만 중국에서 쓰는 말이 아님이 특이합니다. 중국에서는 단풍나무를 한자로 "축수"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축"자는 중국말로 "색"이라도 읽는데 중국말로 "색색"이라고 하면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가리킵니다. "풍"이란 나무가 중국에도
있기는 하나 우리나라의 단풍나무와는 거리가 먼, 향료를 만드는 데에 쓰이는 다른 나무일 뿐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자라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단풍나무의 준말로 쓰이는 "단풍"이란 이름은 한자말에서 왔으나 중국어에는 없는 일종의 트기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단풍은 색소의 결합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홍엽뿐만
아니라 황엽과 갈엽도 모두 단풍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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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분류학으로 보면 단풍나무는 두가지 뜻으로 쓰입니다. 먼저, 단풍나무는 단풍나무과에 딸린 참단풍, 노인단풍, 아기단풍, 당단풍 따위를 통들어 일컫는 총칭으로 쓰입니다. 그러나 식물학자들은 단풍나무속에 딸린 한종을 특히 단풍이라고
하여 위에 든 여러 단풍나무들과 구별하여 쓰기도 하는데 이것이 그 둘째 뜻입니다. 둘째 뜻으로 쓰이는 단풍나무는 단풍나무과에 딸린 갈잎 큰키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와 전라남도의 백양산 같은 곳에서 저절로 자랍니다. 야생종은 해발 백 미터에서 천륙백 미터까지의 산골짜기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정원수나 관상수로도 널리 가꾸고 있습니다. 키는 삼 미터에서 팔 미터에 이르는데 단풍나무과에 딸린 다른 나무에 견주어 키가 작은 편입니다. 나무 껍질은 회색을 띠며
잎은 손바닥 모양인데 여섯에서 일곱 갈래로 깊이 찢어져서 마주나기로 납니다.
꽃은 잡성화 또는 일가화로 암꽃은 꽃잎이 없거나 두개에서 다섯개까지의 흔적이
있지만 수꽃은 꽃잎과 흔적이 모두 없고 수술이 여덟개, 꽃받침잎이 다섯개입니다. 꽃은 사오월쯤에 가지 끝에 검붉은 색으로 피는데 크기가 작고, 피는 기간도
짧아서 보통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열매는 길이가 일 센티미터쯤이며 털이 없으며 구시월에 익고 날개는 긴 타원형입니다. 종자 열매에는 두개의 날개가 붙어 있어 늦가을에 열매가 익어 땅에 떨어질 때에 프로펠러가 돌 듯이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지는 모양이 재미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단풍나무는 골짜기 바위틈에서도 잘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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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부르는 단풍나무는 나무의 특징이나 산지에 따라 적절한 이름을 붙여서 부르고 있습니다. 단풍나무의 종류는 전세계적으로 백삼십종쯤 되는데 주로
북반구의 온대 지방에 분포합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히말라야와 중국의 중부 지방에서 가장 많이 자라고 있으나 적도 근처인 인도네시아에서 자라는 특이한 단풍나무도 하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열다섯종쯤이 있으나 그 밖에 변종이 열가지쯤 더 있습니다.
단풍나무는 다른 나무에 견주어 기름진 땅에서 잘 자라나 우리나라에서는 고산
지대의 계곡이나 바위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유한 단풍나무로는 전라북도 정읍의 내장산에 널리 자생하는 내장단풍,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섬단풍나무와 우산고로쇠, 서울 남산에서만 발견되는 서울단풍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울릉도의 섬단풍나무는 당단풍과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잎이 열세개(드물게는 열넷까지)로 갈라지는 것이 다른 단풍나무와 크게 다릅니다.
우산고로쇠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단풍이란 말이 붙지 않은 단풍나무도 여럿
있습니다. 고로쇠나무와 신나무, 복장나무 따위가 그 좋은 보기입니다. 동아시아
지역에 많은 신나무는 갈잎 작은 큰키나무에 속합니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신나무의 껍질과 잎을 염료로 사용해 왔고 왜에서는 군복을 염색하는 데에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고로쇠나무는 높이가 이십 미터에 이르는 갈잎 큰키나무로서 해발 천 미터쯤 되는 고산 지대에서만 자라며, 잎은 마주나기로 둥근 편이나 다섯 갈래에서 일곱 갈래까지로 얕게 갈라집니다.
계곡물 위에 다른 낙엽과 함께 단풍잎이 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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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전라남도 광양의 백운산이나 구례의 지리산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른 봄 곡우절이 다가오면 이 나무의 수액을 받아서 약수로 마셔 왔습니다. 고로쇠나무의 수액에는 미국이 원산지인 설탕단풍의 수액처럼 당분이 많이 들어 있지는 않으나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단풍나무 가운데에서는 가장 많은 탓인지 이차
대전 때에는 왜인들이 당분 부족을 해결하려고 채취하기도 했습니다.
고로쇠나무의 수액은 해마다 경칩을 앞뒤로 한 보름에서 스무날쯤까지 나이를 쉰살쯤 먹은 고로쇠나무의 밑동에 상처를 내어 거기에 댓잎이나 홈통이나 대통을
끼워 두면 수액이 똑똑 흘러나오는 것을 채취하는 것입니다. 이 수액을 받아다가
마시는데 옛날에는 절의 중들이 수액을 채취하여 찾아오는 신도나 손님에게 조금씩 마시게 했으나 요즈음은 인근 주민들이 만병 통치약으로 널리 알린 탓인지 해마다 삼월 초순께면 신경통이나 위장병을 앓는 이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기도 합니다. 그때쯤이면 고로쇠나무는 큰 홍역을 치르게 되는데 으례 밑동이 도끼로 찍힌 재 깡통 여러 개를 마치 과일처럼 주렁주렁 매단 꼴을 하고 있기가 십상입니다.
설탕단풍은 갈잎 큰키나무로서 원산지인 미국에서는 높이가 사십 미터에 이릅니다. 나무 껍질이 회색으로 갈라지며, 가을철의 황적색 단풍이 아름답습니다. 이른
봄에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한 곳에서는 이 수액으로 설탕을 만듭니다. 설탕단풍이 많은 미국 동부 지역에서는 수액을 받아서 많은 설탕을 생산하기도 했으나 사탕수수와 사탕무우에 밀려나 지금은 생산을 하지 않고 시럽을 만드는 데 그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당분 함량이 많은 설탕단풍의 재배를 검토하기도
했으나 환경 조건이 생장에 맞지 않아 아직 시험 재배에 머물고 있습니다.
사진은 주재은이 한계령 정상 부근에서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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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왜국이 원산지인 적단풍이란 종류도 있습니다. 관상용 정원수로서 사랑받는 이 나무는 다른 단풍나무와는 달리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단풍이 듭니다. 적단풍은 다른 나무보다 잎파랑이(엽록소)는 적지만 상대적으로 붉은 꽃파랑이(화청소)가 유난히 많은 변종의 단풍나무입니다.
적단풍처럼 외국에서 들여온 단풍나무들은 주로 관상용으로 가꾸어지는데 중국이 원산지인 중국단풍, 미국이 원산지인 네군도단풍과 은단풍 따위가 있습니다.
특히 미국산 단풍나무들은 심으면 곧 발아할 뿐만이 아니라 생장이 매우 빨라서
- 네군도단풍은 꺾꽂이로도 번식됩니다. - 원산지에서는 높이가 사십 미터에 이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와는 달리 목재로 요긴하게 쓰입니다. 그러면 단풍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이 푸른잎을 자랑하는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 들면서 노랗고
붉게 물이 드는 곧 "단풍"이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가을에 단풍이 드는 원인은 아직 완전히 규명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는 단풍이 드는 것은 나무가 늙는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조건에서 나이 순서대로 일어나, 가지의 맨 밑에 있는 잎이 먼저 누렇게 되고 그 다음이 중간에 있는 잎, 마지막으로 맨 끝에 있는 어린잎이 누렇게 됩니다. 일반 사람들은 가을에 단풍이 드는 까닭은 서리가 내려서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른 서리는 단풍잎 속에 색소가 최고로 나타나기 전에 내려 오히려 잎을 죽이거나 몹시 손상시키므로 오히려 가을 단풍의 찬란함과 풍요로움을
크게 감소시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빛의 변화에 따라 단풍의 빛깔도 그만큼
다양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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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여름이나 이른 가을이 되면 잎 속에서 푸른 색소가 더는 만들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잎 속에 이미 존재하던 푸른 색소마저 급속으로 파괴됩니다. 그와 동시에
잎 속에 있던 노란 색소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때쯤 되면 플라타너스, 미류나무, 자작나무, 네군도단풍 같은 나무의 잎이 노랗게 되는데 그것은 여름 동안에
노란 색소를 가리고 있던 푸른 색소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단풍이 들면 이파리가 흔히 노랗고 붉어집니다. 은행나무, 싸리나무의 잎에서 볼
수 있는 황금빛 노란 색깔은 노란 색소에 탄닌이라고 하는 갈색 색소가 결합해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한편으로 적단풍나무, 신나무, 당단풍 같은 붉은단풍과 붉나무, 여러가지 참나무,
층층나무, 풍나무 들은 잎이 붉다 못해 새빨간 빛을 띠게 됩니다. 이 붉은 빛깔은
잎 속에 화청소라는 붉은 색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색소가 가을에 나타나는 까닭은 청명하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는 동안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고 밤과 낮 사이의 온도차가 큰 데에 있습니다.
가을 단풍은, 첫째로 푸른 색소가 파괴되고 그에 따라 이제까지 가려져 있던 노란
색소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과, 둘째로 잎 속에 전부터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색소 물질이 형성되어서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첫째로 타로틴과
잔토필 같은 노란 색소는 언제나 푸른 색소와 함께 잎 속에 들어 있는데, 이 두 색소는 태양 광선 밑에서 파괴되지 않는 위대한 안정서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색소들은 푸른 색소가 파괴된 뒤에도 오랫동안 잎 속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설악의 단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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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푸른 색소가 없어진 뒤로 다른 색소가 없으므로 잎이 노랗게 되는 것입니다. 북미에서는 은단풍, 사탕단풍, 너도밤나무, 피나무, 플라타너스 같은, 단풍들면 잎이 누런 색깔의 나무가 활엽수림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우리나라나 왜에서도 자작나무, 피나무, 참나무 같이 노랗게 단풍이 드는 나무들이 우세한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둘째로, 가을에 나타나는 붉은 빛깔은 잎 속에 전부터 존재하던
것이 아니고 잎의 생활력이 쇠약해지기 시작한 뒤에 생기는 것입니다. 붉은 색소인 화청소가 나타나는 이유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태양 광선의 영향이 미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붉은 단풍, 참나무 들을 발이나 이엉으로 덮거나 가려서 일광을 차단하면 잎이 붉어지지 않고 누렇게 되는 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잎에 광선을 많이 쪼이면
푸른 색소가 파괴되어 없어지는데, 그것이 붉은색의 출현과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붉은 색소가 많이 나타나려면 반드시 세포 속에 당분이 많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단풍의 명소라고 하면 으례 붉은 단풍이 많은 곳을 가리킵니다. 붉은 단풍으로 유명한 설악산이나 내장산, 소요산은 가을에 온 산이 붉게 타오르는
것 같은 인상을 풍기며, 가을의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붉은 단풍은 가히
절경을 이룬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글은 김준민님의 글을 옮긴 것입니다.
출처를 밝힌 사진외의 것들은 이창수님의 작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