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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6. 첫토
주례: 이한택주교님 대림특강1.2, 미사
강의주제:“가장 작은 존재로 오시는, 주님”
강론: 최재웅신부님
파티마 평화의 성당
◆ ◆1.2강의 녹음을 틀어놓고, 글을 따라가면서
(1)(2)(3)(4)(5)(6) 안에 들어갈 말을 찾아 댓글에 남겨주세요.
맞추시는 분, 선착순 3명에게 크리스마스선물로
이한택주교님 묵주1개씩 드리겠습니다.
거리에 관계없이 보내드려요.
MERRY CHRISTMAS!!!◆ ◆
♦성시간
♦성 토마스의 성체찬미가
♦묵주기도, 미사지향:
⚫세계평화, 죄인들의 회개,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전쟁종식을 위하여,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이한택 주교님의 영육건강을 위하여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오늘 파티마 평화의 성당을 찾아오신 모든 이들과
이제까지 다녀가신 모든 이들을 위하여, 후원 회원들과 은인들,
그리고 봉사자들을 위하여 봉헌하겠습니다.
⚫성모님의 성화와 성상에 직접적으로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에 대한 배상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쎌기도,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 남북 통일을 위한 기도
♦묵상: ‘환희의 신비’
♦환희의 신비 묵상 전문 녹음
♦성체강복 동영상
♦하느님 찬미가
♦오전 강의:
♦1강의: “가장 작은 존재로 오시는, 주님”
반갑습니다. 날씨도 차가운데 오시느라고 수고들 많으셨고, 오늘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서, 성모님을 통해서, 우리 하느님과 대화하면서 이 어려운 시기에도 주님께서 이 세상에 평화를 주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넘치는 축복을 내려 주시도록 기도하면서 우리 하루를 같이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무슨 절이죠, 요새? 대림절이면 우리 교회에서는 특별히 우리 신자들한테 두 가지를 상기시켜 주십니다. 첫 번째는 이천여 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 즉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어요. 인간으로 오실 때 큰 부잣집이라든가, 또 유명한 사람이라든가, 위대한 사람 집안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고, 외양간에서 태어나셨지요. 그리고 아기 예수님은 구유에 누워 계셨어요. 바로 우리 인생길을 보여 주시는 겁니다. 우리들이 보통 때 실망할 때가 많아요. 특별히 고생스럽고 어려울 때 처하고 힘들고 괴롭고 외롭고 이럴 때 우리들은 스스로 질문하는 게 있어요. 내가 왜 사는가? 왜 이런 일이 나한테 떨어지는가?
왜 나한테 많은 이런 고통이 주어지는가? 우리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어요.
심할 때는 이놈의 내 팔자야 까지 하고 이러는데, 정말로 우리들의 팔자가 사나운 거, 이것이 무슨 뜻인가? 질문을 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한테 대답해 주시는 것이 아기 예수님을 보면서, 당신이 전능하시고 무한하시고 전선하시고 아무것도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인간 중에서도 가장 연약한 갓난아기로 태어나셔서, 나자렛에서 30년 동안 사셨고, 그의 공생활 햇수로 3년 지내시면서, 이 세상에서 일생을 보내시면서, 우리들한테 진정한 인생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참으로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이것을 보여 주시는 분이 인간이 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 십니다.
이것을 상징시켜 주는 것이 대림절의 첫째 의미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외양간에 태어나신 것은 세상 사람들이 몰랐어요. 예루살렘에서도 그렇고, 베들레헴에서도 그렇고, 이 세상에 구세주가 탄생하신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몰랐어요. 첫 번째 오실 때는 조용하게 오셨습니다. 이거 우리들한테 의미가
상당히 커요. 제가 이것을 갖고 조금도 부연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두 번째 우리 교회가 우리들한테 상기시켜 주시는 것은, 그런데 이 예수님이 두 번째 이 세상에 오실 때는 말세, 세상 마칠 때 오셔요. 첫 번째 오실 때는 아주 조용히 오셨지만, 우리 성가 부를 때 ( 1 )처럼 내렸다고 그랬어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외양간의 탄생하실 때는 아주 조용하게 오셨어요.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거의 몰라볼 정도로 오셨어요. 이렇게 조용하게 오셨는데,
두 번째 오실 때는 우리들 중에 아무도 숨을 수도 없고, 예수님을 안 뵈올 수도 없을 정도로,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셔요.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그분 앞에서 내 일생을 펼쳐 놓고, 심판을 받는 이러한 입장, 그러니까 베들레헴에 탄생하실 때는 ( 1 )처럼 오셨지만, 말세 오실 때는 판관으로 오십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특별히 우리가 우리 각자가 어떻게 인생을 살았는지 하는 것, 헴을 바친 것, 이 헴을 바치는 입장으로 우리에게 오셔요.
우리 교회에서는 요새 오늘도 우리 미사 때 감사송을 외울 때, 우리가 어떻게 기도 하냐면, 첫 번째 오실 때는 예언자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 이것을 보여 주시고, 두 번째 오실 때는 우리들이 상급을 기대한다고 그랬어요.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린 판관으로 오신다고 그랬는데, 재판을 받는다고 그러면 우선 우리 두려워 할 거예요.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상급을 기대한다고 그래요. 이거 참 중요한 거지요.
우리 교회에서는 우리 각자가 내 인생을 우리 두 가지로 사는 거야. 하나는 상급을 받을 수 있게 사는 것이고, 또 하나는 벌을 받게 사는 거예요. 우리 개인적으로 우리 죽은 다음에 받는 심판을 무슨 심판이라고 해요? 사심판이라고 해요. 사심판은 내가 혼자서 변호사도 없이 내가 홀로 예수님 앞에서 재판을 받는 거예요. 그런데 말세에 우리 예수님이 오시면서 우리한테 우리 인생의 헤아림을 보시는 거,
이것을 ( 2 )이라고 그래요. 내 사심판에 받은 것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겁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래요. 그래서 우리 교리를 배울 때는 사심판과 ( 2 )을 배웠어요. 사심판은 내가 개인적으로 죽을 때, 홀로 예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 것을 사심판이라고 그러고, 세상 말세 때는 모든 사람이 보고 듣고 하는 데서 내 심판을 공표하는 거예요. 선포하는 거예요.
이게 ( 2 )이에요. 우리들이 언뜻 생각하기에는 이 많은 사람들이 재판 받는다고 그러면, 어떻게 그것을 기다리고 다 들을 수 있나?
그런데 놀라운 것은 뭐냐면, 우리가 번쩍하는 사이에 다 알아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게 이루어지는 거예요.
이게 ( 2 )이에요.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는 이 대림절 동안에 매일 미사 때마다, 특별히 대림 감사송에 두 개가 있어요. 12월 17일까지는 제1 감사송을 매미사 때마다 사제가 염하는데, 거기에서는 우리가 계속 상급을 기다린다고 그랬어요. 우리 교회가 우리들한테 권장하고 가르쳐 주는 것은 뭐냐면, 우리가 벌 받을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급을 받을 준비를 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것, 제가 이 말씀 시작하면서 인생에 대해서 질문한 것 언급을 했어요.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살까? 우리 교회 에서 우리들한테 가르쳐 주고, 권장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 다시 오실 때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도망가려고, 숨으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양팔 벌리고, 환호하면서,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우리 교회는 가르치는 거예요.
양팔을 벌리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뭐예요? 우리가 상급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한테는 양팔 벌리고 기다리게 돼요.
여기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주님 오시는 것을 기대하고, 환영하고, 환호성을 외치면서 맞이하는 거예요. 이래서 저는 이 성당에서는 우리 특별히 파티마 성모님을 모시면서 우리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첫 토요일 날 피정을 합니다. 피정을 하는 것이 대림절하고 겹쳐서 우리들이 어떻게 준비를 할까?
특별히 우리 성모님의 도우심을 청하면서, 또 성모님께서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세 어린이들 통해서 우리들한테 알려주신 이 메시지를 생각을 하면서, 대림절 준비하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제가 한 가지를 더 덧붙여서 여러 형제자매들한테 상기시켜 드리면서 이 말씀을 나누고 싶어요. 그게 뭐냐면, 지난달 11월 말쯤에서 우리 레오 교황님께서 두 나라를 사목 방문하셨어요. 여러 형제자매님들, 어떤 분들은 우리 교회 뉴스에 밝으신 분들은 금방 아시죠. 우리 레오 교황님께서 어느 나라 가셨지요? 튀르기예(Türkiye)를 가시고, 그 다음에는 또 조금만 나라? 레바논, 이 두 나라가 지금은 다음 어떻게 보면은 크리스챤 나라라고 할 수가 없어요. 바오로 사도 시대에는 튀르기예가 상당히 중요한 우리 그리스도교 나라였었어요. 우리들이 서양사를 공부하고 이럴 때 소아시아라고 그랬지요. 튀르기예가 상당히 큰 나라예요. 그런데 거기 지금 천주교 신자는 35,000명밖에 안 돼요. 거기 다른 크리스챤들도 있는데, 주로 동방교회라고 그래요. 우리 천주교에서 다른 나라는 정교회라고도 그래요. 정교회의 크리스챤들이 대부분이에요. 크리스챤들은 그리고 로만 가톨릭하고 개신교는 소수입니다. 우리 천주교만 따질 것 같으면, 튀르기에르로 전국에 천주교 신자수가 통계로 나온 것은 3만 5천 명 정도밖에 안 돼요. 이것을 보면, 서울대교구의 한 본당만큼도 못 돼요. 전체가...
레바논도 예수님 시대에 또 사도시대 때에는 우리 그리스도교가 컸지만, 지금은 역시 거기도 이슬람교가 강해요. 튀르기예도 그렇고, 레바반도 그렇고, 크리스챤들이 있긴 있지만, 대다수는 이슬람이에요. 그런데 레오 교황님께서 첫 번째로 사목 방문한 나라가 이 두 나라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과 연결해서 교황님께서 튀르기예에서 한 공동체 앞에서 말씀하신 가운데, 우리들이 지금 생각한 거 하고 관련해서 여러 형제자매님들께 상기시켜 드리고 싶은 것이 뭐냐면, 교황님께서 크리스챤들 수가 작고, 이런 앞에서 말씀하시면서 숫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러면서, 언급하신 것이 뭐냐 하면, 하느님의 안목으로 볼 것 같으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시대에 또 예수님이 오실 때도 그렇지만, 지금 현재도 하느님께서는 ( 3 )을 통해서 우리 세상 한가운데 나타나셨다고 이렇게 언급을 하셨어요.
( 3 ), 조그만 것, 우리 멀지 않아서 여기 구유를 꾸며 놓을 것이죠. 꾸며 놓으면 아기 예수님을 우리 모시게 돼요. 아기 예수님 우리들이 이렇게 볼 때, 대부분이 현대성당에서는 아기 예수님이 살을 통통이 찌셨고, 전깃불이 반짝반짝하게 이쁘게 이렇게 대부분의 성당에서는 또 금방석에 나뉘었어요. 그런데 원래 예수님 오실 때 예수님 정말로 금방석에 누워 계셨었어요? 외양간에 금방석이 있었어요? 금방석 없었어요. 그러면 성모님께서 해산하실 때, 성모님이 누우신 자리가 어떤 자리였습니까? 산짐승이 있는 외양간이었었어요. 산짐승이 있는 외양간이면, 성모님이 누우신 자리가 마른 자리였습니까? 우리 짐작으로는 어떻게 돼요? 젖은 자리였었어요. 뭘로 젖었겠어요? 짐승의 오물로 젖었을 거예요. 거기에서 해산하셨어요. 요셉 성인이 어떻게 하셨어요? 마른 지푸라기 찾아서 아기 예수를 누윌 데가 없으니까, 구유통을 갖다가 조금 씻은 다음에, 거기에다 마른 지푸라기를 골라 가지고, 아기 예수님을 거기에 눕혔을 거예요. 그럼 교황님께서 하느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 3 )을 통해서 우리 세상 한가운데 나타나셨다고 이것을 가지고 강론하셨어요. 이게 우리 시대의 모두에게 교황님께서는 상기시켜 주시는 겁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세상 만물을 다 창조하신 하느님,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세상을 지탱하는 하느님, 그분이 막상 우리들의 눈으로 가시적으로 이 세상에 오실 때에는 화려하고 위대한 것을 통해서 오시지 않고, 우리 인간 중에 가장 연약한 존재로,
가장 작은 존재로, 이 세상에 오셨어요.
제가 이 성당에서도 매주 목요일마다 하루 피정을 지도합니다. 오늘 첫 토요일이기 때문에 더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오셨어요. 그런데 목요일에는 많은 경우에 20명 보통은 스무 명 안 되시는 분들이에요. 앞에 쪼르르 앉아 계셔요. 그런데 제가 항상 목요일 날, 오시는 분들한테 그래요. 제가 행복하다고. 그게 왜 그러냐 하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베들레헴보다는 우리들 목요일 날 더 많이 와요. 예수님께서 정말로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을 때, 이때는 이 아기예수님, 이 아기 하느님을 맞이하는, 물론 성모님은 예수님을 탄생시키셨고, 요셉 성인이 모르겠어요, 그 당시에 베들레헴 아낙네들을 불러 가지고 해산 바라기를 하셨는지? 요셉 성인이 직접 하셨는지? 이건 복음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몰라요. 그런데 두 가지가 가능해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 우리의 복음으로 봐서는 모든 집에서 여인숙에서 성모님이 만삭이라는 것을 보고서 다 거절을 했어요. 방이 있는 집에서도 우리 방 없다고 그러면서 방 내주지 않았어요. 요셉 성인이 성모님이 지금 만삭의 여인인데, 올 때 갈 데가 없고, 지금 진통은 오고, 이러기 때문에 외양간으로 가신 거 아니에요? 그러면 성모님이 해산하는데 있어서, 동네 아낙네들이 진짜로 왔을까? 저는 의문표를 붙여요. 어떤 분은 왔을 수도 있고, 안 왔었을 수도 있어요. 안 왔다고 그럴 것 같으면, 누가 받았어요? 요셉 성인이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럼 요셉성인이 그 외양간에서 더운 물 하나라도 제대로 구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성모님이 해산을 하셨다는 거, 우리 잊지 말아야 돼요. 예수님 아까도 우리 성체 강복 후에 예수님은 왜 찬미한다고 그랬어요?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라고 그랬어요. 참 사람이면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우리들처럼 갓난이처럼 태어나셨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갓난이가 말이죠, 엄마 뭐 하는 거예요, 이러고서 성모님한테 말을 했을 것 같아요? 어느 쪽 일 것 같아요? 참 사람이면, 갓난이죠. 우리들처럼 응애 응애 소리 내며 울었을 거예요. 그러면 우리들이 구유를 꾸밀 때는 아주 반짝반짝 이쁘게 귀엽게 꾸미지만, 막상 마리아가 외양간에서 해산하실 때, 이때 그 예수님이 참 사람이실 것 같으면, 성숙한 아이인가? 천재 같은 아이인가? 어떤 아이였을 거 같아요? 우리들하고 똑같은 아이었어요. 그래야 참 사람이에요. 우리가 성체 강복 후에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합니다. 이거 보통 기도가 아니에요. 예수님이 참 사람이라고 그러는 것은 우리들이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나올 때, 똑같은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그것을 겪으신 거예요.
교황님께서 튀르기예에 가셨는데, 튀르기예에 가신 중에 방문한 것 중에 한 군데가 어디냐 하면, 니케아!
옛날에 니케아 지금은 도시 이름이 달라요. 그 니케아, 어떤 때는 니체아라고도 그래요. 어떤 때 신경외울 때 우리가 사도신경 말고 긴 신경을 외울 때,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이라고 그래요. 그게 왜 그러냐 하면, 니케아에서 공의회가 일어났을 때, 결정한 신경을 오늘날에도 우리가 외우는 거예요.
니케아 신경이 뭐냐 하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 천주교 신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되는 것, 반드시 믿어야 되는 것, 그것을 압축해 놓은 것을 신경이라고 그러는데, 니케아 공의회가 325년경에, 그러면 서양에서 종교자유가 막 일어날 때, 첫 번째 일어난 공의회가 니케아 공의회였었어요. 오늘날 우리들이 외우고 있는 신경을 거기에서 결정한 거예요. 이번에 튀르키예에 방문하신 교황님께서 니케아에 가셔서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 기념 기도회를 동방교회의 지도자들하고, 우리 교황님하고, 거기 개신교 목사님들도 참석하고, 성공회 신부님들도 참석하고, 이래 가지고, 옛날에 옛날에 공의회를 한 것처럼, 우리 시대에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 가지고, 종교 통합회의를 하면서 기도를 하셨어요. 교황님이 가셨을 때... 니케아 1700년 기념을 아울러 하면서, 이런 모임을 가지셨어요.
그러면 다시 예수님으로 와 가지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베들레헴에서 외양간에서 갓난이로 태어나신 거, 우리 현대인들한테도 의미가 커요. 우리가 본당에서 무슨 행사를 할 때도 그렇고, 교회에서 무슨 행사를 할 때도 그렇고, 우리나라는 말을 것도 없고, 무슨 행사한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는 어때요?
대대적으로 해요. 큰 행사 벌리고, 큰 운동장 아니면, 대강당에 모여 가지고, 화려하게 이렇게 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모아 놓고, 돈 예산을 잔뜩 드려요. 지금 와서 서울 운동장 이라든가, 대강당에서 할 것 같으면, 보통 몇 억 원씩 쓰면서 대회를 열고, 음악도 하고, 여러 가지 하면서 그야말로 세를 과시한다고 그러죠. 군중도 대군중이 모이고 이러죠. 그런데 전능하신 하느님이 이 세상이 오실 때에는 우리 교황님 표현으로다 ( 3 )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어요. 우리들이 이 성당을 통해서도 우리가 남북통일을 원하고, 우리가 남북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이럴 때 우리들 대부분은 사람 있어야지, 돈이 있어야지, 뭐가 있어야지, 뭐가 있어야지, 우리 이런 걱정 많이 합니다. 그런데 파티마의 성모님을 비롯해 가지고, 성모님께서 우리 근래에 와서 와서는 여기저기서 발현하시는데, 성모님께서 발현하실 때,
추기경님들한테 발현하셨어요? 대통령한테 발현하셨어요? 부자들한테 발현하셨어요? 우리 이 성당에 두 성인 모셨어요.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우리 세 어린이 중 루치아 수녀님은 조금 더 오랫동안 살으셔서 아흔 살 이상까지 사시다 돌아가셨어요. 이 셋째 루치아수녀님은 지금 시복과정에 있습니다. 세 아이들 중에 두 아이들 성인이 돼 가지고, 우리 여기 성당에 모시고 있어요. 그러면 파티마 성모님이 이 세 어린이들한테 나타나셔서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부탁하셨어요. 성모님께서 대통령한테 나타나시고, 추기경님이나 교황님한테 나타나 시고, 이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왜 목동 아이들한테 나타나셨을까?
이 질문도 하게 돼요. 그런데 이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게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거예요. 하느님께서 우리 시대에도 ( 3 )을 선택해서 우리 가운데 계시다고...
그럼 우리들은 정말로 하느님을 믿는다 할 것 같으면, 우리는 크고 작은 것,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오히려 작은 것을 통해서도 하느님은 당신의 일을 하실 수 있어요. 보세요. 예수님께서 나중에 공생활하실 때, 제자들을 뽑으셨어요. 제자들을 뽑으셨는데, 12제자 중에 부자가 있었어요? 공부 많이 한 사람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어렸을 때뿐만 아니라 커서도 당신의 사업을 하시는데, 그러니까 구원사업이에요. 인류 구원사업을 하시는데, 예수님 어떠한 동반자들을 선택하셨는가? 그 당시에 어부들, 세리들, 이런 사람들이었었어요. 그러니까 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특권층에 있는 사람, 돈이 많은 사람, 이런 사람들이 아니었었어요. 예! 물론 예수님 부활하신 다음에는 바오로 사도를 선택하셨어요. 예수님께서 공생활하실 때는 아니었었어요. 예수님 돌아가셨다 부활하신 다음에, 그때 바오로 사도를 선택하셨어요. 그런데 막상 예수님께서 실제로 일을 하실 때에는 12사도, 12사도뿐만 아니라, 일흔 두 제자니, 뭐니 이런 제자들 다 유명한 사람들, 위대한 사람들 아니었었어요. 그리고 또 예수님하고 같이 일을 했고, 예수님을 따라다닌 여인들이 있었어요. 이 여인들 귀부인들이셨습니까? 마리아 막달레나 귀부인이었었어요? 창녀였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무시하고, 한 날 어떠한 사람이 예수님 초대해서 식사 초대를 했는데, 마리아 막달레나가 와서 예수님 발치에 엎드려 울면서 눈물로 예수님 발 씻겨 드리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여인이 머리카락이 얼마나 소중해요, 그런데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아 드리고, 이럴 때 예수님을 초대한 사람이 속으로 뭐라 그랬어요? 이 사람이 진짜로 예언자라면 이 여인을 가만 놔두는가? 이럴 때 예수님 뭐라고 그러셨어요? 이 여인은 더 많은 사랑을 받기 때문에, 그것을 닦는 거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당신이 나를 초대를 했지만, 당신은 나한테 우리 풍습에 따라서 해야 할 것마저도 하지 않았다. 내가 발을 씻을 물도 주지 않았는데, 이 여인은 나한테 자기 눈물로 내 발을 씻어 주었고, 자기의 소중한 머리카락으로 내 말을 닦아 주었다. 누가 더 큰 보답을 하고 있는 것인가? 예수님 이런 반문을 하셨어요. 우리들한테 이거 해당되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들 통일을 위해서 한다던가, 교회를 위해서 한다던가,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상당히 어지러워요. 복잡해요. 그런데 나 같은 게 무슨 힘을 낼 수가 있을까? 나 같은 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심지어 내가 기도를 하면서도, 내가 혼자 하는 기도, 이거 가지고 될까? 이런 걱정을 해요. 그런데 교황님께서 전능하신 하느님이 ( 3 )을 통해서 우리 세상 한가운데 나타나셨다. 이것이 나한테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이번 크리스마스 때 나는 어떠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들여다봐야 돼요. 우리 중에는 한 사람도 내가 위대하다고 생각 안 해요. 그런데 반면에 또 내가 너무 힘이 없으니까, 나 같은 거 이럴 때가 있어요. 우리 교황님께서 우리한테 상기시켜 주시는 거예요. 예수님 이 세상에 오실 때 막강한 힘을 가지고 오셨는가? 아니예요. 가장 가냘프게, 그러니까 성모님께서 보살펴 주시지 않았으면, 아마 얼어 죽었을는지도 몰라요. 성모님께서 젖을 빨려 주시지 않았으면, 이 갓난아이가 굶어서 죽었을지도 몰라요. 하느님이 마리아의 도움이 필요한 이러한 갓난이로 이 세상에 오셨어요. 그러니까 아씨씨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우리 구유를 꾸미는 거, 우리들한테 무엇을 상기시켜 주시는 거예요.
프란치스코 성인은 우리 모든 사람에게 복음처럼 살기를 원하셔서 구유를 꾸미셨어요. 그러니까 프란치스코 성인 때 문맹들이 무지하게 많았어요. 그리고 성경책이 오늘 날처럼 이렇게 흔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성당에서나 수도원에서나 성경책이 있을 것 같으면, 우리 프란치코 성인 시대는 아직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모든 성서를 다 필사를 했어요. 손으로 쓰는 거였었어요. 손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것처럼, 지금 우리들 성경책 들고 다니는 것처럼, 그렇게 흔하지 않았어요. 또 성경책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당시에는 서양이고 동양이고 문맹들이 참 많았어요.
읽을 줄 모르고.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았어요. 지금도 우리 성지순례 가면 서양의 큰 성당들 보면, 조각품 많고, 성화가 많고, 뭐 이러는데, 이게 다 왜 그러는지 아세요? 대부분 말이죠, 성당에는 조각품들이 꽉 차 있어요. 우리나라 성당보다 조각품이 더 많아요. 그게 왜 그러는지 아세요? 그 조각품은 애들 데리고 오든지, 내 친구들 데리고 와 가지고, 조각품, 그러지 않으면 성화를 보면서, 설명을 해 주는 거예요. 여기는 아담이 여기 있고, 하와가 여기 서서 사과 따 먹는 거고, 여기서 쫓겨나는 거고, 이게 다 교리 책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들 조각품 대표적인 것이 베르드 대성전 입구에 탁 들어가면, 피에타 예수님 시신을 안고 계시는 성모님의 상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정교에게 만들었나, 이런 거 보면서 사진 찍느라고 난리가 나지요. 그런데 원래는 그것을 보면서 성모님 품에 안긴 그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 누군지, 왜 시신으로다 성모님 품에 안 계셨는지, 또 성모님께서 이 아들을 안고 계시는 이 심정이 어떤 건지, 이걸 갖다 우리들이 공부하고 가능하면 내가 공감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 조각품이 있는 거예요. 우리 성화도 마찬가지예요.
다시 예수님으로 돌아와서 예수님이 왜 갓난이로 이 세상에 오실 수밖에 없었을까? 오늘날에 그게 나한테 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해 주기 위해서 예수님, 하느님이 갓난이로 이 세상에 오신 거예요. 갓난이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들하고 똑같게 자라는 거 보세요. 만약에 예수님이 갓난이서부터 참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른 노릇을 했고. 갓난이가 아니면, 어른 노릇을 했을 거예요. 처음부터...
그럼 예수님 나자렛에서 몇 년을 살으셨지요? 30년, 왜 하느님이 30년 동안 나자렛이라는 시골에서 사셔야 돼요? 그거 우리들이 다 어렸을 때부터 성장하는 거, 이거 다 거룩한 수단이라는 거, 내가 어떻게 해서 성인이 되는 것을 내가 일상생활에서 성장해 나가는 거, 이것이 거룩하게 되는 기회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한테 가르쳐 주신 거예요. 보세요. 우리의 묵주신공 하면서, 기쁨의 신비 1단서부터 5단까지 하는 것이 뭐냐면, 예수님 나자렛에서 30년 사신 것을 다섯 장의 그림으로 묵상하는 거예요.
첫 번째 그림이 뭐예요?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와서 인사하면서 우리 시대 말로 임신하는 거, 이거 말씀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우리 이 세상에 오실 때 참 사람으로 오시기 때문에 어떻게 돼요? 참 사람으로 오시려면, 엄마가 있어야 되고, 엄마가 태중에 몇 개월? 9개월 내지 10개월, 엄마 태중이 있어야 돼요. 예수님이 이거 겪으신 거예요. 보세요. 우리 가브리엘 천사가 온 축일이 언제죠? 몇 월 달에? 3월 25일. 예수 성탄이 12월 25일 이죠. 그러면 3월서부터 한번 따져 보세요. 4 5 6 7 8 9 10 11 12, 9개월이에요. 이게 무슨 달이에요? 산달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 참 사람이세요. 엄마 태중에 아홉 달 계셨어요. 하느님 일 것 같으면 쑥 들어갔다 쑥 나오면 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 성모님 태중에 아홉 달 계셨어요. 나하고 똑같아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가브리엘 천사 오신 게,
3월 25일이고, 예수님 탄생이 12월 25일이에요. 딱 아홉 달이에요. 교회에서는 이것을 갖다가 우리 신자들한테 교육시키기 위해서 두 축일을 법에다 맞춰 놓은 거예요. 예수님께서 참 사람이시라는 거, 이거 강조하시는 거예요. 아까 제가 니체야, 니케아 신경 말씀 드렸지요. 니케아 신경이 아까 몇 년도라고 그랬어요? 니케아 공의회가 325년 이라고 그랬지요. 이때 종교 자유가 생긴 건데,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320년 동안 우리 신학자들이, 그러니까 교황님들하고 신부님들하고 계속 싸웠어요. 뭘 가지고 싸웠는지 아세요? 예수님이 참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하느님이 사람의 탈을 쓰고 왔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참 사람인데 그러니까 하느님 아니다, 예수님이 인성만 인정하고 천주성을 받지 않았어요. 또 어떤 사람은 하느님 예수님이 천주성만 받고 인성을 무시했어요. 그러니까 인간의 탈을 쓰고 왔다고 그러는 거예요. 이것 때문에 300년 동안 토론을 하면서 피 튀기게 싸운 거예요. 그래서 니체아 신경 만들 때, 이때 통일이 된 거예요.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모든 신학자들 주교님들이 합의를 해서 발표한 것이 신경이에요. 그때서부터는 예수님이 참 하느님이시면서 참 사람이라는 거,
믿어야지만 영세를 줄 수 있고, 믿어야지만 그리스도교 신자로 받아들인 거예요.
그래서 이건 지금 오늘 날에도 개신교 신자들하고 우리들 똑같아요. 개신교 신자들도 예수님은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요. 우리들도 그래요 또 동방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성공회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크리스챤들은 이것을 다 받아들여요.
그리고 니케아 신경이 나올 때는 개신교가 없었어요. 또 동방교회도 없었어요. 우리 그리스도교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11세기 돼 가지고 동방 교회가 갈라져 나갔어요. 또 16세기 되니까 개신교가 종교 개혁을 일으켜서 나갔어요. 이래 가지고 개신교는 계속 지금도 분파가 자꾸 일어나요. 여기서 니케아 신경은 분파되어 나가면서도 다 받아들여요. 개신교에서도 다 받아들이고, 천주교에서도 받아들이고, 성공회서도 받아들이고, 그러면 다시 한번 예수님이 참 사람이신 거, 이게 모두에게 참 중요한 거예요. 우리 천주교 신자들에게도 많은 경우에 이거 깜빡깜빡 잊어버리시는 분들이 계셔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닮아야 된다, 예수님처럼 살아야 된다, 이러면 어떤 신자는 그래요. 아이고, 주교님 나는 그냥 무지랭이에요. 예수님하고 닮을 수 없어요. 이거 참 겸손한 거 같고 거룩한 거 같지요? 저는 그런 사람들
무지무지 교만 하다고 그래요. 왜 교만하냐 하면, 우리 교회의 전통을 무시하고. 니케아 신경을 무시하는 사람이에요. 이거 우리들이 정말로 겸손하면, 예수님 철저하게 본받아야 돼요. 실제로 우리가 예수님, 이 십자가의 길 여기도 이렇게 걸어 놓고 왜 있는 거예요? 우리가 이 양반한테 그냥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할 때 내가 겸손한 신자라면, 어떻게 돼요? 예수님 닮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이 기도하면서...
예수님이 우리들한테 뭐라 그랬어요? 나를 따라오라고 그랬었는데, 어떻게 하고 따라오라고 그러셨어요? 각자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따라오라고 그러셨어요.
그리고 우리 천주교회에서는 반드시 십자가만 있는 것이 아니고, 거기 뭐가 달려 있어야 돼요? ( 4 )이라 그래요. 우리는...
예수님의 상이 붙어 있어야 되요. 우리 천주교에서는... 우리 각자 묵주에도 ( 4 )이 있잖아요. 개신교에서는 ( 4 )이 없어요. 십자가만 있어요. 그렇죠? 우리 천주교는 어느 성당에 가든지 ( 4 )이 있어야 되고, 어느 집에 가든지 ( 4 ) 걸어 놨어야 되고, 그리고 우리 여성들 많은 경우에 목걸이던지 브로치던지 뭐든지 십자가 ( 4 )을 지니고 다녀야 돼요. 저 같은 사람도 묵주를 알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거기 반드시 ( 4 )이 있어야 돼요. 그건 왜 그래요? 나도 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따라 예수님 닮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파티마 성모님께서 세 어린이들한테 부탁하신 게 있어요. 무슨 기도 열심히 하라고 그러셨어요? 묵주기도 열심히 하라고 그러셨어요. 몇 단 하라고 그러진 않으셨어요. 열심히 매일 하라고 그러셨어요. 그리고 또 두 번째로 뭐 하라고 그러셨어요? 매일매일 희생 바치라 그러셨어요. 매일매일 희생이 뭐냐고 어린이들이 질문했을 때, 성모님께서 너희들이 매일매일 겪는 어려움을 성모님께도 바치고, 주님께 바치는 거, 그게 희생 기도다. 이렇게 가르쳐 주셨어요.
그게 바로 뭐냐면, 우리가 십자가지고 가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매일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그러신 거예요. 여기까지 제가 지금 말씀드리면 여러 형제자매님들 이번 성탄 때, 내가 결심한 거, 묵주기도 백단 하겠다, 몇 단 하겠다, 이건 나쁜 건 아닌데, 그거 하느라 쩔쩔 맬 거예요. 엄마들 아마 살림하는데 지장 있을 거예요. 매일매일 백단 하려면...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백단하라고 안 그러셨어요. 열심히 하라고 그러셨어요. 제가요 묵주기도 일단 열심히 하면 성모님하고 약속 어기는 거예요? 지키는 거예요? 지키는 거예요. 일단이라도, 5단이라도 열심히 할 수 있어요. 꼭 100단 아니에요. 근데 어떤 사람은 내가 백단하겠다고 약속해요. 한 일주일은 잘 해요. 일주일 지난 다음에 어떻게 해요? 50단으로 줄어들고, 한 6개월 지난 다음에는 20단도 못 해요. 이것은 제대로 된 약속이 아니에요. 내가 분수에 맞게 해야 돼요. 성모님께서 세 어린이들한테 너희들이 매일매일 겪는 어려움을 바치라고 그러셨지, 너희들이 할 수 없는 거 하라고 안 그러셨어요. 이 세 어린이들 중에 두 어린이들은 그것을 성실하게 지켰기 때문에 성인이 되셨어요. 그런데 이 두 어린이들이 어른들이 하는 그런 희생 바치시지 않았어요. 프란치스코나 히야친타가 주일마다 헌금 100만원씩 바치지 않았어요. 이 목동들이 무슨 100만원이 있어요. 그런데 이 어린이들이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나보다 더 배고픈 아이들한테 나눠 줬어요. 이건 돈으로 따질 것 같으면 몇 푼어치 안 돼요. 그런데 성모님이 보시기에는 참 큰 희생을 바친 거예요. 어린이 입장에서는 큰 희생을 바친 거예요. 그럼 우리의 각자가 지금 지고 있는 십자가가 있어요. 그것을 잘 바쳐 드리고, 기꺼운 마음으로 바쳐 드리고, 이럴 거 같으면, 그게 내가 예수님 닮는 것이 되고,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시는 그것을 내가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교황님께서 튀르기예에서 ( 3 )을 선택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언급하신 것은 우리들 작은 것을 갖다가 소홀히 하지 말아야 된다는 거, 교황님께서 이것을 말씀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분은 오늘도 미사 때 헌금을 내가 천 원짜리 몇 장밖에 없어요. 이거 헌금 바쳤으면, 이거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정성껏 바치는 거면... 액수가 문제가 아니에요. 작은 액수라도 내가 정성껏 바치면, 하느님께서 그것 갸륵하게 보셔요. 한 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하고 헌금 통에 집어넣는 것을 보신 다음에 누구를 칭찬했어요? 어떤 과부가 동전 얼마를 넣었어요? 두 닢을 넣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 돈 넣는 것을 다 보신 다음에, 이 과부가 제일 큰 헌금을 바쳤다고 그러셨어요. 동전 두 닢 집어넣었는데... 그러니까 제자들이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예수님 뭐라고 설명하셨어요? 돈 많은 사람 중에 대부분은 저희가 넉넉하게 사는 데서 얼마를 떼 낸 거지만, 이 과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거 전부를 바쳤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이 동전 두 닢이 부자들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하느님 보시기에는 큰 돈이었어요. 우리들 마찬가지예요. 내가 할 수 있는 거, 저 사람하고 이 사람하고 나하고 비교를 하면 안 돼요. 내가 내 정성껏 한 것이 얼마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지, 다른 사람 얼마 넣었으니 나도 얼마를 넣는 거, 그거 아니에요. 여러 형제자매님들 이번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면서 교황님이 말씀하신 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갓난이로 오신 거 하고, 연결해서 내 자신을 생각하면서, 나는 어떤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를 할까? 우리 각자가 생각해 보시면 어렵지 않으면서도 하느님 크게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있다는 거,
잊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삼종 기도 바치겠습니다.
(1강의 전문정리,
대림특강 1강의 전문녹음을 꼭 들어보시고, ( )에 답을 댓글에 써주세요.)
♦1강의 전문 녹음
♦삼종기도
♦점심 뷔페식
♦오후 강의:
♦2강의: “가장 작은 존재로 오시는, 주님”
저도 점심 맛있게 먹었습니다. 여러 형제자매님들 뵈오면은 제가 사실은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예요.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저한테는 그렇게 반가운 존재들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여기 이 성당에 오시는 분들은 아주 특별하신 분들이세요. 여기가 어떻게 보면 경기도이긴 하지만, 아주 구석진 데거든요. 여기 오시려면 큰맘 먹고 오셔야 돼요. 그러니까 이 성당은 본당이 아니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오시는 분은 한 분도 안 계세요. 여기 다 자발적으로 오시는 분들이에요.
제가 이 성당에 오시는 분들한테는 또 뭐라 그랬냐면, 그래도 파티마 가는 거보다는 싸지 않느냐? 하하하... 그렇죠? 성지를 가려면 적어도 100만원 이상은 들어요, 최소한도. 그런데 여기저기 다니시다 보면은 웬만한 데는 다 500만
원이에요. 그러니까 여기 오시는 분들은 아무리 멀다 하더라도 또 아무리 운전을 하고 오셨다 하더라도 백만원 까지는 쓰시지 않으셨어요. 요만큼 하더라도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상당히 머리가 좋으신 거예요. 멀리 가시지 않고도 성모님 마음 기쁘게 해 드리고, 예수님 마음 기쁘게 해 드리고, 또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성모님을 반갑게 뵈올 수 있고, 또 무엇보다도 이 성당에 오시는 분들은 공통점이 성모님 사랑하시는 분들이에요. 그러니 서로서로 얼굴에 성모님 사랑하시는 거, 사랑받으시는 거, 다 보이잖아요. 저는 이 안에서 다 보이는데, 옆에 분들한테 서로 인사 한번 해 주세요. 반갑다고... 반갑습니다. 성모님의 축복을 빕니다.
인사를 하셨으니까, 확실히 여기 처음 오신 분들은 다음 번에 또 오시면 더 반가워져요. 자주 오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여기 와서 우리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를 음미하고, 또 파티마 성모님께 기도를 드리고, 이러면서 서로 서로가 큰 힘이 됩니다. 사실 우리가 교회에서 기도한다고 그러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큰데,
그 중에 하나가 뭐냐면, 예수님께서 우리 개인 기도도 다 좋고, 또 주님께서 개인기도 다 들어 주셔요. 그런데 특별히 예수님께서 뭐라고 그러셨냐면, 내 이름으로 둘이나 셋이서 모여서 기도하면, 내가 함께 하겠다고 그러시면서,
더 기뻐하신다고 그러셨어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묵주기도를 해도 그렇고 다른 기도, 이 성당에서는 특별히 쎌기도를 우리가 하는데, 이 쎌기도 같이 하는 거, 아주 가치가 크고, 아주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혼자 하는 것보다 이렇게 더불어서 같이 할 때, 우리들이 느낌도 그렇지만, 성모님께서나 예수님께서 개인적으로 기도 하는 것보다 이것을 더 기쁘게 받아들이셔요. 이러니까 공동으로 하는 거 상당히 중요합니다.
오후 시간에는 우리 대림절 준비하는 거, 오전에 한 거에 이어서 오후에는 조금 더 제가 구체적인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왕 여러 형제자매님들께서 여기 오셨고 하루 피정을 하시는 거니까, 이 피정을 통해서 저는 여러 형제자매님들께서 가깝게는 판공성사준비가 잘 되도록,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판공성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저는 특별히 고백 성사 준비하시는 거, 특별히 강조를 하면서 여러 형제자매님들께서 성사의 은혜, 고백 성사의 은혜를 제대로 파악하시고, 또 최대한으로 이 고백성사의 이점을 내가 활용하도록 하셨으면 좋겠어요. 특별히 우리나라에서 제가 신자들을, 제가 주교 되기전서부터 각 본당에 제가 지원 나간 적이 있고, 제가 신부님들 수녀님들 피정 도와드리면서, 신자들 만날 때가 자주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느끼는 거 하나가 뭐냐면, 한국에서는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고백 성사에 대해서 상당히 큰 부담을 느끼셔요. 저도 이것을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 형제자매님들께서 묵주기도 한다든지, 주모경을 한다든지, 어떤 기도를 하든지 간에 우리가 기도를 할 때는 하느님 체험을 하는 것이 참 중요해요. 여러 형제자매님들께서 기도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오해를 하거나, 착각하는 거 하나가 뭐냐면, 기도를 자판기에 동전 하나를 넣고 커피 한잔 마시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저는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것은 자동적으로 은혜가 탁탁탁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 대화하는 거예요.
오늘 여러 형제자매님들께서 지금 이 자리에서 제가 대화하는 거 다 쳐다보고 계셔요.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 여러 형제자매님들께서는 마음으로 다 받아들 이고 계셔요. 어떤 분들은 저보고 동의도 하시지만, 어떤 분들은 질문도 있어요. 속에... 이한택 주교님이 저렇게 이야기하는 거, 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예를 들어서 오늘 아침에 제가 교황님 조금 언급을 했어요. 어떤 분들은 제가 교황님 인용하는 거, 처음 들으시는 분들도 계실꺼예요. 그런데 또 어떤 분들은 가톨릭 신문이나 평화 신문 자주 보시는 분들은 이미 읽으신 거예요. 그런데 이한택 주교가 저렇게 말씀하시는구나, 이럴 수도 있고. 어떤 분들은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모든 거, 이한택 주교님 동의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도움이 되는 만큼 받아들이시면 돼요. 어떤 것은 여러 형제자매님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제가 여기서 말씀 드리고 있어요. 그럼 내가 다 아는 건데, 이한택 주교가 또 저렇게도 이야기할 수도 있구나, 이럴 수 있고. 어떤 분한테는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거, 여기서 들으실 수도 있어요. 그럴 때 이게 뭐냐면 우리 기도하는 것도 우리가 하느님하고 대화하는 건데, 우리 그리스도 교회의 하느님은 인격적인 하느님이라고 그래요. 이거 조금 어려운 말 영어로 하시는 분들은 PERSONAL 하다고 그래요.
사전에 찾아보면 personal이 뭐냐면, 사적이다. 모다 모다 나오는데, 우리 교회에서 personal하다 그러는 것은 우리 한국말 사전보다 조금 의미가 더 있어요. 인격적이라고 그러면, 예를 들어서 하느님한테 인격적이라고 안 그래요. 왜냐하면 신이기 때문에 굳이 우리가 이것을 연장한 다음에 신격적이라고 그래야 돼요. 우리 사람한테는 인격적이라고 그러지만, 하느님한테는 신격적이라고 그래요. 영어로는 인격적인 것도 personal이고, 신격적인 것도 personal이라고 그래요. 그럼 우리 그리스도 교회에서 personal하다고 그러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뭐냐 하면, 제가 지금 여기서 여러 형제자매님들한테 말씀 드리는데 저한테 주의를 집중해 주고 계셔요. 근데 어떤 분은 이한택 주교 말이 졸리다, 조실 수도 있고, 외면할 수도 있어요. 그게 다 인격적인 관계예요. 또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예요. 엄마가 오늘 성당 갔다 온 얘기 막 하고, 이한택 주교가 이런 얘기했어, 그런데 아저씨가 듣는 것 같지가 않아요. 그냥 휴대폰만 보고 있어요. 이것도 인격적인 대화예요. 그런데 인격적인 대화하는데 같이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아니고, 들은 척 안 하고 외면하고 나하고 상관없어 이한택 주교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당신이나 관심가져, 이럴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당신 성당 갔다 왔어? 그럼 그것 좀 나한테 나눠 줘. 이럴 때 더 깊은 대화를 한다 그래요. 이거 인격적인 거예요.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댁에서 부부간에만이 아니라, 자녀들하고, 부모님들하고도 인격적인 관계 참 중요해요.
보세요. 우리 구약성서를 보면, 하느님이 예를 들어서, 아브라함 하고 부를 때, 아브라함 할아버지가 하느님 만날 때, 누가 선수를 쳤어요? 아브라함 할아버지가 선수를 쳤습니까? 하느님이 선수를 쳤습니까? 하느님이 선수 치셨어요. 너 고향을 떠나라. 아브라함 할아버지 무지하게 걱정했어요. 아이고 우리 집 대대로 여기서 살고 지금 잘 살고 있는데, 나한테 이사 가라 그러면, 이거 참 내가 어디로 갑니까? 그러니까 하느님이 뭐라고 그래요. 내가 알려 줄게. 내가 가라는 대로 가라. 나 거기 모르는데요. 인도해 줄게. 너와 함께 간다. 그러니까 아브라함 할아버지가 짐 싸 가지고 정처 없이 떠나갔어요. 그다음에 몇 백년 후에 모세 할아버지가 또 하느님 만났어요. 이때도 누가 선수를 쳤어요? 하느님이 선수 쳤어요. 모세가 파라오한테 무서워서 도망갔는데, 다른 나라로 가서 장가들고, 처갓집 양떼를 돌보고 있을 때, 저 숲에 불이 일어났어요. 어, 저 불났네 하고 쳐다봤더니,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데 그 밑에 나무는 타지가 않아요. 오, 참 이상하다 하고, 어떻게 불길이 일어났는데, 나무는 타지 않지? 그리고서 내가 가서 좀 봐야 되겠다 하고, 살살 가니까, 어떻게 했어요? 하느님 음성이 들렸죠. 모세야, 모세야, 여기는 거룩한 데야. 신 벗고 엎드려. 깜짝 놀라서 엎드렸지요. 여기서 하느님이 먼저 선수를 치셨어요. 그러니까 모세가 엎드리니까, 하느님이 말씀하시고 소명까지 주셔요. 여기 지금 하느님이 너하고 대화하는 거다. 내가 너를 이끌테니까 파라오한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는데, 네가 좀 역할을 하라. 이러니까 모세가 뭐라 그랬어요? 아니 제가 지금 파라오한테서 도망을 쳤는데, 내가 파라오한테 가면은 잡혀서 죽을지도 몰라요. 이때도 하느님이 뭐라고 그러셨어요? 내가 너와 함께 있을 테니까, 염려하지 마. 무서워하지 마. 내가 너와 함께 도울게. 그 다음에 예언자를 통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이제 신약성서로 와서 공의회에서 예수님 오신 다음에 아까 제가 오전에는 참 사람으로 오셨다고 그랬잖아요. 참 사람으로 오셨으니까, 예수님 항상 제자들하고 이야기했고, 바리사이들하고도 이야기 하고, 다른 사람들하고 또 이야기하셨어요. 이게 다 뭐냐 하면, 인격적인 관계예요. 인격적이지 아닌 거 한번 볼까요.
우리들이 높은 산이라든지 산길을 가다가 고목나무가 있고, 무슨 천이 나부끼고 있고, 돌이 쌓여 있고, 그럼 어떻게 해요? 거기 지나갈 때 그냥 지나가요? 돌 주워서 던지고, 가래침 한번 뱉고, 발 한번 쾅 누르고, 지나가지요. 우리 신자들이라도 그렇게 안 하고 가면, 뭐가 쫓아오는 거 같아요. 그런데 내가 돌 던지고, 발 누르고, 가래침 뱉고, 이러면 고목나무가 대답합니까? 대답 안 해요. 이것이 비인격이에요. 내가 그렇게는 하지만, 고목나무는 나한테 대답 안 해요. 돌더미가 나한테 아무런 대답도 안 해요. 그런데도 나는 그렇게 해요. 어떤 신은 그래요.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 교회의 신은 언제든지 내가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대답하고, 어떤 때는 하느님이 나한테 먼저 말씀을 하셔요.
여러 형제자매님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때 보세요. 오늘도 어떤 자매 형제님들이 저한테 와서 기도해 달라고 하셨어요. 제가 응답했어요. 그럼 제가 그분을 위해서 기도하고 이러는데, 하느님이 언제든지 내 기도 들으셔요. 여러 형제자매님들 기도하면서 어떤 분은 그러죠, 주교님, 나는 기도 열심히 하는데 하느님이 들은 척도 안 해요. 그럼 제가 뭐라고 그러는지 아세요? 자매님, 기도는 하시는데, 하느님한테 시간 좀 주십니까? 우리들 바쁘게 묵주기도 은총이 은총이 하고서 딱 끝나고 나서, 싸우고, 소리 지르고, 눈을 흘키고 그래요. 기도를 한 다음에 하느님이 나한테 무엇을 응답하시는지 좀 들어야지요. 내 얘기만 잔뜩 하고서 말이죠 이러고서 하느님이 내 기도 안 들어 주신다고 그래요. 하느님 내 기도 들으세요. 나한테 응답하셔요. 우리들이 하느님께 귀를 기울여야 돼요. 하느님께 귀를 기울이는 것은 ( 5 )의 문을 열고서 기다려야 돼요. 우리들이 인간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내가 이 귀로 듣지만, 하느님께서 나한테 말씀하시는 것은 내 ( 5 )속으로 들어야 돼요. 그럼 반드시 하느님 말씀하셔요. 그런데 내가 하느님께 시간을 드려야 돼요. 여러 형제자매님들 댁에서 부부간의 말다툼하는 거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어떻게 하나? 내 이야기만 죽으라고 하고서, 상대방의 이야기는 막아 버리잖아요. 그런데 말이지, 이러면 그런 데가 뭐야. 내 얘기 안 듣고, 이러고서 내가 더 크게 소리 지르고, 내 이야기만 들으라고 그래요. 나는 저쪽에 얘기 안 듣고... 이러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 대화를 할 때는 내가 얘기를 한 다음에는 상대방도 나한테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돼요.
이건 자녀들하고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나라에서 대개 어떻습니까? 밥 먹을 때 꼬마들이 엄마 앞에서 뭘 물어보면 이건 너희들 몰라도 돼, 이건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야, 끼어들지 마, 어떤 때 심할 때는 더 빨리 밥 먹고 나가, 아이들 얘기를 안 들으려고 그래요.
아이들한테 기회를 안줘요. 이러니까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대화 잘하는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대화 잘 해요? 청문회니 뭐니 이런 거
하는데, 청문회 하는데 증인들 불러 놓고 질문한 다음에 상대방이 대답할 기회를 줍니까? 절대로 안 줘요.
우리나라는 국회의원들도 그래요. 국회의원들 대화하라고 우리가 뽑은 건데, 여당하고 야당하고 대화합니까? 안 하죠. 그런데 대화할 때가 하나가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자기네들 월급 올릴 때, 이때는 만장일치에요. 싸우지 않고... 그리고 나머지 것은 다 싸워요. 하나서부터 열까지... 요새도 말이죠 보세요, 제대로 하고 있는가? 그렇죠. 이게 문제예요. 그러면 우리들이 우리 천주교 신자들이건 개신교 신자까지 포함해서예요, 우리들이 정말로 기도 생활 열심히 한다고 그러면 우리 대화할 줄 알아야 돼요. 대화할 줄 아는 것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내 얘기도 하지만, 당신도 하고 싶은 얘기해, 이게 대화예요. 그리고 내가 들어야 돼요. 이 듣는 것 참 중요해요.
여기까지 기도 생활에 대해서 제가 좀 언급했는데, 오후 시간에는 이 대림절을 맞이하면서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이번 크리스마스 잘 준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번에는 고백 성사 한번 제대로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백 성사를 볼 때, 여러 형제자매님들은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무슨 죄를 범했나? 이것도 봐야 돼요. 이것도 봐야 되는데, 여기만 집중하시지 마세요. 고백성사 볼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고백 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하심, 하느님이 얼마만큼 자비로우신가? 하느님 얼마만큼 나를 사랑하시는가? 이거 체험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이게 제일 중요해요. 그래서 고백성사 잘 보시는 분들은 제가 지금도 이 성당에서도 목요일마다 와서 고백 성사 들어요. 이 성당에서 어떤 분들은 1시간 보고, 어떤 분은 30분도 보고, 어떤 분은 10분도 보고, 이래요. 근데 저는 이 성당에서는 언제든지 시간 왕창 주는 거예요. 여러 형제자매님들 본당에서는 미사전 15분 줄 짝 서서 급하게 급하게 보고 나와야지요. 그럼 나와 가지고 성사 볼 것 또 빠뜨렸네, 들어가지도 못하고, 이래요. 마치 화장실에 들어가서 잘못하고 나온 것처럼 어정쩡하고, 시원하지가 않고, 자유롭지가 않고, 이러죠. 이것은 제대로 고백 성서 본 것이 아니에요. 고백 성사 제대로 본 것은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하느님이 정말로 나한테 자비로우시다, 이거 체험하는 거예요. 여러 형제자매님들 여기서 손들고 대답해 보세요. 내가 고백 성사 봐 가지고, 용서받지 못한 죄 있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가 고백성사 보는데, 하느님이 용서 안 해 주신 거 있는 거 체험하신 거, 계신 분 손들어 봐요. 내가 고백 성사 보고, 용서 안 해 주신 거 하나도 없어요. 이게 하느님이에요. 그런데 우리들이 집에서 엄마가 아끼시는 접시 하나 깨뜨리면, 두고두고 엄마한테 야단맞죠. 두고두고 엄마한테 야단맞아요. 내가 그거를 얼마나 아끼는 접시인데, 네가 데퉁맞아서 깼어. 엄마 볼 때마다 눈치가 보여요. 그런데 이거 아니에요. 제가 전국교구 소속이 아니고, 수도회 소속이에요. 여기 성사 주시는 최 신부님도 수도회 소속이에요. 이거 제가 예수회 들어가서 훈련받는 도중에서 우리 기초 훈련 받으면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다 해야 돼요. 그런데 제가 수도원에 들어가서 얼마 안 돼 가지고 설거지를 하다가 접시 하나를 깼어요. 제가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몰라요. 이거 당가신부님한테 가서 무릎 꿇고, 나 실수해서 접시 깼습니다, 이거 고백해야 돼요. 그래서 그것을 신부님 앞에서 무릎 꿇고, 쳐다보지도 못하고, 속으로 떨면서, 고백을 했는데, 신부님이 뭐라고 그러셨냐 하면, 몇 장 깼어? 제가 그래서 이게 뭐지, 야단맞을 것을 각오를 했는데, 신부님이 몇 장 깼냐고, 그래서 떨리는 마음으로 한 장 깼다고, 쳐다보지도 못 하고, 이러니까 신부님이 뭐라고 그러시냐면, 나는 수련받을 때, 두 장 깼는데... 그러니까 저도 놀래서 신부님을 쳐다보고, 그러니까 신부님이 일어나라고... 이거 저한테 지금도 잊지 못하는 체험이에요. 제가 한국에서 신학교에서 2년 다니고, 제가 예수회 수련하러 미국에 간 거예요. 미국 신부님한테서 이걸 제가 체험한 거예요. 여기 혜화동 신학교에서는 뭐 요만한 거 하나만 잘못해도 덜덜 떨고, 무섭고, 신부님들한테 야단맞고, 이랬었거든요. 근데 예수회 신부님은 저한테 접시 깬 거 야단을 치시지 않고, 나는 두 장 깼다고 그러셔요. 그러면서 일어나라고 이러면서, 그래 어떻게 해서 깼어? 제가 뜨거운 물에 있는 거 비눗물인데, 요렇게 건지니까 쏙 빠져서 깼다 그러니까, 나도 그랬거든. 근데 나도 수련회 왔을 때, 나부터 2년 먼저 들어온 형이 접시를 설거지할 때는 건질 때 두 손으로 건지라고 그랬어. 그래서 내가 배웠어. 이러니까 저는 신부님 얘기 들으면서 내가 뭘 해야 되는지를 깨달았어요. 이게 제가 뭐냐 하면, 고백 성사를 저는 예수회에서 그런 식으로 배웠어요. 그러니까 제가 고백 성서 볼 때마다 고백 성사 듣는 신부님이 언제든지 저를 위로해 주시고, 격려를 해 주시고, 이러니까 아 정말로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하느님은 정말로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시다. 저는 이것을 체험했어요. 저는 여러 형제자매님들께도 이런 체험이 있기를 바래요. 그러면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이런 성사를 보고 싶으면 15분이나 20분 줄 서서 보는 거, 이것도 급할 때는 괜찮은데,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고백성사 제대로 보려면 신부님한테 약속을 하세요. 신부님 저한테 시간을 좀 주실 수 있어요? 왜? 신부님 제가 성사를 한번 제대로 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저한테 좀 시간 좀 주세요. 그러면 어떤 신부님은 나 바빠서 그런 시간 줄 수 없어. 그러면 그 신부님한테 가지 마세요. 그런데 우리나라 신부님들 참 많으셔요. 그렇죠? 그리고 본당도 이 본당해서 안 되면, 저 본당으로, 다 가깝잖아요, 지금 다... 그리고 지금 여기 파티마 평화의 성당 오세요. 제가 기다릴게요. 그런데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고백성사 한번 제대로
체험하려고 본인 쪽에서도 노력을 해야 돼요.
그리고서 보세요. 아까 우리들이 시작 성가 한 거, 여러 형제자매님들 다시 한번
펴 보세요. 성가 518번 성가로 안 하고, 그냥 후렴만 읽어 보겠어요. 선한 사람 아흔 아홉 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하늘나라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 이거 제목 밑에 가로 속에 복음이 뭐라 그랬어요? 루카복음 15장 7절이에요. 얼마나 아름다워요. 하늘나라에서는, 그러니까 하느님 계신 데서는, 지금 우리가 성당에 성체 모시고 이런 데는, 여기 지금 하느님 계셔요. 하느님은 선한 사람 아흔 아홉 보다 회개하는, 그러니까 뉘우치는 사람, 한 사람을 더 기뻐하셔요. 이 세상은 어때요? 네가 잘못했지? 너 벌 받아야 돼, 이러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너부터 사과를 해야 돼. 우리도 이러고 따지잖아요? 그런데 하느님 나라에서는 내가 뉘우치면 하느님은 더 기뻐하셔요. 그러니까 착한 사람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사람, 한 사람을 기뻐하신다고 그래요. 루카복음 18장 끝부분으로 가면 두 사람이 성전에 가서 기도하는 장면이 나와요. 한 사람은 이스라엘 지도자 중에 한 사람이에요. 공부 많이 한 사람이에요. 딱 성당에 와서 하느님을 꼬나 쳐다보면서 주님, 나는 기도생활 열심히 하고, 헌금도 많이 하고, 교무금도 많이 내고, 이랬는데 나는 이 녀석처럼 나쁜 짓도 안하고, 기도 열심히 하고 삽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바로 그 옆에는 세리가 그 당시에 손가락질 당하고, 무시당하는 사람예요. 세리가 와서 하느님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주님, 용서해 주세요. 이것만 반복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두 사람을 보면서 뭐라고 그러셨냐 하면, 진정으로 기도를 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이 세리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가슴을 치면서 주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 그러니까 화려한 말 얘기하지 않고, 멋진 말 얘기하지 않고, 길게 얘기하지 않고, 이러면서도 가슴을 치면서, 내가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세요.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진심으로 이렇게 할 때 예수님은 그 사람이 하느님의 사랑을 더 받는다고 그러셨어요.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고백 성사를 준비할 때, 내가 무슨 죄를 어떻게 했나? 계명을 어떻게 어겼나? 이거 살피는 거 또 중요해요. 중요한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가 뉘우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 미사 시작할 때마다 무슨 기도로 시작해요? 고백의 기도로 시작해요. 그렇죠? 우리 고백의 기도할 때 어떻게 해요? 가슴을 세 번 때리면서,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이러죠. 그런데 우리들 보통 때 뭐를 왜 그래요. 네 탓이오, 네 탓이오, 너의 큰 탓이라고 그러잖아요. 집에서 그릇을 깨뜨렸어도, 너 때문에 내가 깨뜨렸어, 그러죠. 우리들은 다른 사람 탓을 더 많이 해요. 지금 고백 성사 들을 때도 많은 경우에 제가 그래요. 자매님 그렇지 않으면, 형제님 다른 사람의 죄를 고백하지 말고, 당신의 죄를 고백하세요, 이래요. 그분들 화를 내는 것을 고백을 하는데도 왜 이렇게 길어요. 주교님, 내가 집에 오니까 이러저러해서 막 잔소리하고 그러니 내가 화를 안 낼 수가 있어요. 그래서 화를 냈습니다. 그런 거 누구 탓이에요? 다른 사람 탓이요. 내 탓이 아니고... 나를 내가 화를 내긴 냈는데, 저 식구 때문에 내가 화를 냈습니다, 이런 거예요. 그런데 고백 성사는 내 탓을 고백하는 것이지, 시어머니 탓이나, 시아버지 타시나, 며느리 탓이나, 애들 탓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에요. 내 탓을 고백하는 거예요. 내가 잘못한 것, 뉘우칠 것을 고백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 형제자매님들께서 무엇을 고백하는 것이 제일 좋을까?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교회법, 계명, 다 모를 수도 있어요. 교리 시간에 계명은 배웠는데, 교회법은 두껍고, 제가 주교인데도 교회법 다 몰라요. 그런데 고백 성사 볼 때, 제일 먼저 고백해야 되는 것은 내 양심에 걸리는 거, 나를 불안하게 해 주는 거, 이거 고백하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고백 성사 보면서 내가 진정으로 ( 6 )를 얻으려면, 고백성사 볼 때 순서를 제대로 받아야 돼요. 우리 많은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면, 조그만 죄를 먼저 고백해요. 그리고 큰 죄는 크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중에 싹 집어 넣어요. 한 10가지 얘기하다가 보면, 제일 큰 거 탁 던져 버려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마음의 ( 6 ) 못 얻어요. 마음의 ( 6 )를 얻으려면,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부끄러운 거, 제일 크다고 생각하는 거, 이것부터 고백하세요. 그러면 제일 큰 거, 둘째로 큰 거, 셋째로 부끄러운 거, 이거 얘기하면 다섯 개 정도만 고백해도, 아주 내가 ( 6 )를 얻어요. 많은 경우에는 다섯 개까지 안 가요. 다섯 개 이전에 벌써 내가 가벼워져요. 그런데 조그만 거부터 고백을 하면 큰 거 고백하기 더 어려워져요. 부끄러워서 더 못 해요. 그러면 큰 건 고백 못 하고 다른 거, 자잘한 거만 다 고백하고 나오면, 이거 코 제대로 푼 거 같지가 않아요. 불안해요. 그러니까 순서를 언제든지 내가 가장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거, 그렇지 않으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거, 이것부터 고백하셔야 돼요. 그리고 다른 거 생각 안 하셔도 내 양심에 가장 불안한 거, 이거부터 고백 하시면 돼요. 이렇게 하고 어떤 때 계명을 생각하고, 이런 거 다 좋아요. 그렇지만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양심에 걸리는 것만 고백하셔도 마음의 ( ( 6 )를 얻는 데는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정말로 더 이거보다 주교님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세요. 그러면 한 가지 제가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지금 볼 수 있는 것 앞에 쎌기도 책이 있어요. 쎌기도 책 한번 펴 보세요. 19페이지를 펴 보세요 맨 위에 저희 하느님, 다 같이 읽어 보겠어요.
저희 하느님, 당신을 믿고, 찬미하며, 의지하고, 사랑하나이다. 당신을 믿지 않고, 찬미하지 않으며, 의지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오니, 용서해 주소서.
그러면 이거 하나만 가지고서도 고백 성사 준비 아주 멋지게 할 수가 있어요.
셋째 줄서부터 내가 한번 생각해 보는 거예요.
당신을 믿지 않고, 우리 천주교에서 내가 세례를 받고, 지금 살았는데, 내가 지금 현재 이 자리에서 하느님을 얼마만큼 믿고 있는가? 생각해 보세요. 내가 하느님을 믿고 있나? 돈을 믿고 있나? 내가 하느님을 믿고 있나? 아파트를 믿고 있나? 내가 하느님을 믿고 있나? 그렇지 않으면 나쁜 놈을 믿고 있는가? 생각해 보세요.
금방 이거 드러나요. 내가 하느님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이게 조금 어려운 말로 하면 우상숭배예요. 하느님을 모든 것보다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지, 내가 제대로 믿는 거예요. 하느님을... 그런데 하느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때, 이게 우상숭배예요.
이거 믿지 않는 거예요.
찬미하지 않는 것, 하느님을 찬미하지 않고, 내가 자연 현상이 일어나고, 요새 날씨가 차갑지만, 우리 집이 그래도 나한테 따뜻하게 해 주고, 내가 따뜻한 옷을 입을 수 있고, 내가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고, 예를 들면 오늘 수녀님들도 자매님들이 우리들한테 화려한 음식은 아니지만, 맛있는 음식, 그래도 따뜻하게 해 주신 것, 이거 감사할 것 아니에요? 감사하면서 먹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여기 왜 밥이 이 모양이야, 왜 국은 이렇게 짜, 그러면서 먹으면, 먹긴 먹으면서도 제대로 감사를 드리지 않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것이 하느님 찬미하지 못하는 거예요. 우리 찬미한다는 것은 더 쉬운 말로 하면 칭찬해 주는 거예요. 칭찬해 준다는 것이 뭐예요? 다른 형제나 자매가 나한테 해 주는 거, 내가 감사하게 받아들이면서 내가 과분하게 생각하는 거, 저는 여기 올 때마다 아까 점심 먹고 이렇게 나오는데 기러기들이 막 울고 다니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걔네들은 남한 북한이 없어요. 봄쯤 되면 다 저쪽으로 넘어가 버려요. 근데 요새 날씨가 추워지니까 남쪽으로 왔어요. 기러기 때가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요. 여기 지금 경계선이 가까운데 우리들 거기 건너가지를 못 해요. 그런데 기러기들은 아무 상관없이 날아갔다 날아왔다 자기들끼리 기륵기륵하면서 날아가면서 이러는데, 너무나 부러워요. 이런 걸 보면서 우리 꽃도 아름답지만, 우리 눈 온 것도 아름답잖아요. 이때 운전하는 사람들한테는 어려운데, 우리들이 눈을 볼 때는 찬미하고 감사할 수가 있어요. 이런 것들 다 보면서 하느님이 나한테 이러한 자연을 주신 거,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나라 사계절이 있는 거, 이건 다른 나라에 없는 거예요. 우리 얼마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단풍이 세계적으로 아주 모든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다 단풍이 아름다웠어요. 우리 이런 데서 살아요. 그러면 봄날이 라든가 단풍이라든가 지나가지만, 이 추운 겨울에 가까이서 나무를 볼 것 같으면 벌써 싹이 나려고 그래요. 벌써 내년 봄을 준비하고 있어요, 나무들이...
이게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고, 고마운 겁니까? 그럼 우리 이런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찬미하지 못하는 것이에요.
의지한다는 것, 우리한테 굉장히 큰 거예요. 제가 아까 믿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지금 내가 뭐에 의지하고 있는가? 요며칠 전에 수능 시험 발표가 났어요. 그럼 여기 앉아 계신 분들한테는 손주 녀석이나 손녀딸이 수능 시험 본 집안이 꽤 있을 거예요. 그러면 수능 시험 점수가 100점 만점에 80점만 맞았어도 잘한 겁니까? 못한 겁니까? 잘한 거예요. 그런데 욕심내는 엄마 아버지들은 뭐라고 그러냐면 옆집 아이는 항상 100점을 맞는데, 너는 항상 80점이야. 엄마 아버지들은 늘 80점 이상 맞았어요? 학교 다닐 때... 엄마 아버지들 70점 밖에 못 맞았고, 어떤 엄마는 60점 맞고, 이랬는데도 아들한테는 100점 맞으라고 야단치는 거예요. 예, 제대로 되는 겁니까? 이런 때 우리 반성하는 거예요. 우리가 하느님한테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성적에 의지를 해요. 그리고 보세요. 대학을 들어갈 때도 우리나라에서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면 의사들만 한다 하더라도, 의사들이 지방의과대학을 안 들어가려고 그래요. 다들 서울에서만 들어가려고 그래요. 그런데 우리 지방에서는 엄마들이 출산을 하려고 그래도 산부인과 의사가 없어 가지고, 119 타고 돌아다니다가 사고가 나고, 사망을 하고, 이런 때가 있어요. 이게 우리나라 현실이에요. 왜냐하면 의사들이 다 서울에만 몰리려고 그러고, 의과대학 다 서울에서만 들어가려고 그러고, 그런데 지금 정말로 우리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지방자치제가 살아나야 되잖아요. 그래서 지방에서도 서울에서 사는 것 못지않게, 대도시에서 사는 것 못지않게, 이렇게 돼야 되는데, 우리나라는 그게 안 되니까 지방 젊은이들이 다 서울 아니면 대도시로 가려고 그래야 돼요, 이러니까 아주 괴이한 현상이에요. 우리나라 서울은 인구의 거의 반 이상이 서울이에요. 그러니까 서울 집값은 하늘 높은지 모르고 막 올라가요. 그런데 지방에 있는 아파트는 텅텅 비어가고, 이게 참 말이 됩니까? 그런데 이게 뭐예요? 우리 신자들까지 포함해서 우리들이 이런 것을 자꾸 부채질하고 있어요. 이런 데서 의지한다는 거, 내가 하느님께 진정으로 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것에 의지하고 있는가? 하느님 아닌 것에 의지하는 거, 여기에서는 우리 쎌기도에서 이거 용서해 달라고 하느님께 비는 거예요.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하느님을 오전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내가 사랑한다고 그러면 어떻게 돼야 돼요? 예수님은 죄를 지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까? 죄를 지셨어요? 거짓말을 하셨어요? 나쁜 짓을 하셨어요? 예수님 나쁜 짓 하셨어요? 나쁜 짓 안 했는데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어요. 왜? 내 죄 때문에, 우리들 죄인들을 위해서 대신, 우리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예수님을 본받는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내가 죽어야 돼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내가 고통을 받아야 돼요. 사랑을 하기 위해서 내가 희생을 해야 돼요. 그런데 세상은 어떻습니까? 내가 살기 위해서 네가 죽어야 돼. 내가 살기 위해서 네가 고통 받아야 돼. 그러니까 보세요. 엄마들이 카페에서 커피 홀짝홀짝 마시면서 네 아들 어느 학원에 다니냐? 네 딸 어디 보내느냐? 이거 안 다니면 어떻게 돼요? 쪽집게 선생님을 만났으면, 나한테 알려준 그 자매하고 경쟁을 해야 돼요. 그러니까 그 집 딸 짚고서 내 아들이 올라가야 되고, 내 딸이 올라가야 돼요. 이게 우리 현세상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우리 세상에 오시면 어떻게 돼요? 우리한테 뭘 가르쳐 주세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가 희생 바치는 거, 그러니까 고백 성사 준비하는 데서도
이 기도만 가지고서도 우리들이 이러한 성사 준비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아까 제가 양심을 거스르는 것, 양심에 걸리는 것에서부터 고백하라고 그러는 것은 양심을 어떻게 비춰 보는가? 할 때 이 기도 하나만 가지고서도 우리의 길을 비춰 볼 수 있어요. 또 하나는 미사 때 제가 미사시작 할 때 고백기도 한다고 그랬어요. 고백의 기도가 어떻게 됩니까? 생각과 말과 행위에 있어서 내 탓을 갖다 고백하는 거예요. 그럼 내가 고백 성사 준비를 제대로 한다 할 것 같으면,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다 우리 식구들로 위해서 좋은 건가? 쎌기도 하고 맞추는 건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해로운 것을 생각하고 있는가? 또 한 가지는 내가 모여서 말을 할 때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들이 우리 프란시스코 교황님께서 살아 계실 때 뭐라고 그러셨어요? 우리가 뒷담화만 안 해도 성인이 된다고 그러셨어요. 그러면 우리들이 모이면 이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서 참 말 많이 해요. 그런데 좋은 이야기를 합니까? 나쁜 얘기를 합니까? 주로 흉을 봐요. 어떤 때는 없는 흉까지 만들어 가지고 봐요. 이게 뒷담화에요. 생각과 말과 행동, 행동은 대게 어디서 나와요? 내가 말하는 데서 나와요? 내가 말하는 것은 주로 뭐예요? 내가 생각하는 것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고백의 기도를 할 때, 참 중요한 거예요. 생각과 말과 행동. 우리 착한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생각 자체가 착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착한 사람들이에요. 착한 사람은 착한 생각을 한 사람은 나쁜 말 안 해요. 왜냐하면 생각이 좋으니까. 또 나쁜 말 안 하는 사람은 행동 나쁘게 절대로 안 해요.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들 참 많아요. 그러면 우리들이 본받을 때,
우리 나쁜 말 안 하는 형제자매님들하고 대화하려고 해야 해요. 또 나쁜 말 안 하는 분들이 좋은 생각을 많이 갖고 있어요. 그런 분들하고 대화 나눌 때, 나도 자꾸자꾸 정화가 돼요. 나도 자꾸자꾸 착한 마음을 갖게 돼요. 그래서 우리들이 좋은 친구를 가져야 된다는 것이 이거예요. 좋은 친구를 만날 것 같으면, 우리 실없는 이야기 나쁜 이야기 여간해서 안 해요. 그런 사람들하고 이렇게 생각하는 걸 나누면 내 생각도 참 좋아져요. 그런데 이거는 여러 형제자매님들 신자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에요. 제가 성직자 중에 한 사람인데, 우리 성직자들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신부님들은 만나면 가만히 같이 앉아 있기만 해도 참 평화로워요. 어떤 분하고는 얘기를 하면 할수록 부담스러워져요. 그리고 피곤해져요. 어떤 사람은 만나기가 어려워져요.
여러 형제자매님들 생각해 보세요. 내가 오늘도 만나는 사람들한테 나는 평화를 전달해 주나? 그렇지 않으면 불안한 것을 전달해 주나? 나하고 대화하는 사람들한테 나는 그 사람을 더 행복해 주는 말을 했나? 그렇지 않으면 상처를 주었나? 그렇지 않으면 불안을 갖다 주었는가?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들한테 부담스러운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한테 모범이 되는가?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가? 이거 우리 식구들하고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아버지는 애들한테 무서움만 주는 아버지가 있어요. 그러니까 내 친자식인데도 불구하고, 애들이 나를 피해, 무서워서... 그러니까 아버지가 한번 살펴봐야 돼요. 내가 아이들한테 편안하게 해 주는가? 그렇지 않으면 무서움을 주고 있는가?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상대방을 행복한 말을 해 주는가? 그렇지 않으면 부담스러운 이야기를 해 주는 가? 화를 나게 해 주는가? 내가 상대방을 사랑한다 할 것 같으면, 사랑 넘치는 얘기를 해 줘야 돼요. 그러니까 하루 일과가 끝날 때도, 오늘 하루 당신 참 수고했어. 고마워요. 감사해요. 이런 말을 하는 거 하고, 아니 당신은 말이지 맨날 집구석에서 뭐 하는 거야, 듣는 쪽에서 어때요? 이거 하늘과 땅 차이에요. 한쪽에서는 수고를 정말로 피곤하게 했는데도 상대방이 나를 인정해 주고, 내가 수고한 것을 고마워하니까, 나도 수고를 했어도 기꺼운 마음으로 내가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하루 종일 수고를 했는데 나한테 타박만 하고, 내가 잘못한 것만 지적만 하고, 이러면 이럴 때는 어떻게 돼요?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아요? 들이박고 싶잖아요? 이때는 어떻게 돼요? 서로 짐스러워지고 서로 피곤해요. 그럼 우리 고백성사 준비하는 것은 뭐냐 하면, 내 생각과 말과 행동, 이것을 살펴보는 거, 큰 도움이 돼요. 어쨌거나 우리 고백 성사는 내가 ( 6 )를 얻기 위해 하는 거고, 내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고백성사 보는 거예요. 그래서 고백성사 잘 보면, 내가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내가 날아갈 것 같아요. 그리고 행복해요. 그리고 저는 가끔가다 고백 성사를 볼 때 같이 울 때가 있어요. 왜냐하면 지금 고백하시는 분이 아주 뉘우쳐 가지고 울 때, 저는 고백 성사를 들으면서도 같이 울지 않을 수 없는 이러한 경우가 종종 있어요. 이때는 고백성사 듣는 사제도 정화가 되고 거룩해져요. 고백 성사 듣는데도... 그러면 고백을 하시는 분은 내 죄가 부끄러운데도 지금 고백을 하면서도 고백을 듣는 사제까지도 거룩하게 만들어 주는 거예요. 은총을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고백 성사를 잘 보면 이건 엄청난 은총의 기회예요. 그러니까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이번 크리스마스 때 고백 성사 한번 제대로 보시는 이러한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저는 바랍니다. 아멘.
이번 크리스마스가 정말로 의미 있는 크리스마스가 되도록 저도 기도드리겠습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감사합니다. 짝짝짝
(2강의 전문정리,
대림특강 2강의 전문녹음을 꼭 들어보시고, ( )에 답을 댓글에 써주세요.)
♦ 2강의 전문 녹음
♦2025년 12월 6일 첫토요일 성모신심미사
♦입당성가
♦독서: 잠언8,22-31
♦복음: 루카2,1-14
♦강론:
찬미예수님,
(강론 전문을 들어보세요.)
♦강론전문 녹음
♦성찬전례
♦티없으신 마리아성심께 바치는 봉헌기도
♦성 미카엘 대천사께 드리는 기도
♦미사후 이한택 요셉주교님 안수
an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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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행운을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