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시!! 오늘따라 잠이 오지 않는다. 불면증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친음식 마구 먹어 배앓이 하는 개구장이처럼 가끔가다 그럴때가 있었다. 특별히 걱정이 있어서도 아니고, 살아가는 패턴에서 톱니바퀴가 엇물리듯, 한번씩은 불규칙적인 상태가 되고 만다.
젊은 사람이라면,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에 짓눌려 피곤에 찌든 잠에 빠져들어 버리겠지만, 영혼의 열차를 대기하는 이 나이엔 그렇지가 못하니 거시기하다. 하루밤 잠들지 못한다하여 별반 세상이 달라질 것도 없다. 광활한 우주공간, 그중에서도 지구촌 어느 미미한 생물이 생리적으로 조금 피곤을 느낄뿐이기에 그렇다.
낮에 친구에게서 반가운 전화가 왔다. 코로나의 억압이 심하게 가슴을 짓누르나보다. 하긴 누군들 안그려려고.
젊은 시절엔 두주불사(斗酒不辭)를 뽐내며, 부산의 뒷골목 포장마차를 누비었거늘, 나이들고 삶에 부대끼니 힘이 부치는가보다.
만나서 대포한잔 나누자는 말은 쉽게 하면서도, 정작 코로나 상황에선 그 실천이 어렵다. 아직은 자식에게 신세지지 아니하고 용돈은 벌어 쓴다니 고마운 말이다.
뭣 마려운 강아지마냥, 이부자리를 들고 방으로 마루를 몇차례 오갔다. 마루가 시원하나 뒤척이는 모습이 눈에 띌까 생각하면, 방이 편하기도 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창문을 열어 젖혀도 바람기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신문의 석간판에선 다음주부터 한반도를 덮치는 열돔이 2018년을 버금갈 것이라고 하였다. 그 지긋지긋하던 한낮 더위와 열대야로 얼마나 힘들어 하였던가?
결국엔 인간이 자연에 저지른 죄값을 톡톡히 그대로 돌려받는 것 같다. 조물주의 바람대로 뒤죽은듯 살 것이지, 그런데도 인간들은 왜 상대를 못잡아 먹어서 난리부루스를 쳐댈까?
총체적인 먹고 입을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나는 귀하고 상대방은 천하게 생각되니, 그들위에 군림하고 싶다는 악의적 심통이다. 그런데 상대를 제치고 얻는 이익이 과정의 손실을 제하면 크지 않다는걸 왜 모르는 것일까? 평등이나 공정이라기 보다 순리(順理)이고 섭리(攝理)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양 이참에 웬 모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분노의 순간, 적어도 초상집에선 나팔을 불지 말아야지! 서둘러 불을 켜니 두녀석이 주위를 배외하고 있었다. 전류흐르는 공격무기로 벽에 붙은 한마리를 잡았으나, 기회를 틈타 다른 녀석은 재빨리 침대밑으로 사라졌다.
약삭빠른 넘이 얄밉기는 인간과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밝은 날 내가 뒤를 추적할 것이란 사실을 알리가 없다.
잠이 오지 않는다면 무얼할까? 심난한 마음에 냉장고에 고이 간직한 막걸리 한통을 꺼내었다. 이밤에 무슨 제대로된 안주를 챙기랴? 먹다 남은 김치팩을 꺼내었다.
건너편 뒷고기집에 불이 꺼졌다. 혼자 마시는 막걸리도 그곳 불빛을 보며 마음속 동질감을 느끼려 하였더니... 까닭없는 적막감에 주기에 빠진 육신은 쉬이 잠들기는 어차피 글렀다. 머리는 혼돈스럽고, 배는 빵빵, 몸은 열기로 휩싸인다.
오래살 욕심은 추호도 가지지 말자고 또 다시 결심을 해본다. 적어도 눈감을 때까지는 추하게 보이지 않아야겠다는 의미이다. 욕심을 가짐도 추하고, 삶은 상대적이라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연륜깊다고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잘못 꺼내어 들었다가는, 주책받이 꼰대로 몰려 정신적 고려장을 당하기 싶상이다.
연소통이 터질듯 악을 쓰며 도로를 달리던 목숨건 오토바이족들의 질주도 끝이났다. 거리는 조용하고 가로등 불빛도 희미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멀리 하늘을 가로막은 아파트 옥상불빛, 전선으로 허리 가득 감은 가로등, 막차떠난 시외버스터미널의 야간 식별등, 그리고 이밤에 잠못들어 뒤척이거나,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일시적 야행성 동지들의 공간...
집안에는 온통 보조램프 불빛이다. 전자시계, 정수기, 냉장고, 현관문개폐기, 콘센트, 와이파이 안테나...설마 내 영혼의 혼불은 빠져나가지 않았겠지!
어린시절 여름밤 어른들과 평상에 앉아 모닥불 연기를 쏘일때, 낮은 산등성이를 서서히 넘어가는 작은 불빛을 보았었다. 반딧불은 아니고, 가까이서 그것도 소리가 전혀나지 않았으니, 비행기일리도 없었다. 알 수없는 비행물체(UFO)가 아니라면 전혀 실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때 함께 보았던 어른들은 그게 사람이 죽기전 몸에서 빠져나가는 혼불이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가까운 날에 동네 초상이 났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이렇게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나는 흘러간 노래가 좋았다. 언젠가 진주에 있는 친구가 보내준 동영상속, 지역출신 가수가 친구들과 막걸리 잔을 앞에두고 기타반주로 부르는 고 남인수의 '울며 헤어진 부산항'을 들을때마다, 따라부르며 지난 시절을 떠올렸다. 실수로 그 영상이 지워진 후에는 어느 여가수가 영도에서 감만동으로 이어진 북항대교 위를 차를 타고가며 불렀던 그 노래를 한번씩 들었다.
울며헤진 부산항을 돌아다보니
연락선 난간머리 흘러온달빛
이별만은 어렵더라 이별만은 슬프더라 더구나 정들은 사람끼리 음 - - - -
엇그제 북천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보다 더 살가운 동갑내기 처삼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군에서 100억원을 들여 조성한 삼화실 구재봉 자연휴양림 입구에 좋은 땅이 있어 별장을 지었단다.
풍광도 좋고 계곡물도 맑으니 몇일 쉬어가게 수영복만 챙겨오라는 전화였다. 하고픈 마음이야 굴뚝 같았지만 우선은 답변을 미루었다.
사람들의 발길 멀었던 그곳이 각광을 받는다니 다행이다. 나는 삼화실을 딱 두번 갔었다. 어릴때 아버지 대신 동네 초상집 부고를 전하려 갔고, 4년 전쯤 90중반 어머니를 태우고, 열여듧 나이에 출가하여 한번도 찾지 않았다는 어머니의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갔었다.
아참! 한번은 동네 처녀 총각들이 도가에서 산 막걸리 한말메고, 구재봉을 올랐었다. 돌아오는 길에 들판 감나무에서 감을 따먹다가 주인에게 들켜 줄행랑을 치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그 구재봉을 오르면 굽이굽이 푸른 물결치는 섬진강의 물줄기가 내려다 보이고, 그 정겨운 태생적 역사가 비록 지금은 고향을 떠나 있는 우리들의 대뇌를 지배하여 밤마다 아름다운 꿈을 꾸며, 깊은 잠에 빠져드는 평온을 가져다 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