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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제가 요구되는 추가 사례들(1-6)
죄를 알면서도 침묵하거나 숨기면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이 용서받는 첫걸음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죄를 인정하고 바른 행동을 취할 때 비로소 회복과 용서를 받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신앙 생활에서 정직과 책임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웁니다.
1만일 누구든지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서도 증인이 되어 그가 본 것이나 알고 있는 것을 알리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의 죄를 져야 할 것이요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2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들 곧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를 만졌으면 부지중이라고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을 것이요 3만일 부지중에 어떤 사람의 부정에 닿았는데 그 사람의 부정이 어떠한 부정이든지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허물이 있을 것이요 4만일 누구든지 입술로 맹세하여 악한 일이든지 선한 일이든지 하리라고 함부로 말하면 그 사람이 함부로 말하여 맹세한 것이 무엇이든지 그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그중 하나에 그에게 허물이 있을 것이니 5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 6그 잘못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속죄제를 드리되 양 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1-6)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거룩한 삶이어야 합니다. 속죄제를 드리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증인의 자리에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에 대해 진실을 말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부정한 짐승이나 가축의 시체를 만진 경우 또 부정한 사람과 닿은 경우에도 속죄해야 합니다. 설사 부지중이라 해도 부정한 것들로 인해 몸이 더럽혀졌기 때문입니다.
(1) 네 가지 사례들(1-4)
속죄제가 요구되는 네 가지 구체적인 범죄 사례들이 제시됩니다. 이것들은 어느 정도 고의성이 있는 죄들입니다. 첫 번째는 ‘저주하는 소리를 들은 증인이지만 그것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경우입니다. ’저주하는 소리’, 즉 ‘콜 알라’는 기본 의미가 ‘맹세/서약의 소리’인데, 맹세나 서약의 위반 시 자동적으로 저주가 동반되기 때문에 ‘저주의 소리’로 번역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맹세의 소리’ 혹은 ‘저주의 소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선 이것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상대방을 저주하는 행위와 관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그런 저주나 맹세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4절에서 보듯이 그런 저주나 맹세가 홧김에 혹은 경솔하게 만들어질 때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합니다. 한 가지 견해에 의하면, 이것은 물적인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범인을 앞에 두고 맹세와 저주를 선언했는데, 그것을 목격한 증인이 누가 범인인지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가 어떤 사람의 저주하는 소리를 들은 증인이지만 침묵하고 있다면 그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다른 견해에 따르면, 이것은 ‘맹세의 부름’, 즉 법정에 출두해 ‘맹세하라는 소환 명령’으로 해석됩니다. 이때 ‘콜’은 누군가를 불러내는 명령입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은 법정에 나와 맹세를 하라는 명령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는 그런 소환 명령을 듣고서도 증인으로서 어떠한 증언도 거부하고 입을 다뭅니다. 그가 심약하거나 겁이 많아 법정 출두를 거부한 상황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범죄 행위로서 그는 허물(죄책)을 입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그 ‘맹세/서약’의 거부로 인한 저주가 그에게 수반됩니다. 만일 나중에 그가 잘못을 깨달아 자복한다면 속죄제를 드리고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2-3절은 부정한 것과의 접촉입니다. 한글개역(개정)이나 어떤 영어 성경(NTV)은 단순히 무심코 부정한 것을 만지는 상황으로 읽힙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간단치가 않습니다. 우선 히브리어 ‘네을람’ ‘부지중’보다는 ‘감추어졌다’(be hidden)가 더 나은 번역입니다. 여기서 ‘감추어졌다’가 일이 발생된 후 망각한 것을 지시하는지, 아니면 일이 발생될 때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지시하는지 애매합니다. 만일 후자라면, ‘비쉐가가’와 비슷한 의미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네을람’은 한글개역(개정)처럼 알지 못한 상태에서 부정한 것과 접촉한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심코 죽은 가축의 사체를 만지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이 상황은 본인이 의식하고 있는 가운데 부정한 것과 접촉한 후 그 일이 ‘잊힌’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RSV: ESV: Hartley와 Milgrom). 2절은 그 사례를 설명합니다. 송장이나 짐승 사체를 치우는 일은 피할 수 없는 부정 결과의 접촉 상황입니다. 따라서 3절의 부정한 사람과의 접촉도 동일한 상황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월경한 여자가 앉은 자리에 피치 못하게 접촉하는 경우입니다(레 15:25-27). 이것은 당일에 정결 절차를 통해 깨끗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는 그 규정을 무시함으로써 날짜가 지나 결국 그 사실을 망각합니다(Dillmann). 따라서 이 망각은 고의성이 배제되지 않으며, 그는 그것에 대한 허물(죄책)을 지닙니다(2-3). 나중에 그는 그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때 그 죄를 뉘우치고 자복한 뒤 속죄제를 바쳐야 합니다.
4절은 성급하고 경솔한 맹세로 인한 잘못을 가리킵니다. 역시 고의성이 있다. 맹세는 악의가 없었다 해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자신이 지키지 못할 맹세를 한다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서약을 준행하지 못한다면 그는 여호와에 대한 약속을 위반하게 되며 또한 이웃과의 관계를 어긋나게 할 것입니다(참조. 신 23:22-23). 자신의 충동적인 맹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면 즉각 하나님과 공동체 앞에 그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1-4절의 사례들에서는 레위기 4장과 달리 모두 ‘자복’의 요구가 명확히 진술되고 있는데(5), 4장에서는 그런 요구가 없었습니다. 밀그롬은 4장의 무의식중에 금지 명령을 어긴 죄와 달리 이것이 다분히 고의성이 있는 죄이기 때문에 자복이 요구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1-4절의 고의성은 어쩌면 심약하거나 성격의 문제로 인한 것일 수 있으며, 악의적이라 볼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 죄들은 금지 명령의 위반보다는 훨씬 경미합니다. 필자의 견해로는 4장의 더 심각한 금지 명령 위반의 경우 속죄제를 위해 회개가 자동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에 5:1-5의 사례들에서 ‘자복’이 명시적으로 요구된 이유는 그 죄가 심각한 금지 명령 위반이 아니어서 회개와 자복의 과정을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즉, 어떠한 죄도 회개와 자백은 필수적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1-4절은 어떤 경미한 고의적 범죄들에 대한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모본들로 볼 수 있습니다.
(2) 속죄제의 요구(5-6)
이러한 죄를 위해 바치는 표준적 속죄 제물은 암양과 암염소입니다. 물론 제물로 바친 양은 암수 상관없이 보통 1년생이었습니다. 이것은 앞서 4장에서 평민을 위한 속죄제였습니다. 따라서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족장과 제사장은 4장에 해당하는 짐승, 곧 족장은 숫양을 그리고 제사장은 수소를 바쳤을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가장 대중적인 평민의 속죄제만을 명시한 이유는 분명 이어지는 평민을 위한 완화된 양보안을 규정하기 위함입니다. 족장과 제사장에게는 그러한 약식 속죄제가 적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완화된 속죄제(7-13)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재물의 크기에 좌우되지 않음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아시며, 진심 어린 회개와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에게 언제나 용서의 길을 열어 두셨습니다. 이는 물질적 조건을 넘어서는 마음과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음을 상기시켜줍니다.
7만일 그의 힘이 어린 양을 바치는 데에 미치지 못하면 그가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여호와께로 가져가되 하나는 속죄 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8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죄 제물을 먼저 드리되 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 끊고 몸은 아주 쪼개지 말며 9그 속죄 제물의 피를 제단 곁에 뿌리고 그 남은 피는 제단 밑에 흘릴지니 이는 속죄제요 10그 다음 것은 규례대로 번제를 드릴지니 제사장이 그의 잘못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11만일 그의 손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면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 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 12그것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한 움큼을 가져다가 제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속죄제라 13제사장이 그가 이 중에서 하나를 범하여 얻은 허물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그 나머지는 소제물같이 제사장에게 돌릴지니라(7-13)
죄를 지은 자가 속죄제를 드릴 때, 양을 바칠 형편이 안 되면 비둘기 두 마리를 대신 드릴 수 있다는 규례를 다룹니다. 한 마리는 속죄제로, 다른 한 마리는 번제로 드려지며, 이를 통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이가 속죄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심을 보여줍니다.
(1) 비둘기 속죄제(7-10)
양보안으로는 가난의 정도에 따라 비둘기(7-10) 또는 밀가루의 소제(11-12)가 제시됩니다.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 두 마리를 바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속죄 제물로 바치고 다른 하나는 번제물로 바치는데, 번제가 요구되는 이유는 속죄제 중 제단에서 태우는 내장과 기름 부위를 그것으로 대신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비둘기는 그것들이 너무 작아 태우지 않고 버리기 때문입니다. 먼저 속죄제의 비둘기를 잡아 피를 제단곁에 ‘뿌린다’(히자). 이어서 번제의 비둘기를 잡아 피를 제단 아래 ‘흘린다’(마짜). 네 발 짐승의 경우에는 사발에 남은 피를 제단 밑에 ‘쏟았는데’(샤파크) 새는 몸통에서 피가 약간 나오기 때문에 흘려서 처분합니다. 속죄 제물의 비둘기 피를 처리하는 동작이 ‘뿌리’인 것은 앞서 말한 대로 그것이 분명히 제단의 오염을 청소하기 위함인 것이 분명합니다. 비둘기를 잡는 방법은 1장의 번제를 참고하면 됩니다. 두 새의 몸통을 처리하는 방법은 언급되어 있지 않은데, 유대 전승은 번제물은 제단 위에서 태우고 속죄 제물은 제사장 몫으로 돌리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2) 밀가루 속죄제(11-13)
비둘기도 감당하기 어려운 극빈층은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의 소제물을 속죄 제물로 대체할 수 있었습니다. 밀가루 속죄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드리기보다 자신의 죄를 위해 드리는 소제물이기 때문에, 기름과 향은 추가하지 않았습니다. 피가 없는 제물임에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재량으로 곡식에 피의 효과를 부여하시면서 극빈자들에게 속죄를 위한 마지막 방편을 허용하셨습니다. 이로써 모든 사람이 반드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를 정직하게 고백하고 속죄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마음속 깊이 자리한 죄를 인정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완전한 속죄의 은혜를 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죄를 정직하게 바라보며 회개와 속죄의 자세로 나아갑시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기다리시며, 회개를 통해 놀라운 은혜를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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