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화(氷花), 알고 보니 빙화(氷禍)였다
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란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을 차마 쓰기 어려워서
--- 이은상, 「개나리」
▶ 산행일시 : 2011년 3월 6일(일), 연무 짙게 낌
▶ 산행인원 : 2명
▶ 산행시간 : 10시간 42분(휴식과 점심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18.0㎞
▶ 갈 때 : 상봉역에서 전철 타고 가평역에 내려, 택시 타고 명지산 입구인 익근리로 감
(택시요금 26,200원)
▶ 올 때 : 마일리 국수당 아래 닷동골유원지에서 택시 불러 현리로(요금 9,900원), 버스 타고
청평터미널로(요금 1,700원), 택시 타고 청평역으로(요금 2,300원), 전철 타고 상봉역
으로 옴(청평터미널에서 청평역 간의 거리는 1.3㎞라고 함)
▶ 시간별 구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 표시를 따랐음)
07 : 00 - 상봉역 출발
08 : 10 - 명지산 입구, 가평군 북면 도대리(道大里) 익근리(益根里)
08 : 53 - 649m봉
10 : 42 - 952m봉
11 : 39 - 백둔봉(柏屯峰, 962m)
11 : 50 - 안부
12 : 53 ~ 14 : 15 - 명지산2봉(明智山2峰, △1,249.9m), 후미 도착은 13 : 58, 점심식사
14 : 45 - 명지산3봉(1,212m), 삼거리
15 : 16 - ┼자 갈림길 안부, 아재비고개(애재비고개)
16 : 03 - 1,033m봉
16 : 26 - 연인산(戀人山, △1,068.2m)
17 : 02 - 헬기장(1,055m봉)
17 : 30 - 우정봉(전패봉, 916m)
18 : 10 - 우정고개(전패고개)
18 : 52 - 가평군 하면 마일리(馬日里) 국수당, 닷동골유원지, 산행종료
1. 개나리, 우리 집 방안에서 피었다
▶ 백둔봉(柏屯峰, 962m), 명지산2봉(明智山2峰, △1,249.9m)
익근리(益根里). 마을 이름대로 이 마을 부근 산에서 사람의 몸에 유익한 약초뿌리가 많이 채취되
었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야생식물채취를 엄금한다는 안내문이 자주 눈에 뜨인다. 우리가 너무 이
른가. 너른 주차장은 텅 비었다. 야생식물채취 검사소(예전의 매표소)를 지나 왼쪽의 철판으로 놓
은 다리로 명지천을 건너고 산기슭 낙엽송 숲 사이로 소로의 길 흔적이 보여 냉큼 그리로 든다.
북사면에는 눈이 아직 녹지 않았다. 발자국 따라 사각사각 나는 소리가 경쾌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발걸음 헝클어진다. 길 흔적은 경사 가팔라지자 사면 돌아 골로 빠지고 우리는 울창한 잡목
숲 뚫어 위로만 향한다. 고약하다. 저간 오지산행에서 잡목에 두 번이나 눈을 다치는 영금을 본 동
산 님은 선글라스 낀다. 폼 난다.
시간이 산을 간다. 36분 허우적거려 능선에 진입한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살살 부는 바람이
제법 차다. 오름 길 능선에 쌓인 눈은 녹다가 단단하게 얼었다. 숫제 빙판으로 미끄럽다. 두 발 등
산화로 꾹꾹 눌러 밟아가며 오르는데 처음에는 설사면 돌파력에 우쭐한 재미 붙였으나 이내 적이
힘이 들어 고역으로 변한다.
┤자 능선 분기봉을 연이어 넘는다. 오른쪽 교통호와 나란히 간다. 이정표 삼았던 등로의 거목의
신갈나무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죽었다. 조그만 돌탑 놓인 ┤자 능선 분기봉을 넘고 바위지대가 나
온다. 직등한다. 왼쪽 절벽 아래 내려다보며 아찔한 스릴 느낀다. 두 번째 바위지대. 손맛 다시며
달라붙는다. 앞이 허전하다. 선바위였다. 절벽에 막힌다.
왼쪽 사면 바위 밑으로 돌아 오른다. 승천사(昇天寺)의 염불소리가 골 타고 들려온다. 장중한 음성
으로 고저장단 일정한 것이 분명 테이프 틀어놓은 소리다. 그에 신경 쓰느라 힘들 줄 모르고 952m
봉을 올라와버렸다. 952m봉은 명지산3봉에서 명지산 주봉, 사향봉까지 펼쳐지는 웅장한 능선, 그
리고 명지계곡으로 모여드는 크고 작은 여러 골짜기를 훤히 조감할 수 있는 경점이다.
영남 알프스의 최고봉인 가지산(加智山, 1,241m)을 이처럼 볼 수 있는 데가 가지산 남쪽 숨은벽 능
선의 백운산(885m)인데 서로 영락없이 닮았다. 빙판길 오르내리며 몇 번 엎어지고 자빠지고 나서
야 아이젠 찬다. 요사이 유행하는 체인식 아이젠이다. 이제 빙폭인들 못 오를까. 발걸음 성큼성큼
내딛는다.
아닌 게 아니라 두 번째 헬기장 내렸다가 957m봉 오르는 암벽 오른쪽 사면은 그야말로 홀더 드문
빙벽이다. 아이젠 덕 본다. 전망바위에 올라서서 두 눈 홉뜨지만 사방 연무가 짙어 흐릿하다. 백둔
봉은 등산객들이 임의로 붙인 명칭인 듯하다. 나무숲 우거지고 그 정점에 ‘생터보전지역’이라 새긴
팻말을 통나무말뚝 박고 밧줄 둘러쳐 보호한다.
명지산 주릉에는 설화가 만발하였다. 저 설화 다 지기 전에 저기에 다다를 수 있을까. 다급하여 동
산 님에게 내 먼저 가노라 휴대전화로 알리고 발걸음 서둔다. 헬기장 지나고 등로는 급전직하로 떨
어지다가 한 차례 멈칫하고 다시 뚝 떨어진다. 바닥 친 안부. 긴 오름이 이어진다. 비스듬히 선 커
다란 바위가 있으나 그 오른쪽 밑을 돈다.
2. 앞은 백둔봉, 뒤 흐린 설산은 명지산2봉
3. 명지산2봉
4. 명지산2봉
5. 명지산2봉 가는 길
6. 명지산2봉 남쪽 사면
너덜 사면 오르고 암봉. 왼쪽 슬랩이 그럴 듯하다. 며칠 전 장가계 천문산 귀곡잔도도 갔는데 하며
절벽 테라스를 살금살금 지나고 바위턱 오르자 더 갈 수 없는 절벽으로 막힌다. 되돌아오는 것도
조심스럽다. 오른쪽 암릉 밑을 도는 것이 정수(正手)였다. 동산 님이 내 발자국 흉내낼까봐 그리 가
지 말라고 눈밭에 가야할 방향을 화살표로 진하게 표시하였다.
고도 1,000m는 넘었으리라. 좌우길 각각 양짓말과 명지폭포 쪽으로 내리는 ┼자 갈림길 나오고 명
지산2봉 정상까지 700m 남았다. 멀리서 보았던 설화는 빙화였다. 길 가리며 축축 늘어뜨린 가지마
다 수정 같은 얼음 꽃이 달렸다. 헤치느라 건들면 무수히 부딪쳐 작고 맑은 영롱한 소리가 난다. 햇
빛이 반사하는 프리즘이라니 색색이 눈부시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빙화는 식물 따위에 수분이 얼어붙어 흰 꽃처럼 되는 현상이라고 한다. 일
전에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일본기행 프로그램 중 눈길 끄는 풍경이 있었다. 산골짝 호젓한 숲속에
비가 한바탕 내리더니 바로 얼어붙었는데 장관이었다. 특이한 지형에서 생긴다는 빙화였다. 홀연
바람이 일자 서로 부딪쳐 내는 소리 또한 천상음악이었다.
바로 그 풍경을 여기서 본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떻게 이 보기 드문 정경을 마련했을
까? 상고대는 나무나 풀에 내려 눈처럼 된 서리를 말한다. 추측컨대 상고대가 녹다가 얼어붙은 것
이다. 명지산2봉 정상까지 700m 내내 빙화 만발한 꽃 터널을 지난다. 곳곳에서 빙화 무게 못 이겨
우지끈하고 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명지산2봉. 근경 조망 좋다. 명지산3봉, 명지산 주봉에 이르는 능선도 빙화 또는 설핀 상고대로 화
려하다. 정상에 속속 도착하는 다른 등산객들도 가쁜 숨 고를 새 없이 전후좌우 보고 또 보고 카메
라 셔터 누르기 바쁘다. 정점 한가운데 정상 표지석 옆에 있는 삼각점은 2등 삼각점이다. 일동 28,
1983 재설.
7. 빙화
8. 지나온 능선, 명지산2봉에서
9. 오른쪽 뒤는 명지산 주봉(1,252m)
10. 지나온 능선, 명지산2봉에서
▶ 연인산(戀人山, △1,068.2m), 우정봉(전패봉, 916m)
동산 님은 어제 강화도 마니산에 다녀와서인지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 정상 기준으로 1시간을 넘
게 뒤쳐진다. 나는 그 시간을 가만히 있었으니 한속 들어 달달 떨며 늦은 점심밥 먹는다. 명지산3
봉 가는 길도 꽃길이다. 고개 들어 하늘 우러르면 오색의 빛무리가 장관이다. 명지산3봉 정상 옆으
로 돌아서 들린 너른 암반은 천상화원의 한복판이다. 오래 머문다.
데크계단 내리고 삼거리. 왼쪽은 아재비고개, 오른쪽은 귀목고개로 간다. 아재비고개 가는 길은 잘
다듬은 방화선 길이다. 연인산 넘어 우정고개까지 이렇다. 고도 400m 남짓 내리지만 전후 가경에
지루한 줄 모르고 어느새 다 내렸다. ┼자 갈림길 안부. 쉼터다. 일단의 등산객들이 연인산 쪽에서
우르르 내려오더니 오른쪽 백둔리로 내린다. 그네들이 조금은 부럽다.
아재비고개의 유래는 버전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통설은 이렇다. 옛날 어느 흉년에 굶주려 아사상
태에 빠진 아버지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이 고개를 넘다가 문득 아이가 노루로 보이더란다. 하도
배가 고파서 노루를 잡으려고 달라 들었는데 순간 정신이 들었단다. 이후로 아이를 잡을 뻔했다하
여 아재비고개라 부른다.
바람 세게 불고 까마귀 울어댄다. 갈 길은 멀다. 아재비고개에서 연인산까지 3.3㎞. 거기서 마일리
국수당까지 5.9㎞. 우리 잡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859m봉 넘고 본격적인 오름이 시작된다. 하얀 눈
길. 살짝 얼었다. 방금 내린 등산객들의 긴 미끄럼 자국에 신난 가가대소가 배어있다. 1,033m봉.
여기서부터 또 빙화 화려한 화원이다.
나뭇가지 꽃가지 흔들어보고 그 끝 사광(斜光)으로 바라보며 연인산 전위봉 넘고 연인산 정상이 가
까워 내쳐 간다. 이윽고 연인산 정상. 연인인 부부 등산객이 반기며 따뜻한 쌍화차 한 잔을 내준다.
고마운 일. 그들의 앞날에 복이 있을진저. 서로 산행정보 교환하고 그들은 연인능선으로 간다.
연인산은 월출산 또는 우목봉으로 불리어왔으나 가평군이 지명을 공모하여 1999년 3월 "사랑과 소
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란 뜻에서 연인산으로 개명하였다. 또한 6.25 동란 때 아군이 분전하였으나
전패하였다는 전패봉(916m), 전패고개는 우정봉과 우정고개로 바꾸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
도에는 연인산과 우정봉은 아무런 표기가 없고, 우정고개는 전패고개로 적고 있다.
연인산 내리는 길은 얼었던 흙이 풀려 진창이다. 하여 바지자락은 엉망이다. 길섶이나 풀숲으로 애
써 비켜가지만 미끄럽기는 마찬가지다. 헬기장인 1,033m봉 가는 길과 그 주변은 빙화(氷花)가 아
니라 빙화(氷禍)다. 웃다가 운다. 얼음 무게 못 이겨 가지 부러지는 것은 가지치기로 치부할 수 있
겠지만(금강산 들어가는 주변의 쭉쭉 뻗은 금강송은 쌓인 눈으로 저절로 가지치기가 된다고 한다),
주간(主幹)이 부러지는 것은 재앙이다. 그 악명 떨친 태풍 루사와 콤파스도 버텼는데 빙화로 죽어
난다.
11. 명지산3봉 가는 길
13. 명지산3봉 가는 길
14. 빙화
15. 명지산3봉 내린 갈림길
16. 연인능선
헬기장(1,033m봉) 넘자 빙화(氷禍)가 뜸하다. 내리는 길은 눈 녹아 난코스로 변했다. 땅거죽만 녹
아 물컹하니 미끄러진다. 방금 선답의 수두룩한 선명한 넉장거리 흔적은 우리를 발발 기게 만든다.
오르막 없는 우정봉의 내림 길이 퍽 가팔라 슬랩보다 더 어렵다. 우정봉은 내리고 나서 뒤돌아볼
때 산봉우리다.
왼쪽으로 울창한 잣나무숲 감상하며 916m봉을 지난다. 704.3m봉 가기 전 왼쪽 펑퍼짐한 사면으로
지쳐 내린다. 임도 지나는 우정고개. 건너편 매봉 가는 길에도 산행표지기 펄럭인다. 국수당 가는
길은 넓은 너덜길이다. 산악차량 통행과 폭우로 망가졌다며 출입금지 안내판 세우고 금줄 치고 그
옆으로 소로의 등산로를 냈다. 썩 잘한 일이다.
국수당은 국가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올리던 (성황)당이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 허름하던 집 한 채
가 보였는데 지금은 번듯한 집이 여러 채 들어섰다. 주막도 있다(지금은 비어있다). 포장도로 나오
고 현리 택시 부른다. 닷동골유원지에서 만난다. 헤드라이트 켜고 반갑게 달려온다.
17. 우정능선 가는 길
17-1. 우정능선 가는 길
18. 1,033m봉(헬기장), 주변
19. 연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