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125:1-5) 천만년 준비된 즉석요리
1.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2.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3.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4.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
5.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오늘 시편 125편 말씀중심으로 <천만년 준비된 즉석요리>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즉석요리는 천만년 준비되었다는 말과는 사실 정반대로 대치되는 말입니다.즉석요리는 영어로 인스턴트인데 라면이나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뷔페가면 우동을 끓여주는데 내가 재료를 담아서 끓여 달라고 하면 끓여준다든지, 아침 식사 뷔페를 가면 달걀 오믈렛 같은 것들은 내가 재료를 선택한대로 달걀 프라이를 해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즉석요리와 반대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밑반찬 같은 것들이라고 봅니다. 좀 더 범위를 확장하면 김치 같은 것이지요. 언젠가 중국 영화를 보는데 멜로 영화예요. 장면만 기억이 나는데 부잣집 젊은 아들이 집에 혼자 남게 됩니다. 시대는 전란이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때였습니다. 그 집의 하녀가 주인집 아들을 위해서 음식을 만드는데 먹을거리가 별로 많지 않으니 밭에 조금 남아있는 오이나 배추를 가져다가 음식을 합니다. 참 인상 깊게 본 것은 중국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 다 그렇게 먹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프라이팬에 기름을 넣고 다 볶아요. 소금 좀 뿌리고 볶아서 예쁜 밥공기 같은 데에다 담아주더라고요. 때로는 한두 가지 음식이 더 있으면 바깥에 놓기도 하는데, 전부 그때 그때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나라에 그 젊은이가 있었다고 하면 어머니가 갖다 줬던지 시장에서 파는 밑반찬들을 냉장고에 넣었다가 그걸 꺼내서 다 먹고 다시 넣어두고 할 텐데. 중국요리는 그냥 그 때 한 가지 내지는 두 가지를 볶아서 밥 위에 얹어서 먹더라고요. 이런 의미에서 즉석요리가 바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과 잘 맞아 떨어지는 하나의 비유적 이미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시편 125편도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제목이 붙어 있어요. 우리가 어제 “밀렵꾼의 사냥터”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눴어요. 성전 바깥의 현실은 전부 지뢰밭이고 덫이 깔려있는 사냥터입니다.
자식과 배우자와 부모님, 그저 내 마음을 걸려 넘어지게 하고, 내 마음에 걱정을 가져다주고 내 마음이 근심의 물결에 잠겨버리도록 하는 밀렵꾼의 덫과 같은 것들이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성전을 중심으로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모습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려워요. 제대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잘 의지하기만 하면 좋은 신앙이고 바른 신앙이 될 수 있는데 의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거예요. 이게 즉석요리 같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 본 시편 105편 16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와요. 아브라함의 역사를 훑어보는 가운데 “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다시 말해 무슨 말인가 하면, 고향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해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옵니다. 그 옛날에 얼마 만에 온 것이겠어요? 메소포타미아 광야를 지나서 그렇게 왔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이 지시한 땅에 현수막 붙여놓고 오곡백과가 풍성한 가운데 우리나라의 추석 같은 분위기에서 아브라함이 환영 받고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그 땅에 기근이 가득한 것이에요. 그런데 그 이유가 창세기에는 나와 있지 않아서, 그냥 아브라함이 실수해서 참지 못하고 애굽으로 도망간 불신앙을 보였다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시편 105편에 해석을 했어요. 하나님께서 일부러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셨다고 해요. 양식을 의뢰할까봐 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겠습니까? 제가 따로 해석할 필요가 없이, 누가복음 12장16-18절에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라고 하는데 거기에 쌓아두는 것까지는 곡식을 보관해야하니 괜찮아요.
그런데 문제가 뭔 줄 아십니까? 그 다음이 문제예요. 19절에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라고 합니다. 이게 문제이고 양식을 쌓아두고 의뢰하는 겁니다. 그래서 쉽지 않다는 겁니다.
여러분의 노후를 위하여 여러분이 진심으로 의뢰하는 것이 뭐예요? 하나님이에요? 정말로 하나님일까요? 아니지요. 제가 알아요. 여러분 얼굴을 안 보고 여러분의 경제적 내역을 살펴보지 않아도 알아요. 몇 푼 되지 않는 통장에 돈이 아닙니까? 그게 바로 의뢰하는 겁니다. 내가 그래도 이만한 땅이 있고, 집은 있고 통장에 이만한 돈은 있으니 그거 의뢰하고 있잖아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겁니다. 통장에 있는 돈을 의뢰하는 것, 주부들이 김치 담가놨다고 든든해서 저녁 뭐 먹을까 걱정할 때 김치 믿고 있는 것이 바로 의뢰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본 중국 하녀 같은 경우는 땟거리도 없을 때에, 주인집 아들에게 저녁밥을 지어주려면 그 자리에서 고민해야 돼요. 도대체 무엇으로 음식을 만들어서 주인집 아들을 먹일 수 있을까?
우리 주부들은 김치 담가놓고 밑반찬 대여섯 개 있어요. 자반고등어 있고, 젓갈 있고, 콩자반, 멸치 볶은 것 있고 걱정할 게 있어요? 달걀 프라이 하나 해주면 되는 것이고 이게 바로 의뢰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은 뭐냐? 즉석요리라는 거예요. 지금 내 옆에 계신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거기서 해결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이미 내 통장에 저금이 되어 있고, 내가 김치를 담가뒀고, 밑반찬을 가득히 냉장고 안에 넣어 두었으니까 걱정 없다가 아니라, 지금 옆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해결책이 나오는 것, 지금 옆에 계신 하나님께 묻고 거기에서부터 응답을 받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거예요. 이러지 않으면 다 덫에 걸려버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연이 아닌 것 같아요. 누가복음 12장에서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를 하시기 바로 전에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11-12절에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시는데 미리 김치 담그지 말라는 겁니다. 미리 밑반찬 마련해두지 말라는 것이에요. 그 때에 하나님께서 성령께서 너희에게 할 말을 알려주실 것이라는 겁니다. 미리 원고지에다 내가 위정자들에게 잡혀갔을 때에 뭐라고 말 할까를 적지 말라는 것이에요.
오늘 본문에도 3절에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라고 합니다.
이 '악인의 규'라고 하는 것이 위정자들이나 권세 잡은 자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통치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될까?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데 그게 즉석요리라는 겁니다.
그러면 미래에 대해서 아무런 염려도 하지 말고 걱정도 말고, 돈이 많이 벌리면 저금을 해야 되는데 저금도 하지 말아야 하느냐? 제가 아까 그랬잖아요. 부자 이야기 할 때 헛간을 더 크게 지어서 들어온 소출을 보관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잖아요. 사업가가 돈이 많이 벌렸는데 은행에 넣어 둬야지. 뭐 길바닥에 돌아다니며 버려요? 그것을 의뢰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게 있기 때문에 내가 산다.’라고 의뢰하지 않는 태도가 어떤 걸까요? 돈이 통장에 들어왔다고 그 돈보고 내가 집을 샀다면 돈을 의뢰한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의뢰하지 않는 태도는 어떤 태도입니까? 그 돈을 의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태도는, 하나님이 집을 주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돈 보고 집사지 마요. 내가 돈이 있다고 차사지 말라니까요. 돈이 있다고 밍크코트 사지 말라는 겁니다. 그게 돈 의뢰하는 태도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저금통장에 들어있는 돈은 내 돈이 아닙니다. 내 저금통장에 돈이 없어도 내가 돈이 없는 게 아니고, 저금통장에 돈이 있어도 있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건 내 돈이 아니니까 의뢰하지 말아요.
그럼 뭘 의뢰합니까? 내 옆에 계신 하나님을 의뢰합니다.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하신 그것이 내 마음에 확신 있게 떠올랐는데, 마침 내 저금통장에 돈이 있으면 그걸로 사요. 그러나 저금통장에 있는 돈 보고 집 사고 차 사고 옷 사고 고급요리 먹으러 가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 이게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고 모든 문제를 바로 내 옆에 계신 하나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들을 내가 받는 거예요. 그것을 오늘 본문에 4절에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라고 하는데 무슨 말입니까?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볼 때 선하신 것이고 하나님이 볼 때 정직한 거예요. '정직하다'는 것은 욥에게서 우리가 배웠잖아요. 아들딸 잘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 믿는 것은 정직한 게 아니에요. 굽어진 거예요. 아들딸이라는 지점을 돌아서 하나님께 가니까. 사업 잘 되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정직한 것 아니에요. 사업이라는 점을 돌아서 하나님께 가니까. 정직한 것이 뭡니까?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 직선으로 하나님과 연결 되는 것이 정직이에요. 이런 사람들에게 선대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선하다고 여기시는 것들을 행하시고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라는 거예요. 즉석요리를 하나님 뜻대로 하시라는 겁니다. 이게 바로 의뢰한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진짜 하나님을 의뢰하게 되면, 저처럼 노후보장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없고, 아무런 장치도 없고 어떤 계획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도, 그냥 하나님이 내 옆에 계시므로 그 분이 보장이 되신다는 것이에요. 제가 돈이 없다고 없는 사람이 아니고, 여러분이 있다고 해서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차피 하나님을 의지해야 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의 돈이 나한테 쓰일 수도 있고 어디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내가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지 알 수도 없는 일일 뿐더러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므로 내 명의의 통장에 돈이 들어와야 될 것을 염려하며 살지 말라는 겁니다. 그냥 하나님 바라보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하나님이 하라는 말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돈은 저절로 들어왔다가 나가고, 나갔다 들어오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왔다 갔다 할 거예요. 즉석으로 요리하세요.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내 인생의 주가를 올리기 위하여 외국어를 공부한다. 외국어 믿고 살려고요? 영어만 잘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죠. 미국가고 영국가고 캐나다 갔더니 정말 쓰레기 치우시는 분들, 쓰레기 치우시는 걸 무시하는 게 아니고 굉장한 지적 능력이 필요한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영어 다 잘하세요. 심지어는 역에서 노숙자들도 영어 박사들이에요. 영어 잘해도 노숙자 되더라고요. 세상사가 내가 외국어 한다고 잘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뭐 교민들의 애들은 다 출세했겠네. 한국 사람의 모습으로 영어 잘하니까. 그런데 평생의 시간을 거기에 꼲아 박는 거예요. 예를 들어 영어 하나도 못하는데, 영어를 해야 될 일을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면, 영어 공부 필요한 만큼 그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서 하게 하실 거예요. 내가 이 세상을 위하여 따로 준비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라서 내게 맡기실 일이 있다면 영어가 아니라 불어라도 하게 하실 것이고 지혜를 주실 거예요.
예를 들어 모세가 애굽에 갑니다. 애굽 왕을 맞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킬 수 있는 어떤 능력도 없어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지팡이 하나 주십니다. 지팡이 하나 들고 80된 노인이 대제국의 왕인 바로 앞에 서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겁니다. 준비하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냥 앞에 섰는데 옆에 계신 하나님이 다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요셉이 준비 된 자가 아닙니다. 애굽 말을 했겠어요? 노예로 잡혀갔어요. 그곳에서 열심히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합니다. 그리고 옆에 계신 하나님이 꿈 해석을 가르쳐 주셨어요. '꿈 해석을 하라'는 바로 왕 앞에서 요셉이 뭐라고 하냐면 '꿈 해석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라고 했습니다. 꿈 해몽을 위해서 우리 동양의 주역을 공부했거나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냥 옆에 계신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겁니다. 이게 즉석요리예요.
그럼 어떤 분은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하나님을 그 때, 그 자리에서 찾는 것이 즉석요리라면, 김치처럼 좀 오래 묵고 발효된 깊은 맛이 하나도 없지 않냐? 여러분 모르는 소리 하고 계시는 거예요. 내가 지금 물어서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하나님께 답을 얻고, 말씀을 듣고 지시를 받는 거지만 하나님은 천만년 준비하신 것이라는 거예요. 내게 즉석요리이지 하나님은 태초부터 내 삶을 계획하시면서, 내 입에 담아줄 말씀 준비하시고 내 인생의 걸음걸음을 준비해 두셨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중국요리도 아니에요. 묵은지 같이 오래 오래 하늘에서 발효된 것이 지금 이 땅에서 즉석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단지 내 마음이 내가 김치를 담가뒀듯이 김치를 의뢰하고 밑반찬을 의뢰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냥 그 자리에서 하나님만 계시면 되는 거예요.
언젠가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가요? 중국 사람들이 이민 갈 때 가져가는 필수품이 통나무 모양의 도마하고 직사각형 모양의 칼만 있으면 된대요. 스페인으로 갔든지 미국으로 갔든지 남미로 갔든지 그 지역에서 나는 음식을 가지고 그 지역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먹어 본 뒤에, 그 재료를 가지고 중국 음식으로 만들어서 그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하는데 칼하고 도마만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거기 하나 더 붙이면 프라이팬.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에 필요한 것은 통장이 아니고 외국어가 아니고 기술과 능력이 아닙니다. 그런 것 필요하면 지금부터 시작하게 하셔도 다 돼요. 하나님이 지금부터 시작하게 하셔도 얼마든지 앞서서 준비한 사람보다 더 잘하게 하실 수가 있어요. 그럴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유학 갔을 때 고전어 시험을 봐야하는데, 제가 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하다 보니까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를 같은 구간에 시험을 보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라틴어 수업 시간에 들어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수업시간에 공부하는 인쇄물을 받아다가 혼자 공부를 했어요. 두 학기 내지 세 학기가 걸려야 시험을 보는데, 그 교재 가져다가 제가 2개월 동안 혼자 봤어요. 하여간 알아두세요. 외국 사람들이 받는 성적 훨씬 위로 나왔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이야기해요. 어학에 자질이 있다고? 아니거든요. 무슨 어학에 자질이 있어요? 자질이 있는데 이렇게 영어를 못합니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 많았어요. 카투사였고 미국에서 살았고 캐나다에서 살았죠. 영어를 잘하기 위한 조건으로는 저보다 좋은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영어 안했어요. 미군들에게도 한국말을 가르쳐줬어요. 그때부터 그런 믿음은 있었어요. 영어를 반드시 해야 될 일이 생긴다면 그때 하나님이 영어하게 하셔도 된다. 충분히 할 수 있다. 뭣 하러 그걸 준비해둬요? 준비해둔 것 때문에 곁길로 갑니다.
오늘 마지막 절에 뭐라고 하십니까? 5절에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라고 합니다.
이 '자기의 굽은 길'이 어떤 길인지 아십니까? 내가 영어를 준비했다고 내 스스로 준비한 토대 위에 인생을 설계하는 겁니다. 돈 벌어놓고 통장 위에 내 노후를 설계하는 것이에요. 이게 다 굽은 길이라는 거예요. 부자가 곡식 많다고 곳간에 들여놓은 다음에 내 영혼아 즐기고 먹자 곳간의 곡식을 봐라. 그 날 밤에 하나님이 데려가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의뢰한다는 것, 이것은 천년 묶은 즉석요리를 해먹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내 옆에 계신 하나님은 천만 년 동안 준비하고 계신 것들이 있어요. 그러나 내 마음에는 이 땅에서 의뢰하고 의지하지 마요. 통장도 의지하지 말고, 김치도 의지하지 말고, 내 외국어 영어 실력 의지하지 말고, 내 자격증 의지하지 말아요. 지금 옆에 계신 하나님께 물어요. 이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겁니다. 내 통장에 돈이 들어오거나 말거나 쳐다보지 마요. 그 통장에 있는 돈 때문에 차 사고 옷 사고 집 사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는 것을 받는 거예요. 뭐라고요? 하나님이 선하게 여기시는 것들을 주세요. 돈이 있다고 내 마음대로 사지 마세요. 이게 굽은 길로 가는 겁니다.
‘천만년 묶은 즉석요리’
옆에 하나님이 계시면 됐어요. 여러분의 이 땅의 삶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은 그 분에게서 나옵니다. 믿으세요. 출애굽 사건에서도 지팡이 하나 가지고 간 이유는 옆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요셉이 총리까지 된 것은 준비 된 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을 모시는 분이었기 때문에 총리가 된 것이에요. 아브라함이 양식을 의뢰할까봐 약속의 땅 가나안에 기근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음식을 주는 것이지, 이 땅에 난 곡식이 너를 살리는 게 아니다.’라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이에요. 이 간절한 아버지의 소원 ‘필요한 것은 내가 줄게, 네 옆에 있는 나를 의지해라.’라고 하는 이 하나님의 음성을 오늘 아침에 깊이깊이 받아들이세요.
그러기 위해서 이 땅을 의뢰하는 마음을 끊어야 되잖아요. 주님의 십자가만이 가능하게 해주십니다. 통장에 돈이 없으면 안타깝고 있어서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이 의뢰하는 거예요. 다 죽으세요. 내 실력에 대해 십자가에서 죽고, 내 재정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십자가에서 죽고, 내가 아는 인맥에 대해 십자가에서 죽으세요. 그리고 오직 옆에 계신 하나님만을 실제로 만나시고 그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의지의 삶, 참된 의뢰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천만년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에게 때마다 필요한 장소에서 즉석요리로 허락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앞에, 온 마음을 드려 의지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고, 그러기위해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이 세상의 무엇을 의뢰하고 싶은 내 마음이 온전히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