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상위시대
김 국 자
서울 대방동에 있는 여성사전시관을 관람했다. 전시관에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약 100여 년간 발전한 여성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었다. 오랜 세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여성들의 자취를 돌아보며, 여성으로 살고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예전의 여성들은 남존여비 사상으로 교육은 물론 모든 사회활동에 참여할 계기를 갖지 못했다. 여자가 공부를 하면 팔자가 사납다는 잘못된 사고방식 때문에 그 시대의 여성들 대부분이 교육을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던 서양선교사들이 사립여학교를 설립한 후부터 여성들도 신지식과 신학문을 배울 수 있었고, 교육을 통하여 남성과 평등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가정의 대소사와 육아 그리고 농사일까지 여성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은 없었으며 남성들의 영역이라 여겼던 분야까지 진출하기 시작했다.
우리들 자랄 때만 하더라도 여성운전사를 보면 신기하게 여겼다. 그런데 그 여성운전자들 보다 더 이전에 여의사 박에스터와 여자비행사 박경원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성들은 아픈 부위를 의사에게 보이기는커녕 진맥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병에 걸리면 무당을 불러 굿이나 하다가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그 시대에 여성 환자들을 치료했던 여의사 박에스터가 존경스럽다.
여성들이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면서부터 생활에 변화가 일어났다. 3대 4대가 함께 사는 걸 당연하게 여기던 대가족제를 해체시키고 핵가족화를 초래했으며, 출산과 육아와 복장에 변화를 일으켰다. 그와 더불어 음식문화도 개선되었다.
결혼 전에는 친정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결혼 후에는 시부모님과 남편 뜻을 따르는 법으로 알았던 여성들이 완전히 바뀌었다. 안주인의 목소리가 담 너머를 넘으면 집안이 망한다고 여기던 시대에 자신의 의사를 당당하게 표현하고, 유행의 물결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그 당시의 신문과 잡지에 ‘거리에 서면 여인네뿐이로세’라는 기사가 실릴 정도로 여성의 권위는 향상되었다.
전시관에 전시된 여성의 역사를 관람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낮에 집에 있는 여자는 간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요즘 여성들은 십중팔구 부재중이다.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가고,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누리기 때문이다.
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일행들과 음식점에 갔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는데, 절반 이상이 여성들이었다. 시장에도, 극장에도, 백화점에도, 음식점에도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많다.
돌아올 적에 춥고 바람이 불었다. 사우나에서 몸을 녹이고 가자는 의견에 따라 동네 사우나에 갔다. 따끈한 쑥탕에서 몸을 녹이고 소금을 두툼하게 깔아놓은 소금 방으로 갔다. 소금 방에는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찼다. 빈자리가 없어 문을 닫으려는데 “월세 방 하나 빠졌습니다.” 농담하며 젊은 여성이 일어섰다.
소금 방에는 어린 자녀를 두었음직한 젊은이들이 여럿 있었다. 저녁때가 되었건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음이 가득 담긴 커피 통을 들고 젊은 여자 둘이 또 들어왔다. 자리를 비워 줄 겸 일어섰더니 “조금 전에 오셨는데, 벌써 가시게요?”하고 옆자리에 있는 아줌마가 물었다. “빨리 가서 저녁밥지어야지” 했더니 그 아줌마 왈 “요즘 끼니때마다 밥하는 집이 어디 있어요? 아침에 밥해놓으면 각자 알아서 해결하는 거예요.” 잘 배우라는 듯 또박또박 말했다.
아직까지 나는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다. 낮에는 식구들이 없으니까 점심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아침밥과 저녁밥은 반드시 새로 짓는 법으로 알았다. 더구나 찬밥을 싫어하는 남편 때문에 끼니마다 밥을 새로 지었다. 세상 많이 변했다. 마누라들은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어가며 사우나에서 억지로 땀을 빼고, 남편들은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는 세상이 되었다. 돈 버는 기계라 부를 정도로 힘들게 사는 남편들. 그와 반대로 여자들은 편안하게 호사를 누린다.
평생 일만하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큰어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시골 부자는 일 부자라 할 만큼 그땐 일이 많았다. 농사지으며 길쌈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빨래를 맨손으로 하여 일일이 삶고 풀 먹이고 다듬이질한 다음 다시 바지저고리를 만들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삼시 세 때 밥을 지으시던 그 분들 삶에 비하면 이시대의 여성들은 너무 편하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고 전기만 꽂으면 저절로 밥이 되는데, 그것도 귀찮아 밥을 한꺼번에 지어 놓는다니 참으로 한심하다. ‘말을 타면 종을 부리고 싶다’는 말이 있다. 그렇듯 여성의 권위가 향상되고 편안한 생활을 하면서도 가족들 끼니조차 귀찮아하는 것은 여성의 의무를 망각한 것이나 다름없다. 여성상위시대란, 권리만 주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의무를 다 할 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