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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6년 5월 24일(제21주) 오전 11:00
장소 : 인천은혜교회당
본문 : 마가복음 1:35-39
제목 : 좋은 습관을 만드는 성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중의 하나가 조급증이라고 합니다. ‘조급증’이란 ‘늘 시간이 없다고 느껴 조급해하거나 만사에 서두르고 참을성 없이 구는 증후군’ 이라고 말합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일할 때 가장 먼저 듣는 말이 ‘빨리 빨리’라고 합니다. 그 빨리 빨리가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선진국으로 끌어올리는데 공헌을 했지만, 반대로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받게 만들고, 자기 욕구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폭력적 행동을 나타내서 많은 사람을 질병, 사고,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리처드 포스터’ 목사님은 “조급함은 마귀적인 것이 아니라 마귀다”라고 말했습니다. 버섯 가운데 어떤 것은 6시간이면 자란다고 합니다. 호박은 6개월이면 다 자랍니다. 그러나 참나무는 6년이 걸리고, 건실한 참나무로 자태를 드러내려면 10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성도가 참나무와 같은 인물로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조급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람의 인격도 오랜 시간 동안 훈련되어야 덕스러움이 묻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순금 같이 쓰시기 위해 13년 동안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하며 연단 받게 하셨습니다. 모세를 훈련시키기 위해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를 쓰시기 위해 모세의 시종으로 40년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존귀하게 쓰시기로 작정하실수록 거룩한 삶을 위해 많은 준비를 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라는 거룩한 신분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가는 데는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평생이 걸립니다. 거룩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매일 기도와 말씀 묵상이라는 거룩한 습관을 갖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매일 전도하는 거룩한 습관을 갖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을 사랑하는 거룩한 습관이 있었습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을 닮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빌 2:13).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에 따라 판명된 존재다. 따라서 우수성이란 단일 행동이 아니라 바로 습관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습관은 곧 나를 나타내 줍니다. 우리말 속담에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제 버릇 개 주랴’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말은 괜히 생긴 말이 아닙니다. 습관은 매일매일 우리와 함께 하고 개개인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데 아주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하루 중 40%가 습관에 따른 행동이라고 합니다. 습관은 익숙하고 편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반복합니다.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습관 하나가 시간이 지나면 엄청난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좋은 습관은 나와 가족과 이웃에게 유익이 됩니다. 그러나 나쁜 습관은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불쾌감을 주며 해가 됩니다. 때문에 성도는 좋은 습관은 유지하고 나쁜 습관은 미련 없이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습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습관’의 한자적 의미는 ‘어린 새가 날개 짓을 연습하듯 매일 반복하여 마음에 꿰인 듯 익숙해지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습관이란 ‘여러 번 반복하는 사이에 몸에 배어 굳어버린 성질’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습관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습관이 사람의 성품을 만들고 그 성품이 사람의 앞길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습관은 개인적으로는 버릇이 되고 사회적으로는 관습이 됩니다. 또한 습관 중에는 성공에 이르게 하는 습관이 있는가 하면 실패하게 하고 불행한 인생을 만드는 습관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습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습관은 감람산에 가는 것이었습니다(눅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가셨다는 말은 등산을 좋아하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도하러 가셨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셨다는 말’은 기도하러 가셨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시는 것이 습관이었다는 말입니다.
봉독한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은 어떤 습관을 갖고 계셨는가를 살펴보면서 “좋은 습관을 만드는 성도”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시간관리 습관
본문 3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새벽 일찍 일어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예수님께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신 그 전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 날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시몬의 집에 가셔서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는 것을 보고 고쳐주셨습니다. 저물어 해질 때는 많은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고치셨습니다. 하루 종일 굉장히 힘든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일찍 일어나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내가 일찍 일어난다고 해서 누가 영웅으로 대접해 주지 않습니다.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일들이 계속되고 쌓이면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어떤 위대한 일도 처음부터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서 시작하여 위대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작고 사소한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크고 위대한 일도 처음에는 사소하고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대기업인 삼성전자나 현대차가 처음부터 대기업이었습니까? 쌀가게를 하면서 커진 것이 현대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사소한 일이면서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일찍 일어나는 일을 습관적으로 반복하여 얻는 유익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의사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성경은 새벽에 하나님께서 도우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 46:10). 그래서 저는 새벽을 깨우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길이요 몸의 건강과 영혼 건강에 최고의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제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새벽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곳으로 가서 “모든 사람이 주를 찾는다”(37절) 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3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을 만나려는 사람들을 만나서 치료하고 말씀을 가르치면 됩니다. 그러면 더 유명해지고 인기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시고 주님의 계획대로 다른 마을로 가서 전도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은 일을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하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날그날의 일과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은 시간 관리의 습관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무척 바쁘십니까?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바쁘기 그지없습니까? 그렇다면 혹시 시간 관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은 무형의 자원입니다.
시간은 금이라는 말이 거기서 나왔습니다. 이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 시간은 사용하지 않아도 자연 소멸됩니다. 그러기에 시간은 멈추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고 저장할 수 없습니다. 또한 시간은 양도하거나 매매할 수 없습니다. 계절은 되돌아오지만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결국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후회와 한숨이 찾아올 뿐입니다.
인생이란 곧 시간의 집합으로 시간이 곧 인생을 엮어갑니다. 즐거운 시간, 괴로운 시간, 유익한 시간, 실속 없는 시간이란 시간 자체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시간 속에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시간을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은 값진 인생을 살아갑니다. 나아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고 시간을 파괴하는 것은 인생을 파괴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1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3년 6개월 정도입니다. 예수님은 3년 반의 그 짧은 기간 동안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사명을 다 완수하셨습니다.
가상칠언의 여섯 번째 말씀을 보세요. 요한복음 19:30에 보면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자기의 사역을 완성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우리를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이루어야 할 믿음과 순종과 헌신과 사랑의 모든 일들을 다 이루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믿음도 이룰 수 없고, 순종도 이룰 수 없고, 헌신도 이룰 수 없고, 사랑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것을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다 이루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사역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도 이루시고, 우리의 봉사도 이루시고, 우리의 사랑도 이루시고, 우리의 영광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은 또한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도 우리 자신의 목적과 뜻을 이루며 살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목적과 뜻을 이루며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이루어야 할 일들을 대신 이루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여 나는 부족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라도 말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다 완성하신 분이십니다. 성도인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잘 관리하는 습관을 배워서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기도하는 습관
예수님께서 갖고 계신 두 번째 습관은 새벽기도 습관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일어나셨을까요? 그 이유는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본문 35절을 보면 “새벽 아직 밝기도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이른 시간에 일어나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는 예수님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보았습니다(37절). 예수님의 새벽기도는 제자들에게 매우 인상깊이 남아있는 습관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같은 행동을 지속적으로 계속하면 습관이 됩니다. 좋지 못한 행동을 계속하면 나쁜 습관이 되어 인생을 망치게 되고, 좋은 행동을 계속하면 거룩한 습관이 되어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어쩌다 한 번 하신 것이 아니라 사역 초기와 중기와 후기에도 새벽에 일어나서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정해진 시간과 장소가 있는 것이 좋습니다. 성도들은 일반적으로 생각나면 기도하고 생각나지 않으면 기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연약하기에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기도하기 어렵습니다. 기도는 아무 때나 어디서나 할 수 있지만, 기도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새벽 시간은 욕심을 내려놓으며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늘 문을 여는 시간입니다. 하루의 일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사명과 은혜를 공급받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것을 자랑하거나 보여주기 위해서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잠자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가 되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참된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병원의 환우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 국군의 장병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 선교지의 영혼들을 위해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은혜와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바쁘게 열심히 사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기도가 있었고 질서가 있으셨기에 일에 치우쳐 살지는 않으셨습니다. 성도들은 너무 바빠서 기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실은 기도하지 않으니까 바쁜 것입니다. 기도하면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이 구분되고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중요한 일보다 바쁜 일을 먼저 하게 되고 삶이 뒤죽박죽이 됩니다. 성도들이 너무 바빠서 기도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미국의 월로우클릭교회를 목회하던 빌하이벨스 목사는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결국, 바빠서 기도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믿음이 없어서 기도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떤 일보다 기도를 최우선으로 하여 예수님처럼 좋은 기도의 습관을 만들고 행복한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질이 불같이 급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은 평소에 말수가 적고 언제나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자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교인들 가운데서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을 테고, 실망하게 하는 말도 들을 텐데 당신은 누구를 헐뜯고 비난하는 것을 전혀 볼 수 없으니 당신은 예수님이오?’ 그러자 사모님이 대답했습니다. ‘왜 없겠어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요.’
어느 날 심방을 마치고 돌아온 목사님이 문을 열고 집에 들어왔는데 사모님이 안방에서 울면서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구 때문에 저리 울면서 기도하는 걸까? 누가 내 아내를 울리는 거야’ 하면서 문틈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았습니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러자 목사님은 그 다음 말에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하나님 제 남편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다름이 아닌 남편 목사를 위해서 사모님이 기도하였습니다. 그 사모님의 기도로 남편의 목회가 성공적이었고 교회는 평안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만큼 사는 것은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특히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누군가를 위한 중보기도에 습관이 될 정도로 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성도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인생의 가장 치열한 전쟁은 기도 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자기보다 더 크고 능력 있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고 자신의 자존심이나 인간의 생각을 꺾는 싸움입니다. 기도는 그 전투의 장애를 돌파하게 하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어떤 실패를 당하더라도 기도하는 사람은 패배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습관은 우리의 영혼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기도의 습관은 우리의 영혼을 빛나게 만듭니다. 기도의 습관은 우리의 영혼을 가장 잘되게 합니다. 기도의 습관은 우리의 사역을 성공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날마다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함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물며 세상을 말씀으로 이겨야 하는 성도인 우리들이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26장의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보면 예수님께도 십자가를 지는 일은 너무도 두렵고 고통스런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이(십자가)’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힘드셨으면 같은 기도를 세 번이나 하셨을까요?
누가복음의 표현을 보면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는 “42 ...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이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도 후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마 26:36) 고 하시며, 특별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따로 데리고 가실 새 ‘슬퍼하고 고민하’(마 26:37) 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 명의 제자들에게 “...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8절) 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내 십자가를 위하여, 너희에게 다가오는 시험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돌 던질 만큼 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십자가는 놓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와서 보니 제자들이 자고 있습니다. 그래서 깨워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절)고 하시면서 또 가서 같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또 자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기도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절박한 시간에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가룟 유다와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잡으러오자 제자들은 다 도망쳤습니다. 새벽에 예수님께서 심문 받으실 때 베드로는 불을 쬐고 앉았다가 여종이 ‘너도 예수와 같은 편이다’고 하는 말에 깜짝 놀라 ‘아니다 모른다’ 고 하면서 부인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주님과 함께 죽겠다고 다짐했던 베드로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잘 보세요. 십자가를 앞에 놓고 땀방울이 피 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예수님은 십자를 놔두고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 지는 일에 승리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고 졸던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다 도망쳤습니다. 나중에는 여종의 말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맹세하고 저주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가 얼마나 큰일을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기도를 습관이 되게 만드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넘어지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14에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응답이요 능력이 된다면 기도 못할 일이 있겠습니까? 시편 81:10은 “...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도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처럼 기도가 습관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기도 습관을 따르시기를 바랍니다(눅 22:39). 기도의 습관은 가장 거룩하고 영광된 습관임을 깨닫고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큰 교회가 부럽지 않습니다. 저는 재정이 많은 교회가 부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는 부럽습니다. 전도 많이 하는 교회는 부럽습니다. 좋은 영적인 습관을 만들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중요한 일을 먼저 하는 습관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힘을 가지고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은 창조물들을 인간에게 위탁하여 ‘땅을 다스리라 정복하라’고 하시며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러기에 일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성공의 공통분모는 소중하고 중요한 일에 열중하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과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점은 일을 대하는 자세에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중요한 일을 즐기며 합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것이 중요한 일인지 구별도 안 되고 일 자체를 힘들고 무겁게 여겨 마지못해 합니다. 결과는 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스티븐 코비’라는 사람이 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7가지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① 자신의 삶을 주도하라(개인 비전의 원칙). 남에 의해 살지 말고 스스로 결정하라. ②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개인 리더십의 원칙). 목표를 확립하고 행동하라. 모든 일을 인생의 최종 목표에 맞춰서 계획하고 실행하라. ③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하라(개인 관리의 원칙).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무엇인가? ④ 승-승을 생각하라(대인관계 리더십의 원칙).상호 이익을 추구 하라. 서로가 이익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⑤ 먼저 이해하고 다음에 이해시켜라(공감적 커뮤니케이션의 원칙). 경청한 다음 이해를 시켜라. 이해를 시키기 전에 상대를 이해하라. ⑥ 시너지를 내라(창조적 협력의 원칙). 시너지를 활용해라. 서로 간의 시너지를 위해서는 서로 간의 이해와 공감이 필요합니다. ⑦ 끊임없이 쇄신하라(균형적인 자기 쇄신의 원칙). 심신을 단련해라.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선 몸과 마음을 단련 시켜야 한다.
요약하면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첫째, 우선순위에 따라 일을 계획합니다. 둘째, 그 일을 열심히 하는 일 벌레입니다. 역사 발전은 이런 사람들이 주도해 왔습니다. 농업혁명이 일어나고 산업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 뒤에 정보혁명이 뒤를 따랐습니다. 이런 일의 주도자는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급한 대로 당면한 문제를 다 쫓아다니지 않습니다. 앞에 있는 중요한 목표와 중요한 기회를 좇아갑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급한 일이 있고 중요한 일이 있기 마련인데,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급한 일만 쫓아다니는 사람은 중요한 일을 놓치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알맹이 인데, 알맹이를 놓치고 빈 껍질만 끌어 모아서는 안 됩니다.
본문 38절에 보겠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해 왔노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전도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고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선 당장 급한 것이 있더라도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모인 무리를 뒤로하고 전도하러 가시자는 것입니다.
전도는 예수님의 사역 중 가장 크고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말씀을 전파하는 일을 우선으로 꼽으셨고, 더러운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38절).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 마을에서 또 다른 마을로 다니셨습니다.
일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주는 축복이 있습니다. 세 가지 악을 추방합니다. 권태와 죄악과 빈곤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권태가 없습니다. 죄를 지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부요해 집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일, 믿음의 일을 기뻐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중요한 일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일하는 것을 고역으로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지루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건강하게 살수가 없습니다. 노는 사람의 친구는 역시 노는 사람입니다. 일하는 사람의 친구는 일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4, 17)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하셨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일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찾아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에는 고비가 있습니다. 고비만 넘기면 그때부터 수월해집니다.
예수님은 가르치고 병자를 고치시고 복음을 전하는 일로 늘 바쁘셨고 피곤하셨습니다. 일하는 것이 예수님의 습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치 않는 일은 과감히 버리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로마서 13:11-14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벌써 깰 때가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우리의 시간이 영원할 것 같아도 영적으로 어둔 밤이 곧 올 것입니다. 날이 어두우면 일할 수 없습니다. 날이 밝을 동안 열심히 일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시간을 관리하는 습관, 기도하는 습관, 일하는 습관을 배워서 우리도 주어진 인생을 알차고 가치 있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습관이 사람의 성품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성품이 사람의 앞길을 결정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떤 습관을 가져야 할까요? ① 시간을 관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②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③ 일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가지신 그 거룩한 습관을 배워가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갚은 영감과 교훈을 줍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면밀히 살펴보면 단순히 일회적인 행동이 아닌 반복적이고 일관된 습관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습관을 따라’(눅 2:39) 특정한 행동을 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과 성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습관들을 가지셨으며 그 습관들은 무엇을 통해 형성되었을까요?
예수님의 가장 두드러진 습관 중 하나는 단연 기도였습니다. 본문 35절에 보면 “해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가 거기서 기도하시도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습관을 보여줍니다. 누가복음 6:12절에 보면 열두 제자를 부르시기 전에 그 결정을 앞두고 밤새 기도하십니다.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눅 22:39) 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신 것은 기도가 예수님 삶의 핵심적인 부분이요 하나님 아버지와 깊은 교제를 나누는 통로였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또 예수님께는 예배와 말씀을 향한 습관도 뚜렷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유월절 절기를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셨고(눅 2:24), 안식일에는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 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눅 4:16)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유대인으로서 율법과 전통 속에서 자라셨음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말씀과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가리치고 섬기는 일에도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며(마 9:36), 병든 자를 고치고 굶주린 자를 먹였으며, 제자들을 훈련시키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일에 헌신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즉 섬김과 구원이라는 사명을 삶으로 실천해 낸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러한 습관들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찰스 두히그의 ‘습관의 힘’ 이라는 이론에서 제하시는 ‘신호-반복, 행동-보상’의 습관 고리로 접근해 볼 수 있습니다.
기도의 습관의 경우 새벽 시간, 중요한 결정, 영적 고갈, 또는 사람들의 필요성 등이 신호가 되어 한적한 곳에서 간절한 기도라는 반복 행동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보상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사명을 감당할 영적인 힘과 지혜, 그리고 내적인 평안이었을 것입니다.
예배 습관은 안식일이나 절기 공동체 모임 등이 신호가 도어 회당에서 말씀을 읽고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반복행동으로 만들었고, 그 보상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기쁨과 말씀으로 인한 영적 성장이었습니다.
가르치고 섬기는 습관은 무리를 보고 민망히 여기는 마음, 사람들의 질병과 영적 무지가 신호가 되어 복음을 가르치고 병을 치유하는 반복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경우 보상은 영혼이 구원을 받고 삶이 변화되는 것을 목도하는 기쁨,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을 보는 만복감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습관은 단순히 행동 심리학적인 작용 원리만으로 설명 될 수 없는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예수님의 습관은 신적 본질과 구원 사명이라는 더 근본적인 요인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본성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를 갈망했고, 인간으로서 육체를 입으셨기에 지속적인 기도를 통해 영적인 힘을 얻어야 했습니다.
또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확고한 사명 의식은 예수님이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습관은 단순히 편리함이나 반복적 행동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삶의 방식이자 인류를 향한 사랑과 구원의 의자가 투영된 사명의 발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습관은 성도들에게 경건한 삶의 본질이 무엇이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섬김의 삶이 어떻게 조화롭게 이루어 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모델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습관을 통해 예수님의 성품과 사명을 깊이 깨닫고 우리의 삶 속에서도 그러한 거룩한 습관들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