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KTX 설립으로 코레일 경영혁신과 적자 해소가 가능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모순투성이다. 이를 은폐하기 위해 ‘귀족노조’ 운운하며 코레일 직원들을 매도하고, 사실이 아닌 얘기까지 흘리며 흑색선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당 핵심중진 “수서KTX는 불공정한 정책”
문제를 지적하면 엉뚱한 논거를 들이대며 호도하기 일쑤다. 이런 와중에 한때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새누리당 중진 의원이 입에서 사태의 핵심을 짚는 바른 얘기가 나왔다.
유승민 의원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불공정한 정책이라며 정부를 비난했다. “비효율성 개선을 위한 것이라면 적자노선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게 맞다”며 “수서발 KTX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확실한 수익이 보장되는 노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알짜’ 부문을 중심으로 선택적으로 진행되는 ‘빼먹기식 민영화’를 일컫는 경제학 용어인 ‘크림 스키밍(Cream Skimming)에 빗댔다. “경춘선, 중앙선, 태백선 등 수익이 나지 않는 몇 개 노선을 같이 떼어줘야 공평하다”며 “이렇게 했더라면 심한 반발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또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잘못된 정책으로 대통령을 잘못 이해시키고 있다”며 청와대를 향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국토부 반발, 종래의 주장과 다른 논조
국토부가 반발했다. “수서발 KTX는 코레일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코레일의 서울·용산발 KTX와 경쟁하는 것”이라며 유 의원의 주장에 반박했다. KTX끼리 경쟁이니 불공정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국토부는 종래의 주장과는 다른 얘기를 꺼냈다. KTX를 둘로 나누면 코레일 적자 해소에 도움이 된다더니 그게 아니라 선로사용료를 더 받게 돼 철도시설공단 부채가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선로사용료 수입이 늘어나게 되는 이유로 “서울·용산발 KTX는 영업수입의 31%를, 수서발 KTX는 영업수입의 50%를 선로사용료로 부담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코레일 적자 해소가 아니라 시설공단 부채 줄이기?
알짜 중의 알짜 노선을 만든 뒤 매우 높은 선로사용료를 부과해 코레일이 아닌 철도시설공단 부채를 줄이겠다는 얘기다. 참 괴상한 방법이다.
선로사용료는 철도운영 주체가 선로를 소유하지 않을 경우 지불하는 사용료다. 고속도로 통행료나 공항 이용료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선로-운영' 분리 정책은 철도운영주체로 하여금 막대한 선로건설 투자 없이 적당한 이용료만 지불하게 해 운영의 효율성을 보장해 주겠다는 데에 그 취지가 있다.
선로사용료 설정 기준이 철도정책의 핵심이 된다. 선로와 운영을 분리하는 상하분리 정책을 처음 실시한 나라는 스웨덴. 사회한계비용(Social Maginal Cost) 원칙에 의해 대단히 낮은 선로사용료를 책정해 스웨덴철도운영공사(한국의 코레일에 해당)의 경영에 도움을 줬다. 아울러 철도 운송률을 제고하는 정책을 병행해 성공을 거두었다.
선로사용료 정책, 성공한 스웨덴 실패한 영국
반대로 영국은 실패했다. 마가렛 대처의 과도한 민영화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영국철도를 40여개 회사로 분리하며 무거운 선로사용료를 지불하도록 했다. 선로를 보유한 레일트렉과 여객운송회사들은 과도한 선로사용료를 운임 인상, 구조조정, 시설투자 축소, 비용 절감 등의 방법으로 메웠다.
때문에 철도요금은 2배로 올랐고, 각종 사고가 빈발했다. 이런 와중에서 선로회사인 레일트렉은 연간 7000억원 이상을 벌어들였고, 여객운송회사들은 1997년부터 2010년까지 4조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결국 영국정부는 과도한 민영화의 폐해를 인정하고 선로를 재공공화하는 식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이런데도 일부 보수언론은 영국 민영화 실패를 ‘성공사례’로 미화한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지난해 1월 조선일고에 기고한 글. 철도 경쟁체제 불가함을 강조했다.
그러더니 확 돌변해 경쟁체제 도입 선봉장이 됐다. 박근혜-최연혜, 두 여인이 마가렛 대처가
실패한 길을 가려고 안달이다.>
마가렛 대처의 ‘실패’ 따르려고 고집하는 이유는?
한국의 경우 선로사용료 수준의 세계적으로 가장 높다. 일반철도의 경우 조정한계비용 개념을 적용해 유지보수비용의 70%를, 고속철도의 경우 건설비용과 유지보수비용을 합산해 운영수입의 31%를 거둬가고 있다.
이런데도 수서발 KTX 선로이용료를 운영수입의 50%까지 올리겠단다. ‘알짜’ 만들면 더 빼먹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겠지만, 코레일의 전체 적자는 더 커지게 된다. 하나를 빼먹고 둘을 잃게 되는 장사를 고집하는 정부, 참 엉뚱하다.
코레일이 지불하는 선로사용료는 연간 약 7000억원. 코레일 연간 적자폭보다 약간 많다. 상하분리가 아니라 상하일체식 정책으로 바뀐다면 당장에도 코레일은 적자가 아닌 흑자로 돌아서게 된다.
코레일 부채, 주범은 다름아닌 정부
짚어 볼 게 또 있다. 코레일의 부채(14조3000억/2012년 말)가 코레일의 방만 경영에서 비롯된 걸까. 들여다보면 정부의 주장과는 크게 다르다. 코레일 부채의 대부분이 정부 때문에 발생됐다.
2009년 인천공항철도을 인수하며 울며겨자 먹기로 1조2000억원의 부채를 떠안았다. MRG(최소운송수입보장제)가 적용된 사업이었지만 정부는 수요예측 오류로 6년간 1조900억원을 보상해줘야만 했다. 이러자 정부가 인천공항철도를 코레일이 인수하도록 하고 발을 뺀 것이다.
용산 개발이 무산된 것도 코레일의 적자를 키웠다. 코레일이 책임질 부분도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이 개발사업의 실질적 집행자는 정부였다. 게다가 계열사 부채 반영과 회계방식 변경으로 인해 경영과 무관한 부채 3조원의 부채가 추가되기도 했다.
차량 구입비도 적자 폭을 키운 원인 중 하나다. 엄격하게 따진다면 철도 운영에 필수적인 차량구입은 비용이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보는 게 옳다.
정부의 일방 주장과 우격다짐, 해명과 소통은 없어
이런 식으로 누적된 부채는 10조6000억원. 여기에 2005년 코레일이 출범하면서 떠안은 경부고속철도 운영부채 4조5000억원까지 보태면 정부 때문에 발생한 코레일 총부채는 15조1000억원에 달한다.
고속철도 건설에 들어간 비용은 당초 예상한 5조8000억원의 세 배가 넘는 19조원. 정부의 주먹구구식 정책추진 때문이다. 설계 오류, 잦은 노선 변경 등으로 비용이 급증했고 여기에 각종 비리까지 겹친 까닭이다. 사실상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채였다.
적자 크기와 부채 비율이 코레일보다 더 엄청난 공공기관들이 다수다. LH의 경우 부채가 138억1000억원, 부채비율은 446%에 달한다. 4대강에 혈세 퍼부은 수자원공사의 경우 5년간 부채증가율은 557%에 달한다.
여론 호도, 일방적인 주장과 우격다짐. 이게 코레일 사태에 대한 정부의 태도다.
어떤 근거로 코레일의 경영상태가 공기업 중에서 가장 나쁘다고 하는 건지, 수서KTX를 만들면 어떻게 해서 코레일 적자가 해소된다는 건지, 비수익성 부문 등 코레일의 여타 노선을 어찌 할 건지 이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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