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혈병은 비타민 C 결핍으로 생긴다. 비타민 C는 콜라겐 합성에 필요한데 콜라겐은 우리 몸의 온갖 조직에서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한다. 괴혈병에 걸리면 몸이 글자 그대로 해체된다.
오랜 기간 행해를 해야 했던 선원이나 해군이 이 병 때문에 수백만 명이나 사망했다고 한다. 인간은 비타민 C를 합성할 수 없기 때문에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 주로 과일에서 비타민 C를 얻는다. 그런데 이전에 선원이나 해군이 먹는 식단에는 과일이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http://en.wikipedia.org/wiki/Scurvy
http://en.wikipedia.org/wiki/Vitamin_C
http://en.wikipedia.org/wiki/Collagen
옛날에는 콜라겐, 비타민 C 같은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리고 과일을 잘 먹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점도 알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 많은 사망자를 낸 괴혈병의 치료법으로 소금물을 먹이거나 피를 빼는 등 지금 기준으로 보면 황당한 방법들이 쓰였다.
그러다가 1747년에 제임스 린드(James Lind)가 획기적인 연구를 했다.
Although Lind was not the first to suggest citrus fruit as a cure for scurvy, he was the first to study their effect by a systematic experiment in 1747. It ranks as one of the first clinical experiments in the history of medicine.
http://en.wikipedia.org/wiki/James_Lind
린드는 심한 괴혈병 증상을 보이는 환자 12명을 2명씩 6조로 나누었다. 그리고 침실, 식사 등을 되도록 같은 조건으로 통일(통제)했다. 그리고 6가지 치료법을 각 조에게 시행했다: 사과주(cider) 먹기, 황산 먹기, 식초 먹기, 바닷물 먹기, 연고(medical paste), 오렌지와 레몬 먹기.
그 결과 오렌지와 레몬을 먹은 조의 상태가 월등히 좋아졌으며 사과주를 먹은 조는 약간 좋아졌다.
이 시험은 최초의 통제된 임상 시험(controlled clinical trial)으로 불린다.
이런 획기적인 임상 시험이 있었지만 그 후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괴혈병으로 계속 죽어야 했다.
린드는 의학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이 시험을 하고도 6년이 지난 다음에야 그 결과를 발표했다. 그것도 400쪽이나 되는 책으로 발표해서 읽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린드는 레몬 주스를 끊여서 응축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는데 이 과정에서 비타민 C가 파괴된다. 린드의 이런 시도도 그의 시험이 무시당하는 데 일조한 것 같다.
나중에 길버트 블레인(Gilbert Blane)이 린드의 연구에 주목하게 되어서 결국 영국에서는 과일을 통해 괴혈병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http://en.wikipedia.org/wiki/Gilbert_Blane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한참 동안 이 방법을 채택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괴혈병으로 죽어야 했다.
괴혈병 임상 시험을 둘러싼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Edzard Ernst & Simon Singh가 쓴 『Trick or Treatment: The Undeniable Facts about Alternative Medicine』 중 14~20쪽을 참조하라.
린드의 임상 시험이 결국 괴혈병을 예방함으로써 수 많은 생명을 구했다. 하지만 이 글의 맥락에서 더 중요한 것은 통제된 임상 시험이라는 착상이다.
인간의 몸을 매우 복잡하며 아직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질병, 장애, 증상, 회복, 치료 등에 어떤 요인들이 작동하는지 완벽하게 알기가 힘들다. 이럴 때 최대한 다른 요인들을 통일한 후에 관심 있는 요인만 변이를 주는 임상 시험 즉 통제된 임상 시험이 매우 유용하다.
린드는 치료법이라는 요인에만 변이를 주었다. 이것은 치료법의 효과를 알아내는 데 아주 요긴한 시험 방식이다.
현대 임상 시험에서는 표본의 수가 훨씬 크고, 골치 아픈 통계학이 동원되는 등 린드의 시험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해졌다. 하지만 “다른 요인들을 최대한 비슷하게 하고 관심 있는 요인에만 변이를 준다”는 기본적인 착상은 여전히 존중 받고 있다.
과학자들이 한의학이나 대안 의학을 무시하는 이유 중 하나는 통제된 임상 시험을 거치지 않으면서도 “이 치료법에 효과가 있다”고 떠들어대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규모 통제된 임상 시험을 통해 효과가 없다는 것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입증되는 경우에도 그들은 여전히 효과가 있다고 우긴다.
한의학과 대안 의학에서는 20세기 과학계의 상식과는 충돌하는 이론(?)에 바탕을 두는 경우가 많다. 또는 아예 이론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설사 이론이 잘못되어 있더라도 또는 이론적인 것을 아예 무시한다 하더라도 만약 통제된 임상 시험을 통해 치료 효과가 있음이 입증된다면 효과 있는 치료법임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린드의 임상 시험은 왜 괴혈병에 걸리며, 왜 오렌지나 레몬을 먹는 것이 괴혈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지 전혀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오렌지나 레몬을 먹는 것이 효과가 있음을 밝혔을 뿐이다. 의학에서는 치료를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따라서 병이나 치료의 기제(mechanism)를 모른다고 해도 효과가 있다면 사용하는 것이 합당하다. 물론 치료 효과와 부작용(side effect)을 같이 고려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효과적인 치료법과 잘못된 이론이 결합되었다면 일단 그 치료법을 사용하면서 나중에 이론적인 부분을 수정해 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