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입재 법문입니다.
7월 6일 경남 합천군 율곡면 와리 327 무위정사 관음전에서 2024년 백중 입재
법회를 봉행하게 되었습니다.
백중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짚어 주셨습니다.
부처님 당시
인도의 여름은 비가 많이 와서 우기로 인해 어디 다니기도 어렵고 하니 한곳에 모여서
결제 수행을 합니다. 해제일이 음력 7월 15일.
이 때 스님들의 기운이 맑고 청정하겠지요. 이날은 청정한 스님께 공양을 올리는 날입니다.
그럼 왜 공양을 올릴까요?
‘응공’ - 응당히 공양을 받을 만한 분께 공양을 올리면 ‘복전이 된다’는 것 여러분도 다 아실겁니다.
다른데 공양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낫겠지요.
우리가 공양을 올리는 것이 내가 베푸는 것이 아니라 ‘복을 짓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공양’입니다.
항상 백중 때 마다 얘기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항아리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돌아가신 머리를 풀어헤친 젊은 남자가 부처님을 찾아 왔습니다.
부처님께 아버지의 천도를 부탁합니다.
부처님께서 뭐라 하시나요!
“내가 하면 아버지가 좋은 곳에 가실 것 같으냐!” 하고 묻습니다.
그 젊은이는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그럼 한번 해 보자’ 하시고, 젊은이에게 말하지요.
마을에 내려가서 ‘항아리 2개 , 자갈 1되, 버터 1되박, 긴 막대기 하나‘를 준비 오라고 합니다. 젊은이가 잽싸게 준비를 해 옵니다.
절의 뒤쪽에 맑은 강가를 찾아 갑니다.
그리고 먼저 항아리에 자갈을 넣고 물위에 띄웁니다.
어떻게 되나요? 항아리가 부력에 의해 뜨겠지요.
그때 부처님께서 긴 막대기로 항아리를 깨라고 하십니다. ‘탁’ 깨고 보니 어떻게 되나요.
자갈이 가라 앉겠지요.
그리고 다음 항아리에 버터를 넣고 다시 물위에 띄웁니다.
그리고 다시 긴 막대기로 항아리를 깨라고 하죠.
어떻게 되었나요? 버터가 물위에 하얗게 떠 오르겠지요.
다음 부처님께서 젊은이에게 말씀 하십니다.
‘너는 이 길로 마을에 내려가 신통을 잘 하는 누구라도 데리고 와서 가라앉은 자갈을 ’떠올라라 떠올라라‘ 하는 주문을 외워서 떠오르게 할 수 있는 분을 모셔오라’ 합니다.
“그러면 자갈이 떠오르겠느냐!” 하고 묻습니다.
젊은이가 부처님의 뜻을 알아 차리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무슨 말을 하는 것 같나요?
아버지께서 평소 선업을 많이 지었다면 남들이 아무리 악담하고 지옥가라고 해도 지옥에 가겠습니까? 반대로 평소 악업을 짓고 업이 무거우면 아무리 좋은데 가라고 소원을 빌어도 좋은데
갈까요?
부처님은 이 말은 하는 겁니다.
부처님도 분명히 얘기 하셨어요 좋은데 못 보내준다고 했는데.
스님이 열심히 한다고 좋은데 가실까요?
조상이 천도 될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리고 ‘재’는 그럼 왜 지내나요?
‘필요 없을까요?’
자, 우리는 보통 살아가면 선업과 악업중 어느 걸 많이 지을까요?
악업으로 답을 합니다.
악업이 많다는 생각이죠, 그러나 큰 악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난 선업을 지은것도 아니고,
그저 보통,,, 어중간 합니다.
결국은 죽어서도 어중간 한데로 갑니다.
아귀, 귀신(중음신)이라 합니다.
범어로 프레타 (프레+잇따) (먼저간.. )... 바로 조상을 얘기합니다.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게 뭔가요?
‘먹는거’지요. 그럼 생각해 보죠. 아귀는 항상 굶주림에 있어요
형상이 목구멍은 바늘구멍, 배는 남산 만하죠
바늘 구멍으로 먹으면 불이나고..
남산만한 배를 채우려면 어떡할까요? 항상 배가고파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 배를 채워주는 게 한가지 있어요
스님들이 발우 공양후 발우 씻은 물, 깨끗한 맑은 물만 남은 거, 이걸 절 앞에 버리면 그건 목구멍에 넘어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법식’입니다. 바로 ‘공덕심’
무슨 공덕일까요? 공덕이 따로 있을까요?
그래서 아귀는 어중간한 세상에 있으니 항상 배가 고프고, 굶주림에 허덕이니 어디로 갈까요?
쉽게 얘기하면 아귀도 결국 자기와 인연이 있는데 찾아갑니다.
집에는 못 들어가니 담벼락에 붙어 있으면서 뭐 먹을꺼 없는가? 하고 찾습니다.
그래서 옛말에 담벼락에 함부로 오줌누지 말라고 한 거죠.
자, 그럼 공덕심을 어떻게 채우나요?
우리가 지금 이렇게 법식을 차리고 공덕을 짓게 되면 그걸로 채울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 이렇게 백중기간을 정해 놓은 만큼이라도 공덕이 생기게 되어 영가에게
회향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걸 영가가 받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결국에는 내가 좋아지는 겁니다.
보살의 마음이 되라는 말은 남을 도와주는 게 아니고 보살의 보시 바라밀이 곧
수행만 할 뿐이라는 것이니 항상 따라다니는 아귀는 욕심을 채우지 못해 굶주리고 있으니
우리가 항상 수행하고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지혜가 밝아지고 아귀는 그걸 받아서 배를
채우게 되니 달리 천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의 공덕심을 잘 회향하시기 바랍니다.