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말 여사에게
지금 세상이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인가. 어떤 사람들은 지금같이 살기 좋은 세상이 어딨느냐고 말하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우리네 살림살이는 오히려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일자리가 줄어 실업자는 날로 늘어나고, 코로나19까지 기승을 부려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줄줄이 문을 닫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별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요즘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믿음직스럽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영하의 날씨에 도로 공사장에서 곡괭이질을 하는 청년이나, 무거운 짐을 잔뜩 들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는 배달원이나, 번화가 길목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홍보 전단을 나눠주는 아주머니들도 그렇다.
직장 다닐 때의 일이다. 서울 시청 뒤편 무교동 골목으로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 이런저런 홍보 전단을 한 움큼씩이나 받곤 했다. 아주머니들이 노루목을 지키고 서서 나름 요령을 부리며 재빠르게 손에 쥐여 주었다. 설렁탕집 개업, 헬스클럽 요금 대폭 할인, 직장인 대출 우대 등, 내용도 각양각색이다.
어떤 행인은 그걸 받으면 무슨 변이라도 당하는 양 안 받으려고 요리조리 피하기까지 하지만, 나는 슬쩍 그쪽으로 일부러 가서 받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그 일을 해서 하루에 얼마를 버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얼마가 되든지 간에 가족들의 생계를 잇고, 아이들의 학비로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그들이 건네주는 전단을 꼭 받아야만 될 것 같았다.
돌이켜 보면 우리 가족도 그런 적이 있었다. 6·25전쟁 때 피난을 갔다가 휴전이 되어 다시 서울로 돌아왔지만, 폐허가 된 도시에서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다. 어느 날 어머니는 어디에서 종이와 풀을 한 보따리 가져와서 봉투를 붙이고 계셨다.
요즘은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 비닐봉지에 넣어주지만, 그때는 종이봉투에 넣어주었다. 우리 형제들도 달려들어 봉투를 산더미처럼 만들었다. 아마 천 장을 붙였어도 요즘 돈으로 천원도 못 받았지 싶다. 그래도 그 일이나마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요즘은 내가 번화가에서 홍보 전단을 나누어주는 아주머니 옆을 천천히 지나가도 나를 한번 쓱 훑어보고는 안 본 척 고개를 휙 돌리고 만다. 전단 배포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그래도 그냥 주면 될 텐데, 참 정직한 아주머니들이다. 그들의 선택과 집중이라고 해야 할까, 투철한 직업의식이라고나 해야 할까.
나는 ‘이 분야에도 전문가가 있구나’, 하며 웃고 말지만 그럴 때면 왠지 나 자신이 대중으로부터 소외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쩌다 전단을 줘서 받아 보면 십중팔구 보신탕이나 순댓국집 같은 소규모 식당의 개업을 알리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소외감을 느끼던 내가 어깨에 힘이 들어간 일이 있었다. 전철역을 빠져나와 집으로 가는데 다부지게 생긴 한 중년 아주머니가 널따란 고급 전단을 나에게 주면서 오피스텔 홍보지니 한번 보라며 크리넥스 화장지도 한 통 주겠다고 했다.
손해 볼 일도 없어 홍보지를 펼쳐보려는데, 여기서 보면 안 되고 근처에 있는 모델하우스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귀찮아서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그냥 가려 했더니 별안간에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증말, 맨날 뭐가 그리 바빠, 증말.”
그 소리에 나는 그만 “푸하~”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증말’은 뭐고 ‘맨날’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도 묘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지금 나에게 내미는 홍보 전단은 젊은이들에게나 나눠주는 몇만 원, 몇십만 원대의 전단이 아니고, 최소한 수억을 호가하는 오피스텔 홍보지다.
그녀에게는 갓끈까지 떨어진 내가 꽤 돈푼깨나 있어 보이는 어르신으로 보인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머뭇거리자 그녀는 낌새를 챘는지 내 팔짱을 꽉 꼈다. 바로 옆이라는 모델하우스는 한참을 걸어야 했다. 모델하우스에 데리고 들어가는 것까지만 ‘증말 여사’의 임무였는지 그곳에서 나를 직원에게 잽싸게 인계하고 그녀는 사라졌다.
자신을 홍보팀장이라고 소개한 말쑥한 차림의 청년이 모델하우스의 각 방을 안내하며 세련된 자세로 이모저모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요점은 한강 변 전망 좋은 곳에 짓고 있는 이 오피스텔에 지금 투자해두면 얼마 후에 억대의 프리미엄인가 뭔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 그가 힘주어 설명하는 오피스텔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증말 여사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라도 아주 성의 있게 듣는 척했다. 가끔은 ‘증말 여사’와 한편이라도 되는 양 필요도 없는 질문을 해가며, 오피스텔의 구조가 마음에 든다는 둥, 비위를 적당히 맞춰주고 꼭 다시 오겠다는 빈 약속을 하고 나왔다. 선물로 받은 네모난 크리넥스 화장지의 값어치는 넘치도록 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머지않아 이른바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 로봇이 기존 일자리를 대거 빼앗을 것이라고 한다. 어느 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지만, 가까운 장래에 수만 개의 일자리가 더 사라질 것으로 예측한다. 어쩌면 홍보 전단 일도 인공지능 로봇이 대신하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설사 그런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로봇 아주머니가 증말 여사와 같은 순발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어쨌든 세상 살기가 더 좋아져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증말 여사 같은 분들이 로봇에게 그 일을 빼앗겨도 편안히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오늘도 길거리에서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고군분투하고 있을 ‘증말 여사’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