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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산행기]
丁亥年 첫 산행 정족산
임 동 숙
丁亥年 첫 달 산행은 강화에 위치한 정족산이다. 늘 산행 날짜가 가까워 오면 제발 이중일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한 신경을 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인산은 강행을 하는 걸 알면서도 산행 전날은 새벽부터 어찌나 눈이 많이 오던지 오후엔 비랑 섞여가며 순식간에 도로가 빙판길로 바뀌었다. 내심 내일 산행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앞서면서도 ‘하루만 더 늦게 눈이 내렸더라면’하는 낭만적인 산행을 그려 보기도 했었다. 눈이 내린 후 영하 15도까지 내려간다는 일기예보 때문인지 9시 약속 장소인 예술회관에 도착했을 때는 서동익 선생님, 임노순 회장님, 김재덕 선생님, 임평모 박사님, 김학수 선생님, 최제형 관장님, 양승근 산행부장님이 와 계셨고, 내 뒤를 이어 아무도 오시지 않은 걸로 기억된다. 얼마 후 맞은 편 길에서 무단횡단을 하며 무스탕에 검정 구두를 신고 여유 있게 걸어오는 무법자가 있었으니, 이병록 선생님이시다. 모두들 너털웃음을 웃으시며 가벼운 악수를 나눴는데 이병록 선생님의 사모님께서 육교에서 구르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며 회비만 내시고 가시면서 “몸은 못가지만 마음은 갔다.”시며 “나 결석 아니다.”하셨다. 연세가 있으시면서도 항시 예의와 열성을 다 하시는 선생님께 정말 존경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 감출 수가 없다. 산행부장님은 몇 군데 전화를 하시며 인원 체크를 끝내고 이 담하 회원님을 계산동에서 태우기 위해 회장님 차와 서동익 선생님의 차 두 대로 따로 출발을 하여 전등사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길은 뻥 뚫리고 내린 눈도 거의 녹아 있어 모처럼의 주말 나들이처럼 내 마음도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10시 20분쯤 내가 탄 차는 먼저 전등사 입구에 도착하여 뒤차와 연락을 하니 검단이란다. 20~30분쯤 더 걸릴 거라는 말과 함께 서동익 선생님께서 준비해 오신 따뜻한 커피와 곶감을 한두 개 씩 먹으며 심심치 않게 시간을 때우고 나니 100여 미터 전방쯤에 낮 익은 봉고 한대 보인다. 회장님 차다. 산행부장님이 얼른 손을 흔들어 보이니 금세 달려와 주차를 끝내고 곧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잠시 걸어 올라가다 보니 동문이 눈앞에 나타난다. 표를 파는 곳이 있기에 다가가 국립공원 입장료가 올해 1월 1일부터 없어진 것 아니냐 했더니 산 자체가 국립공원이 아닌 전등사 소유이기 때문에 입장료를 받는다 한다. 하는 수 없이 경노 우대증이 있으신 두 분을 제외한 7곱 장의 표를 끊어 동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성곽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어제 내린 눈이 1.5cm정도 쌓인 비탈길 능선으로 오르는데, 어느 누가 오늘 그리 매섭게 추울 것이라 했던가! 햇살은 머릿결을 반짝이고 눈은 드문드문 녹아 등산로 바닥을 적시고 있다. 적당히 녹고 적당히 쌓인 눈을 밟을 수 있는 산행인데 얼마나 걱정을 하며 두려워했던가. 그래서 출석률도 저조한 모양인데 아마도 오늘 날씨를 보니 앞으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성곽을 따라 잠시 올라가는데 ‘스님 수행처, 출입금지’란 푯말이 있었다. 두 갈래 길을 놓고 심술궂은 회장님은 굳이 그곳으로 가 보려하시는 걸 말려 성곽 곁으로 나 있는 길을 택해 올라갔다. 성곽은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 내내 쌓여 있었다.
나라를 위한 성곽인지 전등사를 지키기 위한 성곽인지 모를 정도로 전등사를 중심으로 한 바퀴 둘러쳐져 있다. 우리나라 역사와 전설을 겸비한 강화도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자세하게 아는 바가 없어 거창한 말은 못하겠으나 가벼운 걸음으로 오르다 보니 등줄기에 땀이 촉촉이 젖을 즈음 평탄한 장소가 나왔다. ‘이쯤이 중간이겠구나! 하며 여기서 좀 쉬다 가시겠네’ 생각하는데 정상이란다.
바다를 메워 만든 논 건너 맨 뒤쪽의 마니산
정상치고는 좀 낮지 않나 싶어 아쉬운 마음이 절로 드는데 저만치 마니산의 모습이 뿌옇게 보이고 바로 앞 산 아래로는 바둑판같은 논도 펼쳐져 보인다. 바다를 매립해 생겨났다는 어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름대로 탁 트인 전망이 있어 멋과 즐거움을 더했다. 이제는 먹을거리를 풀 차례?
그런데 갑자기 임평모 박사님이 새해 꿈속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으셨다며 이야기를 꺼내신다. 때는 2006년 12월 31일,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황금돼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더니 박사님의 집을 한 바퀴 돌더란다. 그러더니 하늘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하느님의 목소리, “그대가 임평모더냐!” “예~ 그렇습니다.” “내가 너에게 계시를 하러 왔노라!” “무슨 계시옵니까?” “새해에는 네가 임평모세라는 이름으로 인산당이란 당을 만들어 대통령으로 출마하면 소원 하는 바 이루어질지니, 그 임무를 다하여 반드시 화평한 정해년이 되도록 할지어다.” 하며 금화 메달을 건네주더라, 시며 황금색 금화 메달을 꺼내 각자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시었다.
꿈에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인산당을 만들어 대통령으로 출마하겠노라 선언(?)하
시는 임평모세 당수의 일성(?)
어찌나 진지하게 말씀하는지 나는 그만 알쏭달쏭해지고 말았다. 다른 분들도 나처럼 알쏭달쏭해 하고 계시는가 싶은데 웬걸 박수를 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는 게 아닌가. 오호라! 이런 쯔쯧! 그제야 나는 조크란 걸 알아차리고 있었으니...... 또한 금화 메달은 다름 아닌 초콜릿.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황금박지로 쌓여진 초콜릿을 보면서 나는 진짜 금화 한 냥이라도 받은 양 해지며 정해년에는 소망하는 모든 일이 꼭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랬다. 유통기한 2008년 8월 20일이라고 적혀진 금화 아닌 금화를 나는 차마 먹을 수가 없어 집으로 고이 모시고 왔다. 적어도 유통기한 전까지는 모셔 뒀다가 끝나기 바로 전날쯤에야 먹을까 하고......
임평모 박사님의 위트로 정상에서의 정해년 인산당 창당식(?)을 끝내고 내리막을 내려와 서문쯤으로 보이는 문에서 단체사진을 찍는데 회장님은 장난스레 문 위에 앉아서 폼을 잡으신다.
성문 앞에서 한 컷, 아치형의 성문이 참으로 튼튼해 보인다.
모처럼 만에 등장한 찬바람 한 점 없는 양지바른 바위에 앉아 사진을 찍는데
부러운 듯 바라보시는 두 분.
다시 오르막을 올라 햇볕 바른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 한번 또 박고 몇 걸음 떼는데 김학수 선생님이 등산로를 살짝 벗어난 곳에서 실망 안 시킬 테니 잠깐 그리로 들어와 보라 하여 가 보니 웬걸 전등사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외적을 물리치는데 큰 공헌을 하고 오랜 세월 눈비 맞으며 견뎌온 성곽
전등사 전경을 내려다보는 회원님들, 한데 약간 오른쪽에 재선충 걸린 듯한 소나
나무 몇 그루가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음
다들 아늑한 분위기에 취해 내려다보다가 발길을 재촉해 잠시 걷다보니 하산 길, 또 한바탕 웃을 일이 벌어졌다. 하산 길은 짧았으나 햇볕이 들지 않는 응달이라 눈이 전혀 녹지 않아 제법 미끄러웠던 탓에 생긴 일이었다. 하루 전날 아이젠을 산다고 부산스럽게 돌아다녀 거금을 주고 산 아이젠을 가방 속에 묻어두고 내려오는 게 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참인데 뒤에서 양승근 산행부장님이 멈춰 서며 아무래도 아이젠을 착용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말씀하시는 찰나 그렇게 잘 걸으시던 산행부장님이 먼저 쭉~하고 땅 한 평을 사시자 이담하 선생님께서도 부러웠는지 곧바로 두어 평쯤을 사셨던 것이다. 걱정 반 재미 반 알 수 없는 통쾌감, 스릴을 느끼며 난 든든한 최제형 관장님의 도움으로 쭉~하고 땅을 사는 일은 없었다. ‘관장님!! 감사 합니당~~’
그래도 제일 걱정스러웠던 임평모 박사님과 김재덕 선생님께서 한 번의 미끄러지심도 없이 무사히 모범을 보이시며 선두로 내려가셨고, 가파른 응달이 끝나자 금세 남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세상에! 가슴과 거시기가 갈라진 나부상. 무거운 지붕을 이고 참회를 하고 있느라
대웅보전 내부 천정의 조각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데 연등이 걸려 있어 잘 보이
지 않아 아쉬웠다.
일정대로 전등사도 둘러보았다. 정해년은 돼지해이니 만큼 나의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년보다도 올 년은 의미 있는 년 같은 심적 위안 때문일까? 사찰 내 법당에 들어가 말만 듣고 보기만 하던 12배를 했다. 원래 기본은 4배라고 하던데 1년은 열 두 달이니까 12배하라고 누군가에게 들은 바 있어 그렇게 한 것이다.
어느 쪽이 진짜 달마상을 하고 있는지 착각이 들 정도 ㅋㅋㅋㅋ
경내를 다 둘러보고 들어왔던 동문으로 나서기 직전 동문을 배경으로 마지막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 중인데 마침 양부장님을 알아보는 분들이 있었다. 서로 악수를 나누며 반가워 한 후 양부장님은 이종사촌 식구들이라 했다.
동문을 나서기 직전의 단체사진
그걸 보고는 ‘저래서 유명한 곳에는 애인하고 오는 게 아니래요.’ 하시며 누군가
유쾌한 농담을 하셨다. 내려온 시각은 12시 52분 맘껏 걷고, 쉬고, 보고, 했는데
도 두 시간도 채 안 걸렸다. 다음엔 산행을 무지 못한다는 앞집 언니네 식구들과
한 번 더 와도 괜찮을 거라 생각을 하며 뒤풀이를 하기 위해 대명포구로 향했다.
식당 이름이 ‘인천 횟집’이다. 쭈꾸미 데침을 먼저 먹고 한쪽엔 삼식이탕, 다른 한
쪽엔 꽃게탕을 각각 시켜 먹으며 모두들 금주령이 내려졌는지 아홉 분이서 막걸
리 한 잔씩으로 끝내고 말았다.
먼저 쭈꾸미 데침을 먼저 먹고 꽃게탕과 삼식이탕으로 뒤풀이를 하다.
식당 벽에 걸린 부모은중경, 우리 모두 깊이 새겨야 하리.
아! 근데 여기서 또 전에 없던 일이 일어났다. 짜다고 소문난 회장님께서 10만 원짜리 수표를 내놓으시며(총무님 불참으로 대신 회비 걷고 있었음.) “이 돈은 회비가 아닌 특별비로 내는 것이니 돈에 구애받지 말고 맘껏 드시라.” 하셨다. 그 옆에서 양승근 산행부장님 왈 “이제야 회장님께서 철이 드셨나 봅니다.” 하시니 회장님 왈 “내가 아직 어제부터 새벽 3시까지 마신 술이 덜 깨서 그래.” 하시는 농담으로 분위기가 살았다. 다른 회원님들도 회장님께 감사의 박수를 모두 쳐 주셨다. 식사를 마치고 서로의 방향을 정한 뒤 두 대의 차에 나눠 타고 다음 산행을 기약하며 아쉬운 이별을 했다. 내가 탄 차는 새롭게 도시가 들어설 청라지구에 시원스럽게 뚫린 도로를 달리며 떼 지어 날아오르는 철새 떼를 덤으로 바라볼 기회도 생겼다. 하늘을 뒤덮을 듯 비상하는 철새들의 광경 또한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그들은 저녁에 묵어야 할 집과 먹을거리를 찾느라 그렇게 날아오르고 있는 거라고 옆에 앉으신 최제형 관장님께서 설명해 주셨다. 짧은 시간의 산행이었지만 한 해의 첫 산행이어서 그런지 이벤트도 위트도 어느 때 보다 많은 날이었다. 시작이 순조롭고 좋으니 올해는 뭔가 좋은 일들이 모든 분들께 여러 번씩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마치 임평모 박사님의 신년 꿈처럼......
첫댓글 연초부터 산행기 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아이구 엄살께나 떨더니 하나도 안 빼놓고 정말 잘 썼네요. 인산당 조직부장으로 임용된 분들 명단만 빠졌네요. 수고 많았어요. 후후
ㅎㅎ 감사합니다. 저 산행기요? 도서관가서 심호흡한번하고 마음가다듬고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수십번 반복하며 쓴거랍니다. 후~~ 1년 산행기 다쓴 기분이랍니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이젠 산행만 하면 되지유~~~~
예쁜이 덕분에 앉아서 산행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소상하게 잘 쓰셔서, 직접 잔설이 아직 버티고 있는 정족산 비탈길을 걷는 기분으로 잘 읽고 갑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