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人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우리는 참으로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智慧를 발견하게 되는 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볼 때만 가능하다.
인간의 의지와 지성 의지 따위는 불완전하며 불합리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왜 그런고 하니 세속의 학문 이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무장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것은 원수가 되게 하고 가로막는 담이 되어서 은혜의 통로를 차단하는 무서운 장애물이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돌아볼 때,
자기 안에 선한 요소라곤 없다고 인정할 때,
오직 주의 은혜만 기댈 수 있는 언덕임을 자각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착각을 하는 한 은사는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죄와 함께 은사는 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빛이시오, 거룩의 본체이시기 때문에 죄인과 함께 거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여,
인간의 죄를 없이한 다음에 임마누엘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동거하게 된 것이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라는 축복의 말씀은
우리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 지 모른다.
기댈 언덕이라곤 없는 이 세상에서 인간은 참으로 절대 고독한 자이다.
특히 살벌한 전장터에서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危難과 時時刻刻
닥쳐오는 죽음의 그림자는 그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하며,
이때에 비로소 절대자를 찾으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몸부림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은 깨달아야 한다.
연약과 병약함과 무익함과 선한 요소라고는 전혀 없는 絶對 腐敗, 全的 墮落,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없이는 모두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철저히 고백하고 그 분의 절대은총만 의지하게 될 때,
바로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는 성경의 말씀이 응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헛되고 무익한 열심을 내며 살아왔던가?
자가당착에 빠져서 때로는 기뻐하며 ,
때로는 슬퍼하며 자기 스스로 정죄하며 판단하며 자기를 해치기에 열심을 내었던가?
이러한 모습들은 다 거짓된 것이요, 위선이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百害無益한 시도였다.
따라서 어느 날 도를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만 의지하고자 결심하고 나아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한마디로 작정한 것인데, 그렇게 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안해진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역사를 일깨워주고 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뻐시게 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역사도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고향 나사렛에 갔을 때,
그의 고향 사람들이 그를 배척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는 이적을 행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을 하고 있다.
바로 믿음은 믿는 자를 통하여 役事하는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의 통로인 것이다.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이 인간의 노력이나 수고나 방법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기인한 것임을 우리가 자각하게 될 때,
거기에 바로 은총과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사가 충만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는 연약한 인간을 의지하지 말 것을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말씀이다.
‘너희는 연약한 인생을 依支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방백도 依支하지 말찌니,
호흡이 끊어지면 당일로 모든 것이 消滅되나니...’라고 말하고 있다.
참으로 별볼일 없는 罪惡의 덩어리요, 죄인 중의 죄인이요,
괴수인 우리들에게 미친 하나님의 은사는 참으로 놀라울만한 것이다.
우리는 그의 은총을 分分秒秒 새기면서 刻骨銘心하여 감사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았으니 인생의 남은 날들을 감사하면서
그의 은혜와 덕을 베푸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이 일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며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平康과 安息이 충만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다.
인생은 하나님의 恩寵으로만 義로워 진다. gaeg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