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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나귀를 찾는 사울 (삼상 9:3-10)
영적적용:은사론
설명
사무엘상 9-10장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시는 섭리적 사건
의 기록이다. 그런데 우리는 암나귀들을 찾으러 다니는 사울을 통하여 성령의
은사를 받는 바른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 암나귀
1) 일반적인 의미 - 당시 나귀는 부와 능력과 존귀의 상징물이요, 실용적으로
도 논밭갈이나 방아 여행과 운반수단 등으로 귀하게 쓰여진 동물이다.
2) 신령한 의미 - 이렇게 은사란 귀한 능력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중요
한 수단으로서 성령 은사의 상징이다.
☆ 찾기 위한 노력
☞ 사울이 암나귀를 찾아 방황하였듯 은사를 모르면 시행착오가 많다.
☆ 은사를 경험하는 방법
1. 안일함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3-4절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1) 문자적인 의미 - 에브라임 산지는 비옥하기로 유명한 땅이다.
2) 신령한 의미 - 은사는 육신의 안일함 속에서는 찾을 수 없다(마7:11-12).
2. 육신적인 동기로 구해서는 안된다.
4절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고"
1) 문자적인 의미 - 살리사는 육신이 잘 되자는 바알종교의 중심지이다.
2) 은사는 육신의 욕망을 위해서 구해서는 안된다(약4:2-3).
3. 은사를 부인하거나 의심하지 말라.
4절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니되 없고"
1) 문자적인 의미 - 사알림은 '자칼의 땅'으로 자칼이란 여우를 가리킨다.
2) 신령한 의미 - 은사를 부인하거나 의심해서는 안된다.
4. 성령을 부리려는 자세여서는 안된다.
4절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니라"
1) 문자적인 의미 - 베냐민 땅은 사울의 고향이다.
2) 신령한 의미 - 베냐민은 육체의 상징으로 육신이 주인이 되어 성령의 능
력을 부리려고 해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
5. 말씀을 기초로 제사장적인 삶이어야 한다.
5절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1) 문자적인 의미 - 숩 땅은 사무엘의 조상 숩 제사장이 살았던 곳으로 '벌집'
이라는 뜻이다.
2) 신령한 의미 - 벌집은 말씀의 꿀을 상징이요, 제사장은 날마다 예배하며
경건되이 섬기는 삶의 상징인데 이는 성경을 기초로 하여 몸을 제물로 삼
아 경건되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서 은사로 풍성해짐을 보여준다.
강해
오늘은 '암나귀를 찾는 사울'이라는 제목입니다. 사무엘상 9-10장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시는 섭리적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
버지가 암나귀를 잃어버린 것도 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암나귀들을 찾으러 다니는 사울을 통하여 성령의 은
사를 받는 바른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3-4절에 "사울의 아비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한
사환을 데리고 일어나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
사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니되 없고 베냐민 사
람의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니라" 했습니다.
여기 암나귀는 당시의 부와 능력과 존귀의 상징물이요, 실용적으로는 중요한 논
밭갈이나 방아 여행과 운반수단 등으로 귀하게 쓰여진 동물로 영적으로는 성령의
귀한 은사의 상징입니다. 이렇게 은사란 성도들에게 귀한 능력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그런데 사울이 암나귀를 찾지 못해
몇 개의 지파를 돌아 다녔듯 이 은사만큼 받는데서 시작해서 나중까지 시행착오
가 많은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이러한 시행
착오 없이 바르게 접근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1. 사울과 그 사환은 암나귀를 에브라임산지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이 에브라임 산지는 이스라엘의 중앙산지로서 땅이 비옥하고 다른 곳과는 달리
비가 많아 열매가 풍성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에브라임은 '열매가 풍성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암나귀가 갔다면 틀림없이 꼴이 풍
성한 그 땅으로 갔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에브라임 산지를 수색했습
니다. 여기 '두루 다니되'란 말은 열심히 찾아다녔음을 가리킵니다. 어느 한 곳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열심히 찾았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묻기도 했을 것입니
다. 그러나 그 곳에는 꼴만 무성할 뿐 암나귀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는 육신의 풍성과 안일함 속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교훈합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성령의 선물은 내 몸을 바쳐야 오
게 되어 있습니다. 마7:11-12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
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그러므로" 라는 접속
사가 중요합니다. 이 그러므로란 성령을 주신다는 약속과 함께 내 몸을 드려야 한
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평안하게 안일하게 힘들이지 않고 편히 누워서 하나님께 구해서는 오지
않습니다. 생명의 성령은 예수를 믿으면 구하지 않아도 중생의 영으로 오게 되어
있지만 능력의 성령은 구해야 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은사도 별로 힘들이지 않
고 임하긴 합니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나타나려면 많은 힘을 투자해야 합니다. 그
러므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갈급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5:3
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했고, 6절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했습니다. 그래서 내 몸을 산 제사로
바쳐 예배하는 삶이 될 때 하나님께서 그 육체에 은사로 말미암는 영성을 입혀주
십니다.
2. 다시 4절을 보면 그들은 살리사 땅으로 암나귀를 찾으러 갑니다.
3-4절에 "사울의 아비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한
사환을 데리고 일어나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
사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니되 없고 베냐민 사
람의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니라" 했습니다.
이 곳은 세겜 남서쪽 32km지점인데 '제 3의 땅'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버
린 땅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곳은 바알신을 숭배하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알살리사'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바알은 육신이 잘 되자는 종교입니
다. 이 종교는 영혼도 내세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거룩도 성화도 의미가 없습니
다. 그 종교는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다복하여 육신의 욕망을 마음껏 누리며
행복하게 살자는 주의입니다. 그런데 이 살리사에서도 그토록 찾았으나 바알을 부
르는 독경소리는 들려와도 암나귀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성령의 은사는 육신을 위해 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종교는 돈벌이를 위해서 더 강한 귀신에 접신되기를 원합니다. 그
래서 무당들이 더 귀신이 세다는 곳 영하다는 곳을 찾아서 그 강한 귀신에 접신
되기 위해서 비윤리적인 이상스런 방법까지 동원하여 애를 쓴답니다. 그것은 다
돈벌이를 위해서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그러한 세상 것을 위한 불순적인 동기나
방법이나 목적이 있다면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기 때문에 결코 나타나 주시지 않
습니다. 그래서 약4:2-3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
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했습니다.
이 경우에 약 몇 가지의 양태가 있는데 먼저는 이방신을 섬기던 습관이 남아서
은사를 자신의 육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서 사모하는 경우가 있고, 다음에는 신령
한 은사를 많이 소유하려고 은사 자체에 욕심을 갖고 은사추구 일변도로 나가는
경우가 있고, 혹은 능력을 크게 받아 큰 종이 되어야 하겠다는 어쩌면 옳은 듯하
나 내 주관적이요 탐욕적인 경우, 혹은 서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은사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영적인 대립의 양상 때문에 은사를 더욱 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
다. 그러니까 고의적으로 육신적으로 구하는 경우와 부지중에 어떤 육신적인 것이
동기가 되어서 은사를 육신적인 동기로 구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꼭 이럴
때 성령의 은사는 중단되고 대신에 악령이 틈타게 됩니다.
일차적으로 은사는 신앙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
을 바로 세우다 보면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이루어져서 구하지 않아도 다 허락
해 주시고 구하지 않았으나 알게도 해주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예수 이름
으로 점쟁이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이 바로 바알살리사의 의미입
니다.
3. 사울과 그 사환은 사알림 땅으로 두루다녔습니다.
3-4절에 "사울의 아비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한
사환을 데리고 일어나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
사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니되 없고 베냐민 사
람의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니라" 했습니다.
사알림은 벧세메스와 아얄론 중간에 위치한 곳인데 '자칼의 땅'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칼이란 여우를 가리킵니다. 벧세메스는 여호와의 법궤가 머문 곳으로
말씀의 상징이요, 아얄론은 여호수아가 전쟁할 때 달이 머물던 기적의 장소로 능
력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 중간의 땅에다 여우의 땅이니 이
는 말씀과 능력을 의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사알림 땅을 두루 다녔는데도 역
시 그 곳에도 여우 우는 소리는 들려도 암나귀 우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즉 성령의 은사를 의심하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수 없다는 교훈입니
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는 성경적이요 또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믿을 때 활발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은사는 비성경적이요 귀신의 역사라고 하면서 부인하는 곳에
는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시고 나타나도 쓸데 없는 것이 나타났다고 배척하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성경적인 것으
로 믿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추세에 있어서도 성령의 은사를 경험한 사람들이 더
많으며 선교학자들은 선교적인 측면에서도 은사의 필요성이 널리 인정하고 있습
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를 믿지 않고 배척하는 것에서는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 능력을 오해했기에 부활도 믿지 못했고 나
아가 예수를 배척한 것처럼 성령의 은사를 오해한 사람들은 지금도 은사를 귀신
의 작란 정도로 이해합니다. 혹은 광신적인 행동으로 오해합니다. 안식교의 경우
은사를 부정하면서도 교주되는 화잍 부인의 온갖 신비 체험들은 인정하는 모순적
이요 이중적인 은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사를 부정하는 곳에는 예수님의 재세시와 같이 거의 은사보기가 희귀합니다.
은사에 대한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마치 예수님에 대한 마음이 열려야 한 것처럼
은사에 대해서도 그 은사를 인정하는 마음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당시 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마음의 문은 이방의 동방박사들보다 신지어는 빌라도의 아내보
다도 닫혀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동방박사들은 성령의 지도를 받아 다른 길로 고
국에 돌아갔고, 빌라도의 아내는 꿈 속에서라도 예수를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아 남편을 설득했지만 바리세인들에게는 그것 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했던 시므온과 안나는 나이 많아 늙었으나 성령의 지시를 받아 아기
예수를 만나 뵙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눅2:25-27, 36-38). 우리도 마음문
을 열고 이 은사가 성경적일 뿐아니라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
니다.
4. 그들은 베냐민 사람의 땅까지 두루 다니며 찾았습니다.
3-4절에 "사울의 아비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한
사환을 데리고 일어나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
사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니되 없고 베냐민 사
람의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니라" 했습니다.
여기 베냐민 땅은 자기의 고향입니다. 혹시 너무 멀리 찾으러 다니지 않았을까
혹은 되돌아 오지나 않았을까 해서 베냐민 땅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베
냐민 땅에도 없었습니다. 이미 말씀 드린대로 베냐민은 육체의 상징입니다. 물론
성령의 은사는 육에 속한 사람에게도 임하여 그 잘못을 고쳐줍니다. 그러나 육신
이 주인이 되어 성령의 능력을 부리려고 해서는 아무리 구해도 하나님께서 허락
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울이 찾고 찾고 찾아도 찾지 못했던 결과의 영적
인 의미입니다. 이렇게 찾으면 수 십년 동안 찾아도 찾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육적인 태도로 은사를 구하다가 실망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목
적이 너무나 신령하기 때문에 잘못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교회를 부흥
시키고, 전도를 하고, 선교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약한 사람을 도와
주겠다는 목적입니다. 좀 더 큰 비죤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의 권능 앞에서 수 많
은 사람들이 꼬끄라지고 모두가 병 낫고 교인들이 구름떼 처럼 모여드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엎디어서 능력을 구하지만 실망이 더
큽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기도를 하면 할 수록 더 시험들고 영적으로 자신이
없고 교회도 가정도 풍지박산이 됩니다. 그러므로 속히 자신의 기도를 점검해 보
아야 합니다. 그 원인 중에 혹시 내가 성령의 도구가 아니라 성령을 나의 도구로
삼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5. 그들은 숩 땅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3-4절에 "사울의 아비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한
사환을 데리고 일어나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
사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니되 없고 베냐민 사
람의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니라" 했습니다.
또 5-6절에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하는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
가자 내 부친이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의 갈 길을 가
르칠까 하나이다" 했습니다.
여기 숩 땅은 사무엘의 먼 조상이었던 레위 사람 숩이 살았던 곳으로 사무엘이
있던 라마와 가까운 곳입니다. 이 곳은 '벌집'이라는 뜻을 가진 곳입니다. 그 동안
그들은 정신 없이 뛰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숩 땅에 와서야 부친이 암나귀
보다 자기들을 더 걱정하실 것이 생각났습니다. 제 정신이 돌아온 것입니다. 그
동안 은사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방황했다면 이제 제 정신이 돌아와야 합
니다. 그래서 젊은 날에 은사를 부정하던 사람들이 대개 연륜이 깊어가면서 엎드
려 기도하고 은사의 도움을 간구하는 현상도 제 정신이 들어온 결과입니다. 어떤
사람은 은퇴하는 날까지 은사를 부정하다가 뒤 늦게야 깨닫고 후임자를 도와주는
분도 있지만 좀 더 빨리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럼 레위 지파와 벌집이란 무슨 뜻일까요? 레위 지파는 하나님을 매일 같이 조
석으로 제사하며 경건되이 섬기는 제사장들입니다. 그리고 벌집은 말씀의 꿀을 담
고 있는 성경을 상징합니다. 즉 성경을 기초로 하여 이렇게 우리 몸을 제물로 삼
아 매일 같이 경건되이 하나님을 섬길 때 진정한 성령의 은사가 임한다는 것입니
다. 그럼 어떻게 구하는 것이 말씀대로 구하는 것입니까? 이미 앞에서 어떻게 구
해야 할 것인가를 말씀드렸습니다. 즉 그렇게 구해서는 안된다는 1. 2. 3. 4. 즉
에브라임 살리사 사알림 베냐민 땅의 교훈들을 뒤집으면 곧 바로 귀한 복음이 됩
니다. 그래서 사울의 행적을 이토록 자세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잘못 찾아서는 안됨을 교훈하시기 위함입니다.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약속이므로 받아야 하고 구하
면 반드시 주어집니다. 그러나 안일하게 구해서는 안됩니다. 몸을 바쳐 구하시기
바랍니다. 또 육신의 정욕을 위해 구해서는 안됩니다. 내 신앙을 위해서 구하시기
바랍니다. 또 비성경적 혹은 사단의 능력이라고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마음문 여
시고 성경 대로 믿으십시오. 또 내가 주가 되어 능력을 행사해서도 안됩니다. 우
리는 겸손히 성령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을 토대로 레위의
제사장과 같이 경건된 자세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귀한 성령의 선물을 풍성하게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