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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작별인사' 덕유산 인제 한움큼 추억으로… 여름 향기가 떠나간다 곤도라 타고 15분만에 정상올라 서늘함 느끼며 여름과 '작별인사'
하지만 지금은 가장 접근하기 쉬운 산으로 변했다. 무주리조트에서 운행하는 관광곤도라 덕분이다. 등산이 아니라 산행으로 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덕유산과 무주리조트는 드라마 ‘여름향기’의 주촬영지였다. 최근 일본의 케이블TV를 통해 방영되면서 ‘겨울연가’에 이어 대박을 예감하고 있다고 한다. 남이섬, 용평리조트에 이어 새로운 한류관광지로 자리잡을 움직임이다. 문득 덕유산에서 드라마를 촬영한 이유가 궁금했다.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답을 알 수 있었다. 온 산 가득 싱싱한 푸르름을 간직한 곳, 정상에 서면 서늘함마저 느껴져 한여름에도 무더위를 잊을 수 있는 곳, 구천동 33경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계곡을 품은 곳, 덕유산에서 묻어나는 여름 향기이다.
겨울철 스키리프트로 사용되는 곤도라를 이용하면 15분만에 설천봉(1,520㎙)에 도착한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간다는 고사목들이 열병식이라도 벌일 듯이 늘어서있는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운해 사이로 점점이 떠있는 연봉(連峯)까지 겹치면 장엄한 파노라마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싱싱한 푸르름을 배경으로 진한 커피를 한잔 들이킨다. 향긋한 원두커피의 향이 피톤치드를 머금은 채 콧속 깊이 파고 든다.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는 걸어서 20분. 정상까지 나무계단이 나있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힘들이지 않고 오른 산행이지만 그 맛은 짜릿하다. 멀리 왼편으로 가야산, 황매산이 보이고, 정면으로는 지리산 천왕봉, 오른쪽으로는 계룡산과 적상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버리는 탓일까. 대부분 등산객은 여기서 여행의 종지부를 찍는다. 하지만 덕유산의 진면목을 알기에는 너무도 부족하다. 중봉으로 향한다. 평탄한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중봉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덕유평전 주변은 노란 원추리꽃 군락이다. 6월부터 피기 시작한 꽃들은 무더운 여름에 지친 듯 풀죽은 모습으로 늘어졌다.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산 능선은 끊일 듯 이어지며 지리산으로 향한다. 중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백련사로 향한다. 오수자굴을 들리는 길과 대피소로 다시 온 뒤 내려가는 방법이 있다. 하늘이 잔뜩 흐려지기 시작한다. 시간 단축을 위해 대피소로 돌아와, 백련사로 내려온다. 백련사에서 향적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원래 상당한 난코스로 정평이 나있다. 내리막길이라 쉬울 줄 알았는데 이 역시 간단치 않다. 1시간쯤 걸으니 다리에 맥이 풀리며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한다. 그렇게 얼마를 내려왔을까. 갑자기 세찬 물소리와 함께 정겨운 독경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깊은 산속에 살포시 자리잡은 백련사가 나타났다. 산행길에 구경하기 힘들었던 관광객들이 이제서야 눈에 띄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덕유산국립공원관리소 매표소까지는 6㎞. 속세와 멀리한다는 이속대를 거쳐 백련담, 안심대, 구월담, 비파담 등 구천동계곡을 거꾸로 훑어오다 보니 어느 새 인월담에 도착했다. 넓은 반석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비단처럼 아름답다는 곳이다. 등산화와 양말을 벗은 뒤 산행길에 지친 발을 담궜다. 발끝에서 시작된 냉기가 머리끝까지 전해진다. 구천동에서 여름의 끝자락을 맛보았다.
/덕유산(무주)=글ㆍ사진 한창만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