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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꿈꾸며 살아야 지치지 않을까? / 김경수 목사
서론
삶에 지친 사람들
지난 밤에 돼지 꿈을 꾸었다면 오늘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면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사겠다고 대답합니다. 요즘 복권이 크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한 달전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본 일이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선 건설교통(국민은행).과학기술(과학문화재단).문화관광(체육진흥 공단).노동(근로복지공단).산업자원(중소기업진흥공단).보건복지(사회복지공동모금회).행정자치부(지방재정공제회)와 국가보훈처(보훈복지의료공단), 산림청(산림조합), 제주도 등 10개 중앙정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가 복권을 발행하고 있다.
물론 각 기관이 직접 사업을 벌이는 게 아니라 산하기관에 사업권을 줘 대행케하는 간접방식이다.
최근 타이거풀스의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비리에서 드러나듯 그동안복권사업은 ‘황금알을 낳은 사업’으로 간주돼 각 기관이 경쟁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현재 발행되는 복권 종류는 모두 21가지.
여기에 구매자가 직접 복권번호를 선택하는 로또(Lotto)식 복권이 올 연말부터도입될 예정이다. 지난해 기준 국내 복권시장 규모는 7천억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조선일보 2002. 6. 16)
사람들이 복권을 사는 이유는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재미로 해본다고 하지만 실상 그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신의 삶에 대한 불신과 피로가 쌓여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기 인생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지친 사람들이 복권을 사는 것입니다.
본론
본론1; 지쳐버린 엘리야
오늘 우리는 본문 가운데에서 완전히 지쳐버린 한 선지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 선지자는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능력의 선지자였습니다.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 삼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비가 올 것이라고 말하며 기도하면 삼년 동안 오지 않던 비가 다시 내렸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죽은 아이를 살리고 왕의 마차보다 빠르게 23km를 달리던 선지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갈멜산에서의 바알선지자 450명과의 영적 대결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둔 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당시 이스라엘에 가득했던 바알종교와 싸우던 영적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적 거인 엘리야가 완전히 지친 모습으로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갑자기 낙담하여 지친 것은 이세벨 왕비의 무서운 협박 때문이었습니다. 갈멜산에서 450명이나 되는 바알선지자들이 엘리야 선지자 때문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세벨 왕비는 24시간 내에 엘리야 선지자를 죽여버리겠다고 장담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엘리야 선지자는 살기 위해 도망쳤습니다. 이스라엘을 벗어나서 유다 땅에서도 제일 남쪽 브엘세바까지 193km를 정신없이 달려갔습니다. 브엘세바는 유다 땅 제일 남단에 광야와 접해 있는 성읍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엘리야 선지자는 자기 사환을 남겨 두고 혼자서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광야에서 하루 종일 걷다가 한 로뎀나무 아래 쓰러지듯 주저 앉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죽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4절). 이 말은 이제 다 끝났다는 말입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다 끝났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습니다. 저는 큰 일을 할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바로 이런 말입니다.
-엘리야가 지친 이유
갈멜산에서 450명의 바알선지자들과 담대하게 홀로 맞서 싸우던 영적 영웅이 갑자기 이처럼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상황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거둔 승리는 정말 극적인 것이었습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영적 승리였습니다. 이보다 더 큰 일을 다시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 모든 광경을 아합왕이 다 지켜 보았습니다. 아합왕의 마음 속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승리의 여세를 몰아 다시 갈멜산에 선 엘리야 선지자는 삼년 동안의 가뭄을 해갈할 비가 내리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삼년 동안의 가뭄은 바알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처단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빗장을 풀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가뭄도 그쳐야 합니다. 일곱 번 기도하였더니 정말 큰 비가 내렸습니다. 이제 바알 종교는 이스라엘 땅에서 종말을 고하고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는 부흥의 시대가 왔습니다. 바알종교의 흔적을 이스라엘 땅에서 깨끗이 씻어내고 새로운 시대의 풍요로움을 약속하는 듯 메마른 땅을 적시며 비가 쏟아졌습니다. 은혜의 소낙비를 맞으면서 엘리야 선지자는 이스르엘 평원을 가로질러 달렸습니다. 23km를 달렸습니다. 왕의 마차보다 빨리 달렸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달음? 珦潔享윱求?
그러나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합도, 이세벨도, 모든 형편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갈멜의 승리는 하룻밤 사이에 사형이라는 죄목이 되어 되돌아왔습니다. 이 모든 형편을 보니 상황이 분명해졌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엄연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첫째는 최선을 다했지만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고의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결국 어제의 승리는 현실 속에 잠시 머물다 사라진 신기루같은 것이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23km를 달린 어제의 피로가 일시에 엘리야 선지자의 영혼 속으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지쳤습니다. 이젠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끝났습니다.
두 번째는 나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늘 혼자 남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갈멜산에서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도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 오십인이로다”(왕상18:22).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도 두 번이나 반복해서 오직 나만 남았다고 말했습니다(왕상19:10, 14).
최선을 다했지만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 더 이상 의욕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혼자라는 생각이 들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최선을 다해 봅니다. 그러나 최선의 결과가 늘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는 정말 아무런 변화도 없을 때도 있습니다. 오히려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지칩니다.
최선을 다해 신앙 양심을 지키며 삽니다. 그러나 세상이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사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명이 사업에 걸림돌이 될 때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믿음을 지키며 일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실적을 높여주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 정의를 외칩니다. 하지만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나 변화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신앙양심을 지키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고, 믿음을 지키며 사는 사람이 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지칩니다.
본론2; 지친 사람에게 찾아 오시는 하나님
“하나님, 다 끝났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습니다.”
지치고 지친 엘리야 선지자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음식을 준비해서 엘리야 선지자를 깨웠습니다.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5절).
음식을 먹고 누워 또 자는데 천사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7절)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지친 엘리야 선지자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지친 엘리야 선지자를 어루만지며 위로하시고, 일어나라고 격려하시고, 음식을 통해 힘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힘을 더하여 주신 후에 사명을 발견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이 말씀은 직역하면 ‘네가 가야할 길이 너무 크다’라는 말입니다. 엘리야 선지자에게 가야할 길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가야할 길은 호렙산을 향한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호렙산은 언약의 산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이 언약의 산, 호렙산으로 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사명을 새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친 사람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약속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치열한 전쟁 후 소돔왕의 방자한 말을 듣고 지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별과 같이 많은 후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창15장).
하갈이 집에서 쫓겨나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며 지쳐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하갈을 찾아 오셨습니다(창21장). 그 때 하나님께서는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을 통하여 큰 민족이 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이 집을 떠나 도망하여 돌을 베개삼아 자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 오셨습니다(창28장). 그리고 너 누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고 네가 이 땅으로 돌아오기까지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삶에 지쳤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어루만지며 위로하십니다. 일어나라고 말씀하며 격려하십니다. 먹으라고 말씀하며 힘주십니다. 그리고 약속해 주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 주시고 하나님의 꿈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본론3; 무엇을 꿈꾸며 살아야 지치지 않을까?
힘을 얻?엘리야 선지자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곳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비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세상을 변혁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바알종교를 번성시킨 이세벨과 그 후원자 오므리 왕조를 처단하시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 종교를 물리치고 여호와 신앙을 회복시키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지만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선지자는 실패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계획을 세워 두셨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자신의 꿈을 버리고 이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26살 목사 초년시절에 떠밀리다시피 흑인 민권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발표되자 마자 KKK단의 협박전화가 왔습니다.
“어이 깜둥이. 이젠 너랑 네 떼거리들이 지겨워졌어. 그러니까 사흘 안에 이 동네에서 꺼지지 않으면 머리통을 날려버릴거야. 너희 집도 날려버릴거야.”
그날 밤 킹목사님은 밤새 의자에 앉아서 고민하며 기도했습니다. 한 설교에서 그 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 지도자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너무나도 약했습니다.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큰 소리로 외치며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지금 너무나도 약한 존재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자리에 서서 주저하고 있습니다. 용기가 꺾이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마음 속에서 내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공의를 위해 일어나라. 진리를 위해 일어나라. 보라, 내가 너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할 것이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결코 떠나지 않겠다, 절대로 혼자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절대로 혼자 버려두지 않겠다, 절대로 혼자 버려두지 않겠다...”
사흘 후에 약속대로 킹목사의 집 베란다에서 폭탄이 터졌습니다.
그러나 킹목사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그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계속 잘해나갈 수 있을까 회의가 드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주먹질을 당하는 데도 지쳤고, 얻어맞는 데도 지쳤고, 감옥에 가는 데도 지쳤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지쳤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장애물들을 극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킹목사님이 수 없이 지치고 좌절을 경험하는 가운데서도 자신의 사명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비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지킨 사람이 자기 혼자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칠천명의 신앙인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지신 미래에 대한 비전이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칠천 명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선지자는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비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엘리야 선지자가 더 이상 지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호렙산에서 만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질 날을 꿈꾸며 사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의 나그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광야의 시체가 될뻔 했던 하갈도 하나님의 약속을 부여잡고 일어났습니다. 돌베개같은 험난한 인생을 살았던 야곱도 하나님의 약속을 가슴에 담고 견뎠습니다. 애굽의 노예 소년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의 비밀이 풀리는 날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결론
내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내 꿈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습니다.
지금의 형편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계획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신앙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노래가 한 사람의 마음도 울리지 못한다고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살아도 세상은 여전히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지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분의 계획대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13:31, 32).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13:33).
하나님께서 세우신 진실한 사람을 보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혼자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쓴뿌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는 참된 하나님의 일꾼들이 있습니다. 겸손하게 헌신하며 하나님을 위해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친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사람들입니다. 나보다 더 훌륭하게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보더 더 겸손하게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천사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지치지 않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어 지쳐 있습니까? 나 혼자만 헌신하고 나 혼자만 바보처럼 겸손하게 순종하는 것같아 지쳐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세상을 변혁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꿈꾸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진실한 사람이 함께하는 교회를 꿈꾸며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