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海와 맞닿은 유일한 정맥! 금북-13 [각원사갈림길~이티재]
(2007년 2월 27일. 화요일)
각원사~각원사갈림길~유왕골안부~성거산~위례산~엽돈재~서운산~이티재
** Memories Of You **
날씨 : 맑음 (천안 지역 : 최저 -2.2도 . 최고 11.8도)
동행 : 신샘
거리 : 정맥 18.9km + 정맥외 산행 4.5km = 총 23.9km
<실거리 : 정맥 20.0km (31,210보) + 정맥외 5.0km) = 총 25.0km>
시간 : 8시간 10분 <정맥 : 산행 5시간 25분 + 휴식, 식사 기타 : 1시간 14분> + <정맥외 : 산행 1시간 12분 + 휴식, 관람 19분>
경비 : 김밥(2,000) + 버스(천안~각원사 2,200) + 석식(13,000) + 모텔비(30,000) + 기타 3,000 = 50,200원
< 주요지점 시간 기록 >
[안서동 종점(각원사) 09:08]→각원사 갈림길[09:32~39 휴식]→유왕골 고개[09:44]→걸마고개[09:57]→만일고개[10:10]→성거산 표지석[10:25~38 휴식]→군부대 진입도로[10:54]→싸리목 고개[11:12]→우물목 고개[11:21]→성황당 고개[11:32]→463m봉[11:46~55 휴식]→위례산 표지석[12:08~40 중식]→위례산 삼각점[12:41]→임도[13:02]→부수문이 고개[13:10]→주능선[13:14~17 기타]→헬기장[13:36]→458.8m봉[13:38~46 휴식]→엽돈재[14:03~05 메모]→통나무 갈림길봉[14:23]→395.4m봉[14:40]→이장한 묘지[14:49]→우회로[15:08]→청룡사 갈림길[15:20]→서운산 표지석[15:33~40 휴식]→서운산 삼각점[15:41]→석남사 1.5km이정표[15:48]→충정묘 갈림길[16:06]→이티재[16:18]→석남사 입구[16:35]→석남사[16:53~17:04]→마애불[17:11~12]→석남사[17:18]
【각원사 갈림길까지의 스케치】
되도록 일찍 출발하기로 한다. 이유는 목적지인 이티고개까지 가면서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고 또 고찰인 석남사도 관람하고픈 욕심 때문이다.
교대근무자가 08:30분경이면 사무실에 도착할 것이니 오늘도 1시간가량 비공식적인 조퇴..... 신샘님과 대전역에서 07:45분발 무궁화호 열차에 승차 천안역에 도착하니 08:35분이다.
천안역 지하도에서 김밥 2줄을 사고 무궁화 빌딩 앞에서 102번 버스에 승차하여(08:48) 안서동 각원사입구인 버스 종점에 도착하니 09:08분. 전에 천안역으로 나올 때는 40분이나 걸렸지만 오늘은 그 절반 밖에 걸리지 않았다.
도로를 따라 오르면 각원사 직영 불교용품 판매점인 "봉향각"이 나온다.
좌측 넓은 일반 등산로는 유왕골고개로 올라가는 길이고 우측 차도는 각원사로 가는 길, 전에 각원사에서 이 차도를 따라 내려왔으므로 이번에는 봉향각 우측편 계단을 거쳐 좌불상에 도착했다.(09:15)
▽각원사 청동대불
▽아침 햇살을 등에 업은 각원사 청동대불
합장으로 가족의 안위를 기원하고 산에 드는 마음 또한 경건하게 가다듬는다. 1분 정도 뒤, “무아에 동산”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09:18)
무아에 동산에서 마애불까지는 좀 가파른 오르막을 10분가량 올라야 한다.
마애불에 도착해 우선 합장으로 인사를 드리고, 지난 번 하산할 때 3분의 마애불 중 맨 좌측 마애불이 나무 그림자와 겹쳐 잘 보이지 않았으므로 다시 카메라에 담는다.
▽마애불
마애불에서 다시 가파르게 3분을 오르면 지난번 하산코스로 사용한 각원사 갈림길에 도착하고 이곳 바위에는 관음암이라 적혀있다.
벌써 쟈? 내부는 땀이 흥건하다.(09:32. 1,900보)
아직은 아침 기운이 차게 느껴지지만 자?을 벗어 배낭에 걸고 휴식을 취한 다음 출발이다.(09:39)
◀각원사갈림길~~도상 3.0km<실거리 3.0km / 4,588보>~~성거산▶
곧 등로 왼쪽 10여m지점에 동굴이 보이는데 이 일대가 움푹 패어있는 것을 보면 좀 더 큰 규모의 돌리네 현상이 진해되고 있는 것 같다.
동굴 내부를 살피지만 너무 컴컴해 그 끝을 가름할 수 가 없었다.
▽이 동굴 역시 빗물이 흘러들면서 생긴 돌리네 현상으로 생긴 듯하다
동굴을 지나면 곧 “119구조번호 19번”이 표기된 각원사 갈림길이 나오고 몇 걸음 뒤에는 사각정자를 지나 이정표<망향의동산 5.9km / 용연저수지 6km / 독립기념관 9.3km>가 있는 유왕골고개에 도착한다.(09:44)
2분 뒤, 나무벤치가 하나 있는 상명대학교 갈림길 이정표가 나타나고 정맥은 여기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성거산 방향으로 향한다.(09:46)
국민은행 연수원과 유량동 갈림길이 있는 걸마고개를 지나면서 카메라 샤터를 누르니 이런 경고등이 빨갛게 들어오는데 "아차! 충전기에서 예비밧데리를 빼오지 않았잖아?"(09:57)
"내일 졸업사진은 찍어야 하는데... 이런 낭패가 ... 대체 얼마나 찍을 수 있을 런지, 아~~ 안성에 카메라점이 있겠지? 오늘 하루만이라도 버텨다오"
자동차가 다닐 정도의 넓은 산책로는 계속....만일고개까지 이어진다.
▽119 태조산 주등산로 24지점, 걸마고개
7분 뒤, 주택은행 연수원으로 이어지는 삼거리가 나타나고 이곳에도 이정표<주택은행연수원 / 만일사 / 좌불상>가 있는데 만일사 방향에는 누군가 메직으로 "영인지맥"이라 적었다.(10:04)
무명봉을 우측으로 돌아 오르니 "119 산악위치표지판 주등산로길 26번 지점"의 안부가 나타나고 뚜렷한 사거리 길이 있는 만일고개로 내려선다.
만일고개에는 이정표<취암산 9.2km / 태조산 3.4km / 송전리 1.3km/ 만일사 1.1km / 성거산>와 돌탑, 등산안내도가 있고 성거산 오르는 길에는 검정색 PVC 계단이 깔려있다.(10:10)
▽만일고개
검정색 PVC 계단길은 조금 가파른 오르막.... 오르막 도중 볼거리는 없다.
안전로프가 설치된 곳을 오르면 557m봉 분기능선, 557m봉은 우측으로 1분거리에 있으며 실질적인 성거산 정상은 군부대 시설물이 차지한 좌측이다.
따라서 성거산 표지석 역시 제 위치를 찾지 못한 채 이곳에....(10:25. 4,588보)
▽군부대로 인하여 제 위치를 찾지 못한 성거산 정상석.
[ 성거산의 유래 ]
고려 태조가 이산을 바라보니 산 위에 오색의 구름이 떠있어 신이 계시는 산이라 하고 조선 이태조와 세종대왕이 온양온천에 갈 때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557m봉 분기능선에서 한참을 쉰 다음 군통신시설물이 있는 실제 성거산을 향해 좌측으로 향한다.(10:38)
◀성거산~~도상 4.4km<실거리 4.7km / 7,355보>~~위례산▶
2분 뒤, 통신탑이 앞을 막는 삼거리 안부(좌: 만일사, 우: 정맥)에 닿는데 이제부터 군부대로 통하는 도로와 맞닿는 곳까지는 통신탑의 우측 비탈을 따라가야 한다.
계곡으로 내려갈듯 하던 길은 곧 좌측 비탈을 향하는데 이 비탈길은 정맥꾼들이나 다니는 길답게 뚜렷하지는 않으나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군데군데 걸려있어 문제 될 것은 없다.
마른 샘터를 지나고... 수로처럼 깊게 패인 곳, 마른 계곡도 건너며 비탈을 이어가던 길이 군부대 시설물을 바라보면서 좌측으로 올라가 곧 철조망 울타리가 보이는 삼거리에 닿는다.(10:48)
좌측으로 더 올라가면 군부대 철조망 바로 아래를 따라가 군부대 정문에 닿을 것 같은데 그 방향은 나무로 막았고 우측으로 내려가는 지능선의 넓은 임도에 표지기가 걸려있다.
“지금까지는 마루금은 아니지만 그래도 철망울타리를 좌측에 두면서 우회하였는데 이제는 등뒤에 두다니....?” 의문은 곧 풀린다.
3~40m가량 넓은 길을 따라 내려오면 표지기들이 좌측 비탈로 유도한다.
5분가량 비탈길을 따라가면 도로로 나오게 되는데 좌측은 군부대 정문으로 가는 길이며 우물목고개로 향하는 길은 이동 통신탑이 있는 우측 아랫방향이다.(10:54)
▽우물목고개까지는 이 시멘트도로만 따라가면 된다.
“부대 끝”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이고 그곳의 좌측 공터 끝에 두어장의 표지기가 산등성이를 향해 손짓하지만 그냥 도로만 따라 우물목고개까지 가기로 한다.
야생동물보호구역 안내판과 볼록거울이 서있는 곳에서 도로는 왼쪽으로 휘어져 내려가고 3분 뒤, 병인박해시 천주교 박해로 인하여 순교한 분들의 묘소가 있다는 안내문과 표석, 그리고 길옆의 낮은 마루금의 수직 암벽에는 밧줄이 매어져 있는 곳을 지난다.(11:08)
▽병인박해시 순교한 분들의 묘소인 제2줄 무덤입구의 표석
이번에는 “제1줄 무덤”이란 큼직한 표석과 그 옆에 입석표석이 또 하나, 그리고 성거산 순교자 성지안내도 등이 있는 싸리목 고개를 지난다.(11:12)
[성지 안내문] 이곳은 1866년 병인 박해시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였던 7개 신앙공동체 중 하나인 소악동(소악골·쇠악골)이라는 교우촌이며 박해 당시 이곳의 교우 5명이 체포되어 공주감영에 교수를 받아 순교하신 분들과 많은 무명 순교자 및 교우들의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천주교 성지인 싸리목 고개
▽안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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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목 고개를 지나면 2분가량 뒤 헬기장이 도로 우측에 있고 잠시 뒤 거쳐갈 위례산이 보인다.
▽위례산
도로만 계속 따라가 “입장”과 “북면 납안리” 도로이정표가 있는 우물목고개에 닿는다.(11:21. 4,224보)
이어갈 정맥길 들머리는 넓은 임도로 “배티성지 / 성거산성지”의 백색 이정목이 있으며 그 아래 공터에는 철봉과 승용차도 한 대 주차되어 있다.
넓은 임도를 따라 33번 송전탑을 지나고 조망 좋은 봉우리에 올라선다. (11:24)
▽시설물 때문에 우회했어야 하는 성거산.
넓은 산길이 이어져 55번 송전탑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임도가 정맥을 넘어가는 성황당고개.... 좌측에 당상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오늘은 무슨 소원을 빌기 위해서인지 여자 두 분이 제물을 차리고 있는 듯 하고 나무에는 삼색의 천을 드리웠다.(11:32)
▽성황당 고개의 당상목, 오늘은 누군가 치성을 드리는듯.....
성황당고개에서 넓은 임도룰 따라 1분가량 오르다 임도를 버리고 좌측 숲으로 들어가면(길주의) “위례산성 가는 길 →”이란 스테인리스 이정표가 있다.
완만한 오르막을 이어가면 “유성농장 입구 2.9km / 위례산 0.9km”의 이정표가 있는 463m봉, 위례산까지 진행하자는 나와 떡이나 먹고 쉬어가자는 신샘님.... 감기로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신샘님의 의견대로 휴식이다.(11:46~11:55)
▽463m봉에서 바라본 성거산
▽입장면 시장저수지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가며 바라본 위례산 오르막도 가팔라 보인다.
위례산악회에서 세운 “위례산성 가는 길 정상 230m / 우물목고개 2.2km . 군단이 2.1km”의 이정표를 지나고 2분 뒤, 노송 몇 그루가 있는 봉우리에 올라 우측으로 진행한다.(12:06)
보기와는 달리 완만한 오르막을 이어오다 위례성 유물로 추정되는 돌구유(?, 말이나 소에게 먹이를 주던 여물통)한 점이 보이면서 공터에 태극기와 정상석, 안내판 이정표 등이 있는 위례산에 당도한다..(12:08. 7,355보)
▽돌구유?
▽표지석이 있는 위례산
[慰禮山의 유래 / 표지석 뒷면] : 백제 시조 온조가 이곳에서 최초로 백제를 세운 '위례성'의 역사를 안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토성과 석성 적성총 등 당시의 흔적이 남아있는 유서 깊은 역사를 간직한 산이다.
[천안 성거산 위례성(天安 聖居山 慰禮城)] : 지 정 별 : 기념물 제 148호
지정년월일 : 1984, 5, 17 위 치 : 천안시 북면 운용리
이 산성은 해발 525.9m인 위례산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950m정도이다. 성벽은 토·석 혼축공법(土·石 混築工法)과 석축공법(石築工法)의 2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흙과 돌을 혼합하여 쌓은 부분은 자연암반을 평탄하게 고른 후 1.5m너비에 2열로 돌을 평행으로 쌓고, 그 위에 흙과 잡석 및 기와조각을 섞어 쌓았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는 1.5m정도이다. 돌로 쌓은 성벽은 경사가 급한 40m구간에만 남아 있는데 주로 자연할석으로 쌓았으며, 현재 놓이는 4m정도이다.
이 성은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해 백제의 도읍지였던 위례성으로 보기도 하나 조사결과 도읍성(都邑城)이라기보다는 국방을 위한 산성으로 보이며, 쌓은 시기도 삼국시대 후기로 추정된다.
이정표는 "기요리 3.3km / 부수문이 2.4km / 우물목고개 2.4km"로 되어있으니 위례산은 두 고개의 중간지점인 셈.... 중식 후 출발이다.(12:40)
◀위례산~~도상 2.1km<실거리 2.3km / 3,635보>~~부수문이고개▶
1분 정도가면 삼각점과 성터의 흔적이 조금 남은 실질적인 정상이다.
▽삼각점이 있는 위례산.
뚜렷한 능선을 이어가면 이정표<부수문이고개 1.9km / 위례산 0.3km / 입장(양대리)2.1km>가 나오고 부수문이 고개를 향해 우측 산비탈로 비스듬히 내려간다.(12:46)
봉우리를 좌측으로 2분가량 우회하여 능선마루에 복귀하고(12:52) 몇 걸음 진행하다 직진의 마루금이 아닌 왼편으로 꺾어 완만하게 내려간다.
쉬기 좋을 큼직한 소나무 한 그루 밑에는 약간의 공터도 있어 3~4명의 휴식장소로는 괜찮아 보이고...(12:56)
우측에 넓은 터를 차지한 묘지가 보이더니 임도로 바뀌는데 이 임도는 부수문이고개까지 이어졌다.(13:02)
임도를 따라가면 임도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직진의 임도는 낙엽이 수북히 쌓여 사용하지 않는 듯 하고 정맥임도는 지금까지처럼 좋은 길로 이어지며 좌측으로 크게 휘어져 내려간다.(13:08)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부수문이 고개로 내려오고 이곳 들머리에도 “배티성지 / 성거산성지”의 백색 이정목이 있다.(13:10. 3,635보)
▽부수문이 고개 (절개지 옆으로 올라 이동통신탑을 거치는 길이 올바른 정맥)
◀부수문이고개~~도상 2.5km<실거리 2.6km / 4,049보>~~엽돈재▶
이정목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면 좌측에는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앞에는 "등산로폐쇄" 라는 플랭카드가 있다.
그런데 이 지점이 골짜기 형태를 띠고 있는데... 표지기들은 절개면 옆의 이동통신탑 방향이 아닌 우측에 걸려있다.
발걸음을 돌려 절개면 옆의 희미한 길로 그리고 통신탑을 거쳐 주능선을 향하면 잡목이 조금 성가시게는 하지만 심한 편은 아니다.
가면 갈수록 길이 뚜렷해지더니 우측 아래에 묘지가 보이면서 곧 프랑카드가 걸린 곳에서 우측으로 올라온 길과 합쳐진다.
이곳에서 물마시고 다른 일도 보고 출발한다.(13:14~17)
이후의 길 상태는 부수문이고개까지의 그것보다는 못하지만 정맥 길치고는 A급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데 그 이유는 성거산 성지 순례길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완만하지만 길게 이어진 오르막은 억새가 무성한 헬기장을 지나고 2분 뒤, 우측으로 지능선이 갈려나가는 분기봉인 458.8m봉에 당도하는데 삼각점은 우측으로 15m정도 위에 있다.(13:38)
▽458.8m봉
휴식을 마치고 출발이다.(13:46)
길은 여전히 뚜렷하고 긴 내리막이 길게 이어지다 봉우리 직전에서 왼쪽 비탈을 따라 왼쪽으로 휘어진다.(13:57)
엽돈재 향하는 도로가 나무사이로 멀리 보이고 잠시 후 깎아지른 절개지가 앞을 막아 우측으로 내려오면 34번 국도가 지나는 엽돈재다.(14:03, 4,049보)
▽절개지에서 바라본 엽돈재
▽엽돈재
엽돈재는 충청북도 진천읍과 충청남도 입장면을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며 주변에는 도로표지판과 생거진천(生居鎭川) 표지석, 부부조형물 등이 있으나 휴게소는 보이지 않는다.
◀엽돈재~~도상 4.6km<실거리 4.8km / 7,487보>~~서운산▶
가파른 우측 절개지를 따라 3분여만에 능선마루에 올라오니 좌측에서 올라온 뚜렷한 길과 만나는데 이 좌측길이 조금이나마 가파르기가 덜하다고 한다.
이후로는 다시 완만하고 넓은 길..... 우측 지능선으로 뚜렷한 길이 갈려나가는 삼거리봉에 당도하고 정맥 길에는 많은 표지기가 걸려있다.(14:21)
2분 후, 2그루의 멋진 소나무가 있는 봉우리에 당도하니 직진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통나무가 가로놓여 있고 정맥길은 우측으로 꺾인다.(14:23)
▽직진길은 통나무가 막아선 분기봉, 정맥은 우측으로.......
4~50m가량 내려와 좌측으로 꺾어 내려오면 좌측에 묵은 임도가 갈려나가는 안부로 내려온다.
묘지 옆을 지나고(14:28) 특징없는 길.... 우측으로는 무슨 대규모 공사가 한참이고.... 산마루를 2~30m가량 남겨두고 직등과 우회로로 길이 갈라진다.
직등길로 잠시 오르면 395.4m봉, 뚜렷한 표식물은 없고 이곳에서 쉬어가자던 신샘님 대신 참소리님 표지기만 보인다.(14:40)
▽395.4m봉 뒤로는 골프장이 들어서는지 공사가 한창이다.
395.4m봉에서 좌측으로 몇 걸음 내려오니 허허자님의 표지기가 맞아주고 곧 우회로와 합쳐진다.
좌측으로 뚜렷한 길이 갈려나나고(14:47) 언제 금북을 시작하셨는지 금북길에서는 처음으로 단무지님의 표지기를 만난다.
▽47
이장한 묘지를 지나 1분 뒤, 봉우리에 올라서고(14:50) 10분 뒤에는 우측 지능선 방향으로 희미한 산길이 보이는 곳을 지난다.
3~4분 가량 좀 가파르게 올라 왼쪽으로 비탈길을 우회하며 내려가는데 이 봉우리를 올라가도 곧 우회로와 만날 것 같다.(15:08)
작은 봉우리 2개를 넘어 우측으로 가파르게 내려간다.(15:15)
청룡사 갈림길에 도착하니 좌측 청룡사 방향으로 뚜렷한 등산로와 함께 이정표<청룡사 2.2km / 서운산 정상 0.9km>가 있고 이제부터 좀 가파른 서운산 오르막이 시작된다.(15:20)
언제부터인지 개구리 소리인지 새소리인지 묘한 소리가 산을 뒤흔들고 있었는데 그 진원지가 바로 갈대가 우거진 우측에 습지인듯.... 벌써 개구리가?
넓은 임도로 나타나고 우측으로 오른다.(15:30)
그리고는 이정표<서운산 정상 / 배티고개 . 석남사 / 좌성사 . 청룡사>가 있는 배티고개 갈림길... 20m정도 오르면 또 다시 이정표가 있는 배티고개 갈림길, 서운산 정성을 거치지 않을 경우, 두 갈림길 어디서든 배티고개 방향인 우측으로 가면 된다.
두 번째 갈림길에서 3~40m정도만 오르면 서운산. 정상에는 정상석과 이정표, 서운산성 안내판이 있으며 정상부의 작은 바위에 올라서면 나무사이로 안성시 서운면 일대를 내려다 볼 수 있다.(15:33. 7,487보)
▽서운산 정상부, 이분들은 석남사로 올라가는 길에서 다시 뵈었다.
[서운산성] 경기도 기념물 제 81호.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북산리 산2
서운산성은 '북산리성'이라고도 불리는데 차령산맥에서 우뚝 솟아오른 서운산 언저리의 산봉우리를 둘러싼 토성이다. 남쪽에는 차령산맥을 관통하여 직산에서 진천으로 넘어가는 지름길인 협탄령이라는 고갯길이 있는데, 산성은 이 교통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이 지역의 의병장으로 활동한 홍계남(洪季男)장군이 북쪽으로 올라오는 왜적을 방지하기 위하여 쌓았다고 알려져 있다.
성은 산봉우리 2개를 연결하여 쌓아 말안장 같은 모습이다. 성벽은 토축 또는 토석혼축으로 쌓았으나 남벽과 동벽의 일부구간에는 가파른 자연지세를 이용하여 성벽을 쌓지 않아 성의 전체 둘레는 1,228m이지만, 성벽을 쌓은 곳은 450m 정도이다.
성안에는 지휘하던 곳으로 이용된 장수바위가 있고 북쪽과 남쪽에 문터가 있는데 주로 남쪽으로 출입을 하였던 것 같다. 남문터 옆에는 편평한 터가 있고, 북동쪽의 흙으로 쌓은 높다란 곳은 관측을 하던 장소로 추정된다. 성안에는 우물터가 5개나 있어 물은 비교적 풍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성은 해발고도가 높아 접근이 어렵고 험준한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기법으로 보아 방어용의 산성으로서, 대략 고려시대에 쌓아 사용되다가 조선시대에 다시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저곳을 살피는 것으로 휴식을 대신하고 갈림길을 향해 발길을 되돌린다.(15:40)
◀서운산~~도상 2.3km<실거리 2.6km / 4,096보>~~이티재▶
갈림길로 다시 내려와 왼쪽 ‘석남사. 배티고개’ 방향으로 몇 걸음만 가면 서운산 삼각점이 있다.
▽39
곧 서운산 정상을 거치지 않는 첫 갈림길에서 오는 길과 만나고 4분 뒤에 이정표<서운산 정상 0.4km / 석남사 1.3km / 배티고개 1.5km>가 있는 석남사 갈림길. 좌측은 마애불을 거쳐 석남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정맥에서 갈려나가 장군산(435.7m)으로 이어진 산줄기 
배티고개를 향해 100m가량 더 내려가면 또 다시 석남사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 이정표 역시 석남사가 1.3km, 잠시 뒤에는 또 다시 이정표<석남사 1.5km>가 있는 갈림길이다. (15:48)
우측으로 조망이 트이는 길이 한동안 이어지고 곳곳의 소나무는 멋진 자태를 뽑낸다.
▽벌목지에서
2그루의 멋진 소나무가 있는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휘어져 내려가고(15:59)
7분 뒤에는 배티성지 충정묘 갈림길에 닿는다.
충정묘는 우측, 배티고개는 직진인데 배티고개 가는 길에는 “6인의 무명순교자”라는 별도의 방향표가 있다.(16:06)
▽배티성지 충정묘 갈림길
[6인 무명순교자의 묘]
이곳 성재의 순교자들은 "목천에서 고개너머 안성땅 잿님골로 이주해 살다가 순교하신 분들"이다. 신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1975년 당시에는 7인 묘였다.
1977년 순교자들의 후손들이 나타나 2기를 백곡공소로 모셨고, 그 후 조사과정에서 1기가 새로 발견되어 6인묘가 되었다. 무덤 이장시 숯과 진토, 미량의 유해가 나왔다.
전해오는 구전에 의하면, 포졸들에게 쫓기던 교우들이 이 근처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순교자들의 무덤이 이 외진 곳에 줄줄이 놓여 있게 된 이유는 박해의 와중에서 급하게 시신들을 끌어 모아 순교한 장소에 안장하였기 때문이다.
산마루를 불과 30m가량 앞에 두고 우측으로 계곡을 향하듯 내려간다.(16:12)
비탈길은 게곡과 거의 맞닿을 정도까지 내려가 다시 등성이로 복귀하고 엄청난 규모의 절개지와 고갯마루를 향해 꿈틀꿈틀 힘겹게 올라오는 도로가 보인다.(16:14)
▽안성에서 배티재로 오르는 도로
▽엄청나게 깎아지른 절개지와 중앙C.C 입구가 있는 삼거리
절개면이 앞길을 막고 절개지 우측을 따라 내려가면 백곡면 표석이 있는 이티재에 내려선다.(16:18. 4,096보)
해발 370m인 이티재(배티고개)는 경기도 안성시와 충북 진천군의 경계지로 313번 지방도가 지나고 백곡면 표석과 이티재 표지판이 있으며 삼거리 좌측길은 중앙C.C진입로이다.
▽이티(배티)재. 사진 좌측으로 중앙C.C 집입로가 보인다.
이어갈 들머리는 경기도 안성시 경계표지판 뒤편에 수직에 가깝게 깎아내린 절개지에 걸린 가느다란 로프줄이다.
◀배티고개 이후의 스케치▶
이티재를 지나는 차량은 꽤 있는 편이지만 이곳을 지나는 버스는 없고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석남사 입구까지 약 1.5km를 내려가야 한다.
일찍 산행을 일찍 마쳤고 안성에서 달리 할 일도 없어 석남사를 둘러보기로 한다. 걸어가자는 나와 석남사 입구까지 히치하자는 신샘님,
고갯마루에서 몇 번의 시도가 무산되고 결국 내 주장대로 걸어 내려가게 되었고 지나가는 차마다 손을 들었으나 역시... "인심 참 고약하다."
15분 정도 잰걸음으로 내려오다 신샘님이 끝내 히치에 성공, 차안에는 나들이를 다녀오는 4명의 일가족이 타고 있는데 석남사 입구를 부탁하니 서슴없이 타라고 한다.
3~4분 뒤 석남사 입구에 도착하고 감사의 인사와 함께 차를 보내고 우리는 도로 아래로 내려와 시멘트 길을 따라 석남사로 향한다. (16:35)
▽석남사 가는 길 입구 도로변의 소나무.
시멘트길로 한참을 오르면 석남사에 도착하는데 이곳까지 오는 길에는 작은 계곡과 넓은 주차장도 한 곳 지나게 된다.(16:53)
▽석남사 일주문
▽석남사 경내 우측이 영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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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남사 개요 :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로 안성시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서운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은 석남사는 거찰은 아니지만 절 입구에서 대웅전까지 오르는 돌계단의 경관이 볼 만하다.
대웅전은 겹쳐마 맞배지붕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졌으며 단촐하지만 당당해 보이며 대웅전 바로 아래의 영산전이 있다.
이 영산전은 학이 나는듯한 팔작지붕형으로 위의 대웅전과 단아한 조화를 보이면서 영산전의 날렵한 지붕 끝은 소나무가 살포시 가리고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신라 문무왕 20년(680년)에 고승 담화덕사가 창건했으며 이후 고려시대 광종의 아들혜거국사가 크게 중수했고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버렸으나 효종 때(1649~1659) 석왕사의 해원이 중수하여 사세를 확장하였고 1732년(영조 8년)에 다시 중수했다.
경내에는 16나한이 모셔진 영산전(보물 823)을 비롯해 대웅전, 마애불(석남사에서 500m)등의 도지정문화재와 석탑, 부도 등 향토유적이 있으며 조선 초기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전국의 사찰들을 통폐합할 때 안성군을 대표하는 자복사찰로 선정될 만큼 전국적인 명찰이었으며 세조가 친필 교지를 내려 승려들의 부역을 면제해준 사찰이기도 하다.
석남사 대웅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08호 소재지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508
석남사는 신라 문무왕 20년(서기 680년)에 건립되어 문성왕18년(856) 승려 염거와 고려 광종 4년(953)에 승려 혜거가 중수하였다고 전하는 유서깊은 고찰이다.
조선 태종 7년(1407) 국가에 복이 있기를 기원하는 절인 자복사(資福寺)로 지정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탄 후 폐허가 되었다.
영조 1년(1725) 승려 해원이 대웅전과 영산저의 기와를 갈았다고 하므로 17세기경에 대웅전이 다시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78년에는 대웅전이 영산전 앞에서 현 위치로 옮겨져 지어졌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집이다. 전면 귀공포의 형태로 보아 원래 지붕은 팔작 형식이었으나 후에 맞배지붕으로 고쳐진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에는 중앙에 불단이 설치되어 석가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이 불전은 기둥과 지붕이 만나는 곳에 사용되는 부재인 공포의 형태와 자연 형상에 따라 흰 보 등의 가구수법으로 17세기경에 건립된 후에도 여러 번 수리된 것으로 보인다.
석남사 영산전
보물 제823호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508
영산전은 석가모니불과 그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를 함께 모신 불전의 명칭인데, 이곳에는 16나한을 함께 봉안한 것이 특징이다. 영산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된 팔작집인데 칸수에 비해 규모가 작은 건물이다.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민흘림기둥을 세우고 기동과 지붕이 만나는 곳에 사용되는 재료인 공포를 사용한 다포계 건축으로 지붕가구는 오량으로 구성되었다. 지붕에는 하중을 줄이기 위해 덧서까래를 사용하였다. 내부를 보면, 불단은 건물 뒷벽에 붙여 중앙에 불단을 설치하여 석가삼존불을 모셨고, 그 위에 부처를 보호하고 장식하기 위해 닫집을 매달아 장엄하게 꾸몄다. 중앙의 불단 좌우에는 ㄱ자형으로 불단을 구성하여 16나한상을 모셨다. 이 건물물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탄 후 다시 지어졌는데, 조선 중기의 특징을 갖추고 있고 암막새 기와에 ‘영조 1년(1725) 수리했다.’는 명문이 남아 있으므로 17세기에 고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꾸밈없어 정갈한 마음이 저절로 생길 것 같은 경내를 두루 살피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신샘님에게 마애불을 다녀오자고 하니 혼자서 다녀오라고 한다.
잰 걸음으로 서운산 방향으로 내달리자 이정표“서운산 정상 1.8km”와 함께 다리가 나타나는데 마애불 가는 길은 다리를 건너지 않고 넓은 등산로를 따라 왼쪽으로 가야 한다.
2~3분가량 오르면 마애불 50m전에 “마애불 가는 길”이란 표지판이 나타나고 왼쪽 비탈을 거슬러 오르면 마애여래 입상에 당돌한다. (17:11)
▽석남사 마애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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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남사 마애여래 입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09호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산22
암벽에 양각된 높이 5.3m의 마애여래입상이다. 이 불상은 민머리(素?)가 있고 넓적한 얼굴에는 눈·코·입이 두텁게 표현되었다. 두 귀는 어깨에 닿을 듯 길게 늘어졌으며 목에는 번뇌·업(業)·고통을 상징하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었다. 머리 주변에는 세 겹의 원형 두광이 표현되어 있다. 옷(法衣)은 두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通肩)으로 배 부분까지 U자형으로 내려오며, 가슴에는 내의인 군의(?衣)의 매듭이 보인다. 신체의 주변에도 두광(頭光)으로부터 이어지는 세 겹의 신광(身光)이 표현되었다. 두 손은 가슴 앞에 들어 오른손은 검지만을 펴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어 설법인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하단에는 5개의 발가락이 뚜렷한데 연꽃 문양의 대좌 위에 올려져 있다. 머리와 몸은 비대한데 비하여 다리 부분이 짧다. 이 마애불은 다소 형식적이며 지방적인 요소를 띠고 있다. 통일신라 마애불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전기의 마애불로 여겨진다.
꾸밈없어 정갈한 마음이 저절로 생길 것 같은 경내를 두루 살피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신샘님에게 마애불을 다녀오자고 하니 혼자서 다녀오라고 한다.
잰 걸음으로 서운산 방향으로 내달리자 이정표“서운산 정상 1.8km”와 함께 다리가 나타나는데 마애불 가는 길은 다리를 건너지 않고 넓은 등산로를 따라 왼쪽으로 가야 한다.
2~3분가량 오르면 마애불 50m전에 “마애불 가는 길”이란 표지판이 나온다.
석남사로 돌아와 신샘님과 함께 15분정도 내려왔으니 입구에 거의 다 도착할 즈음, 마침 석남사 주차장에서 보았던 검정색 RV차가 내려오고 있다.
이번에는 내가 손을 들자 두 사람의 남자가 탄 차가 정차하고 버스주차장까지만 부탁하니 타라고 하면서 어디까지 가느냐 묻는다.
안성으로 나간다고 하니 그분들도 안성으로 가는 길이니 안성까지 태워 주겠다고 하면서 맛집까지 소개해주는데 운전자는 선생님이시고 친구 분은 개인사업을 한다고 한다.
오늘 서운산 등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며 생면부지의 나그네를 위해 버스타는 곳과 모텔지역, 그리고 맛집까지 돌은 후 우리를 내려준다. (지면을 통해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분들이 추천해 주신 장작불로 끓인다는 곰식당에서 구수한 꼬리곰탕으로 저녁을 먹고 버스 정류장과 가까운 모텔로 들어간다.
밧데리를 충전하던지 충전시켜 주지 않는다면 구입이라도 하려고 30분 이상 주변을 돌아다녔으나 끝내 카메라 점을 찾고 못한 채 헛걸음만 친다.
그래도 내일 아침을 해결할 해장국집과 점심용 깁밥을 준비할 김밥집이 버스터미날 근처에 많이 있음을 확인하였으니 그것을 소득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밧데리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영 마음에 걸린다.
돌아오는 길에 감기기운이 있는 신샘님을 위해 감기약을 사왔는데 벌써 잠이 들어있다. 신샘님을 깨워 약을 건네고 알람을 05:30분에 맞추게 한다.
그리고 나는 주몽이 끝난 뒤에 눈을 감았으니 23:30분이 넘어 잠들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