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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rth Sunday of Easter (May 11, 2014)
Reading 1: Acts 2:14a, 36-41
Then Peter stood up with the Eleven, raised his voice, and proclaimed: “Let the whole house of Israel know for certain that God has made both Lord and Christ, this Jesus whom you crucified.” Now when they heard this, they were cut to the heart, and they asked Peter and the other apostles, “What are we to do, my brothers?” Peter said to them, “Repent and be baptized, every one of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for the forgiveness of your sins; and you wi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Spirit. For the promise is made to you and to your children and to all those far off, whomever the Lord our God will call.” He testified with many other arguments, and was exhorting them, “Save yourselves from this corrupt generation.” Those who accepted his message were baptized, and about three thousand persons were added that day.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2014년 5월 11일 일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2,14ㄱ.36-41
오순절에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36 “이스라엘 온 집안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37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과 또 멀리 있는 모든 이들, 곧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 40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증거를 들어 간곡히 이야기하며,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하고 타일렀다. 41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날에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다.
Reading 2: 1 Pt 2:20b-25
Beloved: If you are patient when you suffer for doing what is good, this is a grace before God. For to this you have been called, because Christ also suffered for you, leaving you an example that you should follow in his footsteps. He committed no sin, and no deceit was found in his mouth. When he was insulted, he returned no insult; when he suffered, he did not threaten; instead, he handed himself over to the one who judges justly. He himself bore our sins in his body upon the cross, so that, free from sin, we might live for righteousness. By his wounds you have been healed. For you had gone astray like sheep, but you have now returned to the shepherd and guardian of your souls.
제2독서: 베드로 1서 2,20ㄴ-25
사랑하는 여러분, 20 선을 행하는데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면,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받는 은총입니다. 21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22 “그는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그의 입에는 아무런 거짓도 없었다.” 23 그분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24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25 여러분이 전에는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 이제는 여러분 영혼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께 돌아왔습니다.
Gospel: Jn 10:1-10
Jesus said: “Amen, amen, I say to you, whoever does not enter a sheepfold through the gate but climbs over elsewhere is a thief and a robber. But whoever enters through the gate is the shepherd of the sheep. The gatekeeper opens it for him, and the sheep hear his voice, as the shepherd calls his own sheep by name and leads them out. When he has driven out all his own, he walks ahead of them, and the sheep follow him, because they recognize his voice. But they will not follow a stranger; they will run away from him, because they do not recognize the voice of strangers.” Although Jesus used this figure of speech, the Pharisees did not realize what he was trying to tell them. So Jesus said again, “Amen, amen, I say to you, I am the gate for the sheep. All who came before me are thieves and robbers, but the sheep did not listen to them. I am the gate. Whoever enters through me will be saved, and will come in and go out and find pasture. A thief comes only to steal and slaughter and destroy; I came so that they might have life and have it more abundantly.”
복음: 요한복음 10,1-1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Biblical Reflection for the 4th Sunday of Easter by Father Thomas Rosica, CSB
Jesus Never Ceases to Be the Sheep Gate
Of all the images of Jesus throughout the ages, what shows his tenderness and compassion more than the Good Shepherd? Even before Jesus' time, the image of shepherd was used to describe the tenderness and provident care God shows us. Shepherd and host are both images set against the background of the desert, where the protector of the sheep is also the protector of the desert traveler, offering hospitality and safety from enemies. In the Bible and the ancient Near East, "shepherd" was often used as a political title to stress a king's obligation to provide for his subjects.
토마스 로시카 신부님의 부활제4주일 성경묵상 (2014. 5. 11.)
예수님께서 양우리의 문이시기를 그치지 않으심
온 시대를 걸쳐 예수님의 이미지 중에 착한 목자보다 더 그분의 부드러움과 연민을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예수님 시대 전에 이미 목자의 이미지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부드러움과 하느님의 보호를 묘사하는데 쓰였다. 목자와 주인은 사막의 환경에서 생긴 이미지로서 양의 보호자는 또한 사막 여행자의 보호자이기도 하다. 그들은 여행자들에게 환대와 적으로부터의 안전을 제공한다. 성경과 옛 근동에서 “목자”는 왕왕 백성들에 대한 왕의 의무를 강조하는 정치적인 직함으로 쓰였다.
The title connoted concern for and dedication to others. The image of the shepherd also expresses great authority. The entire Good Shepherd discourse (John 10:1-21) from which is drawn today's Gospel text, continues the theme of critique on the Pharisees at the end of Chapter 9. Nourishing the flock means that the shepherd must protect them from heresy, ever ready to defend the sheep from marauders. The shepherd's rod is a defensive weapon against wild animals, while the staff is a supportive instrument symbolizing care and loyalty.
이 직함은 다른 사람에 대한 염려와 헌신을 암시한다. 목자의 이미지는 또한 큰 권위를 표현한다. 오늘 복음 본문이 있는 착한 목자에 대한 설교 전체(요한 10,1-21)에 9장의 끝에 나오는 바리사이에 대한 비판 주제가 계속된다. 양떼를 키우는 것은 목자가 그들을 이단으로부터 보호해야 하고, 항상 그들을 강도로부터 보호할 태세를 갖추는 것을 뜻한다. 목자의 막대기는 야생동물을 쫓는 방어무기이고 지팡이는 보호와 충성을 상징하는 지지도구이다.
Entering God's presence
Before we consider the significance of the sheep gate, let us recall that in ancient Israel, the gates of Zion symbolized the very idea of entrance into God's presence. When Isaiah speaks of the day of universal peace he describes it as a time when God's "gates shall stand open constantly; day and night they shall not be closed" (Isaiah 60:11). Likewise, the altar of holocausts was placed not within the tabernacle, but "in front of the entrance of the Dwelling of the meeting tent" (Exodus 40:6).
하느님 현존에 들어감
양 우리 문의 중요성을 살펴보기 전에 옛 이스라엘의 시온의 문이 하느님의 현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하였다는 것을 되돌아보자. 이사야가 보편 평화의 날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그는 그때를 하느님의 “성문들은 늘 열려 있는 채 낮에도 밤에도 닫히지 않을” (이사야 60,11) 때라고 묘사하였다. 비슷하게, 번제 제단은 성막 안에 놓여있지 않고, “만남의 천막 어귀에 놓였다” (탈출기 40, 6).
Christ is the fulfillment of all these expectations: He is the door through which we have "access to the Father" (Ephesians 2: 18). He is the "new and living way" (Hebrews 10:20). How often do we repeat the words of the Psalmist, especially during the Advent season (24:7-10): "Lift up your heads, O gates; / rise up, you ancient portals, / that the king of glory may enter. / Who is this king of glory? / The LORD, a mighty warrior, / the LORD, mighty in battle. / Lift up your heads, O gates; / rise up, you ancient portals, / that the king of glory may enter. / Who is this king of glory? / The LORD of hosts is the king of glory."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기대의 완성이시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아버지께 나아가는” (에페소서 2,18) 문이시다. 그분은 “새롭고 살아계신 문” (히브리 10,20)이시다. 얼마나 자주 우리는 특히 대림시기에 시편작가의 말(24,7-10)을 반복하는가?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오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께서 들어가신다. 누가 영광의 임금이신가? 힘세고 용맹하신 주님, 싸움에 용맹하신 주님이시다.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오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께서 들어가신다. 누가 영광의 임금이신가? 만군의 주님 그분께서 영광의 임금이시다.”
Of Shepherds and sheepfolds
In today's Gospel (John 1:1-10), Jesus makes references to two types of sheepfolds before he identifies himself as the sheep gate. In the first two verses he describes the kind of "communal sheepfold" that each village would maintain and to which the shepherds might return their flocks each night. The pen was protected by a strong door that could be opened only by the chief shepherd's key. The second type of sheepfold is described in subsequent verses. Such a containment was provided for those nights when the sheep were to be kept in the fields (as on the night of Jesus' birth).
목자와 양우리에 대하여
오늘의 복음에서 (요한 1,1-10) 예수님께서 자신을 양우리의 문이라고 밝히시기 전에 두 형태의 양우리를 말씀하신다. 처음의 두 절에서 예수님께서 일종의 “친교적 양우리”를 묘사하시는데 이는 각 마을이 가지고 있고, 목자들이 매일 밤 양떼를 데리고 돌아오는 곳이다. 그 우리는 튼튼한 문으로 방어되어 있고 그 문은 수석목자의 열쇠로만 열 수 있다. 두 번째 형태의 양우리는 그 다음 절에서 묘사되고 있는데, 그런 우리는 양떼들을(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밤과 같이) 들에 놔두어야 할 때 쓰는 것이다.
Such temporary sheepfolds usually consisted of a circle of rocks, with an opening at one end. The shepherd himself would serve as the gate to such sheepfolds, laying across its entrance to sleep. Whether a sheep tried to leave or a wolf tried to enter, they would have to do so by way of the shepherd himself! The shepherd himself was the door. It is important to remember that Jesus first identifies himself, not as the Good Shepherd, but as the gate for the sheep. In the ancient walls of Jerusalem, there was a gate on the north of the city, by which animals were brought in from the surrounding areas for sacrifice.
그런 임시 양우리는 보통 둥그렇게 돌을 쌓아올린 형태이고 드나드는 곳은 열려 있다. 목자 자신이 그 열려있는 곳에 가로누워 양우리의 문 역할을 한다. 양이 양우리를 벗어나려고 하거나 늑대가 양우리에 들어오려고 할 때 목자 자신을 지나가야 한다. 목자 자신이 문이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자신을 착한 목자라고 하지 않으시고 양들의 문이라고 하신 점은 중요하다. 예루살렘의 옛 성에는 도시의 북쪽에 희생 제물로 쓸 동물을 들여오는 문이 있었다.
It was called the sheep gate. Once inside the city and within the temple courts, there was only one door where the sheep went in, and no lamb ever came back out after entering the temple precincts. They traveled in only one direction, and there they were sacrificed for the sins of human beings. For that first audience who heard Jesus’ teaching about sheep, such knowledge added to the shock of his words: "I tell you the truth, I am the gate for the sheep. ... I am the gate; whoever enters through me will be saved. He will come in and go out, and find pasture" (John 10:7,9).
그 문을 양들의 문이라고 불렀다. 일단 도시에 들어오면, 성전 안마당에 단 하나의 문이 있었는데 양이 그 문을 통해 들어가고, 성전 경내에 들어왔던 양은 나온 적이 없다. 그들은 오직 한 방향으로 이동하였고, 거기에서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되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첫 번째 청중들에게 양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더 큰 충격이었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요한 10, 7, 9).
In the very temple area filled with sheep on their way to slaughter, Jesus declared there was a way out: "I have come that they may have life, and have it to the full. I am the Good Shepherd" (John 10:11). Jesus speaks of sheep in the very place where they were about to be slaughtered. Unlike the shepherd among innocent lambs in many of our imaginary scenes of sheep and shepherds on verdant hillsides, tending these sheep requires something more than a gentle hand and a watchful eye. They must be protected from the powers of death.
번제를 기다리는 양으로 가득 찬 그 성전구역에서 예수님께서 나갈 길이 있다고 선언하셨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요한 10,11). 예수님께서는 양들이 희생되려고 하는 바로 그곳에서 양들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목초지 언덕의 양과 목자들에 대해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장면 속에 나오는 순한 어린 양 가운데의 목자와 달리, 이 양들을 돌보는 일은 부드러운 손길과 주의 깊은 눈길보다 훨씬 더한 무엇을 필요로 한다. 그 양들은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Jesus teaches that anyone who does not enter into the sheepfold to care for the sheep through this gate -- Jesus himself -- is a thief and a bandit.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him. Jesus himself is the gate by which the shepherd goes to the sheep, therefore the only authentic shepherds are those admitted by him. In verses 7-8, the figure is of a gate for the shepherd to come to the sheep; in verses 9-10, the figure is of a gate for the sheep to come in and go out. The Pharisees, since they do not come through Jesus, are thieves. Those who come through this gate that is Jesus will have life.
예수님께서 양을 돌보기 위해 이 문-예수님 자신-을 통하지 않고 양우리에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도둑이나 강도라고 가르치신다. 아무도 그분을 통하지 않고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예수님 자신이 목자가 양들에게 가는 문이시다. 따라서 참 목자들은 예수님께서 받아들인 사람들뿐이다. 7-8절의 문은 목자가 양에게 오는 문이며 9-10절의 문은 양들이 드나드는 문이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도둑이다. 예수님이신 이문을 통해 온 사람은 생명을 얻을 것이다.
Loyal protector
Jesus is the water of life, the bread of life and the gate of life. Jesus is the model (good) shepherd in three ways. First of all, he is willing to lay down his life for his sheep. The Pharisees are hirelings who shear the sheep but have no loyalty to them. The faithful shepherd, like David of old, protects his flock. Second, he knows his sheep. This intimate knowledge of his flock, which involves love and long night watches, is his reason for laying down his life for them. And his love goes out beyond "his own sheep" of the Johannine community to others who believe in him. Third, Jesus is the gate of the sheepfold -- not a trap door, but rather the entrance into the loving security of God -- into the protection of the good shepherd.
충직한 보호자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물, 생명의 빵, 생명의 문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면에서 착한 목자이시다. 무엇보다도 그분은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 놓으려고 하신다. 바리사이는 삯군으로서 양털을 깍지만 그들에 대한 충직성은 없다. 다윗과 같은 충실한 목자는 그의 양떼를 보호한다. 둘째로 그분은 그의 양들을 아신다. 사랑과 긴 밤 동안의 보초에서 나오는 양떼에 대한 이 친밀한 이해는 바로 그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이유이다. 그분의 사랑은 요한복음 공동체의 “그의 양떼”를 넘어서 그를 믿는 다른 양들에게도 미친다.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양우리의 문으로서 함정의 문이 아니고, 하느님의 사랑 가득한 보호로 들어가는 문이고 착한 목자의 보호로 들어가는 문이시다.
Christ is not only the door; he is the king who enters and the temple to whom the door leads! In ancient times the "door to heaven" was the sky from which God gave us manna (Psalm 78:22), but now Christ is the true bread come down from heaven (Nicodemus). Jacob saw the "the gateway to heaven" (Genesis 28:17) in the earthly shrine at Bethel, but when the martyr Stephen gazes at the door to heaven he sees "glory of God and Jesus" (Acts 7:55). Christ not only invites us to enter the Kingdom of heaven through him, he even leaves the keys to his apostles, assuring them that "whatever you bind on earth shall be bound in heaven; and whatever you loose on earth shall be loosed in heaven" (Matthew 16:18-20).
그리스도께서는 문이실 뿐만 아니라, 문을 통해 들어가시는 왕이시고, 문을 지나 도달하는 성전이시다. 옛 시대에 “천국의 문”은 하느님께서 만나를 보내주시는 하늘(시편 78,22)이었지만,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하늘(니코데모)에서 내려오는 진정한 빵이시다. 야곱은 베텔의 지상 교회에서 “하늘 문” (창세기 28,17)을 보았으나, 순교자 스테파노는 천국의 문을 바라볼 때 “하느님의 영광과 예수님”을 보았다(사도행전 7,55).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그분을 통하여 천국으로 초대하실 뿐만 아니라 사도들에게 천국의 열쇠까지도 남겨놓으시며, 다음과 같이 확신시키셨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오 16,18-20).
Hope of humanity
I cannot help but recall one of the teachings of Saint John Paul II on today’s Gospel passage during World Youth Day 1993 in Denver, Colorado. During the Vigil on Aug. 14, 1993, in Denver’s Cherry Creek State Park, the Holy Father said: "In Jesus Christ, the Father expresses the whole truth concerning creation. We believe that in the life, death and Resurrection of Jesus the Father reveals all his love for humanity. That is why Christ calls himself 'the sheep gate' (John 10:7). As the gate, he stands guard over the creatures entrusted to him. He leads them to the good pastures: 'I am the gate. Whoever enters through me will be safe. He will go in and out, and find pasture' (10:9). [...]“
인류의 희망
콜로라도 덴버에서 1993년 세계청년의날 기간 동안 성 요한바오로 2세께서 오늘의 복음에 대하여 하신 가르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93년 8월 14일 덴버의 체리크리크 주립공원에서 거행한 저녁 미사에서 교황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창조에 대한 모든 진리를 표현하십니다.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 안에서 아버지께서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을 ”양들의 문“(요한 10,7)이라고 부르시는 이유입니다. 문으로서 그분은 그분에게 맡겨진 피조물을 지키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푸른 초원으로 이끄십니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9). [...].”
“As the Third Millennium approaches, the Church knows that the Good Shepherd continues, as always, to be the sure hope of humanity. Jesus Christ never ceases to be the 'sheep gate.' And despite the history of humanity's sins against life, he never ceases to repeat with the same vigor and love: 'I came that they may have life, and have it abundantly' (John 10:10). [...] Christ -- the Good Shepherd -- is present among us, among the peoples, nations, generations and races, as the One who 'lays down his life for the sheep.' [...]”
“3천 년대가 다가오면서, 교회는 착한 목자가 계속해서 항상 그랬듯이 인류의 확실한 희망이라는 것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양들의 문’이시기를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생명을 거스르는 인류의 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똑같은 힘과 사랑으로 다음과 같이 반복하시기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요한 10,10). [...]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가운데, 사람들, 국가들, 세대들, 그리고 인종들 가운데에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으시는’ 분으로 계십니다. [...]”
“Yes, the Good Shepherd lays down his life. But only to take it up again (John 10:17). And in the new life of the Resurrection, he has become -- in the words of St. Paul -- 'a life-giving spirit' (1 Corinthians 15:45), who can now bestow the gift of Life on all who believe in him. Life laid down -- Life taken up again -- Life given. In him, we have that Life which he has in the unity of the Father and of the Holy Spirit. If we believe in him. If we are one with him through love, remembering that 'whoever loves God must also love his brother' (1 John 4:21).”
“그렇습니다. 착한 목자는 그의 생명을 내놓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다시 얻으십니다(요한 10,17). 부활의 새로운 생명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성 바오로의 말에 의하면- 이제 그를 믿는 모든 이에게 생명의 선물을 주시는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1 코린토 15,45). 내놓으신 생명 -- 다시 얻으신 생명 -- 주시는 생명. 그분 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함께 성령 안에 지니신 그 생명을 누립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기만 하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 (1요한 4,21)는 것을 기억하며 사랑을 통하여 그분과 하나가 되면.”
Reflection questions
Jesus says that the sheep will know the voice of their shepherd, and that they will not follow a stranger. How well do I listen for the voice of the Good Shepherd? Where do I seek to hear Him? Do I follow where He leads? Jesus says that He has come that we might have life, and have it abundantly. What does He mean by this? Do I live the abundant life that God has prepared for me? Jesus says that He has other sheep that do not belong to the fold, but that must also come in. By this many scholars believe He meant the Gentiles who were not awaiting the Messiah but would receive the Good News with joy. Who are the sheep in today's world that must come into God's sheepfold? What are we doing to bring them to Christ?
묵상문제
예수님께서는 양들은 그들의 목자의 목소리를 알고 낯선 사람을 쫓아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착한 목자의 소리에 얼마나 잘 귀 기우리는가? 어디에서 그분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가? 그분의 이끄심에 따르는가? 예수님께서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오셨다고 하신다. 무슨 뜻인가?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넘치는 생명을 사는가? 예수님께서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지만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고 하신다. 이를 두고 많은 학자들이 예수님께서 메시아를 기다리지 않았던 이방인들도 기쁘게 복음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하신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날 누가 하느님의 양우리로 들어와야 하는 양인가? 그들을 그리스도께 데려오기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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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lian Father Thomas Rosica, chief executive officer of the Salt and Light Catholic Media Foundation and Television Network in Canada, is a consultor to the Pontifical Council for Social Communications.
토마스 로시카 신부님은 카나다 소금과 빛 가톨릭 미디어 재단과 텔레비전 네트워크의 CEO이며, 교황청 사회소통 평의회의 고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