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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신화
1.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고, 2.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며, 3. 능력에 따라 성과를 배분한다.
능력주의가 과도해지면서 능력과 도덕적 판단력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사회
성적 기반 능력주의(조희연)
많은 사람들이 우월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성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무엇이 그 능력을 만들어 냈는지 생각하며, 능력이 성공을 보장하는 사회가 정의롭다고만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대학 학위가 좋은 직장과 사회적 평가의 전제조건이 된다면, 민주주의, 공정한 사회는 부패된다. - 능력주의의 어두운 이면.
능력주의에 따르면,
만일 대학에 가지 못해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그 실패는 바로 당사자의 몫이다.
학력주의라는 편견은 성공한 자들에게 교만한 마음을 준다.
이들은 인종주의나 성차별주의에 반대하지만,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
교육받지 못한 사람은 깔봄을 당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학력이 떨어지는 자들보다 '가장 뛰어나고 가장 똑똑한 자들'이 정치를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은 능력주의에 기초한 허구다(15).
들어가며
COVID-19이후 ' 분리를 통한 단결'이라는 도덕적 모순
성공한 사람은 마땅히 받아야 할 노력의 대가를 받았을 뿐이라 여길 것이며, 실퍄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을 업신여기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 권위적인 포퓰리스트에게 빠져든 원인(예/ 트럼프에 열광하던 이들)
서론
대학입시와 능력주의
대학입시부정 사건 - 기부입학 / 뒷문이든 옆문이든 공정하지 않는 것은 매 한 가지.
그런데, 문제는 정문 앞에서도 떠돈다는 것 - 실력? 경제적 우위와 관련이 있다. - 고등교육은 능력주의를 따르지 않는다.
어느 대학에 들어가느냐가 중요한 시대, 학생들은 너도나도 소수의 주요 대학들만 선호한다(35).
부모들 역시도 간섭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빈부격차의 심화 속에서 '적어도 중산층의 삶만이라도 살았으면...'이런 바램은 자녀들의 대학 입시에 간섭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능력 지표 따내기
불평등한 사회에서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믿고 싶어한다.
능력주의가 원칙이 되는 사회에서는 승리자가 '나 스스로 재능과 노력으로 여기에 섰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36).
명문대 간판이 줄 수 있는 '능력의 지표'
노력과 재능의 힘으로 능력 경쟁에 앞서 가는 사람은 그 경쟁의 그림자에 가려있는 요소들의 덕을 보고 있다(37).
chapter 1 승자와 패자
시장주도적 세계화 - 불평등의 심화 / 국가적 정체성과 애국심 약화 - 글로벌화
미국, 영국, 유럽에서의 포퓰리즘의 발현은 집권 엘이트에 대한 반작용이었다(47).
세계화는 그 과실을 불균등하게 배분했다(48).
'기회균등'이라는 수사는 규첵을 지키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재능이 이끄는 만큼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구호로 요약되었다(49). =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하신이....사회적 상승 찬가는 이제 '속빈 강정'이 되었다.
능력주의 윤리는 승자들을 오만으로, 패자들은 굴욕과 분노로 몰아간다(52).
능력주의적 오만은 승자들이 자기 성공을 지나치게 뻐기는 한편, 그 버팀복이 된 우연과 타고난 행운은 잊어버리는 경향을 반영한다.
시장주도적 세계화는 40년 동안 계속되며 정치 담론의 장을 공동화했고. 보통 시민들을 무력하게 만들었으며, 포퓰리즘의 반격을 촉발했다. - 복수심에 불타는 민족주의 촉발
chapter 2 ' 선량하니까 위대하다' - 능력주의 도덕의 짧은 역사
능력주의 원칙- 스스로의 덕이며 재능과 노력으로 성취된 것? -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주의 원칙은 폭압적으로 변할 수 있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개인의 책임에 큰 무게를 싣는다. - 그러나 전적으로 책임지게 함으로써 개인을 파탄시켜 버린다.
성서신학은 '자연의 사건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능력주의 사고의 기원 /
능력주의와 성서신학의 유사성
1. 인간의 능력에 대한 긍정성 - 신 앞에서도 자신의 운명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2. 불운을 겪는 이들에게 냉혹한 태도를 부추긴다 - 오죽 제대로 못했으면...<욥기>
능력주의 논쟁 / 구원과 자기구제 - 신학적으로 중요한 문제
신앙이 독실한 사람은 교리를 따르고 선행을 함으로 구원을 얻는가? 아니면 은혜로 신이 선택하는가?
전자가 맞는 것 같다. 권선징악..이렇게 되면, 구원이라는 것이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며, 따라서 받아 마땅한 것이라면 신은 거기에 얽매이게 된다. - 구원은 어는 정도는 '스스로 구제한다'는 의미 - 신의 무한한 은혜에 균열...
구원을 인간의 노력과 무관한 선물로 본다면, 정의롭다면 그의 힘으로 방지할 수 있는 고통과 악은 왜 존재하는가?
신의 은총 앞에서의 겸허함은 스스로의 노력에 대한 자부심으로 바뀌고 만다...구원은 은총으로만 이뤄져야 한다는 아우ㅠ구스티누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행동은 능력주의를 다시 불러들였다(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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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능력주의에 대한 반론에서 피어났다. -부패한 관행에 대한 반발
루터의 엄격한 은총론은 반능력주의적인 것이었다...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청교도 후계자들에게 치열한 능력주의 윤리의식을 가져왔다.
신학적으로 '행함을 통한 구원'이라는 생각, 능력주의적인 생각은 이미 배경에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75).
프로테스탄트의 직업윤리른 자본주의 정신의 배경이 되었을 뿐만이 아니다. 자기 구제와 자기 운명에 대한 책임의 윤리, 능력주의적 사고 방식에 적합한 윤리의식의 기반이 되었다....은총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이 주었던 겸손함, 그것은 이제 자기 자신의 능력을 믿는 데서 나오는 오만으로 대체되었다(76).
신에 대한 믿음이 퇴보하면서 인간 능력에 대한 신회가 힘을 얻었다.
우리가 스스로를 자수성가한 존재, 자기충족적 존재로 볼수록 우리의 성공에 대해 빚진 느낌이나 감사의 마음을 가질 까닭은 줄어든다(77).
"성공한 사람은 그럴만 해서 성공했다." - 승리주의적 측면 / 숭자의 오만과 패자의 굴욕
"운 좋은 사람은 운이 좋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경우가 드물다."
막스 베버는
"이를 넘어서, 그는 자신이 그럴 행운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납득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이 '그럴만 하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럴 자격이 있다'고 확신하기를 바란다(78). - 승자를 추겨 올리고, 패자를 깍아 내린다.
운의 윤리의식
세상이 반드시 각자의 능력에 맞는 보상을 주지는 않기 때문에, 인생에는 신비, 비극,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전도서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았다. 빠른 경주자라고 먼저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강한 자라고 싸움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명철한 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나다...이는 때와 우연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로다."
자기 운명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덜 강조하는 문화는 보다 관대하고 인자할 수 있다(리어스/ 80).
기독교섭리론 / 미국근본주의자들 + 한국의 보수 기독교인들 / 번영신학자들 = 번영의 복음(신종 섭리론)
번영의 복음 = 신이 믿는 자에게 부와 건강을 내리신다.
케니언 - 신의 능력은 나의 것, 신의 힘도 나의 것, 그의 성공은 내것이니, 나는 승리자다. 나는 정복자다.
케이트 바울러 - 나는 축복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축복의 증거는 부유하고 건강하다는 사실이다.
조엘 오스틴 - 예수님은 우리가 유복한 삶을 살도록 돌아가신 덥니다...고급 맨션, 비지니스석...
자신의 운명에 대한 자신의 책임 강조(84) - 충분한 노력과 믿음이 있다면 부와 건강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
건강을 지키는 일도 각자 해야할 일이지 건강보험을 의지하는 것은 나쁜 것 - 트럼프의 주장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삶과 건강에 책임을 진다."- 대형교회에 꼬박꼬박 나감으로....그런데 아프면, 개인의 책임...이런 논리.
똑같은 섭리론 믿음이 약자들에게는 희망을, 강자들에게는 오만을 불러일으킨다(96).
능력과 은총 사이의 균형은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 능력주의는 우리의 은총을 추동하거나 그 자체의 이미지로 개조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으니 은총을 받았다는 것이다.
CHAPTER 3 사회적 상승을 어떻게 말로 포장하는가?
능력주의 윤리의 핵심 -행운이나 은총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분투로 얻은 성과 - 나의 부유함은 나의 몫
- 우리보다 운이 덜 좋았던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힘들어진다.
갈수록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성공은 자신의 덕이며, 자신이 기울인 노력에 따라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 나는 죽어라 공부해서 하버드에 왔으며 따라서 나의 지위는 능력으로 정당화된다고 여긴다(107).
부를 이룩한 사람은 그만한 능력을 입증한 것이며, 따라서 생명을 연장해도 된다(108). - 번영신학과 동일
능력주의의 부정적인 측면
1. 개인의 책임을 강조
2. 사회적 상승에 대한 언어적 포장 - 열심히 일하면, 개천에서 용난다는 신화
자기책임 담론
우리 삶에 대한 개인의 책임이 크면 클수록 우리 삶의 결과에 대하 찬양하거나 비하할 소지가 커진다(112).
맥도날드 - 여러분은 오늘 쉴 자격이 있어요. - 2018년부터 급격하게 사용빈도 증가
이러한 자격담론은 노골적으로 능력주의 사고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여전히....나때는 말이야 힘써 노력만 하면...."이런 식으로 개인의 경험에 집착한다.
능력주의의 고약한 측면은 '학력주의'에 있다.
CHAPTER 4 최후의 면책적 편견, 학력주의
1. 대졸 엘리트들도 편견이 적지 않다는 점은 간과하지 마라.
2.이런 편견에 관대한 이유는, 개인의 책임을 중시하는 능력주의와 관련이 있다.
3.저학력자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은 저학력자에게 내재화되어 있다.
기후변화 논란
(미국의 공화당의 경우) 고졸 또는 그 이하의 경우 57%가 지구온난화는 과장되어 있다고 믿는 반면에, 대졸자는 74%가 그렇게 믿는다.
(민주당의 경우) - 27%, 15%
CHAPTER 5 성공의 윤리
능력주의 사회에서조차 적어도 일부 최상위층에 대해서는 '남다른 출발점'에서의 유리함, 덕을 보지 않았을까 의심한다.
부자가 된다면 귀족제에서보다 능력주의 치계에서가 더 낫다.
비슷한 이유로 능력주의 체제에서 가난하다면 맥이 빠지는 일이다(190).
능력주의의 어두운 면
마이클 영 / 영국 사회학자 - 1958년 능력주의의 등장
능력주의한 결코 이상이 아닌 디스토피아...(190).
마이클 영은 누군가의 사회적 지위가 우연한 이유로 정해짐을 성찰하는 것이 꽤 득이 된다고 보았다.
오늘날 잘나가는 사람들은 그 성공이 단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보상이요, 노력에 따른 대가라고만 여긴다(193).
이런 능력주의 사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하층민이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근거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완벽한 능력주의는 정의로운가?
능력주의는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벌어진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불평등을 치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평등을 정당화하려고 한다(199).
능력주의 신념의 대부분은 '우리 성공은 우리 몫'이라는 생각으로 이뤄져 있다.
우리는 성공이 스스로의 힘으로 얻은 것이라 믿고 싶으며, 물려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능력주의의 두 가지 대안
자유시장 자유주의 / 복지국가 자유주의(평등적 자유주의)
하이에크 - 내가 가진 재능은, 단지 행운의 결과일 뿐이다(207).
가장 잘 달리는 주자에게, 마음껏 전속력으로 달리게 하라. 그러나 그들이 받는 보상이 시장에서 부풀려지면, 그것은 공동체 전체와 나눠가져야 한다(210).
CHAPTER 6 인재선별기로서의 대학
정상에 오르는 사람은 스스로 잘나서 그런 것이라는 능력주의적 오만에 의문을 제기하라.
인재선별기로서의 대학 - 현대사회의 배분시스템을 주도 / 학위
돈 따라가는 SAT(Scholastic Assessment Test) , 소득 사다리의 단이 하나씩 높아질수록, SAT의 평균점수는 올라간다.
고등학교 내신성적도 오느 정도는 집안 소득 수준과 연관이 되어있다.
상처입은 승리자들
고등교육의 승자독식 재선별은,
1.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 부유한 쪽으로 전세를 기울인다.
2. 완벽주의라는 숨은 전염병 - 능력주의의 대표적인 병폐
능력주의에 따른 오만 혼내주기
우리 운명은 누리가 전부 통제할 수 없고 우리의 성공과 실패는 다른 누군가에데, 가령 신이거나, 운명의 장난이거나, 순간의 선택에 따른 예상 밖의 결과등에 좌우된다(300).
CHAPTER 7 일의 존엄성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70년대까지. 대학 학위가 없어도, 좋은 일자리를 구히고 가족을 부양하고 편안한 중산층의 삶을 사는 일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아니다.
일의 존엄성 하락
"당신이 하는 일은 돈 잘 버는 전문직업인들의 일에 비해 시장에서 별 가치거 없어요. 공동선에도 별 기여를 하지 않죠. 당연히 사회적 인정이나 명망도 따르지 않아요.'(308) - CEO와 최소한 300배의 임금차이
일의 존엄성 되살리기
오늘날 생산자보다 소비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재정립했다....소비자의 정체성과 생산자 정체성 사이를 조화시키는 일은 정치의 몫이다(322).
1. 공동선에 대한 시민적 개념- 정치를 필요로하고, 공적 숙의의 영역과 사안을 제시해야 한다.
2. 노동의 가치회복 / 최저임금 보장 / 모든 근로활동이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는 구조
일의 존엄에 대해 논쟁하자.
결론 - 능력, 그리고 공동선
기회의 평등을 넘어서 -
막대한 부를 쌓거나 빛나는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도 고상하고 존엄한 삶을 살도록 하는 '조건의 평등'(349).
민주주의와 겸손 -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하루 종일 서로 마주칠 일 조차도 없다...각기 다른 장소에서 살고 일하며, 쇼핑하고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