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공평하신 하나님[창 29:31-35]
89.공평하신 하나님.ppt.pptx
이제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하루아침에 두 명의 부인을 두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의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이 외삼촌과 레아의 치밀한 계획 속에서 야곱은 일생 일대의 최고의 순간을 축복과 기대와 부푼 꿈을 안고 출발하여야 할 가정이 사기와 속임을 당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야기를 들으실 때 자기가 그렇게 하였으니 그렇게 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자기가 행한 대로 지금 받고 있습니까?
속임을 당하였을 때 야곱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장자 권을 팟죽 한 그릇에 내어준 형의 마음이 어떠하였을까 하는 생각 좀 했겠습니까?
아버지의 축복마저 동생의 간계로 빼앗기고 통곡하였던 형의 마음이 어떠하였는지 좀 생각을 했겠습니까?
자신이 기만과 속임수로 장자의 명분을 얻은 것처럼 레아는 속임수로 남편 야곱을 얻게 됩니다.
그런 레아를 야곱은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요?
야곱이 레아를 곱게 볼 수가 있었겠습니까?
더욱이 동생 라헬은 언니를 어떻게 생각하였겠습니까?
레아는 아마도 일생 동생 라헬보기에 미안한 마음으로 살았을 것 같은데 성경에 보면 레아에게는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나옵니다.
어떻게 하다가 보니 부인을 둘을 둔 야곱은 라헬은 사랑하였지만 레아는 의무적인 남편으로 지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말씀을 보여 줍니다.
창 29:31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
레아에게 무엇이 없음을 보셨다고 합니까? 총이 없음을 보시고
총이 없다는 말씀은 무슨 말씀일까요?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야훼께서는 레아가 남편에게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열어주셨다”
레아가 어떤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까? 차별 대우를 받았다.
레아가 아버지의 말을 따라서 야곱의 부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까?
아니면 레아의 마음에 야곱이 있었을까요?
아마도 레아는 야곱이 가졌던 같은 소망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어떤 소망요?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소망요.
야곱의 할아버지와 레아의 할아버지는 형제간이었습니다.
갈대아에서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고 아버지를 설득하여 고향을 떠나올 때 형들은 다 함께 하였습니다.
왜 함께 하였을까요?
그들은 다 함께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으로 불렀던 아브라함이 메시야의 조상으로 세움을 받았다는 것을 아마도 이해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레아의 고모이죠?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감으로 리브가를 지목하였다는 말을 들었을 때 리브가는 망서림 없이 따라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리브가도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을 알은 것 같습니까?
리브가가 두 아들들을 태중에 두었을 때 큰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는 말씀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아버지의 축복이 오도록 하기 위하여 사람의 방법을 동원하여서 일이 이렇게 사달이 난 것입니다.
그런 믿음 누구도 가지고 있었다고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도 이해하였고, 그의 세 아들들이 어쩌면 다 알 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레아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손자요 자기의 고종 사촌인 한 남자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촉각을 곤두 세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남편으로 삼아서 아브라함의 복의 통로 중 한 사람이 되고자 마음을 먹고 있었을 것입니다.
근데 그 사람이 오자마자 누구에게만 관심을 보이고 있었습니까? 동생 라헬에게만
자기의 눈매는 그래도 라헬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였는데 자신의 눈매는 봐 주지 않고 동생과만 시간을 보내는 야곱을 볼 때마다 레아는 속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허락도 들었을 것이고요.
그리고 7년이 마쳐져가는 어느 날 레아는 아버지를 찾아가서 야곱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본가에서는 모자가 합동하여 형과 아버지를 속이는 일이 벌여졌는데 이제 이곳에서는 딸과 아버지가 함께 모의하여 야곱을 속이는 일을 꾸미고 성사를 시켰습니다.
증언의 말씀에 이런 말씀을 보게 됩니다.
부조 189쪽 “레아 자신이 그같이 속이는 일에 가담하였다는 사실은 야곱으로 그 여자를 사랑할 수 없다고 느끼게 하였다”.
야곱을 속이는 일에 누가 가담하였다고요. 레아자신이
마음에도 없는 사람에게 네가 시집가라 한다고 해서 이유 없이 레아가 아버지의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저는 영원한 하늘 상속자에 대한 꿈을 키우던 레아가 그 꿈을 잡을 기회가 왔을 때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소망임에도 불구하고 야곱에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라헬도 같았고요.
그래서 야곱은 차별 대우를 하였다 그것이 총이 없다라는 말씀으로 개역 성경은 번역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 차별 대우는 이제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갈 때 도중에서 라헬이 죽을 때까지 차별 대우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기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이 계시죠?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심.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을 또 다르게 표현한다면 무슨 말로 표현할 수가 있습니까?
공평하신 하나님 그렇게 표현하여도 될까요?
여러분들은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복음 성가를 아시나요?
제목은 나라고 하는 제목입니다.
나가진 재물 없으나 나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여러분들의 생각에도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공평하신 것 같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토기 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일생 고생하는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요.
또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수십억 수백억 재산을 가지고 태어나서 부족함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이래도 공평하다고 할 수가 있습니까?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노래 말을 지은 사람은 송명희 라는 사람입니다.
그의 삶을 담은 작은 영상을 하나 보겠습니다.
송명희 동영상
치료받도록 해 주겠다는 제의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이 대로를 감사하면서 살겠습니다.
그런 그의 삶은 지금도 행복만 가득할까요?
지금도 그녀는 어둠고 암울하고 힘들고 고통이 있고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 그런 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만큼은 하나님께서 그 고통을 좀 빨리 끝내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 후 공평하신 노래가 나온 후도 지금 20년이 넘은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시간동안 그녀는 역시 인간 지옥과 같은 그런 생활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그녀는 공평하신 하나님을 늘 바라봅니다.
그를 보면서 나에게 주어진 삶을 불평하고 원망하는 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송명희라는 여인이 가는 하늘나라 부끄러워서 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벧엘 수양원의 원장님으로 계시는 최차순 집사님 그전에는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내 덕분에 자주 가게 되었고 갈 때마다 그분을 만나 대화를 하는 시간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의상실을 하다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자신의 집에 환자들을 데려 오게 되었고 그것이 차츰 커져서 지금 벧엘과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지금 그는 두 눈을 전혀 보지 못한 가운데 더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그분을 초청하여 전도회를 한번 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진짜 말씀으로 하니 치료가 일어나는 역사의 현장을 우리 눈들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들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앞을 보지 못하니 좋은 것 한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눈에 보이는 것이 많으면 보이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보이지 않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것 보다 보지 못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의미로 자주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제가 생각해 보니 집사님께서 이런 일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지금 그는 어떤 가운데 보내실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은 사람이 어디서 환영을 받고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그런데 그는 지금 전 세계에서 초청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갈 수 없는 곳에는 대신 가는 사람을 세워서 보내고 있고요.
그렇게 성공적으로 이룬 사업을 아무런 조건 없이 선교사에게 양도를 하였다는 것도 가슴 벅찬 감동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우리에게 주어진 길들이 때로는 우리 마음과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를 통해 펼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면서 감사하면서 살아가시는 은혜가 있길 소망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을 잡고 살아가는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레아에게 어떤 은혜를 주셨습니까?.
창 29:31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들 몇을 주셨습니까?
아들 여섯과 딸 하나를 주셨습니다.
그 아들 중 하나에서 이스라엘 열 왕들이 태어났고요. 그 자손에게서 예수그리스도가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아들은 이스라엘의 제사장의 지파가 되었습니다.
총이 없었던 레아 그러나 믿음으로 선택한 레아가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 같습니까?
인간의 안목으로는 그 당시 차별받고 냉대 받고 지지리 복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하늘에 가서 유리바닷가에 설 때 그의 자손들이 그의 앞에 서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과연 사랑이시라고 소리 칠 것입니다.
우리의 처지가 비록 남 알아주는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소망을 붙잡았던 레아처럼 우리도 소망을 굳게 붙잡아야 할까요?
소망의 꿈을 가진 자들은 다 잡았습니다.
오늘 말씀중의 레아가 그리하였고요. 레아의 남편인 야곱이 그러하였고요.
이방여인 룻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리고의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 하나님을 붙잡음으로 보상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 다음에 찾아보게 될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그러하였습니다.
이들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복을 받을 수가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람의 평가에서는 아니다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소망을 잡고 놓지 않음으로 귀한 은총의 대열에 서게 되었다는 것 우리에게 많은 힘이 되지 않습니까?
우리도 뭐 할 수가 있다고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은혜에 참여할 수가 있다.
하나님의 허락하신 은혜에 한분도 낙오하시는 분들이 없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영광의 그 아침에 우리 다 함께 그 자리에서 주님의 얼굴을 뵙게 되기르 축복합니다.
아멘
개인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