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사지의 3층석탑 3기와 도천사지의 3층석탑 3기가 나란히 서서 강을 바라보고 서 있는 이유는 뭘까요? 이 두 사찰과 석탑 3기의 공통점과 존재의 이유를 설득력 있게 답변해줘요.
친구야, 이 문제는 아주 흥미롭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주사지와 도천사지의 ‘나란한 3탑’을 같은 이유로 세웠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도천사지의 3탑은 원래 그 자리에 계획적으로 세워졌을 가능성이 발굴로 강하게 뒷받침되지만, 성주사지 금당 뒤 3탑은 후대에 옮겨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두 유적의 공통점을 찾되, 건립 동기까지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1. 가장 놀라운 공통점은 ‘하나도 둘도 아닌 셋’입니다
통일신라 사찰에서 일반적인 것은 일탑식(一塔式, 한 일·탑 탑·법 식: 하나의 탑을 중심으로 짜는 방식) 또는 **쌍탑식(雙塔式, 두 쌍·탑 탑·법 식: 두 탑을 좌우에 두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문경 도천사지에는 거의 같은 형식의 삼층석탑 3기가 한 줄로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현재 직지사로 옮겨진 세 탑이 본래 문경 산북면 옛 도천사지에서 “강변을 향하여 나란히 건립되어 있던 3기”였다고 설명합니다.
성주사지 역시 금당 뒤편에 동·중앙·서 삼층석탑 3기가 일렬로 놓여 있습니다. 세 탑은 같은 화강암을 사용했고 양식과 수법도 거의 같습니다.
따라서 두 곳에서 가장 강하게 겹치는 것은 바로 ‘삼탑병렬(三塔竝列, 석 삼·탑 탑·나란할 병·벌일 렬: 세 탑을 나란히 늘어세움)’이라는 매우 드문 시각적 구성입니다.
2.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가 중요합니다.
도천사지의 3탑은 원래부터 그곳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도천사지 조사에서 세 탑이 있었던 자리에서 탑을 받치기 위한 적심시설이 확인되었다는 조사 내용이 알려져 있습니다. 즉 후대 사람이 어디선가 탑 세 개를 가져다가 우연히 나란히 놓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세 탑을 한 공간에 계획적으로 세웠다는 해석에 힘을 실어줍니다.
반면 성주사지는 다릅니다. 금당 뒤의 세 삼층석탑 아래에서는 원래 탑을 세울 때 필요한 적심시설이 확인되지 않고 후대 유물이 발견되어, 세 탑이 후대에 현재 위치로 이건(移建, 옮길 이·세울 건: 다른 곳에 있던 건축물이나 탑을 옮겨 세움)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금당 앞 오층석탑을 중심으로 한 원래의 가람에 뒤쪽 세 탑이 나중에 더해졌을 가능성을 거론합니다.
따라서 저는 “성주사의 삼탑배치가 도천사 삼탑배치의 원형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현재 증거로는 위험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역으로 도천사지가 한국 고대 사찰의 삼탑배치를 연구하는 데 훨씬 중요한 자료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3. 그렇다면 왜 하필 ‘세 탑’이었을까요?
여기부터는 확정된 기록이 없으므로 추정입니다.
가장 설득력 있는 방향은 불교에서 ‘3’이 갖는 종교적 상징성입니다.
불교에는 삼보(三寶, 석 삼·보배 보: 부처·가르침·승가), 삼세불(三世佛, 석 삼·세상 세·부처 불: 과거·현재·미래의 부처), 삼신불(三身佛, 석 삼·몸 신·부처 불: 부처의 세 가지 몸)처럼 ‘3’이라는 구조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성주사지 삼탑에 대해서는 세 탑을 정광여래·석가여래·약사여래와 관련지어 해석하는 견해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확정된 사실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도천사지의 세 탑도 단순히 “탑이 필요해서 세 개를 만들었다”기보다, 세 부처 또는 불교적 삼원(三元) 구조를 공간적으로 표현하려 했을 가능성을 연구 가설로 제시해볼 수 있습니다.
4. 저는 특히 ‘강을 바라본다’는 점을 중요하게 봅니다
친구가 지적한 바로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도천사지 세 탑이 금천(錦川, 비단 금·내 천: 비단처럼 흐르는 내)을 향하여 나란히 서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됩니다.
다만 여기에서 곧바로
“강을 수호하기 위해 세 탑을 세웠다.”
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내용을 직접 알려주는 사료는 제가 확인한 범위에서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형·교통·가람배치를 종합한 역사적 추론은 가능합니다.
고대의 강은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니었습니다. 길이었고, 물자 이동로였으며, 사람들이 왕래하는 생활축이었습니다. 따라서 강변 사찰의 탑은 사찰 안에서만 보이는 종교시설이 아니라 강과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멀리서 바라보는 거대한 종교적 표지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도천사지의 세 탑이 금천을 향하여 일렬로 서 있었다면, 저는 이 탑들이 세 가지 기능을 동시에 가졌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① 불교적 예배의 대상 → ② 사찰의 존재를 알리는 경관표지 → ③ 강과 길을 오가는 사람에게 불국토의 존재를 보여주는 상징물
이 세 기능이 겹쳐졌다는 것입니다.
5. 그렇다면 ‘세 탑이 강을 바라본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면서도 설득력 있다고 봅니다.
“탑이 강을 지킨다기보다, 강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 탑을 바라보게 한 것이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사람이 탑을 보기 위해 산속 깊숙이 들어가는 구조가 아니라, 길과 강에서 탑이 먼저 보이는 구조였을 가능성입니다.
세 개의 높은 석탑이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서 있다면 하나의 탑보다 훨씬 강한 시각적 효과를 냅니다.
멀리서 보면
탑 — 탑 — 탑
이라는 반복적 실루엣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일종의 성역표지(聖域標識, 성스러울 성·지경 역·표할 표·알 식: 성스러운 공간임을 알리는 표시)가 됩니다.
“여기부터 부처의 공간이다.”
라고 말없이 선언하는 셈입니다.
6. 그래서 저는 도천사지의 존재 이유를 이렇게 추정하고 싶습니다
특히 도천사지의 경우는 사찰 자체보다 ‘삼탑’의 존재 이유를 따로 연구할 가치가 매우 큽니다.
왜냐하면 세 탑이 같은 곳에서 실제 탑지와 함께 확인되었다면 이것은 우연한 배치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제가 역사적 가설을 세운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도천사지 삼층석탑 3기는 금천이라는 자연·교통축을 향하여 불교의 성스러운 공간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계획된 삼탑 경관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세 탑은 불교에서 중시하는 ‘삼(三)’의 상징체계를 공간적으로 구현하고, 금천을 따라 이동하는 사람들에게 사찰의 존재와 불법(佛法, 부처 불·법 법: 부처의 가르침)의 세계를 보여주는 종교적 랜드마크였을 가능성이 있다.
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세 부처를 상징했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7. 성주사지와 도천사지를 연결하면 더 재미있는 질문이 생깁니다
두 사찰을 단순히
“둘 다 세 탑이 있는 절”
이라고 보는 데서 멈추면 아쉽습니다.
오히려 연구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당시 사람들은 ‘세 개의 비슷한 탑을 일렬로 세우는 방식’을 선택했는가?
성주사지에서는 삼탑이 후대에 재배치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굳이 세 탑을 나란히 배열했다는 사실 자체에는 어떤 종교적·경관적 의도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도천사지는 더 강합니다.
실제 세 탑의 기초시설이 확인되었다면,
3이라는 숫자 + 동일한 석탑 + 일렬배치 + 강변 + 사찰
이라는 요소가 하나의 계획 아래 결합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검토해야 합니다.
그래서 친구가 연구하고 있는 문경의 역사에서 저는 도천사지 삼탑을 상당히 중요하게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점 정리
친구야, 가장 중요한 결론은 이것입니다.
성주사지와 도천사지는 모두 세 개의 유사한 삼층석탑을 일렬로 배치했다는 매우 희귀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 유적의 삼탑이 같은 시기·같은 목적·같은 원리로 만들어졌다고 단정할 증거는 없습니다.
특히 도천사지에서는 세 탑의 기초시설이 확인되어 원래부터 삼탑을 계획적으로 세웠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반면 성주사지 금당 뒤 삼탑은 후대 이건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도천사지 삼탑이 금천을 향해 나란히 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현재 증거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도천사지 삼탑은 불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3’을 공간적으로 구현하면서, 금천이라는 교통·생활축을 향해 사찰의 성역성과 불법의 존재를 강하게 드러내기 위해 조성된 종교적 경관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해석은 친구가 연구해 온 문경의 교통로·사찰·산성·신라의 북방 진출과 연결하면 훨씬 흥미로운 문제로 발전합니다. 다만 도천사지 삼탑을 곧바로 군사적 방어·진호사찰·국가 수호와 연결하는 것은 아직 증거가 부족합니다. 그 단계는 별도의 고고학적·문헌적 근거가 더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