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학교를 여는 아침 풍경
박경선(대구대진초등학교 교장)
한국이 좋은 것은 나라 품을 떠나봐야 안다. 잘 살면서도 화장실 사용료를 받는 유럽쪽 여행이나 가난하게 사는 동남아쪽 여행에서 돌아와 인천공항에 내리면 누구나 외치게 된다. “아아, 살기좋은 대한민국, 영원하리라!” 필리핀이 좋다고 살러 갔다가 총 들고 치안을 지켜주는 보안비용 때문에 집 빌리는 월세가 삼백만원을 넘어 되돌아 온 지인을 보며 살기 좋은 우리나라를 생각한다. 무상으로 경찰이 치안을 담당해주는 나라, 치안 뿐 아니라 화재 진압하다 순직한 소방관이 있는 나라, 일반 시민도 위험 앞에서는 목숨 걸고 도우는 나라다. 얼마 전 대구 지하철 범어사역에서도 뒷걸음치던 이씨가 선로에 추락하자 50대 남자, 역무원, 20대 청년 몇이 뛰어들어 생명을 구해내었다. 나라 밖에서도 그렇다. 2001년, 일본 신오쿠보 전철역에서 추락한 취객을 고려대생 이수현이 구해주었다. 최근에는 하버드대 3학년생인 조셉 최군이 우리의 자존심을 대변해주었다. 주한미군에 대한 우리나라의 방위비 분담을 미국 트럼프가 푼돈이라며 비하 발언을 하자 세계 언론인이 지켜보는 그 자리에서 논리로 한국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맞다. 한국인은 크게는 살신성인 정신으로 살고 작게는 파지를 실은 할머니의 손수레를 뒤에서 밀며 힘을 보태며 더불어 사는 국민성이 아름다운 나라다.
돌아보면, 이 나라 교육계는 교육계대로 교육관계 당국은 물론 학교는 학교대로 학부모와 경찰을 위시한 지역사회와 함께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행복한 아이들로 키워내고 있다. 이들의 노력과 수고를 헤아려 볼 여유가 없다면 안도현의 시 한 구절만 읽어보자.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나.”
세상이 뭐라 하든, 자기 자리에서 선생의 이름을 걸고 사력을 다해 하루하루를 이겨내는 이 땅의 선생님들과 진정으로 학교를 도와주는 모든 분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올리며 이 글을 쓴다.
10월 쌀쌀한 아침, 7시 40분! 도톰한 윗도리를 걸친 교통 봉사단 어르신들이 학교 횡단보도 앞에 대기하고 계신다. 대진초등학교 학생들의 등굣길 안전을 지켜주려고. 대진초 앞 수목원쪽에서부터 현풍 가는 도로가 뚫리고 나서부터 ‘떼잔차질’ 현상을 보는 것 같다. 센프란시스코에서 1992년에 일어난 운동에 붙여진 이름이라지만 매일아침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를 무시하고 내달리는 차들을 보면 바로 그 모습이요. <폭주족의 귀환>이라는 중국 기록 영화 속에 서있는 것만 같다. 영화에서는 자전거 탄 사람들이 자동차 행렬 때문에 길을 건너지 못하다가 자전거가 최소한 열대쯤 모여 들면 용단을 내려 떼 지어 자동차속을 뚫고 도로에 내려서는 ‘떼잔차질’로 길을 건너간다. 영화에서는 교통신호등이 없는 도로라서 그렇다 치자. 대진학교 앞은 버젓이 신호등이 있고 보행자가 초록신호에 건너려고 기다리고 섰는데도 마구잡이로 내달린다. 저들은 색맹인가, 무법자인가?
이런 도로에서 매일 아침 7,80대 시니어 어르신들이 흰머리카락을 찬 바람에 풀풀 날리며 교통지도를 해주신다. 교통깃발과 몸으로 내지르는 차들을 막아서며. 12월이면 어르신들의 추위 속 봉사가 무리라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때는 학부모들의 협조를 받아야하지만 그 또한 걱정이다. 동동거리며 출근가방 메고 와서 허겁지겁 교통지도 해주고는 부랴부랴 일터로 갈 학부모님들을 생각하면 죄스럽고 안스럽다. 또한,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생들 줄을 세워 횡단보도까지 데려와 깃발로 차를 막아서서 하교 지도를 하는 일상을 산다. 우리 아이들은 알까?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봉사정신과 자나깨나 학생들 안전을 걱정하는 우리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마음을. 교장은 교장대로 등교시간 내내 두 손을 흔들고 웃어 보이며 “사랑합니다. 괜찮아. 천천히 건너세요. 천천히!”를 주문한다. 급히 건너다 일어나는 사고도 잦은 탓이다. 이렇게 마음 졸이다 보니 횡단보도까지 와서 아이가 무사히 건너가는 것을 지켜보고 돌아가는 학부모도 있고 아예 학교 앞까지 손잡고 건너 주고 가는 분도 있다. 가끔 경찰관이 나와 교통지도를 해주면 질주하던 차들이 좀 얌전하게 멈춰 선다. 그렇다고 경찰의 도움을 늘 받을 수는 없지. 경찰이 하는 일이 좀 많으며 학교를 도와주는 일도 좀 많은가? 현장학습 가는 날은 대절 차 기사님들 음주 측정을 하러 달려오고, 학교마다 학교폭력 업무 전담 경찰관을 배치해두고 폭력 신고 및 상담을 책임지고 폭력예방 캠페인과 강의도 나오고... 작년겨울부터 신년도 초까지는 달서구 교통과와 월배지구대 전경들이 오전 내내 우리 학교 앞 횡단보도에 배치되어 아이들 안전도 지켜주었다. 멀쩡한 횡단보도가 사라지고 갑자기 생긴 교통섬 때문에 아이들 등굣길이 위협 받아서였다. 학교는 건설본부와 경찰서에 공문을 보내어 과속 단속과 CCTV 증설, 교통지도 인력 배치를 지원받았다. 학부모님들은 학부모님들대로 횡단보도의 원상복귀를 위해 머리띠 두르고 나섰다. 청와대 신문고, 정치인, 언론사들을 두드리고 급기야 대구시장님까지 달려와 횡단보도가 원상복귀 되도록 용단을 내려주셨다. 하지만 원상복귀 되고도 늘어난 차들이 우회전한답시고 보행자 신호를 무시하고 내달리니 교장은 늘 ‘오늘도 무사히’를 외친다. 그나마 태극기를 흔들며 <위대한 대한민국>현판을 목에 걸고 일주일에 한 번씩 교통지도를 해주러 나오는 달서구 박왕규 의원을 만나는 날이면 힘이 난다. 오늘 아침에는 경찰, 교사, 학생이 연합으로 흡연예방 캠페인, 학교 폭력 캠페인을 하기에 거기 잠시 돌아보고 오는 사이에 유치원생이 또 다쳤다. 급히 뛰어 건너다 도로 중간에서 넘어져 이마를 긁혔다. “으악!” 우는 아이 손잡고 울음과 치료 사이 잇잠 처방약으로 사탕 한 알 입에 물려 보건실로 데려왔다. 연고 바른 뒤 딱지 안 생기게 점착 보습 밴드 붙여주고 유치원에 가라하니 고개를 잘래잘래 흔든다. 또 어디가 아픈가싶어 꿇어앉아 살피는데 사탕 오물거리는 자기 입을 가리킨다. “요것, 다 먹고가요.” 그래, 그것쯤이야 안심! 성호를 긋는다. 오늘도 많은 분들에게 교통안전 지도 은혜를 입었다. ‘오늘도 무사히’ 넘어가 감사하다. 이렇게 하루하루 힘겹고 고단하면서도 아름답게 이겨낸 우리의 발자국이 모여 행복학교를 여는 아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