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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두리 공소(公所) (수도원 체험기) 최 화 웅(비오)
“그러나 저는 하느님께 가까이 있음이 저에게는 좋습니다. 저는 주 하느님을 제 피신처로 삼아 당신의 업적을 알리렵니다.“ (시편 73. 28)
(미사전 준비 - 오두리공소)
우리나라 성당의 첫 모습은 공소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에 공소가 설립된 것은 18세기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당 이전의 우리네 신앙현장은 공소였습니다. 한옥에 꾸려진 소담한 공소는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래된 시기의 생활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게 해줍니다. 모진 박해 때 관헌의 눈을 피해 외딴 농어촌의 자연부락에 하나둘 조심스럽게 형성되기 시작한 신앙공동체가 공소였습니다. 상주하는 사제 없이 화려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정성스레 마련한 자연부락의 오두막집 한 채, 방 한 칸이 믿음의 시초였습니다.
(미사 시작)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모태는 작은 오두막이 바로 그 출발점이었습니다. 세월의 흐름 따라 흐릿해져가는 우리의 기억 속에 산그늘 아래 나지막한 오두막과 다락방은 아직껏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오두’라는 말은 “작고 비좁다”는 뜻으로 쓰였던 순수우리말 고어(古語)입니다. 또 ‘오두다’라는 말은 “다독거리다”, “감싸다”라는 의미를 가진 울산지역 사투리입니다. 오두막은 초가지붕에 가을 탈곡을 마친 때깔 좋은 새 볏짚이나 억새로 엮은 이엉을 지붕으로 얹은 농막같은 작은 집을 일컫는 말입니다. 과수원과 밭머리에 높게 지은 원두막은 농부들이 밭일을 하며 참을 먹거나 잠시 쉬는 곳이었습니다. 때로는 쓰리꾼들로부터 과일이나 오이, 참외, 수박을 지키기 위해 사방이 뚫려서 여름이면 더위에 지친 몸을 쉬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두막은 집이나 농막 같이 창을 달아 비바람을 막아주었습니다.
옛 생각을 하다보니 폭이 좁고 호젓한 오솔길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오두에서 가지를 친 오두막, 오막살이, 오두막집 등의 말은 가난하고 구차했던 우리네 삶의 방식으로 귀에 익은 말입니다. 다락방은 지붕 바로 아래에 2층처럼 달린 천정 낮은 방을 말합니다. 예나 이제나 오두막과 다락방은 좁고 아늑해서 비밀스런 모임장소가 되고 오순도순 이야기하기 좋은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특히 오두막과 다락방은 가톨릭 전래시기에 박해를 피해 기도와 전교아지트로 활용되기 안성맞춤이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들으며 미사 중) 인천교구의 강화지역에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에 올라 리델 신부를 만났던 성연순과 원윤철 등이 처형당하고 그로부터 5년 뒤인 1871년 4월에는 제너럴셔만호 사건을 빌미로 미국 함대가 강화에 쳐들어와 덕진진과 광성보를 점령하는 신미양요가 일어났습니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전국에 척화비가 세워지고 쇄국정책의 강화로 결사항전을 준비하던 시기에 미국인을 접촉한 죄로 우윤집, 최순복, 박상군이 갑곶나루터에서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그곳이 오늘날 갑곶성지로 성역화 되었습니다. 성지는 피의 증언이 살아 있는 현장입니다. 천주교 박해가 끝나는 시기에 강화에서는 마을마다 신앙공동체가 서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강론 실습중인 이무현 루도비코 신부님) 강화의 첫 믿음공동체, 공소는 그런 아픈 역사와 사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모진 박해 뒤에 살아남은 신자들과 각처에서 모여든 교우들이 소공동체를 이루며 신앙생활을 시작한 강화에서는 숱한 신앙의 이야기들이 오늘날까지도 전해집니다. 신학원 이웃 마을에 있는 오두리 공소는 지금으로부터 86년 전인 1928년에 설립된 온수리 공소가 1995년 본당으로 승격하면서 온수성당이 관할하는 공소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온수성당이 관할하는 공소는 길상면의 초지 공소, 불은면의 오두리 공소와 고능리 공소 등 모두 3곳이 있습니다.
(성찬의 전례) 오두리 공소는 작은 가정집을 개조한 안방 같은 소담한 성전을 꾸몄습니다. 처마밑에는 풍경 대신 학교종을 매달았습니다. 길가에 큰 표지석을 세운 오두리 공소에는 봄이면 목련화가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이면 분꽃이 더위 속에서 마당 한켠에 작은 그늘을 만듭니다. 성전의 넓은 입구를 반으로 나누어 계단과 경사를 두어 나이 드신 분이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교우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신학원에서는 온수본당의 요청이 있을 때면 오두리 공소로 전례봉사를 나가곤 했습니다. 아브라함 부제님과 루도비코, 마르첼리노, 루카수사님이 돌아가며 미사전례와 강론실습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성체분배하고 있는 유수영 아브라함 부제님) 미사가 끝나고 마당에서 나누는 친교의 시간을 가질 때면 마치 집안 가족들이 잔치 뒷풀이를 하듯 정겨운 분위기를 연출하곤 했습니다. 낯선 피서객도 정겨운 고향마을의 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성전 옆 고즈넉한 흙마당에는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신 외할머니가 홀연히 나타나실 것만 같았습니다. 신자들이 시골길을 줄지어 공소로 오가는 모습 또한 한없이 정겨웠습니다. 공소에서 미사를 봉헌날, 신학원으로부터 기도와 성가를 부르며 공소로 가는 시골길은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의 등굣길을 연상시켰습니다. 어린날 추억의 활동사진을 다시 보는 것처럼 눈앞을 스치는 낡은 흑백영상이 그립습니다. 오~ 하느님!
(미사를 마친 후... 최화웅 비오님)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2코린 4,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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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두리공소 - 온수 성당에 다닐 때 가끔 들렀던 곳입니다.
낯익은 풍경에 감회가 새롭네요.
네, 선생님께서도 오두리 공소를 들리셨군요.
새해에는 하시는 일에 항상 주님의 은총을 빌겠습니다.
전경과 마당을 보여드렸으면 좋았을텐데 아쉽군요.
오두리공소 교우 여러분께도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티셔츠를 보니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감사합니다.
수도원에서 여름을 지내던 복장이라 좀 그렇죠?
이해해주십시오.
우리본당도 61년 한 자매님 집에서 공소미사를 드리면서 시작되어 64년에 정식으로 불광동본당으로
승인이 나 올해가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지요. 공소라는 말에 새삼 정감이 가네요.
먼저 본당 설립 5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옛 모습을 지키는 믿음의 뿌리가 자랑스럽습니다.
공소의 의미가 새롭습니다.
새해에도 부디 행복하십시오.
선생님의 글을 통해 공소만의 정겨움, 한 가족같은 친밀감이 느껴집니다.
선생님! 사랑스런 리아와 함께 행복한 시간 보내고 계시죠?
가장 작은 믿음의 소공동체가 공소입니다.
공소가 건강하고 튼튼한 공소가 한국가톨릭의 주춧돌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리아는 친가에서 열흘을 보내고 외가에 갔습니다.
감사합니다. 스테파노씨도 안녕하시죠?
그렇게 갔어도 오두리 공소에 가보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이 되면 한번 들러 보겠습니다. 공소가 국장님 글을 읽으니 더 정겹게 다가옵니다. 감사합니다.
5년도 더 지난 이제사 오두리공소를 본대로 느낀대로 썼는지 모르겠군요.
희미한 기억과 자료가 없어 애를 먹었습니다.
기회되시면 공소순레를 권하고 싶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십시오.
정겨운 공소의 풍경이 그려지네요.^^
소박하고 정답게 느껴지던 제주 우도공소 분위기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잘 계시죠? 사비노, 클라우디아, 미카엘 두요.
어디없이 공소는 우리네 옛 삶을 보는듯 했습니다.
그러나 교우분들의 정성과 믿음이 화려한 대도시의 그것에 비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박하고 정겨운 공소에서 느낀 연민이 오래도록 남습니다.
강화에는 다녀가셨나요?
다음에 강화에 가면 오두리 공소에 가보고 싶습니다
공소하면 웬지 정겹고 소박함을 느낍니다.수도원 체험기 잘 읽고 갑니다.잘계시는지요?리아는 아직 할아버지랑 함께 있나요?
공소는 아늑한 향수를 불러 일으켜줄 것입니다.
외딴 곳에 사는 교우들이 지키는 공소는 고향의 느낌이었습니다.
수도원 부근에 있는 오두리공소는 더욱 그랬습니다.
리아는 열흘을 우리와 보내고 나머지 열흘을 외가에서 지내기 위해 지난 주말 갔습니다.
얼마나 귀여운지 눈에 삼삼합니다.
강화에 고즈늑하고아늑한 공소가 자리하고있음을..
강회를 좋아해 옛전부터 자주가곤 했건만...
날 함잡아 가보아야 할 것같은 맘 입니다.
좋은 체험에서 많은 경험을 하셔서 부러움이..
부러워하면 진 되요.그러나 지고싶어요.
많은 경험,체험을 알려주심 감사합니다.
모든 것에 고마움 입니다.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God with us!! -♥-
네, 차사랑님! 감사합니다.
'마음의 영성'카페 회원님들의 성원이
저로 하여금 5년 5개월 전의 체험을 되살리게 해주었습니다.
기회있으시면 강화에 있는 공소를 순례하시는 것도 좋으실 것 같군요.
저는 10여 년 전 힘들었을 때 부산교구 산하 울산, 양산, 김해, 밀양 등지의 본당을
매주 순례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신앙을 지키고 키운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새해에도 선생님 건강하십시오.^^*
모두 한가족 같은 분위기가 얼마나 정겨울까요... 그곳에 크신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쏟아지기에 더욱
거룩한 미사가 되셨을것 같아요. 감사드립니다.^^
그러게말이예요.
저는 한마음 한몸을 이룬 믿음공동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모든 일은 마음을 모으고 사랑을 담으면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이 모든 일을 위해 주님의 도움을 청할께요.
오두리 공소, 이름마저도 정감이 가는 곳이네요...그리움님의 수도원 체험기를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대합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리구요. 강화수도원에서 느낀 체험을 주님께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함께 해주십시오.
모진세월! 선조들은 그렇게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셨군요,
지금은 사실 얼마나 마음편히 믿음을 가집니까?
다시한번 주님앞에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나누어 주심, 감사드립니다.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건강 유의하십시요.
추운 날씨에 미르씨도 방문하셨군요.
갖은 환난 겪고도 신앙을 지키신 선조님들의 의지를 다시 생각합니다.
주님과 함께 나아가는 믿음의 길을 밝힙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