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저주한다 화를 더하신다는 이야기 우리 마음 불편. 격려해주는 말 듣고싶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아무튼 칭찬해야 듣기좋은데 주님은 노상 저주와 분노 말씀. 왜?
우리가 성경 보면서 우리가 사는 현실을 성경 통해 인정받으려 해선 안 돼. 오히려 왜 이렇게 분노하실까 하면서 우리 현실에 뭔가 문제 있구나. 우리 현실 들이밀며 우리 삶 인정해달라 시위하듯 기도. 사실 데모.
하나님이 자꾸 분노한다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 현실이 맞지 않다는 것. 그런데 우리는 우리 현실을 중시.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 우리 현실이 거기 들어있기 때문.
금요일 축구중계때문에 스카이캐슬 결방. 사람들이 드라마 재밌어하는 이유 그 드라마가 우리 현실 보여주기 때문. 드라마 켜나 어딜 보나 우리 현실을 중심에 놓고 모든 세상을 해석. 하나님은 그게 문제있다. 너희들이 아는 현실이 그게 다가 아니야. 너희들이 아는 현실은 심판받아 마땅.
그러나 우리는 우리 현실이 전부라 생각해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 갈등과 싸움이 계속. 참된 신앙은 내 현실 인정해주세요 라고 하나님께 들이미는 것 아니고 우리 현실에 문제 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것. 그게 신앙.
워낙에 우리 주변 많은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이 진짜라고 말하기 때문에 같이 휘둘린다. 스카이캐슬의 아이들 누가 현실인식 제공? 부모들. 의사 아들 아니고 엄마 아들 되고싶다. 너는 의사 되어야 내 아들이야 이런 식의 현실 재구성을 엄마가 해준 것. 명예를 초점에 둔. 그게 바로 이방인의 현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명예 얻을까. 그게 바로 이방인의 삶. 마태복음.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이방인의 특징 매일 뭘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이번 연주회는 무슨 드레스 입을 것인가. 연주회 컨셉 드러내는 수단. 그런데 우리 현실은 다 거기 국한되어 있다 먹고 마시고. 다른 것 없다. 이러한 인간 현실 먹고 마시고 장가 시집 사고 팔고. 그런 인간의 현실에 우리 주님께서는 실재의 세계를 등장시킨다.
실재란 진짜 존재하는 것. 우리는 진짜 존재하는, 객관적 존재의 실체를 모른다. 프랑스 소설가의 말. 우리는 사물을 존재하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존재하는 대로 사물을 본다. 우리가 볼수 있는 시각에 한계가 있다. 우리가 백년 뒤의 미래 볼 수 있음? 대한민국의 천년 뒤..
들을수 있는 한계. 가청범위 넘어서는 소리 못 들어. 최고의 염료 기술자도 사람이 측정하는 색은 제한이 있다. 우리의 존재 형태대로 사물 보는 것. 그 사물의 원래 형태는 모른다. 오직 그 사물 만드신 하나님만 볼 수 있다.
우리는 제한된 청력 감각을 가지고 우리 현실 구성.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되면 잘 살거야. 그건 네 생각이고. 돈 많이 벌면 행복? 천석꾼은 천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가지. 돈 많다고 삶의 고통 경감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도 가난한 만큼 부자는 부자대로. 나만 더 불행해 그런건 없다
에덴 밖 동네 다 똑같다. 누구나 고통. 좌파를 싫어하는 이유. 정의를 실현하면 행복해 지겠거니. 천만의 말씀. 성경 들여다보는 사람 좌파 될 수 없는 이유. 인간에 대한 통찰 없이는 좌파의 아름다운 말에 속아 넘어간다. 성리학. 정의 세우면 나라가 바로선다? 그런 나라 지구상에 없다.
에덴 바깥 동네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진 타락한 품성이 판치는 동네. 그 타락한 인간 제어하는 합리적인 법 필요. 그게 더 현실적. 그런데 너는 의로울 수 있어, 정의로울 수 있어 정의의 촛불을 들자. 그 정의라는 말 추상적. 누구에게는 불의일 수 있다
실현 가능한 법 만들어서. 그게 법치주의 그런데 인간 본성 모르는 사람들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 법 내세운다. 프랑스 혁명 단두대 판결한 사람 다음달에 단두대에 목 날아간다.
그래서 에덴동산 밖 동네는 어디나 힘들다. 김정은은 행복할까? 이설주는? 그렇지 않다. 인간이 사는 현실 말고 실재하는 진짜 세계로부터 이 현실계에 보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언약에 속한 백성들.
실재 세계라는 것은 언약의 세계. 하나님의 말씀이 만들어내는 세계만이 실재 세계.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빛이 있으라 하신 그분만이 .. 우리가 모든 광선 다 볼수 없다
16 우리가 애굽땅에 살았떤 것과 너희가 여러 나라를 통과한 것을 너희가 알며. 왜 주님께서 애굽땅 살던 자들을 애굽지나 여러 나라 통과하게 하심? 애굽과 모든 나라들은 현실계, 이방인의 나라. 무얼 먹고 마시고 입고 어떻게 명예 얻고 출세하고. 이 세상 가치에 충실한 나라
인간 몸 중심의 현실. 그 나라들을 이스라엘이 쭉 통과할 때 비로소 진짜 세계가 침투. 그 충돌을 의도하신 것. 예를들어 모두가 다 먹고 마시고 장가 시집 잘 사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문득 노아를 불러서 방주를 만들라 말씀. 인간 현실 세계에서는 방주 무쓸모.
산중턱에 아무짝에 쓸모없는 방주를 노아가 만들고 있다. 왜 만들고 있느냐? 하나님이 물로 심판하신대. 인간 현실 세계에서는 그렇게 많은 비가 올 리 없는데. 노아의 방주는 언약 세계에서 툭 튀어나온 노아...하나님의 저주를 쓸모없는 방주가 계속 증거.
그 노아처럼, 노아가 만든 방주처럼, 혹은 그 위에 야곱... 그 언약의 열매들이 이 세상 실체가 무엇인지 증거. 그런 과정 통해 언약의 세계가 이 세상 심판함 증거. 언약 주인공 예수 등장시키는 것.
이스라엘 사람들이 금송아지 만들고 기뻐했다. 왜? 만든 이유는? 모세가 산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으니까. 사십일 동안. 그런데 모세 없는데 왜 불안?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 없이는 불안. 이제 누가 우리를 인도하지? 자기를 인도할 어떤 대상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그게 금송아지.
인간은 항상 눈에 보이는 것 따라간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걸 항상 따라가는 이스라엘. 마귀 섬기는 것에 내버려뒀다. 세상이란 것이 하나님 보시기엔 멸망받아 마땅하다. 보이는 현실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는 것 멸망받아 마땅
그래서 아예 우리 자리를 어디에 펼쳐야? 언약의 말씀 앞에 현실 세계에 빠진 나의 실체를 보는 사람. 그 사람은 주여 나는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베드로의 고백이 나온다. 무엇을 더 잘 살아보고 대단한 것 기대하는 것 아니고 나라는 존재는 저주 받아 파괴되어 마땅
그릇 굽는 자가 빚어서 불에 구워낸 그릇이 도공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깨버린다. 그 깨어지기 직전 그릇이 나를 만들어놓고 왜 깨버리냐 따질 수 없다. 그릇 만드는 도공 수준에 이르지 않기 때문에 깨버려야. 본인의 마음에 들도록 나온 그릇만 도공이 인정.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 모든 인간은 하나님 나라와 의에는 안중에도 없다. 다만 우리 현실. 먹고 마시고 입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거기에만 집중. 하나님 보시기에는 니들은 흠결있는 그릇처럼 깨버려야 마땅.
연주회. 피아노 연주 후 본인이 원하는 데 도달하지 못했다 얼굴에 드러남. 그게 예술가의 마음. 하물며 하나님일까보냐. 하물며 하나님은 현실계에 초점두고 사는 우리 자체가 마음에 안들어. 그래서 예수가 오심. 하나님의 흡족한 수준에 이르도록 죽기까지 복종하신 분 예수님.
그리고 그 아들이 흡족하게 이룬 예수님의 성취하신 공로 그 속에 묻힌 사람들 그 외에는 깨버려야 할 그릇. 사실 인간은 다 어딘가에 미쳐있다. 그래서 예수 믿다보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가 왜 예수 믿지? 생각.
우리가 정신 차리면 예수가 아니고 내 욕망 믿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 진짜 예수 믿는 것은 예수가 나를 망하게 하든 흥하게 하든 예수께 내 삶 전체를 맡기는 것. 어떻게 기도하면 나한테 돈을 주시지 않을까. 요새 수입 안들어오는데 헌금 안해서?
자꾸 하나님 구워삶으려는 것은 자기와 자기 현실 믿고 있다는 것. 진짜 믿으면 처분대로 하시옵소서. 망하든 흥하든 처분대로 맡겨놔야. 그런데 그런 믿음 어디? 마지막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 우리는 다 현실에 묶여 현실 보고 살아간다. 아무도. 성도라 할지라도 현실의 늪에서 빠져나올 자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 홀로 구원 완성하시고 구원의 세계 속으로 끌어들이신다. 지가 잘나서 구원될 자 아무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이용해서 득 될 것 없을까. 예수 구워삶는 자기 종교적 잔재주 믿고 재주 피우는 것. 이렇게 기도할까. 예수 이름으로. 먼저 나라와 의를 구하면 채워주시겠지. 자기 욕망 위해 식순 정해놓고.
결국 다 자기 욕망 노리고. 결국 자기 믿는 것. 지금 언약 백성이 애굽땅 지나 여러 나라 통과하며 나타내는 것. 애굽땅 여러 나라 정체가 다 우상이었다는 것. 17 너희가 또 그들 중에 있는 가증한 것과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보았느니라
이스라엘 나라가 그 나라 통과 전까지 그 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우상 아니고 신이라고 섬겼다. 언약 오게 되면 당연했던 현실들이 사실 우상이라는 정체를 드러낸다. 오늘날에는 교회가 우상. 다들 교회 키워보려고. 우리 교회 목사님 설교 잘 하시고. 헌금 얼마 나왔고.
기도할 때마다 우리 교회 잘 되기를 기도. 그 교회와 더불어 자기 자아가 물려있기 때문. 그 잘되길 기도한다 할 때 예산 넉넉하고 사람 많이 모이면 그들 생각에 잘되는 교회. 그래서 언약이 등장하게 되면 당연히 하나님 섬기는 줄 알고있던 그조차도 사실 우상이었단 사실이 드러난다.
그래서 주님은 이스라엘 일으켜 쭉 순례 시키신다. 가는 곳마다 우상. 노아가 방주 짓는 과정 통해 저주받아 마땅한 세상 정체 드러나듯 아브라함 야곱 가는 곳 마다. 오늘날은 성도가 가는 곳 마다 교회가 우상, 목사가 우상 다 드러나는 것
20 여호와는 이런 자를 사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 위에 여호와의 분노와 질투의 불을 부으시며. 언약 백성이 등장하면 이 세상은 물로 심판받아 마땅한 하나님의 분노와 저주의 대상이라는 것 자체가 드러난다.
그래서 그 저주와 분노 앞에서 인류가 쫙 쪼개진다. 어떤 식으로? 그렇다면 우리가 어찌할고. 우리 힘으로는 현실세계에서 빠져나올 자가 없다. 주님께서는 어찌할고 하는 그들 앞에 놋뱀 세우듯 예수 십자가 세운다. 예수 십자가 실패, 저주 자리에 동참시킨다. 예수 저주 속에 합류 .예수님과 함께 죽는다.
우리가 뭘 하게 되면 망하는 게 정상. 연주회 하면 안 되는 게 정상. 그 속에서 망했다 아는 게 중요. 그 망하는 과정 속에서 예수 십자가와 연합. 잘 되버리면. 십자가에 예수와 함께 못박혀 죽고 망한 자로 우리를 비우자.
망한 자리 모두가 멸시하는 그 자리에 있어야 비로소 모든 것이 우리에게 은혜와 축복으로 돌아온다. 언약의 범위와 효력. 택한 백성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현실 세계에 묶여있다. 스스로 못 빠져나온다. 불쑥 현실으바닥이 푹 꺼짐으로 실재 세계와 연결.
성경의 구원받은 분들 특징. 현실계에서 무너진 사람들. 세리 창기 강도 죄인. 노아처럼. 아브라함처럼.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뽑힌 사람들. 그런 사람들만이 이 현실 떠받치는 진짜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 성도는 두 개의 세계에 걸쳐있다.
눈에 보이는 현실 무너질 때마다 진짜 세계를 떠받치는 예수 은혜를 동시에 본다. 요리할 때 지저분해지는 주방. 식탁 위는 준비된 재료.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럴싸. 누군가의 수고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수고가 있기 때문에 깔끔한 현실. 주방은 개판.
그런것처럼 깔끔한 현실은 이면에 십자가 죽으신 예수. 그게 바로 언약의 세계가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
하나님 아버지 눈에 보이는 현실만이 참된 세계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피로 세워진 세계 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