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부르면 전화 끊을 기세…치솟는 김하성의 연장 계약 가치
2023. 8. 4. 06:50
올스타급으로 성장한 어썸 김의 가치
수비 잘하는 선수? 천만에. 이젠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 모든 게 되는 선수다. 그야말로 5툴 이상이다. 6툴, 7툴까지 따져야 한다. 어느 틈에 샌디에이고의 자랑이 됐다. ML 3년 차, 어썸 김의 활약이 눈부시다.
여러 지표가 리더 보드 맨 위쪽에 머문다. 6~7월부터는 공격력이 압권이다. 특히 장타 생산이 급증했다. 어제(3일, 이하 한국시간) 15호 포를 넘겼다. 콜로라도에서의 첫 홈런이다. 지난해 자기 기록(11개)을 넘어선 것은 한참 됐다. 이젠 강정호(21개) 추신수(24개)의 숫자가 시야에 들어온다.
도루는 이미 22개를 성공시켰다. 역시 추추 트레인의 베스트 시즌과 타이다. 이로써 20-20에 한 걸음 다가섰다. (추신수가 3차례 달성했다.)
시즌 초반 타율은 1할대였다. 이게 0.284까지 올라왔다. 어느덧 팀 내 최고다. 후안 소토(0.277), 타티스 주니어(0.270), 잰더 보가츠(0.266), 매니 마차도(0.258)가 그 뒤로 줄 선다. 출루율(0.380)과 장타율(0.458)은 말할 것도 없다. OPS도 0.838로 소토(0.951)에 이어 팀 내 두 번째다.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이 압권이다. 베이스볼레퍼런스(dWar) 기준으로는 이미 리그 최고 레벨이다. 5.4를 마크해 오타니 쇼헤이(8.0)와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5.5)에 이어 메이저리그 전체 3위다. 야수만 따지면 2위다.
또 다른 권위의 팬그래프스닷컴(fWAR)은 한동안 깐깐했다. 수비 측면을 박하게 채점한 탓이다. 하지만 공격력이 증가하며 랭킹이 급등했다. 4.1까지 올라가며, 포지션 플레이어 중 전체 7위에 랭크됐다. 이 정도면 올스타급 레벨이다.
이렇게 되자 그의 가치가 궁금해진다. 재계약 때는 어떻게 평가될까. 어느 댓글러가 촌철살인의 한 줄을 남겼다. ‘4년 부르면 전화 끊을 기세.’
캠프를 발칵 뒤집은 마차도의 ‘옵트 아웃’ 선언
올 2월이었다. 캠프 시작부터 분위기가 묘하다. 클럽하우스 리더 매니의 표정이 싸늘하다. 마침 뉴스 한 줄이 뜬다. 폭스 스포츠의 트윗에 올라온 헤드라인이다. ‘마차도가 올 시즌 끝나고 옵트 아웃 할 계획이다.’ 팀을 떠난다는 말이다.
그는 2019년 파드리스와 10년 계약을 맺었다. 총액 3억 달러 규모였다. 그런데 단서 조항 하나가 있었다. 중간에 옵트 아웃(Opt Out) 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됐다. 그 시기가 2023시즌 이후다. 그러니까 남은 계약을 포기하고, 다시 FA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의미다. 몸값을 올려 다른 팀으로 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굳이 개막도 한참 남았는데 이러는 이유가 있었다. 흔한 말로 ‘빈정이 상한’ 것이다. 그 무렵 파드리스는 대형 계약을 쏟아냈다. 유격수 잰더 보가츠와 11년 2억 8000만 달러, 투수 다르빗슈 유와 6년 1억 800만 달러에 사인했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1년 남은 마차도와도 협상이 시작됐다. 구단 측 제시액이 밝혀졌다. 5년에 1억 500만 달러라는 보도였다. 받아들일 리 없다. ‘장난 지금 나랑 하냐?’ 그런 반응이다. 열 받아서 지른 게 옵트 아웃 선언이다. 그러면서 요구액으로 10년 4억 달러를 불렀다.
구단이 발칵 뒤집어졌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 싶은 거다. 부랴부랴 수습에 나선다. 구단주까지 마이크 앞에 섰다. 다저스의 오너였던 피터 오말리의 조카인 피터 사이들러다. 직접 성명을 발표한다. “마차도는 우리의 최우선 순위다. 그와 다시 진지한 대화를 나눌 것이다.”
열흘이 지났다. mlb.com에서 속보가 뜬다. 양쪽이 합의했다는 뉴스다. 5년이 11년으로 길어졌다. 금액도 1억 500만 달러에서 3억 5000만 달러로 늘어났다. 이전 계약 규모를 합치면 15년 4억 7000만 달러짜리 계약이 된 셈이다. ML 역사에 남을 엄청난 규모다.
연장 계약을 1년 전에 끝내는 프렐러 스타일
마차도는 가장 상징적인 예다. 파드리스의 특징은 장기 계약자가 많다는 것이다. 앞서 얘기한 보가츠, 다르빗슈뿐만이 아니다.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역시 기록 보유자다. 14년간 3억 4000만 달러에 사인했다(2021년).
또 선발 조 머스그로브도 5년 1억 달러에 사인했다. 내야수 크로넨워스는 8000만 달러에 7년을 보장받았다. 보가츠를 제외하면 모두 기존 멤버들의 연장 계약이다.
잔류를 위한 재협상이다. 이런 계약의 특징이 있다. 풀리기(시장에 나가기) 1년, 혹은 그 전에 얘기를 끝낸다는 사실이다. 야구 부문 사장 AJ 프렐러의 스타일이기도 하다. 피차간에 괜한 감정 소모할 필요 없다. 시비 만들지 않고, 일찌감치 안정감을 유지한다. 그런 장점이다.
그는 명문 코넬대 출신이다. 텍사스의 존 대니얼스 사장과 동문이자 절친이다. 레인저스에서 단장(GM)과 단장 보좌역으로 함께 일하기도 했다. 파드리스로 옮긴 것은 2014년이다. GM으로 6년 계약을 맺었다. 사이들러 구단주의 적극적인 지지를 등에 업었다. 2019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동시에 야구 부문 사장으로 승진했다. 임기는 2026년까지다.
흔히 ‘미친X’으로 불린다. 프기꾼(앤드류 프리드먼 다저스 사장)처럼 우리 팬들이 붙인 별명이 아니다. 실제로 그곳에서 ‘매드맨(mad man)’으로 통한다. 저돌적, 공격적인 스카우트와 트레이드 때문에 얻은 별칭이다. 가끔 지나쳐서 화가 되기도 한다. 2016년 투수 드류 포머란츠를 레드삭스로 보낼 때다. 의료 기록을 숨긴 사실이 드러나 30일간 직무 정지를 받았다.
그러나 분명한 공은 있다. 스몰 마켓인 파드리스를 지금의 덩치로 키워냈다. 미친 듯한 영입으로 쟁쟁한 라인업을 구축했다. 덕분에 눈부신 가을(2022년)을 보내기도 했다. 메츠를 꺾었고(와일드카드), 다저스를 꿇렸다(NLDS). 샌디에이고 팬들이 염원인 ‘Beat LA’를 이룬 것이다.
지금부터는 김하성이 ‘갑’이다
김하성을 데려간 것도 비슷하다.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다. 아시아 출신 내야수가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그런데도 영입이 결정됐다. 그것도 꽤 괜찮은 조건이었다. 4+1년, 최대 3900만 달러를 지출했다. 오로지 프렐러의 의지다.
슬슬 시간이 다가온다. 2024 시즌이 사실상 마지막이다. +1년은 상호 옵션이 걸렸다. 구단과 선수가 모두 “오케이” 해야 진행된다. 한쪽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끝이다. 지금으로서는 어썸 김이 ‘갑’이다. 훨씬 높은 가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얘기다. 이제부터는 프렐러의 시간이다. 그의 스타일이면 곧 일을 진행할 것이다. 어쩌면 벌써 운을 띄웠는지 모른다. 연장 계약 논의는 스토브리그 동안 마무리될 수도 있다.
걸림돌은 있다. 후안 소토 역시 내년까지다. 구단 입장에서는 더 거물이다. 이걸 포함한 사치세 걱정도 해야 한다. 파드리스의 총연봉은 30개 구단 중 3위에 올랐다. 그만큼 재정적인 부담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부실한 장기 계약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다. 신경 쓸 게 하나둘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존재한다. 어썸 김만한 호재는 없다. 적은 투자로 큰 결실을 맺었다. 부진한 팀 성적에도 제 몫 이상을 해내는 효자다. 무엇보다 팬들의 사랑이 큰 선수다. 등장만으로 그라운드가 뜨거워진다. 이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파드리스는 흥행 의존도가 높다. 구단 운영에도 큰 차질이 생기는 구조다. 관중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당사자도 잔류에 대한 열망이 크다. 강정호의 유튜브 채널 King Kang에 출연해 이렇게 밝혔다. “홈 경기하면 행복하다. 팬들이 너무 좋아해 주고, 응원도 해주고. 사실 ‘내가 다른 팀 가면 이렇게 환호와 응원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날씨도 좋고…. 그런데 선수로서는 좀 힘든 면도 있다. 좋은 선수들을 계속 데려오니까, 계속 경쟁해야 된다. 그게 우승을 노리는 팀들의 안 좋은 점 같다.”
그의 가치를 놓고 여러 추측들이 많다. 나이와 재능, 내야라는 포지션과 멀티 플레이가 가능한 점을 감안하면 잠재력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아마도 류현진(4년 8000만 달러)이나 추신수(7년 1억 3000만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도 어렵지 않다.
‘4년 부르면 전화 끊을 기세’라는 말은 어쩐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