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
구일취음(九日醉吟)
취삽수유독자오醉揷茱萸獨自娛
만산명월침공호滿山明月枕空壺
방인막문하위자傍人莫問何爲者
백수풍진전함노白首風塵典艦奴
백대붕<白大鵬>
술 취해 산수유(山茱萸)꽃 머리에 꽂고 혼자 즐기니,
빈 병 베고 누우니 온산엔 달빛이 가득하네
길가는 사람아! 무엇 하는 놈인가 묻지 마오.
풍진세상에 머리만 세어진 전함사의 종놈이라오,
조선 중기에 백대붕(白大鵬)이 지은 구일취음(九日醉吟) 한시(漢詩)다. 백대붕이 길가에서 술에 취해 누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즉흥적으로 대답한 시가 취음(醉吟) 시(詩)이다. 반상(班常)의 신분적(身分的) 벽이 큼을 시어(詩語) 속에 녹아 있다. 이 시는 칠언절구(七言絶句) 측기식(仄起式)이고 시제(詩題)는 취음(醉吟)이다. 압운(押韻)은 상평성(上平聲) 우통(虞統) 한 운중(韻中)에 오(娛) 호(壺) 노(奴) 운족(韻族)으로 취중(醉中) 즉흥시(卽興詩)를 작시(作詩)했다. 정말 전함노(戰艦奴)의 신분(身分)이라면 대단한 시재(詩才) 내공(內功)이다. 신분의 장벽이 없었다면 이런 인재들이 우리 문학사에 빛을 발하였을 터인데 말이다. 중양절(重陽節)은 9월 9일이다. 중양절은 예부터 붉은 산수유 열매를 따서 주머니에 차거나 산수유 가지를 머리에 꽂고 산에 올라 국화주(菊花酒)를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백대붕도 중양절 풍습에 따라 국화주를 마시고 취해서 빈 술병을 베고 자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무엇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니, 그 물음에 전함노(戰艦奴) 신분(身分)으로써 백발(白髮)이 성성한 머리에 산수유꽃을 꽂고 술에 취해 달빛 아래 술병을 베고 누어있는 자신의 천(賤)한 신분(身分)을 자조(自嘲) 울분 탄식(歎息)으로 이 풍진세상에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전함사 종놈 신세라고 결구(結句)를 맺고 있다. 이 시는 칠언절구로 소대풍요(昭代風謠) 권3에 수록되어 있다. 백대붕은 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사약(司鑰)을 지냈고, 선조 초년에 통신사 허성(許筬)을 따라 일본에 가서 시로써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전함노(戰艦奴)는 나라에서 배를 만들고 짐을 운반하는 조운선(漕運船)을 관리하던 전함사(典艦司)의 종 출신을 말한다. 허균(許筠)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 전함사의 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시를 지을 때에도 시에서처럼 실제로 노비였는지는 의심이 간다. 왜냐하면 허균의 위의 문집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백대붕 선생이 궁궐의 열쇠와 왕명의 전달을 책임을 맡은 액정서(掖庭署)의 사약(司鑰)이 되었다고 기록도 있다. 사약은 잡직이기는 하지만 정6품의 벼슬 자리다. 노비이면서 벼슬을 한다는 게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말이다.“
백대웅(白大鵬) 시(詩)는 당(唐)나라 맹교(孟郊)와 가도(賈島)를 배워서 시(詩)가 속되지도 않고 우아(優雅)한 맛이 난다고 전한다. 같은 천인(賤人)으로 시를 유희경과 함께 유(劉)·백(白)으로 일컬었다. 같은 처지의 사람끼리 모여 시를 짓는 모임인 풍월향도(風月香徒)를 주도했다. 시와 문장으로 유명한 당대 일류 문사(文士) 허봉(許篈)이나 심희수(沈希洙) 등도 백대붕 선생을 인정하여 친구로 사귀었다고 한다. 1590년(선조 23) 학사(學士) 허성(許筬)이 조선통신사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사신 갈 때 시를 잘하는 백대붕 선생을 함께 데리고 갔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백대붕(白大鵬) 시(詩)는 취음(醉吟)과 추일(秋日) 두 편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럼 추일(秋日) 시를 한번 보자. 가을 하늘에 가을 하늘에 옅은 그늘 생기더니, 화악산은 어둑어둑 그림자 내리네, 한 다발 국화꽃은 타향살이 눈물이고, 외로운 등불은 오늘 밤 내마음 이어라, 반딧불은 풀숲을 날면서 깜빡이고, 가랑비는 울창한 숲속에 떨어지네, 벗이 그리워 잠을 못 이루는데, 창밖에선 이름 모를 산새 우짖네.<秋天生薄陰 華嶽影沈沈 叢菊他鄕淚 孤燈此夜心 流螢隱亂草 疎雨落長林 懷侶不能寐 隔窓啼怪禽> 추일(秋日) 시(詩)는 평기식(平起式) 오언율시(五言律詩)다. 압운(押韻)은 하평성(下平聲) 침통중(侵統中) 운족(韻族)에 침(沈), 심(心), 임(林), 금(禽) 운(韻)으로 정확(正確)하게 작시(作詩)를 했다. 조선시대(朝鮮時代) 노비출신(奴婢出身) 시학(詩學)이라는 점에서 깜짝 놀랄 일이다. 양반가(兩班家)의 시(詩)는 근체시(近體詩) 작법(作法)에 어긋나는 시들도 많은데 노비(奴婢) 한시(漢詩)는 철저하게 당풍(唐風) 율(律)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두 번 놀랜다. 오늘은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고 당당하게 양반가 사대부들과 시우(詩友)로 활동하며 대접을 받았던 전함노(戰艦奴) 백대붕(白大鵬) 시(詩)를 반추(反芻)해 보았다. 여여법당 화옹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