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토가 공산화된 이후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은 중국 가톨릭애국회와 바티칸을 따르는 지하교회로 양분됐다.
지하교회는 심하게 탄압받았고 한층 더 ‘지하’로 숨어 들었다. 중국 베이징에서 약 300㎞ 떨어진 허베이성 스자좡시(河北省 石家庄市)에 위치한 중국 최대의 신학원을 찾은 기자도 이 같은 역사적 사실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취재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국 신학생들의 열정에 가득한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은 점차 사그라졌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눈, 같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본질은 결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 11월 19일 허베이성 천주교신철학원 본관
성전에서 신학생들이 참례한 가운데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11월 19일 오후 6시 허베이성 천주교신철학원(河北省 天主敎神哲學院, 이하 허베이 신학원) 본관 성전에서 민쯔밍(Min Zi Ming, 철학 담당 교수) 신부 주례로 미사가 열렸다.
미사 전에 미리 둘러본 성전은 우리나라 성전과는 많이 다른 특이한 양식이었다. 대형 돔형으로 만들어진 벽화가 성전 위쪽을 둘러싸고 있었다.
돔형 천장은 미사 음악이 웅장하게 들리는 효과를 낸다. 관계자는 “독일에서 성전을 설계해서 돔형 천장이 더욱 부각됐다”고 말했다.
민 신부는 미사에 앞서 “오늘 한국의 가톨릭신문사 사장 이기수 신부님과 오랫동안 우리 학생들을 가르치다 고국으로 돌아가신 김병수 신부님께서 특별히 참석해주셨으며 취재기자도 방문해주셨습니다”라고 소개했다.
미사에 참례한 200여 신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타국의 교회언론이 자신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준다는 사실에 고무된 모습이었다.
미사는 한국의 미사와 비교해 순서와 내용 모두 동일했다.
신자들이 서로 나누는 평화의 인사는 중국어로 ‘쥬 니 핑안(평화를 빕니다)’이고 ‘아멘’은 중국어로 ‘아먼’이라는 것 등 언어가 다르다는 사실만 있을 뿐이었다.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신학생들은 무릎을 꿇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기도를 올렸다.
13억 중국 인구 중 가톨릭 신자는 약 2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허베이 신학원은 중국 최대의 신학교다. 전체 등록 학생은 200여 명. 이 가운데 수녀 입회자가 60여 명이다.
신학생들은 대부분 허베이 교구에서 유입되지만 다른 교구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
허베이 신학원은 지난 1984년 설립됐다. 1989년 현재의 위치에 학교 캠퍼스가 건립됐다. 총 면적은 약 5만㎡(약 1만6000평)로 성전, 도서관 및 학습시설이 있는 본관과 신학생 기숙사 및 식당과 외래 손님 숙소 등으로 구성돼 있다.
허베이 신학원은 지금까지 460여 명의 사제를 배출했다. 신학생들이 입학하면 영성의 해(준비기간) 1년, 철학 과정 2년, 신학 과정 4년 등 총 7년의 교육과정을 거친다. 교수 신부는 총 17명이다.
신학생의 일과는 오전 5시50분 기상으로 시작된다. 아침 식사 후 오전과 오후 강의를 듣고 자유시간도 가진 뒤 오후 10시에 일과를 마감한다.
인터뷰 요청을 통해 허베이 신학원 교수 신부들을 만났다. 그들은 익명을 요구하는 등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우리는 교황청에서 요구하는 커리큘럼을 거의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며 “가톨릭 정신에 근접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진다”고 말했다.
그들은 허베이성은 중국 전체 교회에서 신자가 가장 많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중국 전체 신자의 10%가 허베이성에 있다고 소개했다.
스자좡교구 등 허베이성의 10개 교구에서 연간 운영 지원금을 허베이 신학원에 지원한다. 허베이 신학원 소유 부지의 임대료와 봉헌금도 연간 운영비에 포함된다. 정확한 운영비 규모는 밝히기 어렵다고 관계자들이 전했다.
허베이 신학원 출신의 ‘합법’ 주교는 3명이다. ‘불법’(교황청의 승인을 받지 않은) 주교는 2명이다. 자세한 설명은 듣기 어려웠다. 중국 교회의 엄연한 현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허베이 신학원 신학생들의 해외연수는 예전에는 거의 없었다. 근래에는 20~30명이 한국을 비롯해 필리핀, 대만, 유럽 등을 중심으로 연수를 떠나는 등 교류가 많아지는 추세다.
허베이 신학원은 해외 교류에 대한 열망이 높다. 교수 신부들은 “한국의 신학교와 활발한 교류 필요성에 대해 절실히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 허베이 신학원의 관리자들도 한국을 방문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허베이 신학원에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고 교수 신부들이 넌지시 알렸다. 중국교회에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신학교 학생 전체가 공개 가두시위를 벌인 것이다.
당시 신학생 100여 명이 허베이 신학교를 출발해 정부의 종교사무처가 있는 스자좡시 중심가까지 항의행진을 벌였다. 신학생들의 요구는 ‘정부가 임명한 부원장을 해임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부원장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다고 한다.
신학생들은 부원장이 임명된 이후부터 한 달 넘게 수업 거부까지 행사했다. 종교사무처는 신학생들의 움직임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신학생들의 불붙은 요구는 결국 중국 정부를 움직였다. 부원장을 해임하고 교수직만 유지하게 한 것이다.
허베이 신학원의 이 같은 일화는 중국 내에서 허베이 신학원이 갖고 있는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허베이 신학원 신학생들이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열정을 좀 더 상세하게 알고 싶어 2명의 신학생을 만났다. 3학년과 4학년 신학생이다.
허베이 신학원에 다니는 소감을 묻자 3학년 신학생은 “허베이 신학원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곳의 신학교육 수준이 중국에서 제일 높고 전통적으로 보편교회를 지향한다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입학을 원하는 마음이 컸고 또 들어와보니 신부님들의 지도방식, 영성생활이 생각보다도 더 좋았다”고 강조했다.
사제가 된 이후로의 포부를 묻자 4학년생은 “처음에는 신학교에 대해서도 잘 몰랐지만, 사제가 된다면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난징 교구(南京敎區)의 신부님께서 공부를 더 잘하면 한국의 신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하셔서 그에 맞춰 준비를 하고 있다”고 웃어보였다.
신학생들에게 해외 신학교나 교회에 대한 생각 등 다른 질문도 던졌지만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다. 아쉽지만 이 또한 중국교회의 현실이다.
대화를 마친 뒤 허베이 신학원 교수 신부들의 안내로 본관을 더 둘러봤다. 때마침 오후 휴식시간이라 신학생들이 함께 모여 수업을 받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교실이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 신학생이 기도실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서관에서는 각종 교회 서적과 철학 서적이 정리돼 있었고 자습 공간도 잘 마련돼 있었다.
컴퓨터가 있는 멀티미디어실에서는 신학생 몇 명이 인터넷을 통한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취재를 마치고 이동하는 중에 교수 신부들이 본관 1층 뒤편의 그림을 가리켰다. 꼭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가보니 예수님이 양 한 마리를 들고 계시는 중국식 수묵화다.
그림 한 켠에는 중국어로 “나는 착한 목자다”라고 씌여 있었다. 사진을 찍는 기자의 모습을 바라보던 한 교수 신부가 빙긋이 웃어 보였다.
그 마음이 기자에게도 전해져 왔다. 요한복음 10장의 말씀대로,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제들이 중국 대륙에서 계속 활동하는 한, 중국교회는 언젠가는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짧은 취재 시간 내내 중국의 날씨는 흐리고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허베이 신학원은 중국교회의 희망을 상징하듯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