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군에 있는 전통사찰은 칠보산 유금사와 운서산 장육사 등 2곳이다.
오후 3시 이후 이 두 곳을 모두 둘러본 행운을 얻었다.
칠보산 유금사(七寶山有金寺)
- 경북 영덕군 병곡면 금곡리
637년(선덕여왕 6)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
조선중기 이전까지는 대웅전·종각·장화부인 신령각(莊華夫人神靈閣) 등을 갖추고 있었던 규모가 어지간하였던 사찰.
어느 날 주지가 불국사 법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에 사찰 앞 용소(龍沼)에서 두 마리의 용이 교미하는 것을 보고 고약함을 느꼈는데, 절에 도착하기도 전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서 산사태로 절이 폐허가 되었다.
그 뒤 다시 중건하였으나 화재로 소실, 1627년(인조 5)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터넷 검색)
이번 여행에서 영덕군의 전통사찰을 찾을 계획은 없었다.
포항 보경사와 오어사는 계획에 들어 있었다.
삼척에서 죽서루, 삼장사, 신흥사, 영은사 등을 만나고 포항으로 내려 오는 중, 유금사의 이정표를 따라 들어왔다.
7번 국도에서 벗어나 산길로 제법 간다. 칠보산자연휴양림 입구를 지난다. 개구리바위, 형상이 그렇다.
칠보산 깊숙한 곳에 유금사가 있다. 접근성이 그렇게 좋은 곳은 아니지만 여느 절처럼 아늑하다.
유금사가 간직하고 있는 삼층석탑은 완전 해체, 복원 중이어서 볼 수 없었다. 아쉬움이다.
용소는 용의 보금자리, 두 마리의 용이 교미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행위인데 주지는 왜 고약한 생각을 하였을까?
수행하는 비구를 유혹하는 것은 아리땁고 교태가 넘치는 여자이다.
수행하는 비구니를 유혹하는 것은 무엇일까?
성 행위는 자연스런 일이다. 물론 이를 자제하지 못하고 집착한다면 문제가 생긴다.
불법을 전하는 것이 히말라야 크기의 칠보보다 귀한 일이라 하였다.
칠보는 경에 따라 조금 다르다. 아미타경의 칠보가 보석의 명칭으로 정확해 보인다.(인터넷 검색으로 안 지식)
법 화 경 : 금, 은, 유리(라피스 라즐리 = 청금석), 마노, 거거(매우 큰 조개), 매괴(석영 또는 수정), 진주
무량수경 : 금, 은, 유리, 파리(수정), 마노, 거거, 산호
아미타경 : 금, 은, 청옥, 수정, 진주, 마노, 호박
보이지 않는 진리, 법이 물질적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불신자들은 오늘도 절을 찾아
개인의 욕심을 드러낸다. 물론 그리스도인이라 다르지 않다.
성황당에서 자기자신만을 위한 복 비는 것과 불당이나 성전이나 교회당에서 비는 것과 무엇 다를까?
오후 3시 20분에 도착, 3시 50분에 떠났다.
서운루(捿雲樓)
1972년 대웅전 수리 중 금서(金書)가 발견, 이 건물이 1627년 지어진 것으로 나온다.
2017년 유금사 삼층석탑 보수 사업 중 탑의 남쪽 가장자리에서 발굴한 금동여래입상.
경주 안압지 출토(24.7cm), 홍천 물걸리사지 출토(22.6cm), 의령 보리사지 출토(26cm) 등 금동여래입상은 그 수효가 많지않다.
유금사 금동여래입상(39.5cm)은 큰 편이며 9세기 전반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유금사는 이 고장(영덕군 주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여래입상에 대한 문화재 급을 아직 정하지 않은 모양이다.
종무소 겸 요사채
향로전
유금사 삼층석탑(보물 제674호)은 복원 공사 중이다.
언제 제작된 불상일까? 코가 유난히 크다.
운서산 장육사(雲捿山莊陸寺)
-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
고려 공민왕(재위1351-1374) 때 나옹왕사가 서기 1355년에 창건.
(장육사 홈페이지 인용)
영덕에 이렇게 큰 사찰이 있는 줄 몰랐다.
나옹화상은 영덕에서 관노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장육사, 영덕군 창수면은 나옹화상과 관련하여 성역화를 거의 끝낸 것 같다.
낙동정맥 <창수령~하삼의교> 구간이 영덕군 창수면에 속한다. 맹독산은 지났지만 운서산은 거리가 멀다.
낙동정맥 이 구간이 영덕군과 청송군의 경계이다. 7번 국도에서 장육사 가는 길이 낯이 익어서 위 글을 썼다.
사찰까지 차로 갈 수 있지만 주차장에 주차하였다. (오후 4시 30분~5시 30분)
창수면 신기리(면 소재지)에 작은 공원도 조성하였고 둘레길도 만든 것 같다.
주차장 건너편엔 '나옹왕사기념관'도 있다. 오래된 냄새는 없다. 최근래 완공된 것 같다.
나옹화상의 선시는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하였고 사람들이 많이 읆조린다.
그러나 나옹화상이 역사적으로 대단한 인물이었을까? 태고보우처럼 불교계에서도 떠받드는 인물일까?
나는 모르는 일이고 이 사업이 성공하였으면 좋겠다.
일주문
서왕가 /염불가사 8수
나옹화상의 일대기
입적 후 <선각(先覺)> 시호가 내려졌다. 아래 사진의 설명엔. 졸지에 나옹왕사가 도선국사가 되어버렸다.
나옹왕사의 시호는 선각(禪覺), 도선국사의 시호는 선각(先覺)으로 한글은 같으나 한자가 다르다.
운휴정
나옹화상 입상과 승탑
깊은 산은 아니지만 산자락 여기저기 가람의 배치가 정겹게 느껴진다.
계곡의 정비, 이 단조로움은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일까?
돌계단과 석축이 건결한 느낌을 준다.
흥원루
대웅전/ 경북 유형문화재 제138호
나옹화상이 건립, 조선 세종 때 산불로 소실, 재건. 임진왜란 후 폐찰(廢刹), 1900년(광무 4년/광무는 고종의 연호) 중수.
장육사 영산회상도 / 경북 유형문화재 제373호
대웅전 벽면과 천정에 그려진 그림들. 본전에 이런 그림을 보기 쉽지 않다.
나무나옹대화상
보현보살, 코끼리를 타고 있다.
문수보살, 사자를 타고 있다.
문수달천진(文殊達天眞)/ 마음이 천진무구하다는 의미.
범종각
관음전
건칠관음보살좌상 / 보물 제993호
건칠:진흙으로 모형을 만들고 삼베를 두른 뒤 다시 진흙 가루를 입힌다. 그리고 삼베 속의 진흙을 빼낸다.
나는 건칠을 이렇게 이해했다. 금장을 한 불상은 그 재료를 알 수 없다. 석조, 조소, 목조 등등.
장육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은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산령각
세월의 때와 사람의 발자취가 쌓인다면 저 공원도 아름다워지겠다.
홍련암(紅蓮庵)
미유암(瀰瑜庵)
주차장 한켠에 당간지주를 만들어 놓았다.
나옹왕사기념관
기념관 주차장.
반송정 / 영덕군 창수면 신기리(면 소재지)
첫댓글 오늘 영덕군청 문화재과에 전화했다. 위의 내용을 설명하고 오류를 수정할 것을.
나옹왕사가 죽고 난 뒤에 도선국사가 되면 안 되는 거다. 조금의 주의가 필요하지만 누구나 실수는 한다.
개인적 일의 실수는 용납되어도 공적인 실수는...글쎄요.....조금 더 세밀한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