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망과 집착 -
벌써 10월 21일이니 세월도 참 빠르게 지나간다는 생각이듭니다.
오늘 저녁에는 제가 다니는 성당에서 결혼하시는 분이 계셔서 저희 부부가 증인을 서고 왔습니다.
신랑도 키가 크고 멋있고, 신부도 역시 키가 크고 미인이라서 행복하게 잘 사시리라 믿습니다.
집사람은 성당에서 예비부부가 결혼을 약속하고, 반지를 교환하고, 신부님의 좋은 말씀을 듣고 하는 의식 자체가 참 부러웠던 모양입니다.
저희 부부는 결혼 후에 성당에 다니고 있거든요.
전번 주 일요일에는 고향에서 집사람 4촌 남동생이 36살에 결혼한다고 하여 진주에 다녀왔습니다.
아침 일찍 서울 남부터미널로 출발하여 진주에는 오전 10시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장인어른이 타고 다니시는 경차를 빌려서, 어머님을 모시고 집현면에 있는 선친의 산소, 명석면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묘에 다녀왔습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자동차, pc 등 교통과 통신이 첨단으로 발달했지만 역설적으로 개개인은 고독하고, 마음의 평화는 오히려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래서 자신의 안뜰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시간은 별로 없습니다.
오늘 같은 늦은 토요일 저녁에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고모, 고모부, 외삼촌, 고향 형님 등 많은 분들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어찌 보면 그분들과 같이 생활했던 그 지나간 시간대를 기억해 내는 것이, 고요히 저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고향집 앞마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산이 소재한 집현면 선친의 산소에 저희 부부가 먼저 절을 올렸습니다.
벌써 3년째라 잔디도 많이 자랐더군요.
재를 하나 더 넘어 고향 명석면으로 갔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묘에서 인사를 드리고, 바로 위 작은집 할머니 산소도 둘러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집 사랑방에서 누워계셨는데, 요강이 필요하면 어머님 말고 늘 저에게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작은집 할머니는 우리 집 바로 옆에 사셨는데, 슬하에 딸만 여섯을 두셔서 아버지 4촌 동생분이 양자로 가셨습니다.
농촌에서 어머님이 들에 일 나가고 바쁘셨을 땐, 막내 동생을 거의 업어서 키우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진주 봉곡동에서 방을 하나 얻은 곳에서 홀로 쓸쓸히 돌아가셨습니다.
오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면서, 영성체하려고 신부님 앞에 두 줄로 서 있는데 연로하셔서 힐체어를 타고 계시는 할아버지의 흰 운동화가 유난히 제 마음에 담겨졌습니다.
나이 4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성당에서 장례가 생기면, 꼭 장례미사는 참석하려고 합니다.
목숨이 지는 그 분들의 생전의 모습을 떠올리면, 제 자신도 참 겸손해 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버리지 못하는 ‘집착’과 ‘원망’은 좀 사라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달리 생각하면 죽음은 마냥 슬픈 것만은 아니며, 그 분들이 남은 자들에게 주시는 삶의 진실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집착과 원망은 저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든다는 말뜻은 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늘 그것은 버리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토요일 늦은 저녁시간 다들 평안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글 작성
백철우 베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