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리고 성은 타원형이었습니다. 둘레는 약 970m 정도였습니다. 성벽으로부터 약 50m 정도 떨어져서 돈다고 가정할 때 약 1,3km 정도였습니다. 일곱 바퀴를 돌게 된다면 약 9,1km 정도였습니다. 그리 큰 규모의 성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비중은 달랐습니다. 대단히 컸습니다. 일찍부터 개발된 고대 도성이었습니다. 좋은 샘들을 가진 오아시스oasis 지대였습니다. 종려 성읍The city of palm trees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요단 대평원의 서부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전략적으로는 가나안 방어를 위한 중요한 거점이었습니다. 군사적으로는 요충지였습니다.
가나안 중부로 통하는 교통의 요로要路였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이 가나안 도시 국가들의 남북 연합 작전을 미연에 차단하고 또 가나안 정복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복해야했습니다. 특히, 여리고 성은 미끄럽고 가파른 경사지 정상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외부의 적들이 침입하는 것에 대비하여 성 밖에 돌로 만든 장애물을 설치했습니다. 높이는 3-4m에 이르렀습니다. 본성의 중앙 벽과 약 35도 각도로 경사져 있었습니다. 전면전을 통해서는 정복이 거의 불가능한 천혜天惠의 요새였습니다. 접근하는 자체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스스로 포기하고 성문을 열어줄 때까지 쥐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완전히 포위하고 기다리는 작전 외에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지체되는 과정에서 나머지 가나안 족속들이 자극을 받아 함께 연합하여, 반격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도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 왕이 성문을 굳게 닫아 걸은 다음 그대로 버티는 작전을 구사했던 이유입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가나안 완전 정복이라는 내일을 꿈꾸며 전쟁을 시작했던 성민 이스라엘은 한발자국도 더 전진할 수 없었습니다.
인위적인 방법은 언제나 이렇습니다.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것 같을 정도로 이상적으로 보여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허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순간, 여호와께서 여리고와 왕과 용사들을 성민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다고 선포해주셨습니다.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승리가 확정되었다고 선포해주셨습니다. 희망으로 가득 찬 미래를 선포해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누구 거부할 수 없는 절대 주권을 선포해주셨습니다. 일단 선포되고 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무조건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리고 정복은 미래에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이루어진 일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창세전 작정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행렬을 갖추게 하셨습니다. 무장한 군사들을 앞 장 세우셨습니다. 이어서 양각 나팔을 멘 제사장 일곱 명이 따르게 하셨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따르게 하셨습니다. 이어서 후군과 백성들이 따르게 하셨습니다. 엿새 동안 성 주위를 날마다 한 번씩 돌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일곱 번째 되는 날에는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있는 동안 성을 일곱 번 돌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면 젖 먹던 힘까지 다 동원해서 크게 함성을 지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이 당신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면 그들의 내일을 가로막고 있던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가 하릴 없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민 이스라엘은 아무리 궁리해도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방법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자칫 너무 쉬운 방법 아니냐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군사들은 한 바퀴만 돌 때도 완전 군장을 갖춰야했습니다. 제사장들 역시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복장을 갖춰 입어야했습니다.
백성들은 여리고를 도는 동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릴 조짐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어떤 변화도 없이 여전히 건재한 상황에서도 의미 없어 보이는 일을 육일동안이나 똑같이 반복해야 했습니다. 칠일 째 되는 날에는 일곱 바퀴씩이나 돌아야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극에도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쉽게 흥분하며, 입만 열면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고, 심지어 노예 생활하던 이집트로 돌아가는 편이 좋겠다고 외쳤던 성민 이스라엘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명령을 직접들은 여호수아의 입장에서는 정말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라고 명령했습니다. 일곱 제사장은 각기 양각 나팔을 들고 하나님의 궤 앞에 서라고 명령했습니다. 백성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무장한 선발대는 행렬의 맨 앞에 서라고 명령했습니다. 자신이 외치라고 할 때까지는 어떤 경우에도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준비를 끝내자 앞으로 나가 여리고 성을 돌라고 명령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백성들 역시 여호수아를 통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온 백성이 하나 되었습니다.
드디어 일곱 번째 날이 되었습니다. 성을 일곱 번 돌았습니다. 양각 나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습니다. 여호수아는 “큰소리로 외쳐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다.”(수6:16b)라고 외쳤습니다. 동시에 진멸Herem을 선포했습니다. 성과 성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했습니다. 특히, 그는 “너희는 전멸시켜서 바치는 희생 제물에 손을 댔다가 스스로 파멸당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 너희가 전멸시켜서 바치는 제물을 가지면 이스라엘 진은 너희 때문에 전멸할 것이다.”(수6:18)라는 경고를 잊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성전聖戰입니다. 실질적인 군대장관은 여호수아가 아닙니다. 당신의 생각을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완벽하게 이루어내는 하늘의 군대를 지휘하는 그렇기 때문에 불가능이 전혀 없으신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승리의 주체 역시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야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야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합니다. “은과 금과 놋과 철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손 치더라도 굳이 성 안의 남녀노소는 물론 짐승들까지 완전히 진멸시켜서 희생 제물로 삼았어야 했는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가능한 생각입니다. 진멸Herem을 잔인한 하나님보다는 여리고 성에 내려진 공의로운 심판으로 이해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를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구원하겠다고 언약해 주셨습니다. 가나안 정복은 언약 성취의 일환一環이었습니다. 특히 “나는 여호와께서 이 땅을 당신들에게 주신 것을 압니다. 우리는 당신들 때문에 공포에 사로잡혀 있고, 이 땅의 주민들은 모두 하나같이 당신들 때문에 간담이 서늘했습니다.”(수2:9)라는 증거에 따르면, 여리고 성 사람들은 여호와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순순히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길을 터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문을 굳게 걸어 잠가버렸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을 대적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세전 작정을 위협했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습니다. 스스로 진멸Herem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진멸하심으로 당신의 거룩한 공의를 드러내셨습니다. 여리고 성 전투는 이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성민 이스라엘을 위한 당신의 창세전 작정을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하느냐의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곧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위한 당신의 창세전 작정을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하느냐의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성경은 “믿음으로 여리고 성을 돌았더니 성벽이 무너졌다.”(히11:30)라고 증거 합니다. 성민 이스라엘은 믿음으로 하나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성을 돌았습니다. 믿음으로 입을 굳게 닫았습니다. 믿음으로 목이 터지도록 외쳤습니다. 믿음으로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믿음으로 죄악을 완벽하게 진멸Herem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그야말로 완벽한 승리를 거뒀습니다.
승리의 기쁨과 함께 성대한 축제로 이어져야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 하였다.”(수7:1a)리고 이어집니다. “범죄 하였다מעל(마알)”를 직역하면 “범죄를 범하였다.”입니다. 은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배반하는 죄를 가리킵니다. 여리고 성과 성에 속한 모든 것들 심지어 남녀노소까지도 하나님께 바쳐진 가나안의 첫 번째 열매였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곧 진멸Herem된 물건을 취하면 성민 이스라엘 전체가 화를 당하게 된다는 경고도 이미 공개적으로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Achan는 하나님의 엄한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진멸시켜야할 물건들 가운데 아름다운 외투 한 벌, 은 이백 세겔,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챙겨들었습니다. 도둑질했습니다. 장막 안 땅 속 깊숙이 감춰두었습니다. 성민 이스라엘 가운데 누구도 그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몰랐습니다. 군대장관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늘과 땅은 다릅니다. 지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세상 끝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확실한 증인입니다. 특히,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땅은 하나님의 발판입니다.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늘과 땅만큼은 절대로 속일 수 없습니다. 불꽃같은 눈동자로 온 땅을 두루 살펴보고 계시는 하나님만큼은 절대로 속일 수 없습니다. 그의 범죄는 이미 드러난 상태였습니다. 그것을 알 리 없었던 여호수아는 여리고 전투로 한껏 고무되었습니다. 곧바로 사람을 보내 아이Ai 성을 정탐했습니다.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그들은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수7:3b)라고 보고했습니다.
당시, 아이 성의 주민은 대략 12,000명 정도였습니다. 싸움에 나갈 수 있는 장정은 대략 3,500-4,000명 정도였습니다. 특히, 아이 성은 여리고 성과는 달리 해발 800m 가량의 산지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아이 성과 베델에는 이스라엘 군대를 추격하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성문을 열어 둔 채 이스라엘 군대를 추격하였다.”(수8:17)라는 증거에 따르면, 인근 지역인 베델의 군사들과 합동 작전을 펼쳤습니다. 여리고 못지않은 어려운 전투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최근 요단 동편 아모리 두 왕을 진멸시켰습니다.
넘쳐흐르는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넜습니다.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까지 완전 정복했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연전연승이었습니다. 자신만만했습니다. 교만했습니다.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잘못 판단했습니다. 쉽지 않은 상황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아예 간과看過해 버렸습니다. 2,000-3,000명의 군사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을 예상치 못한 궁지에 몰아넣는 왜곡된 보고를 올렸습니다. 물론, 아이 성 전투에서 실패한 근본적인 원인은 그의 범죄였습니다. 정탐꾼들의 자만심 또한 실패의 결정적인 요인들 기운데 하나였습니다.
결국, 성민 이스라엘은 전사자들을 남긴 채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때는 가나안 모든 족속들의 마음이 녹았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성민 이스라엘의 마음이 마치 물처럼 완전히 녹아내리고 말았습니다.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전투에서 패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과 공포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실패에 익숙하지 않았던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두려움과 공포의 직접적인 원인은 서른여섯 명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삼천 명의 군사들이 혼비백산해서 패주敗走하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동행 하며 도와주시던 하나님의 실종이었습니다. 동시에, 군대장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실종 앞에서 옷을 찢었습니다. 극도의 고통과 번뇌로 인한 슬픔을 드러냈습니다. 땅에 엎드렸습니다. 머리에 티끌을 무릅썼습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애통하며 회개했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의 군대가 대적들에게 패하여 도망치는 상황은 결국 그들을 친히 이끌어주고 계시는 여호와의 거룩하신 이름이 더럽혀졌다는 의미였습니다. 사기충천해진 가나안 족속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멸시할 수도 있었습니다. 함께 연합하여 성민 이스라엘을 칠 수도 있었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은커녕 생명조차 지키기 어려운 위급한 처지에 내몰릴 수도 있었습니다. 거기다 이 상황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허락하신 일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도무지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웠습니다. 자신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평판이 염려되었습니다. 완전히 땅에 떨어친 하나님의 영광을 도대체 어떻게 회복하실 것이냐고 따지듯 외쳤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수7:10b)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라קוּם(쿰)”는 “힘을 내라, 담대 하라.”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언약이나 신실하심을 절대로 의심하지 말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아이 성 패배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여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배전倍前의 노력을 기울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호수아가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범죄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을 취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적질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기 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누구도 볼 수 없도록 은밀하게 감춰두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을 취하면 화를 당하게 된다는 금지 규정을 의도적으로 어겼습니다.
단순한 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신성 모독죄였습니다. 동시에 성민 이스라엘도 반드시 저주를 받아야하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진멸Herem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수7:13a)라고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준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갖춰야할 조건이 있었습니다.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수시로 거룩함을 요구하셨습니다.
시내 산에서 율법을 제정하시기 전에 거룩하게 구별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넘쳐흐르고 있던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거룩하게 구별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아이 성 패전의 원인인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에 손을 댄 자를 가려내기 전에도 거룩하게 구별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범죄 한 자는 지금 당장 자신의 실재를 돌아보고 회개하며 자복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라고 요구하시는 목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희망으로 가득 찬 내일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고해와 같이 힘겨운 인생 속에서 만나게 되는 좌절과 실패는 결단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이 담겨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 전투의 실패를 통해서 내일을 잃어버렸습니다. 더 이상 내일이 없다며 절망했습니다. 낙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니라고 내일이 있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내일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절망과 낙심에 주저앉아 있지 말고 자신을, 성민 이스라엘을 스스로 거룩하게 구별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내일은 단 한 가지의 조건 곧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Henry Moorhouse에게는 소아마비를 앓아 휠체어를 타야하는 딸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큰 걱정이 생겼습니다. 잔뜩 어두운 얼굴을 한 상태로 집에 도착했습니다. 중요한 기념일이어서 아내를 위한 꽃바구니도 사들고 들어왔지만 어두운 표정만큼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휠체어를 끌고 나온 딸은 어느 때보다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곧 아빠의 어두운 표정을 눈치 챘습니다. 그의 목을 끌어안았습니다. 거의 일어서다시피하며 엄마에게 드릴 꽃다발이냐고 물었습니다. 2층에 계시는 어머니에게는 자신이 전달해 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휠체어를 탄 상태로는 높은 계단이 여러 개 있는 2층까지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꽃바구니를 어떻게 엄마에게 전달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딸은 그를 더욱 힘껏 끌어안으며 꽃바구니를 든 자신을 그가 안고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순간, 그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말이 맞다. 내 손에 어떤 걱정이 들려 있든 내가 하나님 품 안에 안겨 있으면 정말 걱정할 일이 없겠구나.”라고 속삭였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사랑하는 당신 백성을 떠나지 않고 함께 동행 하십니다. 눈동자처럼 지켜주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며 탁월한 능력은 저와 여러분의 거룩함의 여부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합니다.
희망으로 가득 찬 내일의 유무 역시 거룩함의 여부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요셉의 경우를 통해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거룩하라고 요구하시는 이유입니다. 자신을 솔직하게 돌아볼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지극히 작은 죄 하나까지도 철저하게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떤 환난과 시험이 다가오든지 넉넉히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능력을 경험하는 복된 삶, 무엇보다 오늘과는 다른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찬 내일을 경험하는 복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