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발 외 4편
성재봉
기울어진 가세는 삶의 터전을
읍내에서 낙동강 칠백 리
제일 끝자락으로 내몰았다
빨간색 완행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삼십 리 비포장길을 달려야 했던
중학교 시절
낡은 차부에서의 야윈 닭발 튀김은
단돈 오십 원으로 허기를 달랠 수 있는
마른버짐 가득한 아이의 탐미였다
마지막 발톱을 삼킬 즈음
늙은 소 같은 중고 오토바이를 타고 오신
아버지와 마주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토바이만 짖어댈 뿐
부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닭발은 못이 되어 아버지의 가슴에 박혔고,
가난한 들판의 노을은 붉은 눈물로 가득하였다.
엄마의 눈물
아기가 눈 속 티끌베기로 눈물 흘릴 때
엄마는 보드라운 혀로 씻어 주었습니다
아기의 눈은 맑고 깨끗해졌습니다
소년의 철없는 복숭아 서리가 들통났을 때
엄마는 주인 앞에서의 꾸짖음과는 달리
집에 돌아와 포근히 안아 주었습니다
소년의 마음은 선해졌습니다
청년이 모진 세상에서 아파하고 힘들어 할때
엄마는 별것 아니니 힘내라고 웃어주었습니다
청년의 심장과 머리는 튼튼하고 강해졌습니다
불혹을 훌쩍 지나 엄마를 찾은 어느 날
엄마는 아들을 만나니 갑자기 눈물이 난다고 합니다
중년의 가슴은 먹먹해졌습니다
엄마의 숨겨진 눈물을
이제야 보았습니다.
최고의 여행
나의 학사모는
노을조차 가난하여
별과 달마저 울고 간 고향의 밤하늘이다
나의 학사모는
밤새 산통을 견딘
고향 늙은 염소의 메마른 수염이다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와서
시든 파뿌리 같은 머리에 학사모를 눌러쓴
엄마의 백합 같은 말씀
생애 최고의 여행을 선물해준 아들아
고맙고 고맙다.
아픈 꽃과 나비
당신 손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입니다
그 고운 손을 처음 잡던 날
나는 봄 향기에 홀린 나비가 되었답니다
당신이 시들어 버릴까봐, 차마 향기를 잊어버릴까봐
힘들고 슬픈 날에도, 외롭고 지친 밤에도
나는 애오라지 당신 여린 꽃잎만을 부여잡고
무거운 날갯짓만 씀벅씀벅 해대었습니다
불어오는 서풍에 의초롭던 노을마저 슬퍼하던 어느 날
당신은 홀연히 날아든 건초염※으로 꽃가지가 아프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내 서툰 날갯짓의 근원이 당신의 아픔이었고
당신은 온 힘을 다해 내 손을 꼭 잡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빨리 나아 줄래요
이제는 내가 당신 손을 꼭 잡고 나풀나풀 날아서
저 외딴섬 가장 외로운 별에게도 당신의 향기를 전하겠습니다
당신 손은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꽃입니다.
※ 힘줄을 싸고 있는 막에 생기는 염증, 몹시 아픔
※ 詩作 노트
아내가 손목 건초염으로 많이 아프다. 참 곱고 이쁜 손이었는데 반깁스한 모습이 애처롭다. 그간 부족한 남편과 동행하면서 생긴 아픔임이 분명하다. 이제 내가 먼저 아내의 손을 붙잡고 맑고 향기로운 삶을 살아보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오이도행 김밥 열차
휴일 아침
사당역 오이도행 첫 번째 승강장
까만 뿔테 안경의 남자는
삶은 우엉 빛의 긴 나무 의자에 앉아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팩에 고릴라 인형을 매단 여자는
김밥 네 줄이 담긴 까만 봉지를
들고 나타났다
남자는 서울이 회색 공룡알 같다 하고
여자는 삼천포 죽방멸치가 짭쪼롬하다며
서로 각자의 긴말을 이어갔다
지하철에서 놀이동산의 청룡열차로 환승한 그들은
긴 수평선 너머 먼바다로 향하였다
열차는 사라지는 해를 따라가다가
미처 알지 못한 수평의 벼랑에서 급하강하였고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마지막 호흡에 김밥을 삼켰다
석양은 단무지 빛으로 물들었고
남자와 여자의 오이도행 김밥 열차에는
9월의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있었다
당선 소감
성재봉
오랫동안 멀리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간 법학을 공부하며 규범적 언어를 탐구하고 그것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으며 살아왔습니다. 다수로부터 용인되지 않는 언어의 확장과 감정의 침투를 늘 경계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천성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저는 항상 언어의 팽창을 꿈꾸었고 논리적 수사보다는 감정에 물든 문장에 더 설레었으며, 목적지보다 노정의 율동을 더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랫동안 멀리멀리 돌아왔나 봅니다.
덜컥 시인이 된다고 하니 참으로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감각에 새로운 느낌이 덧씌워지는 듯한 묘한 기분입니다. 반면 시인이라는 호칭에 걱정과 부담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용기내어 사사로운 감정을 전해보고, 영혼을 노래하며, 대상과 나란히 이야기를 잘 나누어 보려 합니다. 문득 법이든 시든 모두 궁극은 존재에 대한 사랑이며, 올바름이며, 공평이고, 아픔의 치유라는 생각이 스칩니다.
저의 부족한 문장을 좋게 보시고 시인으로 살아가는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시의 아버지이자 사우(師友)이신 나태주 시인님과 풀꽃시문학회 문우님들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이번에 당선된 시는 모두 가족 이야기입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낍니다. 세상에서 제일 선하신 아버지와 어머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의 영원한 꽃인 아내 수정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해거름 녘 산골 작은 카페에서 제가 좋아하는 K시인님께 당선의 기쁨을 전했습니다. 마침 가수 김정호의 노래 하얀나비가 흘렀고, 창밖에는 나비 떼 같은 함박눈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저의 문장이 저 하얀나비와 눈송이처럼 희고 깨끗하고 공평하게 세상에 내렸으면 참 좋겠다는 꿈을 꾸어 봅니다.
성재봉(成宰奉)
《약력》
1971. 10. 27. 경남 창녕 출신
창원고등학교
동국대학교 법학과 학․석․박사(수료, 민사법 전공)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법학박사(사회법 전공)
고용노동부 고용보험심사위원회 전문위원 재직 중
2015년~풀꽃 시문학회 회원
2022년 공직문학상 입선
이메일: sungjb@korea.kr9
첫댓글 성재봉 선생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시 당선 축하드립니다 성재봉 시인님~^^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