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 속 부처님 이야기] 15. 율장의 정신 ② 갈마의 필요성
갈마는 승단 대소사를 의결하는 제도
승단 내 갈등 예방…화합으로 이끌어
승가 생활의 기본은 화합과 참회의 정신이라고들 한다. 옳은 말이다. 자기 자신의 수행은 물론이거니와, 그 수행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생류를 이롭게 하는 길을 걸어가겠노라 위대한 원을 세운 출가자들의 삶에 있어 어찌 서로 다투고 탓하며 스스로의 잘못된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승가공동체야말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 그리고 자발적인 참회로 운영되는 평온한 공동체일 것이라고, 아니 그래야 한다고 우리는 기대하곤 한다.
하지만, 공통된 인식과 목적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라도 실제로 함께 생활하다 보면 이런 저런 일로 의견 충돌을 일으키기 마련인 것 같다. 서로 대화를 통해 쉽게 의견 조정에 이르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사소한 일로도 갈등이 커져 공동체의 화합을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율장을 보면, 초기의 승가공동체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적지 않게 발생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초기 승가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풀어 나갔던 것일까? 우리는 ‘갈마(磨, kamma)’라는 승가 고유의 회의방식을 통해, 세간과는 다른 승가공동체 특유의 문제 해결방식을 엿볼 수 있다. 갈마는 일정한 회의를 통해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 결정하는 방법인데, 승가의 중요한 정기행사를 비롯하여, 구족계 수여나 특별한 소임을 맡게 될 지사(知事)비구의 선출 등, 크고 작은 모든 결정에 사용된다.
특히, 출가자들이 율을 어기거나 혹은 그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을 때, 갈마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명확한 절차나 판단 기준 없이 적당히 내려진 판결은 구성원들 사이에 불만을 조성하고, 이는 곧 승가에 불화합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사건의 내용에 따라 적용 가능한 다양한 징벌갈마나 멸쟁갈마가 마련되어 있다.
보통 칠멸쟁법(七滅諍法)이라 하여 일곱 가지 방법으로 승가 내의 다양한 트러블의 해결이 시도되는데, 어떤 방법이든 그 목적은 승가의 화합 유지와 본인의 자발적인 참회의 유도이다. 잘못을 저지른 자에 대한 처벌을 우선시하는 세간의 법률과는 사뭇 다른 잣대이다.
이 갈마의 기본은 현전비니(現前毘尼)이다. 이는 칠멸쟁법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쟁사해결 방법으로, 세간법으로 표현하자면 법정 성립의 기본 요건이라 볼 수 있다. 승가(僧伽)현전, 법(法)현전, 율(律)현전, 인(人)현전의 네 가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갈마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승가현전이란 쟁사 판정을 위한 갈마를 하는 곳에 현전승가, 즉 동일한 경계 안의 모든 스님이 모이는 것을 말한다. 쟁사를 판정하는 주체는 바로 이들이며, 이들의 만장일치로 판결을 보게 된다.
법현전과 율현전이란 이 두 가지에 근거하여 쟁사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교법에 반하는 판정은 무효이며, 근거한 율의 조문은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 인현전이란, 쟁사를 일으킨 원고측 비구와 피고측 비구가 모두 출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이라도 결석한 자리에서는 쟁사 판정을 할 수가 없다. 반드시 양쪽 비구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판단해야 하며, 쟁사를 일으킨 당사자들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갈마나 그 판정 결과는 무효임을 의미한다.
이 현전비니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각 쟁사의 성격에 맞는 여법갈마의 엄격한 실행을 통해 범계자의 잘못을 정확히 판별해 내어 이를 알려주고, 또 이를 스스로 인정하고 참회하도록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승가 내의 각종 갈등을 막고자 한 것이다. 스스로 혹은 주위 사람들이 납득하지 못한 채 내려진 판결이 승가 내부에 분열을 만드는 불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여법갈마’의 실행이 곧 승가화합에 이르는 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계속〉
이자랑
(도쿄대 박사)
[출처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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