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잃은 영혼을 울리는 서글픈 ‘샤미센’의 멜로디, 오키나와/전 성훈
“일본여행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어?”하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 사람마다 가 보고 싶은 곳이 다를 것이다. 나 또한 어디를 꼭 집어서 가고 싶다고 말하기에는 가 보고 싶은 곳이 많아서 쉽게 대답할 수 없다. 우선 쓰가루 해협 넘어 눈 축제로 유명한 ‘북해도’와 일본 땅이지만 일본답지 않은 ‘오키나와’가 떠오른다. 그 다음에 일본 전통 문화의 본향이라고 할 수 있는 ‘교토’, 먹거리의 고장 ‘오사카’ 그리고 에도시대 이후 줄곧 일본의 수도인 ‘토교’가 생각난다.
그렇게 가고 싶은 곳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내가 들러본 일본지역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2006년 6월 처음 일본을 찾았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부부와 함께 ‘구마모토’를 위시한 ‘규슈’의 벳푸 온천 지역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아는 사람들과 자유여행으로 2014년 3월 하순 벚꽃 축제 기간에 열흘간 ‘시코쿠’지역을 둘러보았다. 그 해 가을, 10월 중순엔 우리나라 동해안과 가까운 일본 중부 ‘가나자와’ 일원에 다녀왔다. 강북문화원에서 일본어 공부하는 분들이 오키나와 자유여행을 계획한다는 소식을 듣고 몇 달 동안 함께 배웠다는 인연을 빌미로 여행길에 동참하였다. 칠순을 앞둔 분이 모든 계획을 책임지고 항공사와 숙박시설 그리고 세부 일정을 세세하게 짜 놓으셨다.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거의 무임승차하는 모양새였다.
< 오키나와 가는 날, 2월 19일 >
예정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오키나와행 아시아나 비행기는 낮 12시 정각 ‘나하’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비행기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동지나해는 깨끗하였다. 저 멀리 자그마한 예인선이 커다란 바지선을 끌고 조용히 미끄러져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중랑천에서 자주 보았던 청둥오리가 물고기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모습처럼, 비행기는 ‘나하’국제공항에 가뿐하게 착륙하더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굉음과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달렸다. 잠시 후 숙련된 조종사의 솜씨로 속도를 줄이면서 서서히 계류장으로 향하였다. ‘나하’공항의 입국심사는 간단하였다. 친절함이 몸에 밴 일본인들이라 다른 나라 세관원처럼 퉁명스런 태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일행들이 수화물을 찾는 동안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껴입은 속내의와 잠바를 벗어서 배낭에 넣었다. 이번 여행은 여행용 가방 대신 그야말로 배낭여행답게 달랑 배낭 하나 둘러매고 떠났다.
공항을 빠져나와 입국장에서 자동차 렌탈 회사 직원을 만났다. 가냘픈 몸매에 키가 작고 어려 보이는 여성은 숙달된 솜씨로 중형리무진을 마치 장난감 다루듯이 몰았다. 공항에서 렌탈 회사까지 10분 정도 걸렸다. 일행의 대표가 운전면허증과 여권을 제시하고 8인승 자동차를 인계받았다. 필요한 서류에 서명을 하고 자동차 운전 방법 특히 내비게이션 작동방법 설명을 들었다. 내비게이션은 반드시 드라이버를 주차위치 놓고 목적지의 코드번호를 입력해야 시작되었다. 조수석에 앉아 볼 때는 쉽게 작동시킬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첫 번째 방문지는 슈리성(首里城)이었다. 지금의 슈리성은 제 2차 대전 당시 오키나와 전투에서 소실된 것을 1992년에 복원하였다. 슈리성은 류큐왕국이 450년 동안 통치하였던 왕성이다. 왕성의 규모는 우리나라 경복궁이나 창덕궁보다 작다. 아마도 동지나해 한 가운데 떠 있는 섬나라였기에 외적의 침입도 없는 상태에서 오랜 세월을 지내다보니 커다란 성곽과 궁전이 필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방문지는 왕실가족의 무덤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TAMA-U-DUN 왕릉(王陵)으로, 왕릉을 지키는 오키나와 수호신 암사자와 숫사자가 능침을 지키고 있었다.
오키나와는 옛날에 류큐(琉球)라는 왕국으로 우리나라와는 조선시대에 교류가 잦았다. 소위 조공(朝貢)을 바치고 조선으로부터 다양한 하사품을 받아갔다. 1609년 일본 본토의 사츠마번(지금의 가고시마현)으로부터 침략을 받았고 19세기 메이지시대에 오키나와현으로 복속되면서 류큐왕국은 멸망했다. 제2차 대전 때는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하여 일본군과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일제 침략 시기 강제 징용으로 끌려온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오키나와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제2차 대전의 패망으로 오키나와는 1975년 5월까지 27년간 미국의 통치를 받았다. 오키나와 평화기원 자료관에는 그 당시 아까운 목숨을 잃은 한국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이 있다. 오키나와 이곳저곳의 지명 한자 발음이 본토와 다르게 읽는 부분이 많아서 본토 일본인들도 쉽게 읽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어서 오세요’(멘쇼~레)와 ‘감사합니다.(니부에~데~비루)라는 오키나와 고유 인사말이 있다. 일본이지만 일본답지 않은 곳이 오키나와다.
< 여행지에서, 2월 20일-22일 >
오키나와는 일본에서도 대표적인 장수촌이다. 나이든 분들이 눈에 많이 띠었고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험인 ‘개호(介護)’병원이 길거리에 널려있었다. 요양보험제도가 우리나라 보다 훨씬 잘 정착되었다는 매스컴의 보도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츄라우미 해양수족관 방문, 지난 10월 가족여행으로 제주도에 가서 아쿠아리움 구경을 한 탓으로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우리나라와 시설이나 규모면에서 수준 차이가 거의 없었다. 수족관 내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려고 식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런데 일행 중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아 줄서기를 포기하고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시작하였다. 출구 부근에서 일행과 떨어진 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다행이었다.
길가에 있는 ‘오키나와 쇼바’ 전문점에 들렸다. 140년 전부터 대대로 쇼바를 만들어 온 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주차장에 자동차도 많았고 음식점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큰 것으로 주문하니 커다란 사기그릇에 쇼바가 가득하였다. 반찬은 한 가지도 없이 오직 ‘쇼바’뿐이었다. 돼지고기 편육 3-4개를 붙인 정도의 두께에 비계와 살이 붙어 있는 채로 넣어서 오랫동안 푹 고아 끓였는데 의외로 국물 맛이 아주 담백하였다. 국수는 가느다란 잔치국수가 아니라 자장면처럼 국수발이 두껍지만 씹히는 느낌은 자장면이나 우동하고는 확실히 달랐다. 여름철 중국집에서 맛보았던 중국 냉면처럼 투박하고 졸깃졸깃한 면발의 감촉이었다.
기분 좋게 맛있는 오키나와 쇼바를 먹고 찾은 곳은 파인애플 공원과 만좌모이다. 만 명의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넓은 잔디밭이라는 이름을 가진 ‘만좌모’(万座毛)는 이름에 비하여 그다지 볼 만한 것이 없어 실망하였다. 그러나 만좌모를 둘러싸고 있는 깎아지른 듯 한 절벽위의 코끼리 형상을 한 바위는 정말 코끼리 코를 빼어 닮았다. 류큐무라(琉球村)는 오키나와의 문화, 예능, 자연을 응축한 체험형 테마파크로 용인 민속촌이나 낙안 읍성을 연상하면 된다. 오키나와 각지에서 옮겨와 보존하고 있는 건축된 지 100-200년이 지난 민가들이 있으며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촌락의 모습이다. 물소를 사용하는 옛 방식 그대로의 설탕 제조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일본에서는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왕과 왕비 그리고 신하 복장을 한 사람들이 노래와 춤을 추는 공연을 구경하였고, 어느 집 입구에서 샤미센을 연주하는 늙은 여인의 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오키나와하면 떠오르는 것은 전통악기인 ‘샤미센’(三味線)이다. 샤미센 소리를 듣자 왠지 서글픈 느낌이 전해졌다. 소박하게 보이는 세 줄의 현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는 부슬부슬 내리는 겨울비 속에 애잔하고 서럽고 슬픈 곡조의 노래 가락처럼 들렸다.
일본 본토와는 다른 정서와 정취를 가진 오키나와 사람들의 영혼, 옛날부터 전해오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가슴 깊은 한을 나타내는 그 여운이 내 마음을 적셨다. 오키나와 전통악기인 ‘샤미센’은 4개의 판자를 합친 통에다 길고 평평한 판을 달고 그 위에 비단실로 꼰 세 줄의 현을 단 악기이다. 악기를 씌우는 가죽은 소나 염소의 가죽이 아니라 특이하게 고양이나 개의 가죽을 사용해서 만든 악기라고 한다. 이 또한 옛날부터 오키나와 섬 지역 특성에 따른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저녁때 식사를 하려고 오키나와 명동인 ‘국제거리’로 나섰다. 해산물을 먹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손님을 유혹하는 멋진 그림이 붙어있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과 주문 받는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 문제가 발생하였다. 반찬과 맥주가 무한 제공되는 이름(放題)으로 알았는데 결국은 추가 요금을 지불하였다. 당초 생각보다 1.5배 정도 금액을 냈다. 제대로 한 탕 ‘낚인’ 기분이었다. 이것도 해외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경험이었다. 호텔로 들어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 일본소주를 사다가 마셨다.
3박 4일간의 이번 여행은 그동안의 해외여행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모두 아는 분들이라 농담을 하면서 많이 웃고 즐거웠지만 한편 힘든 여행이었다. 비록 조수석에 앉았지만 우리나라와는 다른 방식인 오른쪽 운전대의 자동차를 빌려 운전하는 것이 무척 신경 쓰이며 긴장되었다. 게다가 뒷자리에서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소리가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나중에는 소음으로 변해서 두 귀를 꼭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행은 편안한 마음으로 이국의 경치와 자연,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이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아마도 여행에 대한 생각과 취향이 각자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물건 파는 가게 쇼핑이나, 위락시설을 둘러보는 데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오키나와에 가보고 싶었던 생각과 실제 본 느낌이 너무나 달라서 누군가에게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 유감스럽다. (2017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