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10 (금년 피날레는 감사로만)
성경본문 : 다니엘 6: 10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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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노경모목사
‘피날레’란 이태리어로 연극의 마지막 막이나 한 악곡의 마지막에 붙은 악장을 말합니다. 쉬운 말로 말하면 연극이든 연주든 합창이든 마지막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피날레가 멋있어야 모든 것이 멋있게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피날레는 아주 중요합니다.
헨델의 메시야 중에서 ‘할렐루야’. 이 곡을 들으면 가슴이 벅찹니다. 메시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할렐루야입니다. 이 곡이 연주되면 그 자리에 일어서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743년 3월, 런던에서 메시아의 초연 때에 '할렐루야'가 시작되자 영국 국왕 조오지(George) II세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청중도 함께 일어난 것이 하나의 관습이 되어 오늘날에도 '할렐루야'가 연주되면 청중들이 일어납니다.
교회에서 성탄절예배 때에 칸타타를 성가대가 부릅니다. 초대교회에서도 성탄절 때 칸타타를 잘 불렀지요. 보통 칸타타의 마지막 피날레는 헨델의 할렐루야를 부릅니다. 그 때 모든 성도들이 일어납니다. 감격스럽게 그 곡을 듣습니다.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함께 부르는 것이지요. 여러분 이 할렐루야의 마지막 부분 피날레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할렐루야가 4번 나오고 난 뒤 마지막 웅장한 할렐루야, 바로 그것이 피날레 중의 피날레입니다. 마지막 할렐루야를 들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진수를 가슴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피날레는 중요합니다.
오늘 본분은 한 절이지만 이 한 절속에 다니엘이라는 사람의 인생의 피날레가 얼마나 멋진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물론 다니엘이 바로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생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그 순간을 이렇게 멋지게 맞이하고 있다니 우리는 마치 헨델의 할렐루야 그 중에서도 피날레, 마지막 할렐루야를 듣는 것과도 같은 감격을 느끼게 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인 유대백성입니다. 그러나 이방나라 바벨론의 1차 침입 때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 그는 출세의 가도를 달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포로로 잡혀 온 사람이 당시의 대국인 바벨론의 총리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다니엘은 성공한 사람 중에서도 정말로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최대의 위기가 다가옵니다. 다니엘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다니엘을 제거할 완벽한 음모를 꾸밉니다.
바벨론 왕 다리오에게 이렇게 요청합니다. 지금부터 30일 동안 왕외에 다른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집어 넣기로 한 법을 만들었으니 허락해 달라는 것입니다. 왕의 심리를 이용하는 아주 간교한 술책입니다. 왕은 자기를 최고로 높이는 법이니 얼씨구나 하고 결제를 합니다. 그리고 이 법을 그 누구도 고치지 못하게 합니다.
이 원수들이 다니엘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알고 이 계략을 꾸민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 무시무시한 법을 압니다. 그렇다고 그는 하나님을 배반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의 인생은 피날레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2009년 한해의 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해의 피날레를 어떻게 장식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우리자신에게나, 하나님 앞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물론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 피날레는 이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 앞에 설 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해 한 해를 지내면서 마치 한 연극의 마지막 장면을 연출하듯이, 한 해 마지막인 이 시점에서 피날레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피날레를 만들어야 할까요? 어떤 것으로 피날레를 장식해야 할까요?
며칠 전에 어느 목사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노목사님이 얼마 전, 모 회보에 쓴, ‘이제는 쥐고 있는 것을 놓읍시다’라는 글을 읽고 아흔을 가까이 바라보시는 자기 어머니 권사님이 은혜를 받고 자녀들에게 유언을 남겼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권사님이 자기의 인생의 피날레를 어떻게 장식해야 할 것인가를 깨달은 것입니다.
다니엘은 지금까지 자기가 얻어온 모든 명예와 권력, 놀라운 행운을 한 순간에 포기하는 마지막을 맞이해야 합니다. 포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 그는 사자의 이빨에 찢겨지는 비참한 죽음을 죽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자기 인생의 피날레를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그는 그 긴박하고도 위기의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감사로 그 인생의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오늘 본문을 한 번 볼까요? 10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그 간교한 술책을 알고도, 그가 사자굴에 들어가야 할 것을 알고도, 그는 여전히 하던 대로 하나님께, 그것도 하루에 세 번 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그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자기 인생을 마무리합니다.
도대체 다니엘이 그 순간에 무엇을 하나님께 감사했을까요? 도저히 감사할 이유가 전혀 없는 순간인데 말입니다. 우리 같으면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부르짖고 절규했을 텐데 다니엘은 감사를 했다니.. 어찌 우리가 다니엘을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한해의 피날레를 어떻게 장식해야 할까요? 강력하게 권합니다. 무조건 감사로 장식합시다. 아니 오직 감사로 말입니다. 그 어려운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감사로 장식했는데 우리는 감사로 한해의 마지막을 장식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아니 당연히 합시다.
저는 다니엘이 무엇을 그 순간에 감사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나를 이국 땅에서 이렇게 높은 자리까지 올려 주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저를 통해서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이 나라에 드러내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 다른 어떤 것도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것 때문에 죽게 하시는 것 감사합니다. 죽으면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되니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12월 31일까지 5일 동안 다른 것 하지 맙시다 오로지 감사합시다. 감사로 한해를 마무리 지읍시다. 헨델의 할레루아가 할렐루야로 피날레를 장식하듯이 우리는 감사로 2009년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왜 감사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첫째, 감사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5:16-18의 말씀인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과 같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금년 한해를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인 감사로 피날레를 장식하자는 것입니다. 한해를 돌이겨 보면서 계속해서 감사합시다. 하나님이 나를 태어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예수 믿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부모님과 형제들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초대교회에 나오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그냥 감사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입만 열면 감사만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 136편 다 함께 읽어 봅시다.
둘째, 감사는 마귀를 깨뜨리는 확실한 승리의 보장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원수들은, 마귀는 다니엘을 죽이려고 완벽한 계략을 짰습니다. 그 누구도 그 계략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그 계략에 걸려들어 결제한 바렐론의 통치자 다리오 왕까지도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다니엘이 죽게 된 것을 알고 다리왕은 다니엘을 살리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 왕 마저도 어찌 할 수가 없을 정도는 마귀는 아주 완벽했습니다. 다니엘서 6:13-15을 봅시다.
‘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 내려고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매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씀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의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변개하지 못할 것이니이다’
이 마귀의 간교하고도 완벽한 계략을 알고도 감사하면, 마귀는 어쩔 수가 없어요. 마귀가 이렇게 나오면 다니엘은 두려워해야 하고, 당황해야 하고, 걱정해야 하고, 불한해해야 하고, 억울하게 생각해야 하고, 절망해야 하고, 불평해야하고 원망해야 합니다. 이것이 마귀가 바라던 바이지요.
그런데 다니엘이 감사하고 나오니 이것은 마귀가 뒤통수를 맞은 것입니다. 감사한다는 말은 마귀한테 ‘나 죽어도 좋다’는 말입니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위하여 죽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무슨 당황이 있으며 무슨 걱정과 절망이 있겠습니까! 무슨 불평과 원망이 있겠습니까! 기쁘게 죽겠다는 데 말입니다. 나 죽여라 하고 나가면 마귀가 겁먹고 도망가 버립니다. 마귀의 간교한 술책과 전략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나중에 보십시오. 다니엘이 죽은 것이 아니고 그 간교한 원수들이 죽습니다. 다리오왕 이 그들의 간교한 계략에 자기가 속은 것이 분하여 도리어 그들을 사자굴 속에 던져버립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더 높입니다. 다니엘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더 영광과 높임을 받습니다. 신나지요. 감사로 금년을 장식하면 내년에 이런 신나는 승리가 우리에게 다가 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셋째, 감사는 더 큰 하나님의 은총을 가져오는 노하우입니다.
실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 노하우를 알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살짝 알려 드릴께요. 실은 제가 지난번에 설교를 통해서 이 노하우를 이미 밝혔습니다. 다시 여러분에게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치셨을 때, 열 명 중에서 감사하러 온 한 명! 그 사람이 육신의 문둥병이 나은 것 보다 더 큰 은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무엇이지요? 영혼의 문둥병이 치유 받은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구원의 은총을 선물을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17:17-19을 봅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아빠 나 용돈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 나에게 맛있는 것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 나 공부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 나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감사를 하면, 아빠 엄마는 좋아서 넘어 갑니다. 뭐 더 해 줄 것이 없나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도 마찬가지 이십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면 하나님은 넘어지십니다.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제 2009년 남은 몇 일 동안을 어떻게 보내시렵니까? 감사하면서 보냅시다. 감사할 것만 생각하고 감사할 것만 찾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뿐만 아니라 입으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기도로 감사를 드리고 찬양으로 감사를 드리고 헌신으로 감사를 드리고.. 감사함으로 금년 피널레를 멋지게 장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