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RwGUfldlB70
브람스와 아가테의 사랑 그리고 브람스의 눈물
브람스가 현악6중주 1번을 작곡하기 2년 전인 1858년 함부르크에 있는 집에 살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집으로부터 남쪽으로 170마일 떨어진 괴팅겐 대학에 브람스를 초대를 했다.
작곡가며 교사, 지방 합창단(세실리아 클럽)의 지휘자이기도 한 줄리어스 오토 그림이라는 이 친구는 브람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
“예쁜 아가씨들로 구성된 실력 있는 가수들이 자네를 위해 노래하는 것을 보면 자넨 무척 기뻐 할 걸세, 그들은 기꺼이 자네가 와주기를 기다리고 있네, 빨리 내려오시게.”
브람스는 처음엔 망설였다.
그때 브람스는 현악기와 관악기로 이루어진 조그만 악단을 위한 세레나데 한 곡을 쓰고 있는 중이어서 친구의 제안에 별로 내키지 않았다.
또한 브람스는 당시 클라라 슈만, 그녀의 다섯 아이들, 그녀의 사촌 남동생인 작곡가 볼데마르 바질 그리고 바이올린니스트 요셉 요하임과 함께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브람스는 결국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그 곳 괴팅겐 지방의 매력과 젊은 아가씨들, 특히 아가테 폰 시볼드라고 하는 소프라노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었다.
긴 검은 머리에 통통하고 귀엽고, 요하임이 아마티 바이올린의 음색을 가졌다고 했던 아가테는 한 때 그녀에게 대위법이 서투르다고 나무란 적이 있는 줄리어스 그림에게 작곡을 공부하고 있었다.
브람스는 친구에게 장난을 칠 셈으로 아가테의 숙제를 대신 써 주고는 아가테가 직접 자신이 쓴 것인 양 제출하도록 했다.
그림스는 그녀의 숙제를 훑어보더니 “엉망이군” 하고 말하자 아가테가 물었다.
“그럼, 만약 이것을 브람스가 썼다면요..?”
그러자 그림스는 “그랬다 하더라도 엉망이야.” 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브람스가 일부러 엉터리로 숙제를 해서 두 사람을 놀렸던 것이다.
긴 휴가가 끝나자 브람스는 북서쪽으로 30마일을 까마귀가 날 듯 데트몰드로 돌아가서 궁정 음악가로 1년 계약을 하고는 오케스트라와의 협연과 왕자 레오폴드 3세의 가족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이와 함께 브람스는 실내악단을 조직하여 자신이 여러 합창곡을 써준 여성 합창단을 지휘한다.
1859년 괴팅겐을 다시 방문하여 브람스와 아가테는 가깝게 사귀면서 결국 비밀리에 약혼을 한다.
그의 친구들에 따르면 그들은 완벽하게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다음은 아가테 폰 시볼드 비망록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황금빛 햇살이 나의 생을 비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 들어 늙은 지금도 그때의 잊을 수 없는 햇살 같은 것이 나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나는 요하네스 브람스를 많이 사랑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도 나를 사랑했다.
그때 그는 그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 D단조를 쓰기 위해 떠났다.
그 협주곡은 하노버에선 성공도 실패도 아니었지만 5일 후 라이프치히에서 혹독한 비평을 받았다.
긴 침묵 끝에 무심하게 손뼉을 3번 치는 것조차도 귀찮을 만큼 비평가들은 경멸했다.
그들은 그 곡을 끔찍하다고 평했다.
그리고나서 브람스는 아가테를 보러 돌아와선 대인 기피증에 빠진다.
브람스는 그녀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꼭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구속되는 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 내가 돌아와서 당신을 껴안고 키스를 해도 되는지, 당신을 사랑한다 말해도 되는지 답장을 주시기 바랍니다.”
라며 그녀의 답장을 기다렸지만 아가테는 약혼 파기로 답장을 한다.
그리고 브람스는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 “내가 아가테에게 몸쓸 짓을 했어.” 라고 쓰곤 했다.
10여 년이 흐른 후 브람스는 자신의 음악이 연주회장에서 그토록 경멸을 받는데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었겠느냐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때 그는 초연의 실패를 스스로 혼자 극복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며 그의 독신의 방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런 순간들을, 또 실패야 하는 괴로움에 가득 찬 물음으로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과 맞닥뜨리는 순간들을 떠올리면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어. 한 예술가를 사랑하는 여인에게,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에게.. 그녀가 나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 하더라도 남편의 실패를 가여워 하는 아내를 아, 나는 견딜 수가 없어, 그건 지옥이야”
괴팅겐에서의 처음 몇 달 동안 브람스는 아가테가 부를 여러 곡들을 썼다.
그 중 많은 곡들이 그녀의 이름 철자에서 가져온 모티브로 쓴 것들이라는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아가테와 결별한 몇 개월 동안 브람스는 여러 곡들을 썼는데 여전히 아가테를 모티브로 이별과 사랑의 상실을 주제로 하고 있다.
브람스는 이 아가테 모티브를 자신과 아가테가 헤어진 지 불과 몇 년 후에 완성한 현악6중주 제 2악장에서 다시 사용하고 있다.
몇 년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브람스는 2곡의 피아노 4중주와 3개의 피아노 5중주를 작곡했는데 이 때는 친구 줄리어스 그림스가 브람스를 다시 편지로 초청하기 이전으로 그 편지엔 그곳에선 모든 집들이, 심지어 그 곳 집들의 문안에만 들어서도 행복하다는 것을 썼으므로 아가테가 그녀의 아버지와 살고 있는 집에 대해선 특별히 쓸 것이 없었다.
그림스는 브람스에게 그녀의 아버지 늙은 교수는 3년 전에 돌아가시고 아가테는 아이랜드에서 3년 전 가정교사로 취업하여 부유한 젊은 영국인 가정에서 딸들에게 음악과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그녀는 그녀의 삶의 어두운 페이지, 아가씨 혼자인 우울한 운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브람스는 괴팅겐으로 돌아와 폐허가 된 대문 앞에 서서 텅 빈 집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9월 그는 황량하면서도 고상한 느낌의 가곡 OP.32를 쓴다.
노래엔 “나는 삶을 멈추고 싶다, 당장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위한다면 살고 싶다, 영원히 살고 싶다.” 라는 구절이 들어있다.
같은 달 그는 2번째 현악6중주의 첫 악장을 쓰기 시작했다.
제 2악은 1850년대 초기 그가 썼던 바로크풍의 가보트를 기반으로 하여 방황과 허무, 비참함을 그리고 있는데 이 악장의 눈 대목인 오프닝 주제 역시 아가테를 모티브로 하고 있고, 클라이막스에 가서도 다섯번이나 내면적으로 ade 또는 Adieus, Farewell이 반복되고 있어서 사람들은 이것을 Agathe로 듣기도 한다.
-By Warren L. Woodruff
번역 - 배홍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