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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한국산서회와 함께 하는 인문산행
과천노인 추사가 만년을 의탁한 산자락
청계산 추사박물관과 과지초당을 찾아서
글/심산(한국산서회)
사진/서영우(한국산서회)
2018년 12월 1일(토), 올해의 마지막 인문산행이 예정된 날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던 나는 조금 당황했다. 마포역 부근의 집에서 약속장소인 선바위역까지 불과 40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관악산과 청계산을 구획하는 물줄기가 양재천이다. 선바위역은 양재천에 바투 붙어있다. 서울과 과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이 두 명산의 산행기점이 내 집에서 이토록 가까이 있다니 이 또한 축복이라며 내심 쾌재를 부른다. 아직 약속시간까지 1시간도 넘게 남아 있으니 이참에 선바위역의 역명 유래가 된 선바위를 찾아 나선다.
복원되고 역명의 유래가 된 선바위
선바위는 선암사거리의 동쪽 방면에 조성되어 있는 자그마한 공원 안에 들어서 있다. 선바위역의 출구들 중에서는 4번에 가깝지만, 3번 출구로 나와 차도를 건너는 것이 더 편리하다. 그러나 현재 서 있는 것은 오리지널이 아니라 복제품이다. 그나마 플라스틱 따위로 바위의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온전한 바위를 옛 모습 그대로 조탁하여 만든 것이라 제법 볼만하다. 높이는 3m에 육박하고 둘레는 2.5m에 달하여 육중하고 튼실한 느낌을 준다.
원래의 선바위는 현재의 위치에서 조금 더 뒤로 물러난 곳에 흐르던 양재천의 지류 한 가운데 솟아있었다. 맑은 시냇물의 이쪽이 선바위마을이었고, 저쪽이 광창마을이었는데, 선바위는 바로 그 시내의 중심에 우뚝 솟아 양쪽 마을 간의 경계 구실을 했던 것이다. 동네사람들의 추억담에 의하면 아이들이 이 바위 아래서 멱을 감기도 했고, 바위에 기어올랐다가 괴성을 지르며 다이빙을 즐기기도 했으며, 시내를 건너다니던 마을사람들이 잠시 기대어 쉬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전국 어느 마을에나 선바위는 있다. 선바위는 말 그대로 ‘세운 바위’였고, 대체로 남근석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한자로는 입석(立石)이라고 표기한다. 마을의 경계를 나타내기도 하고, 액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하며, 기자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우리 고유의 바위문화유산이다. 예전에 이곳 마을의 어르신들이 마을에 좋은 일이 있거나 잔치가 열렸을 때 선바위에 먼저 음식을 바치며 “고수레!”를 외쳤다고 하니 이 바위 역시 신성시되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랬던 바위가 물줄기를 정비하면서 부서져버렸으니 마을 어른들의 심기가 편했을 리 없다. 현재의 선바위는 양쪽 마을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원형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맑은 시냇물 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었을 예전의 선바위를 상상해본다. 어른들의 기원터요 아이들의 놀이터였을 영험한 바위다. 관악산과 청계산의 참(眞)경계는 바로 이 선바위가 아니었을까. 이제는 그 바위의 이름이 역명(驛名)의 유래로나마 오늘날까지 전해진다는 초라한 현실에서 그나마 위안을 찾아야 하는 것인가.
추사의 문자향 서권기가 어린 박물관
약속시간인 10시가 되자 참가자들이 모두 집결했다. 오늘도 스무 명을 훌쩍 넘는 대규모 인원이다. 일행들이 저마다 내놓은 참가의 변(辯)은 다양했다. 청계산에는 많이 와봤지만 옥녀봉의 북동사면으로 올라본 적은 없어서. 과천에 추사박물관이 있는 줄 이번에 처음 알아서. 올해의 마지막 인문산행이라니 아쉽기도 하고, 그 동안 즐거운 산행을 함께 했던 분들과 송년인사라도 나누고 싶어서. 주최 측으로서는 그저 고마워 연신 머리를 숙여 조아릴 뿐이다.
선바위역에서 추사박물관까지는 3Km가 조금 넘는다. 걸어가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거리다. 일행들은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경마공원(렛스런파크 서울)의 북쪽 경계를 살짝 에둘러가는 코스다. 15분 남짓 버스를 타고 가니 이내 추사박물관에 닿는다. 추사와 관련된 사료들을 전문적으로 모아놓고 전시를 하는 곳은 전국에 세 군데 있다. 충남 예산 추사고택 옆의 추사기념관, 제주 서귀포 추사적거지 근처의 추사관, 그리고 이곳 경기 과천의 추사박물관. 나는 개인적으로 이곳의 추사박물관이 가장 훌륭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경험상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도슨트(docent)의 해설을 듣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다. 일단 큰 틀에서 공식적인 개관을 한 다음 따로 개인적으로 깊게 파고드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추사박물관 소속의 여성학예사 한 분이 기꺼이 우리 인문산행팀의 안내와 해설을 맡아주었다. 2층의 생애전시실에서 시작하여 1층의 학예전시실을 거쳐 지하 1층의 후지츠카 기증실, 그리고 때마침 개최 중이었던 기획전시 [추사서화파]까지 둘러보는 제법 긴 여정이었는데, 학예사의 해박한 지식과 유쾌한 입담에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길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추사의 학문과 예술을 논하기에는 이 지면이 너무 작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왜 하필이면 과천의 청계산 밑에 추사박물관이 들어섰느냐는 의문이다. 산(山)과 그 장소성(場所性)이야말로 우리 인문산행의 영원한 주제다. 예산은 추사 가문의 고택이 있는 곳이다. 서귀포 대정은 추사가 유배를 갔던 곳이다. 그렇다면 과천의 청계산은? 추사의 선친인 김노경이 이곳 산자락에 과지초당을 지었고, 추사가 만년을 이곳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흔히 추사 만년의 걸작으로 문인화 [불이선란]과 봉은사의 현판 [판전]을 꼽는다. 두 작품 모두 추사 과천시대의 유물이다. 유난히도 호(號)가 많았던 추사가 만년에 즐겨 쓴 것은 과노(果老), 즉 ‘과천의 늙은이’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3일 전에 완성했다는 [판전]에는 ‘칠십일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 71세의 과천 노인이 와병 중에 남기다)’이라는 서명을 남겼다. 즉 그는 스스로를 마지막으로 ‘과천의 늙은이’라 명명했던 것이다. 이로써 과천의 청계산은 ‘추사 말년의 거처’라는 인문학적 위상을 얻게 된다.
추사가 만년을 보낸 과지초당을 찾아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의 관람 혹은 백화점에서의 쇼핑은 흔히 사람의 진을 뺀다. 짧은 시간 안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들이 주입되는 까닭이다. 추사박물관에서 그가 뿜어내는 ‘문자향 서권기’에 취한 일행들은 산에 오르기도 전에 기진맥진해 버렸다. 진도 빠지고 배도 고팠던 것이다. 추사박물관 뒤편 야산에 보호수로 지정되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커다란 나무가 있다. 사전답사를 왔을 때 미리 점지해두었던 점심식사 자리다. 일행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주린 배를 채우고 마른 목을 축인다.
추사의 생부 김노경(1766-1837)은 그가 한성판윤으로 재직할 당시인 1824년에 이곳 과천의 청계산 자락에 별서를 짓는다. 이 사실은 그가 청나라의 문인 등전밀에게 보낸 편지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요사이 서울 가까운 곳에 집터를 구해서 조그마한 집을 마련했는데 자못 장원의 풍모를 갖추었습니다. 연못을 바라보는 위치에 몇 칸을 지어서 ‘과지초당(瓜地草堂)’이라 이름 했습니다. 봄이나 가을 휴가가 날 때 적당한 날을 가려 찾아가 지내면 작은 아취를 느낄 만하여 자못 친구들에게 자랑할 만합니다.”
그가 초당의 이름에 과천의 과(果)자를 쓰지 않고 굳이 오이 과(瓜)자를 쓴 것은 아마도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동릉과(東陵瓜)를 염두에 두었던 까닭이리라. 간단히 말하여 “벼슬에서 물러나 전원의 한가한 삶을 누려보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과천의 특산물이 오이였기 때문이라는 것은 또 다른 해석이다. 여하튼 김노경은 이 과지초당을 무척 아꼈고, 그의 아들인 추사 역시 자주 찾았다. 그가 남긴 시 [가을날 과지초당에 거듭 오다(秋日重到瓜地草堂)]는 이 별서에 대한 그의 사랑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出門秋正好 출문추정호 문을 나니 가을이 정히 좋은데
携衲更堪憐 휴납갱감연 중을 끌어 다시금 어여쁘다네
款款三峯色 관관삼봉색 정겨움 내보이는 삼봉의 빛은
依依五載前 의의오재전 가물가물 다섯 해 이전이로세
靑苔仍屋老 청태잉옥노 푸른 이끼 낡은 집에 그대로 있고
赤葉漸林姸 적엽점림연 붉은 잎은 수풀에 물들어 곱네
飄泊西東久 표박서동구 동서로 떠돈 적이 하도 오래라
山中銷暮煙 산중소모연 산 속에 저문 연기 잠기어 있네
현재의 추사박물관 앞에는 과지초당이 복원되어 있다. 하지만 그 위치며 형태가 정확한 고증을 거쳐서 결정된 것은 아니다. 그저 과천에 과지초당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마침 추사박물관이 들어섰으니, 그 앞마당에 상상 속의 건물을 지어놓은 것뿐이다. 우리는 실제의 과지초당이 청계산 옥녀봉 자락에 조금 더 가까이 붙어 있었으리라 여긴다. 옥녀봉 아래 과지초당이 있었고, 그곳과 옥녀봉 사이에 김노경의 (옛)묘소가 들어섰으리라는 것이다. 단순한 추정이 아니다. 일제강점기를 넘어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에 살았던 추사의 후손들로부터 전해들은 증언(傳言)이다.
추사는 김노경의 생전에도 과지초당을 여러 번 찾았다. 김노경이 사망한 것은 1838년의 일이다. 추사는 이태 후인 1840년, 제주로 유배를 떠난다. 그가 제주와 북청에서의 고된 유배생활을 마치고 이곳으로 돌아온 것은 1852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856년, 추사는 이곳에서 삶을 마감한다. 추사는 생애 최후의 4년을 이곳 과천 청계산 자락의 과지초당에서 보내며 선친의 묘소를 돌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베일 속에 가려진 과지초당과 김노경의 묘소를 찾아 청계산의 버려진 옛길을 훠이훠이 톺아 오른다.
김노경의 묘소가 들어섰던 옥녀봉을 넘어
추사박물관 뒤편의 야산에서 희미한 오솔길이 청계산을 향하여 굽이치며 올라간다.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인적이 끊어진지 오랜 길이다. 본래부터 물(水)을 많이 머금어 부드러운 청계산이 초겨울의 낙엽까지 두르고 있으니 더 없이 포근하다. 그렇게 몇 구비를 돌아드니 제법 넓은 공터가 나온다. 경사도가 약간 심해지면서 평지에서 산지로 접어드는 느낌이 나는 곳이다. 오늘의 강사인 조장빈이 이곳에서 문득 발길을 멈춘다. 추사박물관과 더불어 청취한 후손들의 증언에 따르면 여기가 바로 과지초당이 들어섰던 장소다. 어떠한 이정표도 없어 그 장소를 적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김노경의 묘소 터는 이곳에서 더욱 비탈진 길을 거슬러 오른다. 뚜렷한 등산로가 없는 대신 희미한 옛길들이 사방으로 뻗어 있어 길을 잃기 십상이다. 실제로 일행의 후미는 길을 잃어 본대(本隊)와 합류할 때까지 거의 한 시간이나 헤매었다. 이곳에 누워 아들인 추사의 보살핌을 받던 김노경의 묘소는 이후 고택이 있는 예산으로 이장되었다. 현재는 이곳이 명당임을 알아본 제3자가 묘역 자체를 사들여 자신의 조상을 새로 모신 상황이다.
일행들 중 한분이 우스개 소리를 한다. “아니 도대체 이곳은 어떻게 찾아낸 거야? 정작 추사 집안도 여기를 모를 것 같은데.” 다른 분이 그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 되묻는다. “김노경이 예산 땅을 놔두고 굳이 이곳에 묘를 쓴 것은 다 자식들 잘 되라고 한 일일 터인데, 정작 아들인 추사는 그 후손을 잇지 못했으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어찌 보면 뼈아픈 지적이다. 한국의 산을 논할 때 풍수지리니 명당이니 하는 개념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우리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어 거의 한국인의 DNA 속에 내장되어 있다고 해도 좋을 개념인데, 조금만 생각을 틀어 그 반증의 예를 찾아보면 또 이것처럼 허황된 개념도 없는 것이다.
김노경 묘소 터를 떠나 능선으로 붙으니 이른바 정규등산로가 펼쳐진다. 청계산 특유의 폭신하고 아늑하며 정겨운 오솔길이다. 옥녀봉을 향하여 나아가다 보니 서울의 시계(市界)를 넘는다. 과천에서 서울시 서초구로 접어든 것이다. 오늘 산행의 최고도달지점인 옥녀봉(375m)에 왔으니 기념사진 한 장 안 찍을 수 없다. 일행들은 껄껄 웃으며 저마다 송구영신의 다정한 덕담들을 건넨다. “올 한해도 다채로운 인문산행으로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1월과 2월의 혹한기에는 안전문제를 고려하여 인문산행을 쉽니다. 내년 3월에 보다 알찬 내용으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월간 [사람과 산] 2019년 1월호
첫댓글 올리고 싶은 인삿말이 위 글의 말미에 그대로 써있네요 ㅎㅎ
“올 한해도 다채로운 인문산행으로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1월과 2월의 혹한기에는 안전문제를 고려하여 인문산행을 쉽니다. 내년 3월에 보다 알찬 내용으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형님. 한해 동안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올 한해 산이 형 뿐만 아니라 스탭들 모두 멋진 인문산행 진행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해에는 더욱더 알찬 프로그램 기대해 봅니다.^^
즐겁게 감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018년 한 해도 스텝진 모두 고생 많으셨네요.
내일 늦게 일어나 청계산 한바퀴 돌아 올 예정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송년산행이라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행사가 있어 참석하지 못했어요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3월에 뵙겠습니다.
모든분들 한해동안 수고많으셨어요
늘 좋은글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한모습으로 산길에 뵙겠습니다.^^
청계산을 일삼아 가는 분들 많은데요. 그들의 산행기에서 이런 내용은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선배님께서 청계산 지도에다 동선을 그려 놓으면, 다른 분들에게 더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