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장> 유다 왕 웃시야의 행적들
[유다 왕 아사랴(웃시야)] (대하26:1~4; 왕하15:1-7)
웃시아 왕의 별칭은 아사랴 이다. 부왕 아마샤 왕과 연대기가 맞지 아니한다. 웃시아 왕 부왕과 아들 사이에 공위 기간이 있었을 것이다. 여로보암 27년은 766B.C. 이다. 웃시아가 왕이 될 때 16세라니까 연대가 맞지 아니한다. 연구과제로 남기고 웃시아 왕은 비교적 정직한 왕이었으나 산당을 헐지 못하였다. 유다 왕과 이스라엘 왕의 연대기는 혼란스런 부분이 많다. 연대기만 연구한 서적들 사이에도 차이가 커서 조금 혼란스럽다. 연구과제이다. 그는 하나님이 치심으로 나병에 걸려 별궁 즉 나병 환자는 성에 살 수 없으니 나가서 별궁(레13:46)에 기거한 모양이다. 또 왕은 왕이로되 직무는 요담 왕에게 넘겼던 것 같다. 잘됨과 교만 그리고 징벌 그리고 회개 이런 등식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웃시야 역시 이런 도식(圖式)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아사랴 왕(Azariah king of Judah; 792B.C.–740B.C.)
아마샤 왕과 아사랴(웃시아) 왕의 공위 기간이 792B.C.~767B.C. 사이 25년이다.
아사랴 왕은 웃시아왕의 별칭이다.
남조 유다 10대 왕으로 52년간 재위하였다(왕하15:1-17; 대하26:1-23).
북조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II 27년(766B.C.)에 유다의 왕이 되었다(왕하15:1, 2).
아마샤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여골리아(Jecoliah) 이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으나 산당을 헐지 못했다. 죽는 날까지 나병 환자였다.
* 엘롯(Eloth) 아카바만 북쪽의 에돔의 항구 도시(왕상9:26; 대하8:17)로서 ‘엘랏‘ 이라고도하고
에시온게벨과 같은 곳 아니면 인근 성읍일 것이다.
[선지자 스가랴의 말을 들어 흥왕(興旺)하는 웃시야 왕] (대하26:5-15)
선지자 스가랴가 살아있는 동안에 웃시야가 하나님을 찾았고 그를 형통(亨通) 하게 하셨다. 블레셋, 구르바알에 사는 아라비아인, 마온을 이기게 하시고 성을 쌓게 하셨다. 암몬은 조공을 바치고, 그 이름이 이집트 변방까지 널리 퍼졌다. 예루살렘에는 3곳에 망대를 세워 성을 견고히 지키며, 농업을 진흥하여 그 관리도 두었다. 웃시아에게 서기관 여이엘, 병영장 마아세야가 그 수를 조사하여 뽑은 대로 군 지휘관 하나냐가 있었고 족장이 2,600명이었다. 군대를 정예화하고 신무기를 개발하는 등 국방을 튼튼히 하여서 나라를 지켰다.
* 가드(Gath) 가자의 북쪽 32Km 지점으로 블레셋 5개 중요도시 중의 하나 이다(삼하1:20).
* 아브네(Jabneth) 지중해안 욥바 남쪽 20km 지점에서 내륙으로 6km 들어앉은 성읍이다.
* 아스돗(Ashdod) 지중해 연안 변경에 있으며 내륙으로 4.8km 지점, 아스글론 북쪽 16km 지점
신약시대 이름은 아소도이니 유다 지파가 여호수아에게서 분배받은 성읍이다(수15:47).
* 구르바알(Gur-baal) “바알의 거처” 라는 뜻으로 유다의 남부 경계지역으로 에돔과의 경계지역일
것으로 본다(대하26:7). 야굴과 동일 성읍일 가능성이 높다(수15:21),
* 마온(Maon) 십과 갈멜 부근의 유다 구릉지의 성읍이다(수15:55).
다윗이 도피생활을 했던 곳(삼상23:24, 25). 현재 키로벳 마인(Khirbet Main)으로 추정된다.
[웃시야의 교만과 범죄](대하26:16-18)
국가의 흥왕함은 왕의 교만으로 연계된다. 웃시야는 오만하여 제사장이 드리는 제사를 그가 드리려 하는 우를 범하였다. 이때 제사장 아사랴가 80명의 제사장을 대동하고 왕에게 나아가서 못하도록 하였다.
[한센병 환자가 되어 별궁에 살게 된 웃시야 왕](대하26:19-23)
아사랴의 권고가 있을 때 그는 돌이키지 않았다. 오히려 화를 내었다. 그때 그에게 한센병 징조가 보였다. 급히 성전 밖으로 나가고 그는 평생 별궁에 살며 아들 요담이 공위(共位)로 나라를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