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束閣式)에 대한 나의 경험을 소개한다. 필독서 일책을 완송(完誦)할 때마다 해당 학생의 부모님은 음식(떡,술,생선,육류등)을 장만하여 그동안 기르쳐 주신 선생님(師席)의 노고에 사의(謝意)를 표하고, 동학중인 선배(老前輩)님들의 협교(協敎)에 감사를드리는 동시에 자식의 성취에 대해 격려하는 일종의 문화행사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서당의 책거리 행사 목적은 사생(師生)에 대한 감사표시 외에 학생들의 건강을 고려한 부분도 없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된다. 내가 독서할 당시 학생들의 가정형편은 일반적으로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1년중 집에서 육고기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고, 늘 허기를 느끼면서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서당교육은 학년별 교육이 아니라 수준별 교육인 인제신교(因才施敎)를 원칙으로 하였기 때문에 매월 몇 사람이 완송하는 경우가 불규칙하게 발생한다. 따라서 월 4-5회 이상 책거리 음식을 먹으면서 우리는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늘 내가 이 정도나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성재공이 지어주신 보약과 책거리의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한중은 지금 서당식 전통교육을 처음으로 접해 보는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 서당생활 하루의 교과과정은 새벽 6시에 기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기상과 동시에 사석(師席)의 침구와 각자의 침구부터 정리정돈한다. 그 다음 우물에 가서 세면후 길러 온 물(玄酒)을 둘러앉아 마시면서 심잠(心箴)을 같이 외운다. 학생들은 모두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방, 마루, 뜰, 대문 앞을 청소한다. 그 다음 2-3시간 배울 내용을 예습하고 아침 밥을 먹는다. 8시경부터 사석 앞에서 어제 배운 내용의 배송(背誦)이 통과되면 새로운 내용을 배운다. 점심때까지 낭낭한 목소리로 글을 읽는다. 오후에는 2시간 정도 틈을 내어 글씨연습과 수준별 작문연습을 한다. 만찬후에는 제생들이 둘러 앉아 한문체로 일기를 쓰고, 당일 배운 내용중에서 난해한 부분에 대한 토론이 벌어진다. 그리고 취침전까지 복습한다. 이러한 일상이 되풀이 되는 교육과정이다. 학생은 독서외에 사석의 훈도(薰陶)를 간접 체험함으로써 애친경장(愛親敬長)의 인격수양이 스스로 묵화(默化)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선비로서의 소양이 형성되어 가는 것이다. 지식위주의 현대교육을 받은 한중으로서는 이번 서당생활의 인격도야(人格陶冶) 교육은 후일 그가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확신한다.
1월 27일 일요일 이회서당강독회 자리에서 책거리를 낸다는 명분으로 <대학>에 대한 강(講)을 받게 할 것이다. 이렇게 수강하는 방식은 지금 학제의 월말고사와 유사한 종합 시험제이다. 구체적 실행방식은 다음과 같다. 시관으로 초청받은 제사(諸師)들이 수험자에게 배송할 부분을 먼저 지정하고, 그 내용의 일부를 해석케 하는 동시에 연관된 실례들 들어 학생으로 하여금 자기의 관점을 개진토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사들은 학생의 심성, 스케일, 논리성 그리고 언어구사의 제능력을 평가하게 된다. 그동안 협력해 주신 제사들로부터 한중이가 이 과정을 통하여 지역사회의 어른들로부터 지혜를 습득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그로 하여금 스스로 깨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의 학습은 이후 대학생활에서 사우간(師友間)의 관계형성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오늘 한중은 2일간의 휴가를 얻어 귀정(歸庭)하였다. 나는 이회서당에서 그 동안 한중이가 배운 내용을 돌송(突誦)케 하는 한편, 애비의 입장에서 그가 얼마나 배운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차 강(講)을 받게 하였으며, <대학>을 읽은 독후감을 작성항여 카페에 올리도록 하였다. 오늘 밤 우리는 부자간의 학문적 토론을 통해서 그동안 단절되었던 세대간의 간극을 최대한 좁혀 보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옆 방에서 한중의 <대학>서문을 읽는 독서성이 나의 귓전에 들려오고 있다. 앞으로 약 2주간 한중은 <論語集註>의 과정을 끝내고 구정전에 귀경하여 대학의 입학준비를 할 계획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