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악산, 칠절봉 정상에서
그러나 속박 당하는 자의 불운이여. 자기 의지를 내준 사람은 스스로 자기 길을 선택 할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은 오직 봉사하고 복종할 수밖에 없다. 그렇듯 자기 정열의 하녀인 그녀는 비틀
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무의식 상태의, 그러면서도 잔인하게 의식을 가진 자기감정의 몽유병자
인 그녀는 자기 행위의 심연을 향하여 걸어 나갔다.
--- 슈테판 츠바이크, 「메리 스튜어트」
▶ 산행일시 : 2010년 6월 12일(토), 비
▶ 산행인원 : 15명(영희언니, 버들, 메모리, 숙이, 설앵초, 드류, 감악산, 대간거사, 화은, 수영,
장성준, 한기찬, 사계, 하늘재, 메아리)
▶ 산행시간 : 9시간 40분(휴식과 점심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17.2㎞
▶ 교 통 편 : 25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6 : 30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8 : 50 - 인제군 북면 용대리 당정곡(堂亭谷), 산행시작, 계곡 길로 진행
09 : 20 - 입산
09 : 42 - 능선 진입
10 : 10 - 리지
11 : 14 - 930m봉
11 : 57 - 주능선 진입, 1,126m봉
12 : 06 ~ 12 : 34 - 안부, 점심식사
13 : 16 - 매봉산(△1,271.1m)
14 : 00 - ├자 갈림길 안부, 오른쪽은 용대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
15 : 20 ~ 15 : 35 - 칠절봉(七節峯, △1,172.2m)
16 : 00 - 1,071m봉
17 : 40 - 계곡 진입
18 : 13 - 용대자연휴양림 제3야영장
18 : 30 - 용대자연휴양림 몽골텐트촌, 산행종료
22 : 50 - 동서울 강변역 도착
2.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와 그 주변
▶ 매봉산(△1,271.1m)
밤새 비가 쏟아졌다. 여느 때는 잠결에 듣는 창 들이치는 빗소리가 강약에 관계없이 안온하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이따가 저 빗속을 뚫고 산에 가야한다 하니 조금은 초조하여 잠자리마저 뒤
숭숭하다. 달리 생각하면 그간의 적지 않은 경험으로 보건데 여름철 우중산행의 정취 또한 각별
하려니 스스로를 달랜다. 더구나 다수라는 핑계도 있음에야. 자기 의지를 내준 사람은 스스로
자기 길을 선택할 수가 없다고 한 츠바이크의 말은 맞다.
15명이 간다. 춘천고속도로가 한적하다. 윈도우브러시는 앞차가 질주하여 일으키는 물보라까
지 훔치느라 한층 바쁘다. 동홍천IC로 빠져나와 화양강휴게소에 잠시 들린다. 화양강 한번 내려
다보고 멀리 구름 속 공작산 가늠한다. 이도 그림이다. 차에 오르자마자 우장 갖추기 시작한다.
스패츠는 바지 속으로 맨다. 비옷은 우비(雨備)가 아니라 방한용이다.
이쯤이 당정곡이리라. 북천 건너는 백담사 만해마을이다. 차에 내려 계곡 거슬러 깊숙이 들어간
다. 대로가 나 있다. 징검다리로 계류 건너기 세 차례. 그 기세 좋던 비가 매가리 풀리더니 이내
그친다. 비옷 벗어 넣고 홀가분히 간다. 펜션 집 개들이다. 여러 마리를 길가 개집에 묶어놓았는
데 모처럼 건수 잡았다는 듯 일제히 짖어댄다.
당정곡(堂亭谷)은 조선시대에 어느 한 선비가 이곳에 정자를 짓고 놀았다 한다. 그럴듯한 경치
다. 올려치기 알맞을만한 산기슭 연신 살피며 30분 정도 계곡 길 따르다가 지형도 들여다보고
그중 완만한 사면을 잡는다. 그래도 가파르다. 낙엽이거나 부실한 흙속에 빠져 번번이 헛심 쓴
다. 숲길. 비가 그쳤으나 담뿍 젖은 풀숲 털고 나무 건드려 앞서 내린 비 고스란히 맞는다. 이따
금 싸리나무 잎에다 상기한 얼굴 들이대 찬 기운 느낀다.
능선 진입. 햇볕이 난다. 금세 후덥지근하다. 종일 비 내릴 줄 알고 물을 2리터밖에 가지오지 않
았는데 부족할까 지레 걱정한다. 북천 건너 설악산 물이 튀어서 일게다. 산 냄새부터 비슷하더
니 리지가 나온다. 제법 길다. 젖은 슬랩이 매우 미끄럽다. 손맛만 버렸다. 한 피치 오르고 그만
날카로운 리지에 막혀 오른쪽 사면으로 길게 돌아 넘는다.
가파름이 수그러들자 더덕대형으로 펼쳐 힘 좋은 몇몇 일행은 사면 누빈다. 나는 그저 일로직
등. 등로에 나와 일광욕 즐기는 독사를 본다. 스틱으로 겁주어도 고개 빳빳이 들고 뻗댄다. 나뭇
가지 사이 열심히 기웃거려 매봉산 너른 품 잠깐 보고 내렸다 오른 930m봉. 탁주 분음하며 대간
거사 님을 비롯한 후미의 더덕조 이슥히 기다렸다.
여태 흐릿하던 등로가 환해진다. 주능선의 1,126m봉에 오른 것이다. 선두그룹은 하늘재 님이
향도하여 9명이다. 다시 비 뿌리기 시작한다. 바람까지 분다. 젖은 풀숲 헤친 손은 시리다 못해
아무 감각이 없다. 진행은 당연히 동진. 안부에 내려 후미 기다린다. 쉬느니 옹색하게나마 쪼그
리고 앉아 우산으로 비바람 가리고 점심밥 먹는다.
수대로 목청 돋우어 후미 불러주기 수회. 바람에 실려 온 반가운 기척이 있어 안심하고 매봉산
을 오른다. 해찰할 겸 작년에 곰취 재미 본 사면을 들락날락한다. 박새와 큰앵초가 보듬은 곰취
는 부쩍 쇠어버렸다. 이윽고 매봉산 정상. 울창한 나무숲이 두른 두어 평 공터다. 조그만 바위에
교대로 올라보지만 조망은 그리 신통치 않다. 그래도 삼각점은 2등이다. 설악 21, 1987 재설.
3. 화양강
4. 화양강휴게소에서
5. 용대리 당정곡
6. 설악산 안산능선
7. 설앵초 님
8. 숙이 님
9. 한기찬 님
10. 버들 님
▶ 칠절봉(七節峯, △1,172.2m)
매봉산 정상에서 허접한 이정표를 증표로 기념사진 찍으며 한참을 서성이지만 후미의 도착이
늦다. 오슬오슬 춥기도 하고(장성준 님은 감기 걸릴까봐 용대자연휴양림으로 먼저 내려갔다),
길 저축하고자 칠절봉을 향한다. 매봉산에서 칠절봉까지는 완만한 산책로 수준의 탄탄 등로다.
비가 더 쏟아져도 좋겠다. 등로 주변에는 백당나무 조팝나무 노린재나무 흰 꽃다발이 흔전하다.
헬기장인 1,134m봉에서 배낭 벗어놓고 또 후미조 걱정해준다. 안부인 ├자 갈림길을 지나서다.
후미조의 선두인 수영 님을 만난다. 왜 이리 늦으시나요? 다른 일행은 어디쯤 오시나요? 떼알
바하였습니다(떼로 길을 잘못 들었단다). 모두 곧 옵니다. 전혀 뜻밖이다. 더덕 캐느라 늦는 줄
로만 알았는데 떼알바라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아마 더덕귀신에 홀려 1,126m봉을 그대로 돌파했을 것.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더한 오
지산행을 하루 이틀 아니 한두 해 한 것도 아니고, 진행방향 또한 동쪽으로 갈 것을 동동동동북
으로 착오할 것이 아닌 아예 서쪽으로 갔으니 말이다.
그랬다. 펑퍼짐한 사면 쓸어 오르다 주능선인 1,126m봉에 이르고 선두그룹이 으레 기다릴 줄
알았는데 아무도 없고(이 대목은 선두가 잘못 했다), 비바람 속 길 좋다하고 냅다 가다보니 매봉
산 반대방향이더란다. 왕복 20분 남짓. 상당한 거리다. 이때 데미지 입어서일까? 가뜩이나 초반
부터 오를 때 버거워하던 화은 님은 휴양림으로 하산하였다고 한다. 드러내놓고 즐거워 할 수는
없어 표정관리하느라 애먹는다. 아무튼 여러 입 회자(膾炙)하고 크게 웃을 일이 생겼다.
1,134m봉 오르기 전 왼쪽 사면으로 흩어져 곰취 뜯는다. 지능선을 두 곳이나 가로지르고 교통
호 숱하게 넘나들어도 곰취는 쇠었다(그래도 산행 후 삼합은 아주 맛있었다.). 봉봉이 벙커다.
임도 내리고 헬기장 지나 칠절봉 정상이다. 작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 날 이
곳에 올랐었다. 그날 흐느끼듯 안개비 내렸다.
오늘도 그날처럼 안개가 자욱하다. 칠절봉은 이러는가 낙담하여 정점 비킨 공터에서 만발한 미
나리아재비나 감상한다. 그랬는데 돌연 먼 데 바람이 일고 안개를 일순간에 걷어낸다. 이 바위
오르고 저 바위 오르고 바쁘다. 설악산 안산에서 귀때기청봉 중청봉 대청봉에 이르는 서북주릉
이며, 공룡능선 상봉 신선봉 마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이 자세히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안개가 산
허리 싸안아 감고 있어 더욱 가경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 자락만 쬐끔 내보이던 향로봉이 기
꺼이 온 모습을 드러낸다. 거길 가자면 첩첩 산이다.
칠절봉이 이대도록 경점일 줄은 내 미처 몰랐다. 산을 오를 때 일곱 마디를 넘는다하여 칠절봉
또는 일곱매디등이라고 한다(국토지리정보원). 삼각점은 간성 312, 2007 재설. 흥에 겨워 술도
안주인 훈제 오리도 다 떨어지고 하산할 시각. 이 경치를 가만 두고 가자니 아깝다. 자꾸 둘러본
다. 오늘의 이 감동이 쉬이 식지 않을 것 같다.
11. 칠절봉 가는 길
12. 칠절봉 가는 길
13. 노린재나무
14. 노린재나무
15. 미나리아재비, 칠절봉 정상에서
16. 설악산 귀때기청봉
17. 마산
17-1. 영희언니
18. 설악산
▶ 용대자연휴양림
진부령 쪽 임도로 내린다. 곧 군사도로와 만난다. 향로봉대대의 위수지역이다. 진부령에서 시작
된 군사도로는 산허리 돌고 돌아 향로봉까지 간다. 양호한 도로 상태로 미루어 눈비 오면 보수
하는 병사들의 수고가 대단하리라 짐작한다. 1,071m봉 오르기 직전 갈림길. 오늘 전례 없이 퍼
팩트한 산행을 보여준 메모리 님은 군사도로 따라 진부령으로 내린다. 자청한 동행은 하늘재
님! 산행매너 좋다.
묵은 임도로 1,071m봉을 오른다. 날은 우중충하니 어두워진다. Y자 능선 분기하는 1,071m봉에
서 오른쪽 덤불숲 헤쳐 임도 찾아낸다. 초원의 조용한 길이다. 이 끝은 대체 어디일까? 가보고
싶기로는 설앵초 님만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길인 길 없는 길로 들어선다. 산을 다시
간다. 봉봉을 넘는다.
960m봉을 넘고서야 급전직하한다. 양팔 뻐근히 잡목 숲 헤친다. 지쳐 사면으로 돌기 일쑤. 앞뒤
간격 벌어지면 길 잃을까봐 줄지어 내린다. 자욱한 안개에 묻힌다. 걸음걸음 등고선 세고 아무
리 얕은 굴곡일지라도 실경과 대조하여 내린다. 틀림없이 북천 발원일 계곡으로 떨어진다. 아직
인적은 없다. 산기슭 짜릿하게 트래버스하기 부지기수. 계곡 너덜을 암릉 타듯 내리다 계류는
에라하고 첨벙첨벙 건넌다.
저 아래 인공구조물이 보인다. 반갑다. 제3야영장이다. 용대자연휴양림 구내에 들어선 것이다.
비 가린 평상에 걸터앉아 버텼던 한숨 돌린다. 차는 입구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고 하여
걸어간다. 멀다. 산길 걷기보다 더 힘들다. 몽골텐트촌 부근이다. 노란 우리 차가 들어온다. 비
는 여전히 내린다.
19. 향로봉
20. 향로봉
21. 향로봉
23. 마산
24. 멀리는 대청봉
25. 사위질빵
첫댓글 칠절봉에서의 조망 넘 좋습니다...
글씨 말이유칠절봉이 설악의 조망터이더군요..끝내줬습니다
더웁지 않아 좋고, 33한 조망이 더 없이 좋아 보입니다..
산행 같이 하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칠절봉에서의 파노라마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그리고 향로봉으로 향하는 군사작전도로! 예전 백두대간통일달리기 때 달렸던 기억이 새록 새록 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담 산행에서 뵈지요.
운좋게 선두 그룹에 끼어들어, 사진 봉사 하시는 모습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애써 따신 나물들을 한 봉지 가득 주셔서 아직까지 잘 먹고 있어요 .. 강원도의 야생 나물을 이처럼 듬뿍 맛보긴 처음이네요 ...
비가 그쳤었군요. 구름이 조금씩 걸려있는 모습 참 보기 좋읍니다. 갈걸 집에서 죽쳤나 봅니다. 서울엔 종일 비가 많이 와서 아내가 '안가기 잘 했지?' 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