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없는 여름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여름은 수박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수박의 참맛은 여름이 있음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만큼 수박은 뜨거운 햇빛을 좋아한다. 그런데도 수박은 차가운 음식이다.
뜨거운 햇빛을 좋아하여 당연히 따뜻한 음식이어야 할 것 같은데도 그와는 전혀 다르게 아주 시원한 기운을 갖고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 뜨거운 여름날 시골의 사촌형님을 따라 밭에 나가 어른 엉덩이만한 수박을 따서 돌에 깨뜨려 먹던 맛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어린 마음에도 뜨거운 햇빛에 달궈진 수박이 왜 그렇게 시원한지 신기하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
수박이 시원한 것은 단지 온도가 차가운 것만이 아니라 몸을 차갑게 하고 이뇨를 촉진시키는 작용이 있어 더욱 시원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수박은 신장병이나 고혈압 같은 병으로 인해 생기는 부기를 가시는 데 효과가 탁월하고, 또한 수박씨도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보통 수박을 먹으면 씨를 뱉어내는데, 가능하면 씨까지 같이 먹는 게 좋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씨를 모아 말린 후 가루로 만들어 먹어도 좋다고 했다.
수박은 고려말 몽골에 귀하했다가 몽골의 장수로 고려로 내려왔던 홍다구(洪茶丘)라는 사람에 의해 개성에서 처음 재배되면서 국내에 전해졌다. 그러다 조선시대에 와서 보편화되었는데, 원래 수박은 고대 이집트 그림에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약 4천 년 전부터 재배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 토종 수박으로는 무등산수박이 있다. 이는 보통 수박과 다르게 줄무늬가 없고 그 맛이 아주 좋아 대궐 진상품으로 쓰였다고 하며 현재 까지도 많이 재배되고 있는데, 지역 특산물로 인기가 좋아 아주 비싼 값으로 팔리고 있다. 수박은 호박과 같은 박과에 속하는 일년생풀로 보통 과일로 알려져 있지만 채소에 속하는 밭 작물이다. 보통 참외와 함께 대표적인 여름 과일이라고들 말하지만 참외와 마찬가지로 과일이 아니라 채소라는 것을 알아두도록 하자.
수박은 엄지손가락만한 새끼 때부터 특유의 줄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꼭 아기에게 어른의 턱수염이 나 있는 것처럼 앙증맞기 그지없다. 이런 수박을 보면 어린이들이 아주 좋아라 한다. 그래서 수박을 키우면 어린이들에게 아주 좋은 자연 교육의 소재가 된다. 그렇게 앙증맞은 수박을 정성껏 크게 키워 자기 얼굴보다 큰 놈을 아이들이 두 팔로 들어올리며 입을 크게 벌려 신기해하는 모습 또한 자연 그 자체다.
재배법
수박은 키우기가 꽤 까다로운 편이다. 거름도 많이 필요하지만 수박의 열매를 제대로 키우려면 꽤나 정성이 들어가야만 한다. 또한 수박은 포기마다 잘해야 두세 개 열매를 거둘 수 있을 뿐인데도 넝쿨을 뻗으며 자라기 때문에 자리도 많이 차지하여 텃밭농사에선 그야말로 맛보기 정도로밖에 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농사의 재미를 한껏 즐길 수 있는 작물이기도 하고 아이들의 자연 교육에도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으니 꼭 한 번 권해볼 만한 농사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밭 만들기
수박밭은 보통 평이랑으로 1m 20㎝ 정도되는 폭의 두둑을 만든다. 햇빛을 잘 받아야 하므로 일조량이 풍부한 곳에다 자리를 잡고 밑거름을 두텁게 깔아 흙과 함께 갈아놓는다. 질소질 비료를 너무 많이 주면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튼실하게 맺지 못하므로 반드시 인산과 가리 비료가 골고루 들어가야 한다. 깻묵과 쌀겨와 숯가루(재)를 2:1:1 비율로 섞어 뿌리면 좋다.
거름을 흙과 함께 갈아 놓은 후 볏짚을 두텁게 덮어준다. 볏짚이 없으면 신문지를 두세 장 두께로 깔아주어도 괜찮다. 이는 흙덮개용으로 제초를 위한 것도 있지만 나중에 열매가 흙에 닿지 않게 하여 벌레의 공격이나 물기에 의해 물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씨뿌리기와 모종 키우기
텃밭농사에서는 되도록 종묘상에서 모종을 사다 심는 게 좋다. 스스로 씨앗을 뿌려 모종을 키울 요량이면 4월 중순쯤 산 흙으로 준비해둔 상토를 포트에다 담아 심고 매일 물을 준다. 포트는 되도록 큰 것이 좋은데, 일회용 종이컵이 그 중 무난하다. 그리고 한 달 가량 모종을 키워 옮겨심는데, 사방이 1평방미터 되게 넓직하게 심는다.
수박 재배표
수박 재배표
구분
양력
절기
음력
씨뿌리기
4월 중하순
곡우
4월, 입하 전 3~4일
옮겨심기
5월 중하순
입하
―
거두기
8월 상순~하순
입추~처서
―
연작피해
2년 후 윤작
혼작작물
참외, 토마토, 감자, 오이
윤작작물
양파, 마늘, 시금치, 상추
박과
가꾸기
수박 열매는 아들가지에서 맺히게 해야 제대로 큰다. 넝쿨이 서너 개 뻗으면 어미가지는 끝을 잘라버리고 아들가지를 두세 개만 키운다. 수박은 포기당 두 개나 많아야 세 개 정도를 키워야 제대로 클 수 있는데, 아들줄기에서 10마디 정도 되는 곳의 열매를 키우는 게 좋다. 꽃이 피면 그렇게 정해진 곳의 것만 놔두고 나머지 꽃은 다 따버린다. 그렇게 해야 영양분이 원하는 열매로 몰려 수박이 튼실하게 맺히게 된다.
모종 어미순지르기
아들가지 순과 꽃지르기. 더불어 어미가지에서 새로 나는 순도 질러준다.
꽃을 피우고 엄지손가락만한 수박 열매가 맺히기 시작할 때쯤 되면 잎과 넝쿨이 무성하게 자라게 되는데, 이때부터 잎사귀 사이로 올라오는 순은 보이는 대로 잘라주어야 한다. 순지르기를 하면서 더불어 풀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같이 해준다. 순지르기와 제초는 거름 다섯 번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작업이라는 것을 명심하고서 열심히 해주어야 한다.
위의 두 작업만 제대로 열심히 해주면 수박이 아주 탐스럽게 쑥쑥 크게 자란다. 열매가 자랄 때는 꼭 풍선을 부는 것같이 눈에 띄게 빨리 자란다. 그러나 위 작업을 게을리 하면 수박은 항상 그 모양 그 꼴로밖에 자라질 않는다. 다른 열매 채소들이 대부분 그렇기도 하지만 참외와 더불어 특히 수박은 넝쿨치기와 순지르기 작업을 게을리 하면 원하는 만큼의 수확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웃거름을 주는 일인데, 꽃이 필 때쯤은 반드시 준다. 이때는 질소질 비료보다 인산·가리 비료가 더 중요하다. 쌀겨와 숯가루를 포기 주변에 한 주먹씩 뿌려주면 된다. 물론 잎이나 넝쿨 성장 상태로 보아가며 부족하다 싶을 때는 질소질 비료도 보충해주어야 한다.
열매가 맺히면 밑의 흙에 닿지 않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볏짚이나 신문지를 충분히 깔아주었어도 열매에는 따로 받침을 해주는 게 좋다. 옛날에는 어머니들이 머리에 짐을 이고 갈 때 쓰는 똬리 같은 것을 만들어 받쳐주었는데 요즘은 종묘상에서 스티로폼으로 만든 좌대라는 것을 판다. 이것을 받쳐놓으면 전혀 수박에 습기가 베질 않아 모양이 아주 예쁘게 자란다. 수박은 병해충이 많이 끼는데, 마찬가지로 농약으로 해결할 생각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게 좋다.
우선은 작물이 자체의 힘으로 자라도록 기다리고 또 어느 정도 병충해의 피해에 안달을 내지 않는 여유도 필요하다. 그리고 준비해둔 목초액을 200배로 희석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뿌려주든가 그도 안 되면 현미식초를 같은 배수로 희석하여 뿌려주면 좋다. 수박은 가뭄에 강하므로 가뭄 걱정은 특별히 할 것은 없지만 너무 심하다 싶으면 초저녁에 물을 조루에 담아 아주 듬뿍 뿌려준다.
거두기
수박은 열매가 맺은 후 한 달에서 한 달 반이면 수확할 수 있는데, 손으로 두드려보아 경쾌한 소리가 나면 제대로 익은 것이다. 그러나 너무 오래두어 꼭지가 마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쓰임새
수박은 냉장고에 넣어 차게 먹어야 제맛이 난다. 냉장고가 드물었던 옛날의 손님들은 한 손엔 수박 한 통, 다른 손엔 얼음 한 통을 새끼줄에 꿰어 방문하는 게 여름날의 한 풍경이었다. 그러면 집주인은 한 손엔 바늘, 다른 손엔 망치를 들고와 얼음을 깨고, 숟가락으로 박박 긁은 수박에 설탕을 듬뿍 뿌린 화채를 만들어 내왔다. 요즈음처럼 수박이 달지 않아 설탕을 뿌렸고, 게다가 냉장고도 없어 얼음이 필수품이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껍질은 고스란히 모아서 겉껍질은 벗겨내고 푸른 속껍질을 나물로 무쳐 저녁 반찬으로 썼으니 요즘처럼 수박 쓰레기도 별로 없었다.
지금은 설탕을 뿌리지 않아도 아주 달고 또 냉장고에 넣었다 먹으니 화채도 필요없이 칼로 잘라 하모니카 불 듯이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먹을 것이 풍부한 시대인지라 속껍질로 나물 무쳐 먹는 것은 고사하고 빨간 속살이 눈에 띌 정도로 남겨서 버리니 고생고생하며 농사지은 농부의 땀이 욕보는 시절이 되었다.
자신이 직접 지은 수박이니만큼 속살을 남기지 않고 소중하게 먹는 것도 중요한 농사의 한 과정이라 생각하고 더불어 씨도 먹기 귀찮다고 퉤퉤 내버리지 말고 꼭꼭 씹어 먹도록 해보자. 이도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이 될 것이다. 좀더 적극성을 발휘하여 속껍질로 나물 무쳐 먹는 것도 옛날을 생각하며 한 번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오이 무침에 못지않은 그 맛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게다가 여름에 넘쳐나는 수박 쓰레기를 던다는 생각으로 시도해보면 아이들에게도 좋은 환경 교육이 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수박 (도시 사람을 위한 주말농사 텃밭 가꾸기, 2010.6.5, 도서출판 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