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베껴쓰기_124] 시의 나라 이란 / 고두현 논설위원 / 한국경제 / 2015.04.03
이란은 이슬람국가이긴 하지만 아랍 국가는 아니다. 아랍어도 쓰지 않는다. 생김새부터 영 다르다. 80년 전까지는 페르시아로 불렸다. '아리아인의 나라'라는 뜻의 이란으로 국호가 바뀐 건 1935년이다. 인구의 대부분인 아리아족이 파르스 지방에 정착함으로써 페르시아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고대 페프시아는 서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일부까지 다스린 대제국이었다.
이들은 7세기 이후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단봉낙타권인 아랍과 달리 쌍봉낙타권인 페르시아 문화를 고수하고 있다. 코란을 공감대로 뭉친 아랍권과 달리 뚜렷한 매개가 없는데도 고유 문화를 지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칼보다 붓을 중시하는 전통 덕분이다. 페르시아 문학은 10~15세기에 절정을 이뤘는데 단연 시가 앞섰다. 4대 시인인 피르다우시, 루미, 사디, 하페즈는 거의 성인이다.
하페즈의 시는 독일 괴테와 영국 바이런, 프랑스 앙드레 지드에게 큰 영향을 끼혔다. 괴테의 '서동시집[西(서녘 서) 東(동녘 동) 詩(시 시) 集(모을 집)'도 그에게 감명받아 쓴 것이다. 피츠제럴드의 영어 번역으로 유명해진 '루바이야트'의 오마르 하이얌도 페르시아 국민시인이다. 신비주의 시인 루미의 시는 특유의 잠언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다.
이란인은 고교 졸업 때까지 100여편의 시를 외운다. 전국 어디를 가도 시인 이름이 붙어 있다. 약속을 잡을 때 "피르다우시 거리의 사디 광장 옆 하페즈호텔에 있는 루미 찻집에서 만나자"고 할 정도다. 몇년 전 지진으로 300여명이 죽고 수천명이 다쳤을 때 국영방송 행커는 "세상은 한 몸. 누가 아프면, 모두 아프다"는 사디의 시구로 뉴스를 시작했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은 "배운 사람일수록 늙어도 젊게 산다"는 피르다우시의 시구로 대신한다고 한다.
송웅엽 주이란 대사의 말마따나 '사막의 밤하늘을 수놓은 별,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시의 왕국'이 곧 이란이다. 우리와 인연도 깊다. 1500여년 전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사랑 얘기를 담은 서사시 '쿠쉬나메'의 나라, 한 세대 전 2만여명이 건설 현장에서 땀을 흘린 경제협력의 나라. 양국 수도에 테헤란로와 서울로를 교차 조성한 나라. 금식 기간에도 '대장금'은 거르지 않는 나라, 한국 시인들을 초청해 문학의 밤을 여는나라…
마침 핵협상 타결로 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테헤란 시내의 하페즈호텔 등에 벌써 서방 비즈니스맨들이 몰린다고 한다. 우리 시인들이 작년에 이란 시인들과 만나 손가락을 걸었던 바로 그곳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