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과 물리학] 24. 색(色)의 의미
- 색은 실재하지 않는 ‘관찰자의 아집’-
“…색즉시공 …무색…”이라고 경전이 설할 때 분별지로 경전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我)’에 집착한 나머지 객관적 실체를 인정하고 “이것이 색(色)이요”하고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리를 얻고자하면 상(相)을 버리라고 <금강경>은 설하고 <반야심경>은 오온이 공한 것을 반야로 비추라고 설하는 것이다. 색(色)의 의미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고 사람의 아집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절대시공간을 부정하고서 사람마다 즉 ‘아(我)’마다 자기가 처한 상태에 따라 물질과 시공간을 보게 되고 이렇게 본 물질과 시공간 중 누가 본 것이 더 옳다는 것이 없고 다 옳다는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 상대성이론이다. 객관적 시공간도 없고 객관적인 물리현상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가 보는 시공간과 물질이 존재할 뿐이다.
상대성이론이 나오기 전까지 물리학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은 시공간을 ‘색’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질이 존재하든 말든 텅빈 공간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이 공간중에 별들이 점점히 흩어져 있고 물질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물질이 실체이고 이 실체에 모양이 있고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시공간에도 모양이 있고 물질과 연결되어 있다. 물질을 떠나 시공간을 생각할 수 없고 시공간을 떠나 물질을 생각할 수도 없다. 또한 시공간 중에서 일어나는 물질의 운동과 변화는 그것을 경험하는 ‘아’를 떠나 생각할 수도 없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은 태양이 지구를 잡아당기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설명하는 것이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물론 만유인력의 법칙은 잘 맞는다. 한때 완벽한 이론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로 잘 맞는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의 설명은 다르다. 누가 지구를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다. 공간의 모양이 생긴대로 지구는 자유롭게 운동한다. 공간의 모양이 그렇게 생겼기에 지구는 태양주위를 돌 뿐이다. 그리고 공간의 모양을 그렇게 만든 것은 태양이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평평하게 잘 닦여진 바닥에서 공을 굴리면 공은 똑바로 나간다. 이 바닥에 불룩 솟아나온 산이 있다면 공은 산주위를 돌아서 굴러갈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면 무슨 힘이 있어 공을 산의 중심에서 밀어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반대로 오목한 골이 있다면 공은 오목한 쪽으로 굴리는 것처럼 굴러갈 것이다. 공은 자유롭게 진행하지만 공이 운동하는 공간의 모양에 따라 여러가지 모습으로 운동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지만 시공간은 모양을 갖고 있다. 이 모양은 물질이 만든다. 태양정도의 질량을 가진 별이라면 빛이 지나가는 길도 휘어지게 만든다. 지구상에서 빛을 쏘아 보내면 직진한다. 그것은 지구주위의 공간이 평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양이나 그보다 더 큰 질량을 가진 별주위로 빛이 진행할 때는 진로가 휘어진다. 그것은 태양이나 별들이 주위의 공간을 휘어놓았기 때문에 빛을 자유롭게 진행하지만 그 진로가 휘어지는 것이다.
또한 시간의 길이도 중력이 강한 곳과 약한 곳 사이에는 다르게 나타난다. 질량이 큰 별주변에서 진행하는 시간의 길이는 질량이 작은 지상에서 진행하는 시간의 길이와 크게 다르다. 별에서 진행된 시간이 1초라할지라도 지구상에서는 몇년에 해당할 수도 있다. 시간과 공간을 합쳐서 말하는 시공간이 휘어졌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물질이 시공간의 모양을 만들고 시공간의 모양에 따라 물질의 운동이 결정 되기에 물질과 시공간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질만을 색이라고 보는 것은 그렇게 보는 사람의 아집에 불과한 것이다. “…색즉시공…무색…” 이라고 경전이 설할 때 이것은 일차적으로 “사리자야, 너는 무엇을 색이라고 하느냐? 그것은 네가 만든 것이다.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하고 말하는 것이다.
김성구 <이화여대 교수.물리학>
[출처 : 부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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