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
'코끼리 부대'로 알프스 넘어 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내몰아
입력 : 2024.01.24 03:30 조선일보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
▲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험준한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를 향해 진격하는 모습. 산맥 반대편에서 이탈리아 북부를 지키던 로마군은 예상 못 하던 일이에요. 19세기 독일 삽화가 하인리히 로이텐만이 그렸어요. /위키피디아
흑인 배우 덴절 워싱턴이 넷플릭스 신작 영화에 '한니발' 역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튀니지에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요. 한니발은 현재 튀니지 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고대 국가 카르타고의 명장이에요. 튀니지가 문제 삼는 부분은 워싱턴의 피부색이에요. 튀니지 당국은 한니발이 레바논과 시리아를 아우르는 지역인 페니키아 출신이라는 데에 대부분의 역사학자가 동의한다는 점에서 백인에 가까운 인종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거든요. 과연 한니발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카르타고의 운명, 26세 장군 한니발에게
한니발을 알려면 우선 로마와 카르타고의 관계를 알아야 해요. 로마는 기원전 3세기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한 뒤 지중해로 세력을 확대해 나갔어요. 그 무렵 지중해 반대쪽인 지금의 북아프리카 튀니지에는 카르타고라는 나라가 있었어요. 지중해 서부 지역에서 활발한 해상 무역 활동을 펼치며 성장 중이었죠.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카르타고와 대결할 수밖에 없었어요.
로마와 카르타고는 세 차례에 걸쳐 100년 넘도록 싸우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포에니 전쟁입니다. 당시 카르타고에는 로마에 없는 강력한 해군이 있었어요. 그런데 카르타고 배 한 척이 난파되자 로마는 그 배를 분해해 배 만드는 법을 알아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군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카르타고와 대결을 펼쳤죠.
결국 로마는 20년 넘게 진행된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했어요. 로마는 시칠리아를 비롯한 여러 지역을 차지할 수 있었고, 패배한 카르타고는 10년 동안 전쟁 피해 보상금을 로마에 지불해야 했어요.
이 위기의 카르타고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 바르카 장군이에요. 카르타고는 잃어버린 영토를 만회하고자 에스파냐로 눈을 돌렸어요. 하밀카르가 에스파냐로 출정했을 때 아홉 살 된 장남 한니발도 함께였습니다. 그런데 하밀카르가 전쟁 중 암살됐고, 사위 하스드루발 기스고가 후계자가 됐지만 그 또한 암살됩니다.
결국 군 지휘권은 스물여섯 살의 한니발에게 주어졌습니다. 한니발은 어린 나이임에도 충분히 신임을 받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전장을 다니며 실전 경험을 쌓았고, 다른 귀족들처럼 철저한 교육도 받았기 때문이었죠. 한니발은 로마와 싸우는 전쟁터는 이탈리아반도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로마와 인접한 동맹국을 이탈시키면 로마는 자연스럽게 카르타고에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었죠. 먼저 로마와 동맹 관계를 맺고 있던 사군툼을 공격했고 8개월 만에 함락시켰어요. 그러자 로마의 선전포고로 2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알프스 산맥 넘어온 '코끼리'에 놀란 로마군
이때 한니발은 보병 약 9만명과 기병 1만2000명, 상당수의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바다가 아닌 육지인 피레네 산맥으로 향했어요. 이탈리아반도 북쪽의 알프스 산맥까지 넘겠다는 것이었죠. 해로가 훨씬 편리하긴 했지만 제해권이 로마의 수중에 있다고 판단한 한니발은 육로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알프스 산 근처에서 야영 중이던 로마 병사들은 사나운 코끼리 떼가 돌격해 오자 혼비백산했어요. 카르타고 부대가 험준한 알프스 산맥을 넘어왔다는 것에도 놀랐고, 생전 처음 보는 코끼리에도 놀랐죠.
특히 이 코끼리는 평범한 코끼리가 아니라 전투를 위해 특별히 훈련된 코끼리였어요. 카르타고 병사가 공격하라고 소리를 지르면 코끼리들은 귀를 활짝 펴서 머리를 훨씬 더 크게 보이게 했어요. 코끼리의 머리와 귀에는 빨간색, 하얀색, 노란색 물감이 칠해져 있어서 훨씬 더 무서워 보였죠. 몇몇 로마 병사들은 말에 올라타 코끼리의 머리를 공격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로마의 말들은 겁에 질려 공격하지 못했고, 말들은 로마 병사를 태운 채 어둠 속으로 달아났어요.
물론 카르타고 부대가 알프스 산맥을 쉽게 넘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살이 세기로 유명한 론강을 넘을 때는 1만명 이상의 군대를 잃었고, 산맥을 넘을 때는 그곳에 사는 여러 부족들의 공격도 받았습니다. 한니발은 알프스의 혹독한 겨울을 보내면서 눈병에 걸려 한쪽 눈을 잃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부족장들에게 금품을 주거나 모피 망토를 보내는 등 회유책을 써서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길잡이로 이용했어요.
로마 말고 이탈리아 남부로… 한니발의 패착
마침내 알프스에 들어선 지 15일째 되는 날, 한니발의 군대는 이탈리아로 진입했습니다. 한니발은 이탈리아 전역을 휘젓고 다녔어요. 기원전 216년 이탈리아 중부 지방인 칸나에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한니발은 명성을 날렸어요. 그는 가장 강한 부대는 좌우에, 약한 부대는 중앙에 배치했어요. 로마군이 중앙군을 공격하자 일부러 도망가는 척하며 로마군을 유인했고, 그때 좌우 주력군을 움직여 로마군을 둘러싸고 공격했어요. 로마군의 사상자는 5만명, 포로가 된 병사는 1만명이 넘었어요.
한니발 측근들은 이 기세를 몰아 로마로 진격할 것을 주장했지만 한니발은 그러지 않았어요. 대신 그는 이탈리아 남부의 로마 동맹 도시들을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큰 패착이었습니다. 본국에서 제대로 보급을 받지 못하던 카르타고 군대는 점차 지쳐갔죠. 반면, 로마군은 한니발의 전법을 연구하면서 반격의 기회를 모색했어요.
2차 포에니 전쟁의 승패는 카르타고 남서쪽 자마 지방에서 결정됐습니다.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은 카르타고의 최고 병사들이 다 이탈리아로 가 있는 점을 노렸어요. 로마 병사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가 카르타고를 공격했죠. 한니발은 위험에 처한 조국을 구하고자 뒤따라 바다를 건넜지만 자마 전투에서 패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카르타고는 로마에 항복했고, 로마의 속주로 전락한 카르타고는 50년 동안 거액의 전쟁 보상금을 갚아야 했어요.
이후 한니발은 어떻게 됐을까요? 패전 직후 한니발의 행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재기를 준비했던 것은 확실해 보여요. 정치가로 변신해서 경제 재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정치 개혁에도 나섰습니다. 하지만 정적이 생기면서 한니발은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여러 곳을 전전하던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한니발의 죽음 이후 카르타고는 더욱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3차 포에니 전쟁이 일어나지만 로마군을 당해내지 못했어요. 도시는 불탔고, 살아남은 카르타고인은 모두 노예로 팔려나갔죠. 그렇게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는 멸망했습니다.
▲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한니발 장군 석상. 18세기 프랑스 예술가 세바스티앵 슬로츠가 조각했어요. /위키피디아
▲ 한니발 장군이 이끄는 카르타고군(위쪽)이 로마군(아래쪽)과 북아프리카 평원에서 맞붙어 패배한 자마 전투. 이로써 카르타고는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에 항복하며 멸망의 길을 걸었어요.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줄리오 로마노의 그림. /러시아 푸시킨 미술관
서민영 계남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장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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