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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12월12일(日)晴 ▲가야산((4)(백운리-서성재-칠불봉-상왕봉-해인사)
해봉산악회(38명)
♠참 고
▲가야산국립공원(伽倻山国立公園)
개 요
경남 합천군․거창군 및 경북 성주군
소재지:경남 합천군․거창군 및 경북 성주군
면적:약 66㎢
명물:용문(竜門)폭포, 홍류동(紅流洞)계곡, 해인사, 해인사고려판각
내용 출처:두산세계대백과
면적 약 66km2. 가야산은 해인사를 비롯한 사찰․고적들이 많아, 조선8경의 하나로 꼽
혀 오다가 197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가야산에는 해발고도 1,000m 정도까지 300
여 종의 수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산정에는 평지에서 볼 수 없는 몇 가지 특수식물이
자라며, 100여 종의 조류와 진귀한 동물이 서식한다. 주봉 꼭대기에는 가물어도 물이 마
르지 않는다는 우비정(牛鼻井)이 있고, 산허리에는 마애불입상(보물 222)이 있다. 그 밖
에 해인사 서쪽 약 2 km의 계곡에 있는 이름난 용문(竜門)폭포 등 뛰어난 경치가 많다.
이곳의 백미는 해인사와 그 입구를 이루는 홍류동(紅流洞)계곡이다. 대장경판고(大蔵経
板庫:국보 52)가 있는 해인사는 홍류동계곡을 따라 4 km쯤 들어간 산기슭에 있는데, 그
구간에는 어귀의 무릉교(武陵橋)를 비롯해서 농산정(籠山亭)․제시석(題詩石)․분옥폭
(噴玉瀑)․제월담(霽月潭)․회선암(会仙岩) ․낙화담(落花潭)․첩석대(畳石台) 등이 차
례로 있다.
농산정과 제시석은 만년을 이곳에 숨어 산 신라의 최치원에 유래하는 유적으로, 농산정
은 그가 바둑을 두었다는 사각(祠閣)이고, 제시석은 그의 농산시를 새긴 반석이다. 그
밖에 계곡을 이루는 절벽 ․암석과 맑은 물 및 울창한 노송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해인사 외에도 12암자가 있으며, 일대에서는 잣․송이버섯 ․산나물 등이 많이 난다.
우두산(牛頭山)․상왕산(象王山)․중향산(衆香山)․지달산이라고도 한다. 높이 1,430m이
다. 수려한 경치로 소백산맥 중의 명산으로 꼽히고, 산중에 해인사를 비롯한 사찰․고적
들이 많아, 가야산을 중심으로 가야산국립공원이 지정되었다.
♥해인사[海印寺]
경남 합천군 가야면(伽倻面) 가야산 남서쪽에 있는 사찰.
종파 : 대한불교 조계종
소재지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신라 제40대 애장왕(哀莊王) 때의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우두산
(牛頭山:가야산)에 초당(草堂)을 지은 데서 비롯된다. 그들이 선정(禪定)에 들었을 때
마침 애장왕비가 등창이 났는데 그 병을 낫게 해주자, 이에 감동한 왕은 가야산에 와서
원당(願堂)을 짓고 정사(政事)를 돌보며 해인사의 창건에 착수하게 하였다. 순응이 절
을 짓기 시작하고 이정이 이었으며, 그 뒤를 결언대덕(決言大德)이 이어받아 주지가 되
었다.
918년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당시의 주지 희랑(希郞)이 후백제의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
준 데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國刹)로 삼아 해동(海東) 제일의 도량(道場)
이 되게 하였다. 1398년(태조 7)에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 있던 고려팔만대장경판(高
麗八萬大藏經板)을 지천사(支天寺)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 곳으로 옮겨와 호국신앙의 요
람이 되었다. 그 후 세조가 장경각(藏經閣)을 확장 ·개수하였으며, 그의 유지를 받든
왕대비들의 원력(願力)으로 금당벽우(金堂壁宇)를 이룩하게 되었다. 제9대 성종(成宗)
때 가람을 대대적으로 증축했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불교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 사찰은 창건 이후 일곱 차례의 대화재를 만나 그때마다 중창되었는데, 현재의 건물들
은 대개 조선 말엽에 중건한 것들로 50여 동에 이른다. 창건 당시의 유물로는 대적광전
(大寂光殿) 앞뜰의 3층석탑과 석등 정도가 있을 뿐이다. 특히 국보 제32호인 대장경판
과 제52호인 대장경판고(大藏經板庫) 및 석조(石造) 여래입상(보물 264)은 유명한데, 불
가사의한 일은 몇 차례의 화재를 당하면서도 팔만대장경판과 장경각만은 화를 입지 않
고 옛 모습 그대로 있는 일이다.
그 밖에 주요 문화재로 보물 제518호인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 보물 제128호인 반야
사 경왕사비(般若寺元景王師碑)도 있다. 통도사(通度寺:僧寶사찰) ·송광사(松廣寺:僧寶
사찰)와 더불어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하나로 법보(法寶)사찰로 유명하다. 현재는 불교
학원인 해인총림(海印叢林)이 있어 많은 학인(學人)들로 붐빈다. 부속 말사(末寺)는 75
개에 달하고 부속 암자로 백련암(白蓮庵) ·홍제암(弘濟庵) ·약수암(藥水庵) ·원당암
등이 있다.
♣산행 코스
백운리(10시35분)--서성재(11시55분)--칠불봉(13시05분)--상왕봉(13시25분)--중식(13시
50분)--대피소(14시28분)--해인사(15시20분)--주차장(16시30분) 총 5시간55분
☞☞가야산은 이미 세 번이나 촬영, 2년 전에도 다녀왔지만 다시 찾은 건 산은 사계절,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 당일 기상에 따라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 옆자리는 K양이 이미 앉아있고 뒷좌석은 배기사와 한 직장에서 운전한다는 안경 낀
중년남자와 그의 어린 아들이 앉아있다.
배기사가 지난번 산행 때 비디오의 오디오가 이상이 있었지만 이번에 잘 고쳤다며 자랑
한다.
정시에 출발하여 남해고속도로를 달리자 정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안내방송을 한다. 가
야산은 국립공원이기 때문에 버너에 불을 피울 수 없으니 각별히 조심해 달라고 당부한
다.
2년 전 오늘과 같은 코스의 가야산 산행 비디오를 보면서 달리다 구마고속도로상의
현풍휴게소에 들려 용무를 보게 한다.
정 대장의 꼬맹이 지수양이 깜찍한 모습으로 한잠이 들어있다.
88고속도로를 거쳐 산행기점인 백운동 주차장에 도착한 게 예정시간 보다 50분이나 빠
른 10시30분, 2년 전과 달리 쾌청의 푸른 하늘이다. 인원파악과 상견례가 끝나자
10시37분, 주차장을 출발한다.
그런데 어린 부자 팀이 아무른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올라간다.
우측으로 철조망으로 폐쇄되어있는 동성재 갈림길 이정표를 거쳐 너덜바위 길을 올라간다.
11시15분, 어묵을 끓여 파는 대피소에 먼저 도착한 꼬마가 사발라면을 불며 먹는 모습
이 보기 좋아 촬영하니 맑은 두 눈으로 빤히 쳐다본다.
많은 회원들이 입김을 불며 어묵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주변의 계곡 얼음사이로 맑은
물이 졸졸 소리 내며 흘러간다.
다시 이어지는 돌 바위길, 통나무 계단과 원목계단을 거쳐
11시56분, 해발1000m의 능선 안부에 올라서는데 이정표가 서있으나 여기가 지도상의 서
성재인지 얼른 감이 잡히지 않는다.
전면에 보이는 우람한 암봉을 촬영하고 오른편으로 난 펑퍼짐한 능선 길로 올라간다.
얼마가지 않아 나타난 너덜을 건너 바위사이의 비탈을 올라 가파른 철 계단을 오른다.
여기가 서장대인가 오른편으로 확 트인 조망이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바위길 내리
막을 거쳐 왼편으로 암봉을 끼고 돌아 올라가는데 여기가 서성재인가 오른편으로 골짝
이 보인다.
다시 바위사이 오르막길을 거쳐 철 계단을 올라서니 바로 암괴 위.
전면엔 우람한 칠불봉의 암능이 등산객들을 압도한다.
암벽 골 사이로 올라가는 원색의 등산객들이 줄을 이어 올라가는 모습이 촬영하는 캠코
더의 뷰파인더에 들어온다.
배낭에서 캐넌을 꺼내어 두어 컷 촬영하고 그 전에는 위험코스였든 바위와 암괴사이에
걸려있는 철다리를 건넌다.
그리고 철 계단을 내려가 다시 바위 옆에 비스듬히 늘어 떨어져 있는 자일을 잡고 올라
간다.
암괴와 바위사이 길은 계속 이어지고 그 바위사이로 오랜 세월 얽히고설킨 나무뿌리가
온갖 악조건을 이겨내며 강인하게 버텨가고 있다.
2년 전, 한 중년등산객이
“이건 완전히 유격훈련코스네!”
하고 외쳤든 바위사이의 된비알에 가파르게 철 계단이 걸려있다.
오르내리는 사람이 자진 교통정리를 하며 질서 있게 서로 양보하며 오르내린다.
13시10분, 칠불봉 암능에 올라선다.
많은 등산객들이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 사방을 조망하며 탄성을 발하고 있다.
우선 11시 방향에서 멀리 백두대간과 두리봉을 촬영하고
반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상왕봉과
저 아래 해인사를 촬영한다.
그리고 배낭에서 다시 캐넌을 꺼내어 상왕봉과 해인사를 촬영하고 상왕봉을 향해 오른
편 바위사이 길로 내려서는데 많은 등산객들로 잠시 정체한다.
왼편으로 암벽을 끼고 내려가는 음지에 그전엔 눈과 얼음으로 비탈길이 미끄러웠는데
지금은 가드레인과 철 계단으로 안전장치를 해 놓았다.
처음으로 눈길을 지나 왼편으로 암봉에서 내려오는 철 계단을 바라보며 가다 공터에 닿
는다.
13시21분, 전면에 상왕 암봉을 줌으로 촬영하고 후미에서 너무 지체하여 시간이 너무 늦
은 것 같아 바로 하산하기로 작정한다.
남쪽 전면의 바위비탈의 철 계단 오름에 많은 등산객들이 줄지어 올라가고 있다. 하산
길의 너럭바위위에서 뒤돌아 다시 캐넌으로 촬영하는데
우람한 암봉이 한 컷으로 잡히지 않아 두 번에 걸쳐 촬영하면서 이름그대로 거대한 코끼
리 왕(象王)등판 같은 형상에 새삼 감탄한다.
너럭바위아래의 양지바른 비탈의 갈색 잡목 속 풀밭에서 준비해간 빵으로 식사를 하고
13시50분, 다시 바쁘게 내려가는데 뜻밖에 해봉산악회의 정회원인 강 회원이 바쁘게 올
라오면서 인사한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고향에 조모님 제사 모시러 갔다 시외버스타고 뒤따라 왔습니
다.”
대단한 정성이다.
천천히 조심해 다려 오라고 인사하고 바위사이의 눈 빙판길을 내려간다.
좌로 암봉을 끼고 내려가다 전에 없든 철 계단을 탄다. 안전을 생각해서이겠지만 이건
좀 심한 것 같다.
가야산을 온통 철 계단으로 칠갑을 하려는지...좌로 헬기장을 거쳐
14시28분, 좌로 노천 식당인 대피소를 지나 햇살을 받아 빤짝이는 산죽사이의 완만한 등
산로를 따라가다 통나무계단을 내려간다.
14시38분, 한번 들렸든 마애불입상은 지난번에 소상하게 촬영했기 때문에 갈림길 이정
표를 지나 계속 완만한 내림 길로 이어진다.
15시8분, 마애불입상에서 나오는 갈림길 이정표의 통나무 다리에 먼저 내려갔든 회원들이 앉아 쉬고 있다.
짧지 않는 통나무 다리를 지나 해인사 후문으로 경내에 올라간다. 곧장 팔만대장경 장경
각(藏經閣)앞에 당도한다.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국보 제52호인 대장경판고(大藏經板庫)의 입구, 현판(修多羅藏)아
래 왼편 券經獨丹方의 경구 옆에
‘가래침을 뱉지 맙시다.’
라고 쓴 조그마한 나무간판이 붙어있는 어이없는 광경을 목격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외국관광객들도 많이 올 터인데 이 무슨 창피한 일인가!
물론 일부 지각없는 관광객의 어이없는 짓이 문제이지만 그걸 이런 식으로 예방하겠다
는 발상이 한심스럽기도 하다.
독특한 구조의 대장경판고와 주변을 촬영하고 내려오면서
저녁햇살로 황금빛으로 물든 대적광전(大寂光殿)과 좌측에 있는 해인범종(海印梵鐘)촬영
하고 바쁘게 사천왕문을 지나 내려오다 왼편으로 밑둥치만 남은 거대한 고사목을 촬영한
다.
1200년 전, 신라 제40대 애장왕(哀莊王) 때의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당나라에서 돌
아와 우두산(牛頭山:가야산)에 초당(草堂)을 짓고 선정(禪定)에 들었을 때 마침 애장왕
비가 등창이 났는데 그 병을 낫게 해주자, 이에 감동한 왕은 가야산에 와서 원당(願堂)
을 짓고 정사(政事)를 돌보며 해인사의 창건에 착수하면서 기념식수한 느티나무인데 지
난 1949년에 고사하였지만 역사적인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그 사이 상왕봉까지 올라갔다 내려온 강 회원을 만나 성철 큰스님의 사리탑을 찾아 나선
다. 2년 전에 기초공사가 한참 이였는데 기대를 갖고 찾아간 곳은 성철스님의 이미지와
달리 이외로 초현대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넓은 공간에 기하학적으로 공을 반쪽으로 잘
라 역으로 쌓아 놓은 위에 또 다른 공을 얹어 놓았는데 전통적인 사리탑과는 판이한 조
각품이다.
주변에 촬영해줄 사람이 보이지 않아 캐넌을 자동 셔터로 만들어놓고
두 사람이 적당한 구도에서 사리탑을 배경으로 촬영하고 바쁘게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16시20분, 주차장에 도착하니 산행은 포기하고 백운동에서 온천욕을 하겠다든 조회장님
이 모처럼
‘수고했습니다.’
며 인사한다.
16시29분, 부산으로 출발하면서 뒷좌석의 꼬마에게 산행소감을 물으며 촬영하니 수줍어
말을 제대로 하지 않자 아빠가 거들었으나 부끄럽다며 외면하자 대신 아버지가 이야기한
다.
“처음에는 제대로 올라갈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무사히 산행을 해서 다행이고 해봉산악
회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 앞으로 계속 참여하겠습니다.”
88고속도로를 거쳐 구마고속도로로 달린다.
얼마가지 않아 차량정체가 심해 부곡I/C로 빠져 국도로 달리다 ‘인교’ 못 미쳐 차량계
중대를 조금 급하게 통과했는지 그만 경고음이 울려 관리인이 뛰어나오고 카메라로 넘버
를 촬영하는 소동이 벌어진다.
배기사가 만원도 안 된 버스가 어떻게 중량초과가 되느냐며 격렬하게 항의하고 옥신각
신 하다 차를 돌려 천천히 진입하는 소동 끝에 무사히 통과하는 해프닝을 벌렸는데 한
회원이 그 관리원을 대단한 벼슬이라도 한양 설친다고 빈정거렸지만 진정 그 관리원은
자기 직분을 충실히 수행한 칭찬해줄 사람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버스는 안전운전으로 19시12분, 서부산T/G를 무사히 빠져나간다.
산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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