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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인간세기의 빛(133) 헬렌 켈러의 추억
때는 50년 전 6월 초순이었다. 나의 스승 도다 조세이 선생이 서거하고 2개월. 나는 학회의 모든 운명을 젊은 양 어깨에 짊어지고 일본 전국을 뛰어다니는 나날이었다.
그때도 규슈와 간사이를 돌고 일단 도쿄로 돌아 왔다. 다시 간사이로, 이렇듯 맹렬한 기세로 움직이고 달리며 투쟁했다.
내가 만난 소중한 동지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안심하고 자신감을 갖고 환희차게 전진할 수 있도록!
이 대지에서, 이 천지에서 존귀한 사명을 지닌 지용의 보살이 용출해 광선유포에 새로운 승리의 활로가 열리도록!
나는 어디에서나 마음속으로 진지하게 창제하며 온 생명을 연소시키며 행동했다.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수없이 뛰었으며 동분서주하면서도 언제나 마음은 스승 도다 선생님과 함께였다.
스승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굉장한 일인지!
얼마나 위대한 마음으로 만들 수 있는지!
나는 가득 넘치는 용기를 불러 일으켜서 일기를 썼다.
“안경너머 선생님의 눈빛이 엄하게 비쳤다. 온화하고 커다란 얼굴이 격려로 바뀌었다.”
“자, 힘내서 이번 달에도 투쟁하자.”
스승을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한다! 이겨야 한다!
이 마음으로 내 모든 것의 근본이었다.
◇
내가 좋아하는 괴테는 정의를 멸시하는 악인에게 유연히 외쳤다.
“좋은 것을 비방한다? 우선 시험해 보면 된다. 허세를 부리는 동안은 억지로 자기 생각대로 밀고 나갈 수 있어도, 언젠가 간파당해 당연히 수렁에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결의에 찬 총명한 사람의 말은 우리의 가슴을 넓게 열어준다.
현명한 사람의 조언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모든 불안감을 안개처럼 사라지게 하며, 승리를 다짐하는 서약을 세우게 한다.
“내가 세상에 무엇인가로 도움을 준다,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은 훌륭합니다.”
그 교육자가 바로 헬렌 켈러를 격려하며,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세 가지 장애를 함께 극복하고 세계에 희망의 빛을 보낸 설리번 선생님이다.
세상과 사람들을 위해 묘법(妙法)이라는 영원한 ‘행복’과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창가 벗들의 인생은 너무나 훌륭한 충실감과 긍지로 빛난다.
특히, 부인부를 결성한 기념의 달인 6월을 맞아, 나는 아내와 함께 광선유포의 숭고한 사명에 끝까지 살아가는 전 세계 어머니들의 위대한 건투에 진신으로 최고의 경의를 표한다.
위대한 사제를 상찬
1932년 6월 15일. 스코틀랜드의 명문 글래스고대학교에서 전통이 빛나는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이 엄숙하게 거행됐다.
이날 행사장인 웅장하고 아름다운 뷰트홀에는 열여섯 명의 수상자가 참석했다. 수상자 중 유달리 상쾌하게 빛나는 헬렌 켈러의 모습이 있었다.
글래스고대학교 총장이 엄숙히 선언했다.
“우리는 인간의 육체가 약하기 때문에 생긴 장애를 용기와 불굴의 인내로 극복하고, 선례도 없고 유례도 없는 지력(知力)의 승리를 쟁취한 이 부인(헬렌)을 존경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헬렌의 우인이자 교사로서, 헌신적인 사랑과 천재성으로 이 승리를 가능케 만든 부인(설리번 선생님)을 찬미합니다.”
총장이 수상하는 헬렌을 찬탄하고 더불어 행사장 한 귀퉁이에서 승리한 애제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설리번 선생님을 진심으로 찬탄했다.
밝게 빛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제자의 승리는 스승의 승리다. 그리고 제자의 기쁨은 자신의 승리를 당당히 스승께 바치는 일이다.
◇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걸린 병으로 시력과 청력을 잃은 헬렌이 설리번 선생님과 마난 것은 여섯 살이었다.
이때 설리번 선생님은 스무 살이었다. 꽃다운 여자부 같은 연대다.
두 사람이 만나고 4년 후, 설리번 선생님은 눈부신 성장을 이룬 헬렌에 대해 이렇게 썼다.
“(헬렌은) 결코 잘못된 행위를 적당히 간과하지 못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헬렌의 올곧은 정신에는 모든 악은 무엇이나 마찬가지로 혐오해야 할 대상으로 비칩니다.”
스승이 지켜보고 육성한 이 ‘올곧은 정의의 혼’은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제가 동행해 참으로 위대한 산을 올랐던 것이다!
◇
헬렌이 깊이 경애하는 일본인이 있었다. 현재의 사이타마현 출신으로 지금의 창가학회 본부 근처에서 공부한 맹인 대학자 하나와호 기이치였다.
헬렌이 방일했을 때 사이타마에서 강연하면서, 일찍이 어머니가 이 하나와호 기이치의 생애를 들려주며 ‘노력하면 반드시 길은 열린다. 고난에 지지 말거라!’고 격려하신 말씀을 감사한 마음을 담아 소개했다.
우리 창가학회에는 긍지 드높은 ‘자재회(自在會)’와 ‘묘음회(妙音會)’ 동지가 계신다. 시각이나 청각 장애에 지지 않고 묘법의 당체인 자신의 생명을 빛내며 희망과 승리의 실증을 보여준 인간의 영웅들이다.
니치렌 대성인도 석존도 그리고 삼세시방의 불보살(佛菩薩)도 얼마나 찬탄하시겠는가. 나와 아내는 제천선신이 열심히 수호할 수 있도록 계속 제목을 보내고 있다.
숙명의 / 산들을 극복하여 / 상락(常樂)의 /
권속을 만들어라 / 금생(今生)의 수행으로
1955년 5월 27일, 헬렌 켈러는 오키나와를 방문했다. 그 모습은 오키나와타임즈와 류큐신보 등에서 보도됐다.
“마음속으로 만세를 외쳤습니다.”라며 오키나와 방문을 기뻐한 헬렌은 환영 나온 맹인 학교 어린이들을 끌어안듯이 격려했다.
“열심히 공부하세요. 교육은 결코 헛되지 않아요. 눈은 보이지 않아도 영혼(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흔네 살이 된 헬렌은 힘차게 말했습니다.
“내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더욱이 헬렌 켈러는 교원 선생님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당부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용기 있게 광명(光明)의 씨앗을 뿌리기 바랍니다. 교육은 반드시 장래에 꽃필 것입니다.”
헬렌 켈러가 오키나와에 보낸 희망과 연대의 메시지였다.
어려움에 지지 않겠다!
가슴을 펴고 당당히 나아가자!
용기로 인생을 승리해야 한다!
‘생명이야말로 보배’
지역사회 전체가 미래에서 온 사자(使者)들의 생명을 소중히 키우는 오키나와 마음은 푸른 바다보다 크고 깊다.
오키나와는 / 세계 평화의 / 대(大) 거점
오키나와 연수원은 핵탄두를 장비할 수 있는 미사일 ‘메이스B’가 중국대륙을 향해 배치된 미군의 발사기지였다.
그러한 ‘군사 요새’가 지금은 세계로 평화 메시지를 발신하는 ‘평화의 요새’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평화와 행복의 섬으로!
오키나와연수원에는 지금까지 세계 약 30개국의 식자와 지도자가 방문하셨다. 2006년 봄, 방문한 천하오쑤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 회장도 말씀하셨다.
“기지를 평화의 무대로 바꾼 ‘세계평화의 비’ 발상에 감사드립니다.
세계에서 많은 청년이 이 평화의 무대를 방문해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정신을 배우는 일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너무나 처참한 비극의 오키나와전투에서는 섬의 형태가 바뀔 정도로 포탄을 맞아 20만 명이 넘는 존귀한 생명이 희생됐다.
“가장 고귀한 오키나와가 가장 행복해지고, 가장 평화롭게 될 권리가 있다.” 나는 단호한 기원을 담아 오키나와에서 소설 <신 인간혁명> 집필을 개시했다.
이제는 이 오키나와가 일본제일, 아니 세계제일로 빠른 광선유포의 모델로써 지역과 사회에 신뢰의 폭을 넓혀 훌륭한 대법 흥륭을 이룩했다. 묘법에 비추어 평화와 문화의 성(城)인 회관도 계속 탄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간선도로를 따라 당당히 ‘우라소에문화회관’이 완성했다. 지난 4월에는 오키나와 전통의 빨간 기와로 이은 풍격 있는 ‘나하니시문화회관’도 개관했다. 올해는 잊을 수 없는 ‘오키나와평화문화제’를 개최한 지 25주년이다.
우리 벗은 문화제 중에 내리기 시작한 세찬 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굴의 투혼’을 불태워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그날 동지들의 용감한 모습을, 3만 명의 오키나와 벗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유엔 대표 분들과 오키나와 각계의 내빈 4500명도 모두 큰 갈채를 보내셨다. 후회는 조금도 없는 감동적인 장면들이 펼쳐졌다.
지금은 그 추억 깊은 행사장이었던 오키나와시 육상경기장 옆에도 훌륭한 ‘나카가미문화회관’이 세워졌다.
‘만나면 모두가 형제’라는 깊은 우정의 마음으로 가득한 오키나와 천지에서 나하시 오키나와국제평화회관을 중심으로 창가의 회관은 ‘열린 세계시민의 광장’으로 빛나고 있다.
세이쿄(聖敎)신문도 매일 아침 수많은 오키나와 섬 구석구석까지 배달된다. ‘동양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이리오모테섬에도 배로 세이쿄신문이 배달된다.
그리고 긍지 드높은 ‘무관의 벗’이 썰물 때 육지와 연결되는 유후 섬까지 걸어가 배달해 주신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오키나와’ 지명이 최초로 문헌에 등장한 것은 8세기라고 한다. <당대화상동정전(唐大和上東征傳)>이라는 책에 ‘오키나와(阿兒奈波)’라고 씌어 있다.
처음으로 오키나와 이름이 등장한 이 책은 천태대사의 <마하지관> 등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온 중국의 불교자 감진의 전기(傳記)다.
감진이 수많은 고난을 극복하고 실명(失明)이라는 실련에도 굴하지 않고 마침내 여섯 번째 향해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것은 바로 오키나와을 거치는 향로였다.
헬렌 켈러도 그 불굴의 의지력에 감동했다.
일전에 방일한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과도 이 감진에 대해 함께 대화했다.
여하튼 오키나와는 중국과도 연이 깊은 곳이다. 아시아 그리고 세계로 열린 불가사의하고 매력이 넘치는 태양의 섬이다.
보물섬 / 우리 오키나와는 / 행복성
오키나와를 ‘동양의 하와이’로 만들자.
이것이 제3대 회장에 취임하고 가장 먼저 오키나와로 날아간 일을 비롯해, 열일곱 번이나 방문한 내 바람이자 기원이었다.
현재, 오키나와와 출생률은 ‘일본제일’이다. 열네 살 이하의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도 ‘일본제일’로 젊은 현이다.
한편, 백세이상의 분들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일본제일’이다. 여성들의 장수도 ‘일본제일’이다. ‘지역 활기도(度)’라는 지표에서도 ‘일본제일’이다.
관광객 증가를 지향하는 ‘오키나와 방문계획’도 순조롭게 추진되어 지난해에는 589만 명이 넘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수년 후에는 세계 최고수준의 교육연구기관으로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대학’이 우리 연수원 부지에 개교한다.
오키나와는 명실 공히 세계 사람들이 동경하는 ‘평화의 낙토’로써 당당히 크게 발전하고 있다.
◇
현재, 내가 새롭게 대화를 거듭하는 냉전 종결의 공로자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도 오랫동안 꿈꾸면 오던 오키나와 방문을 2001년 가을에 실현하셨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그 기쁨을 절실한 심정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오키나와는 정말 훌륭하고 지적인 분들입니다. 생기발랄하고 따뜻한 분들이었습니다.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키나와 미래를 바라보고 더 좋은 변화는 “평화를 향해 서로 협력하는 넓은 마음으로 결정된다.”고 전망하셨다.
우리 벗은 이 장대한 마음을 확대하는 금물결, 은물결을 오키나와에서 세계를 향해, 미래를 향해 만들어가고 있다.
도다 선생님도 자주 말씀하셨다.
“‘마음의 세계’는 깊은 자비의 마음으로 접하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책략도 아니며 기술도 아니다. 오로지 성실과 열의다.”
바야흐로 우리 오키나와 건아와 류큐가족은 이 ‘성실’과 ‘열의’로 명랑하게 가차시(기쁠 때 추는 전통 춤)를 추면서 단호히 승리하며 나아가야 한다.
언제까지나 / 일본 전국을 / 격려하고 /
선구의 승리 / 오키나와 존귀하다
‘폭포’ 시를 낭랑하게
그런데 헬렌 켈러가 글래스고대학교 수여식에 참석하고 62년 후인 1994년. 나도 글래스교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날씨도 같은 6월 15일이다. 그리고 수여식장도 대학 구내의 같은 장엄한 뷰트홀이었다. 그때의 추억은 내 마음에서 평생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늘름하게 추대사를 발표하신 분은 대학평의회 의장 먼로 박사였다.
“이케다 씨의 인생 방향을 결정지은 일은 1947년 도다 조세이 씨와 만나 도다 씨의 제자가 된 일입니다. 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을 무렵이었습니다… … .”
‘도다 조세이’라고 내 은사의 이름이 몇 번씩이나 뷰트홀에 메아리쳤다.
글래스교대학교에 공부하신 대교육자가 나중에 감동을 말씀해 주셨다.
“우리 모교는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님의 사제를 엄숙히 찬탄했듯이 이케다 박사와 도다 선생님의 사제를 세계에 드높이 선양했습니다.
참된 정의로운 사람을 옹호하고 상찬하는 일은 긍지 드높은 글래스고대학교의 전통입니다.”
이 식전에서 먼로 박사가 추대사 끝부분에서 낭독한 것은 바로 내가 지은 ‘폭포’ 시(詩)였다.
폭포처럼 세차게
폭포처럼 한결같이
폭포처럼 두려움 없이
폭포처럼 쾌활하게
폭포처럼 당당하게
사나이는
왕자(王者)의 인품을 지녀라
◇
나는 날마다 오로지 스승을 지키고 스승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 청춘이었다. 내 청춘은 올바른 것이었다. 내 청춘은 후회는 전혀 없다.
스승이 없는 인간은 목적 없이 되는 대로 살아간다. 또한 한가로이 산다. 그런 어리석은 인생이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나는 깊이 결심했다.
나는 은사에게 들은 것으로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말씀이 있다. 그것은 “나도 그대도 남자답게 투쟁을 끝까지 해 왔구나.”라고 하신 한 마디였다.
마키구치 선생님과 도다 선생님도 참으로 그러하셨다.
이 6월 6일은 마키구치 선생님의 탄생기념일이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젊은 날에 쓰신 대저(大著) <인생지리학>에서 폭포의 경관을 포함한 ‘내’가 인간정서에 주는 영향으로 ‘견인불발(堅忍不拔)’ ‘부지런히 하며 쉬지 말 것’ ‘기개광활(氣槪廣闊)’ ‘도량웅대(度量雄大)’ 등을 키운다고 예로 드셨다.
마키구치 선생님 자신이 체현하신 이 아름다운 바탕은 내가 ‘폭포’ 시에 담은 마음과 합치한다. 기이하게도 우리 오키나와연수원에도 ‘평화의 폭포’라는 시원스러운 폭포가 흐르고 있다.
어쨌든 광포의 영웅인 우리는 폭포처럼, 세찬 물결처럼, 승리를 향해 자신의 생명을 용솟음치게 하며 나아가야 한다.
내가 방문했던 14년 전에는 스코틀랜드 동지도 60여명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그것은 지금은 1,000명의 벗들이 모여 문화제를 성대히 개최하는 스크럼이 되었다.
글래스고대학교와 소카대학교의 교육 교류로 풍요롭게 결실하고 있다.
◇
헬렌 켈러는 말했다.
“세계에 청년이 있는 한 문명은 역행할 수 없다.”
청년을 육성하고, 청년과 함께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이 바로 참된 책임감을 진 인생의 승리자이다.
연조 대성인은 “니치렌의 동류는 이체동심(異體同心)이기에 사람들은 적지만 대사(大事)를 성취하여 반드시 법화경(法華經)을 넓혀지리라고 생각하오. 악은 많아도 일선(一善)에는 이길 수 없으니.”(어서 1463쪽) 하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승리의 요체가 있다.
“나의 벗이여, 여명은 바로 여기까지 와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대도를 힘차게 전지하게 않겠습니까. 함께 새롭게 각오하고 단결하여 두려움 없이!”
이것은 인생을 관철한 헬렌 켈러의 당부다.
경애하는 나의 동지여, 상쾌하게 투쟁하고 상쾌하게 승리해야 한다!
청년의 마음으로, 청년과 함께!
폭포처럼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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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수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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