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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료바구니(기독) 원문보기 글쓴이: jung8h
슥 11: 4 잡혀 죽을 양 떼 - 슥 11: 5 사들인 자와 판 자
2 두 목자 ( 11: 4-14 )
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5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6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들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7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8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9 내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10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으니, 이는 모든 백성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11 당일에 곧 폐하매 내 말을 지키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1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14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스가랴 선지자에게는 매우 힘들고 이상한 사명이 주어졌다.
얼마 있지 않아 도축장에 끌려가 죽게 될 양 떼를 먹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명령은 유다 민족의 장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명령이다.
멀지 않아 도살 될 운명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명령이다.
스가랴 선지자가 은총과 연락이라는 두 막대기를 취해 백성들을 먹이고자 하나, 백성들은 마음에 목자를 싫어하여 거부한다(7-8절).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세 목자를 끊고, 백성들을 죽는 대로, 망할 대로, 피차 살을 먹는 대로 내버려 둔다(9절).
끝내 메시아를 거부한 이스라엘이 로마군에 의해 무참하게 살육당하는 장면을 예언하는 내용이다.
무서운 일이지만, 자기를 주장하고 고집하다가 은혜를 거부할 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내게 쓰더라도 주의 음성과 소명을 버리면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지 말고, 그동안의 죄를 속히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겸손히 돌아가야 한다.
슥 11: 4 잡혀 죽을 양 떼 -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는 잡힐 양 떼를 먹이라. )
죽임을 당할 양 떼는 유다 백성을 가리킨다고 본다.
멸망할 자들에게 설교하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메시아의 사역을 암시하였다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역하는 자들과 멸망할 자들에게 끝까지 설교하고 가르치셨다.
1]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선지자가 "잡혀 죽을 양 떼" 곧, 유대 민족(장차 로마로 말미암아 멸망당할 민족)을 먹이라는 사명을 받은 것은, 실제에 있어서 메시야의 할 일(이스라엘에게 대한)을 상징한다.
그가 여기서 양 떼를 먹이는 선한 목자의 책임을 맡게 된 것이 실제에 있어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서만 하실 일이었으니(7, 10, 12-14), 그 일은 메시야의 일이다.
메시야를 배척한 이스라엘은 마치 잡아먹힐 양 떼와 같다는 말씀이다.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을 죽였으니 스스로 목자 없는 양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들판에 버려진 주인 없는 양 떼가 되었다. 이것은 누구인가 잡아먹어도 또는 잡아다가 팔아도 죄도 안 되는 보살핌을 받지 못한 가련한 양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이방 나라가 칠지라도 건져내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다.
은혜의 성령에 무관심한 죄가 바로 그러하다. 마치 버려진 양 떼와 같다. 그래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유리하며 방황한다.
하나님의 붙들어 주시는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치고 저것이 쳐도 하나님께서 신원해 주시지 않고, 고난을 당해도 위로도 없다.
성경의 약속이 나에게 해당되는 것 같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버린 것 같으며, 사랑해 주시는 것 같지도 않다.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고, 천국도 믿어지지 않고, 영생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참으로 가련한 모습이다.
정도의 차이는 다르겠지만 우리들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그래서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성령을 모르는 사람이다.
슥 11: 5 사들인 자와 판 자 -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 도다. ( 산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케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 도다. )
유대인들이 열국 앞에서 또는 자기 나라 지도자들 앞에서 천대와 멸시를 당할 것을 보여 준다.
이처럼 비참한 일이 있을 시대는 특별히 로마가 유대를 정복할 때를 의미하였을 것이다.
산 자들은 예루살렘 성을 짓밟은 로마 사람들을 의미하고, 판 자들은 세속적인 유다 지도자들을 가리킨 것 같다.
세상 권력과 결탁해 부요케 된 그들은 여호와께 찬송하겠다고 말한다. 그것은 악하고 불경건한 고백이다.
지도자들은 자기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그 가까운 원인은 그들의 죄 때문이지만, 근원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기 때문이다.
1]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사들인 자들"이라 함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팔려 갔을 때, 그들을 매수한 자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산 자들에게도 할례를 허락하셨다.
* 창 17: 12-13 –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기업을 무르는 제도에도 적용하셨다.
* 레 25: 14-16, 23-28 – 14 네 이웃에게 팔든지 네 이웃의 손에서 사거든 너희 각 사람은 그의 형제를 속이지 말라. 15 그 희년 후의 연수를 따라서 너는 이웃에게서 살 것이요 그도 소출을 얻을 연수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인즉 16 연수가 많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많이 매기고 연수가 적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적게 매길지니 곧 그가 소출의 다소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이라. 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24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25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26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유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으면 27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자기의 소유지로 돌릴 것이니라. 28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 그것이 곧 그의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우리는 산 자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알아야 한다.
2]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판자들"은 유대의 지도자들을 가리킨 듯하다.
그들은 유대 민족이 멸망한 뒤에도 이기주의의 근성을 버리지 않고, 그 멸망을 기회로 하여 영리를 도모하는 자들이었다.
하나님은 판 자들에게도 깊은 영적 의미를 숨겨 놓으셨다.
* 창 45: 4-5, 7-10 –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10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3]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 도다.
"그들의 목자들"이라는 말은 이와 같은 부패한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1) 지도자
초기 교회는 부분적으로 유대교의 본보기를 좇아 장로들이, 또 부분적으로는 - 헬라의 결사 단체에 있는 특정한 직책들을 본뜬 듯한데 - 감독들이나 집사들이 이끌었다.
* 빌 1: 1 -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 딤전 3: 1, 8-11 – 1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8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이 두 가지 형태의 교회 지도층이 한데 어우러진 경우에는 장로들의 임무와 감독들의 임무가 구별되지 않았다.
* 행 20: 17, 28 –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 딛 1: 5, 7-9 – 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8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감독들도 처음에는 협의체의 임무를 수행했다(빌 1: 1).
신약 시대가 지난 뒤에 비로소 교회 지도층의 여러 가지 형태가 서로 뒤섞이고 합쳐져서 한 사람의 감독 아래 장로들의 모임이 있고 거기에 집사들이 덧붙는, 고대 교회의 직무 질서가 완전한 꼴을 갖추게 되었다.
(2) 통치자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의 통치자는 "사사"로 불리었고, 그 후에는 왕으로 불리었다.
애굽의 왕들은 "바로"로 불렸다.
"방백"은 오직 왕에게만 복종하는, 권력 있는 고관이다.
신약 시대에 가장 큰 권력을 가졌던 통치자는 로마의 황제였다.
* 눅 3: 1 –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 행 25: 11 -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로마 제국의 어떤 지역은 마 27: 2이나 눅 3: 1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유대"를 다스린 "본디오 빌라도"와 같은 총독이 다스렸다.
어떤 지역은 어느 정도 자치가 허용되어 그들의 통치자는 그 당시 팔레스타인의 거의 전 지역인 유대의 "헤롯" 왕처럼 왕으로 불렸다.
* 눅 1: 5 –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요 12: 31에서는 "마귀"가 "이 세상 임금"으로 불리었다.
* 요 12: 31 -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